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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강줄기가 다다른 곳(대강절네번째주일, 12월20일)

하늘기차 | 2020.12.19 18:19 | 조회 792


                지혜의 강줄기가 다다른 곳

20201220(대강절네번째주일)                                                                       1:26-38;4:4-7

     예수님의 족보에는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다말, 라합, , 밧세바는 이름없이우리야의 아내라고만 되어있고, 그리고 마리아입니다. 지독히 가부장적인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어떻게 여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유대전통을 뛰어넘는 교회공동체 믿음의 족보입니다.

     다말은 유다의 첫 번째 며느리로 남편 에르가 죽자, 동생 오난과 결혼을 하는데, 오난이 또 죽습니다. 동생 셀라가 있지만 시아버지 유다는 셀라가 어리다는 핑계로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냅니다. 막내 아들이 장성하여 어른이 되었지만 다말이 두 아들을 잃게한 부정한 여자라고 여겨, 부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양털을 깍으러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길목에서 창녀처럼 하고 지팡이와 도장을 담보로 유다와 하룻밤을 지냅니다. 얼마 후 유다는 다말이 창녀짓을 하여 아기 까지 가졌다는 소문에 자기의 아이인 줄도 모르고 크게 노하여 그녀를 화형에 처하려 합니다. 다말은 사람들 앞에 끌려 나오자, 담보물로 가지고 있던 유다의 지팡이, 도장, 허리 띠를 보여줍니다.

     그제서야 유다는 막내 아들 셀라를 며느리 다말과 맺어주지 않았던 잘못을 시인합니다. 자기 가문을 잇기 위해 필요할 때는 며느리로 맞이하고, 필요 없으니 매정하게 버리고, 또 자신은 하루밤을 즐기기 위해 창녀를 찿아 간 부끄러운 짓을 했으면서도, 다말이 창녀 짓을 하여 아이를 가졌다고 하자 화형에 처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한 것이 들통이 났습니다. 당시의 남성중심, 권위주의적인 부계중심의 사회 속에서 도덕으로 위장한 부도덕을 다말이 온 몸으로 저항하여 유다를 부끄럽게 만들고 잘못을 시인하게 한 지혜롭고도 용기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예수의 조상 중에 한 사람입니다.

     라합은 어떤가요?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성채였는데 저자거리의 창녀 라합은 여리고성에 숨어들어 온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줍니다. 복음은 그렇게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낮은자리로 스며들어갑니다. 그래서 인간의 지혜로는 감당이 안됩니다. 라합은 거짓 이야기, 허황된 이야기들, 신화와 쾌락과 욕망의 이야기들이 흘러 넘치는 곳에서 하나님에대한 이야기를 듣고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에게 여리고성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여호수아의 가나안 침공의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후에 정탐꾼 중의 한 사람인 살몬과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는데, 그 사람이 룻과 결혼한 보아스입니다. 라합은 정탐꾼이 우리를 살려주면 너희 온 가족을 살려주겠다고 한 협상에 응하여 한 순간에 인생을 바꾼 여인입니다. 이렇게 한 순간 찰나적인 결단을 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잘 못 결단하여 때를 놓칠 수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믿음으로 준비된 사람은 함께하는 사람들과 구원의 자리에 설 수가 있습니다.

     은 어떤가요? 시어머니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타지에서 잃은 여인입니다. 나오미가 본인 스스로에게 마라라고 불러 달라고 이야기하였듯이 비련의 여인입니다. 고향에 가믐이 그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갈 때 끝 까지 따라온 며느리가 바로 룻입니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그 고향의 친족인 보아스와 맺어지게 합니다. 그 때 룻이 룻2:10에서 보아스에게

저는 한낱 이방 여자일 뿐인데, 어찌하여 저 같은 것을 이렇게까지 잘 보살피시고 생각하여 주십니까?”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사모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미 시어머니를 따라 하나님의 신앙에 익숙해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대해 시어머니의 신앙을 따라 가족과 고향을 떠나 가나안땅으로 온 것에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 떠남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비견될 만 합니다. 기독인이 된다는 것은 그동안의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세상의 가치, 커넥션, 즐거움을 붙잡는다면 우리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하나님 백성의 참 기쁨을 맛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룻은 참 잘 떠난 여성이었습니다. 룻은 이새의 아버지요,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고 다윗의 혈통을 잇는 자리에 있게 됩니다.

     또 한 여성은 이름 조차 나오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로만 등장하는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입니다. 어찌보면 부정한 여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둘째 아들 아도나이가 왕의 오른팔인 요압과 아비아달 대제사장을 등에 업고 왕 행세를 하고 다닐 때, 당시 예언자인 나단의 조언을 받아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죽을 각오를 하고 왕 앞에 나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누가 왕이 될 것인지를 묻는데, 다윗 왕은 바로 대제사장 사독을 불러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솔로몬이 왕이라는 것을 온 백성에게 선포합니다. 고통과 아픔의 여인이었지만 밧세바는 지혜롭게 자신의 삶을 기쁨의 삶으로 전환한 용기있는 여자였습니다. 다말, 라합, , 밧세바 이 네 여인들의 면모를 보면 모두 험악한 인생, 막장의 자리에 까지 나아간 사람들이었지만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 가문을 잇고, 일으킨 지혜롭고 용기있는 믿음의 여성들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떤 여인이었을까요? 덕망이 있는 풍요로운 집안도 아니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시골 처녀입니다. 이것이 그런데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며 들어 쓰시는가를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잉태를 하고, 그 아이가 구세주라는 천사의 말에 놀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라고 합니다. 요셉이 파혼을 하려 하고, 곧바로 영아살해의 참담함 속에 이집트로 피난의 길을 떠날 수 밖에 없었는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나오는 마리아의 고백은 위의 믿음의 여인들의 신앙의 강줄기가 흘러들어 온 것 같습니다. 예수가 12살이 되어 함께 성전에 올라 갔다가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성전에서 랍비들과 토론을 하며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 모르셨습니까?’라고 반문하는 말을 이해 못하며 당황하는 상황 속에서도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두었다고 합니다. 예수가 탄생했을 때에도 목자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모든 말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나타나 하늘의 소리를 들려 줄 때에도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하며 간절히 사모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한 번은 가족들이 모처럼 고향에 찿아 온 예수를 만나러 갔을 때에 마리아는 누가 나의 어머니이며 나의 형제인가라는 말을 듣는 당혹감을 감내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비록 자기에게 다가오는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아도 무슨 뜻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배려, 그리고 그 말을 소홀히 하지 않고 마음 깊이 간직하는 말씀의 강줄기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에 가면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라는 조각품이 있는데,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의 시신을 끌어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조각상입니다. 자신의 아들이 채찍과 조롱, 십자가에 피투성이로 매달린 모습을 바라 보아야만 했던 어머니입니다. 아마도 마리아의 모습은 대동아 전쟁 때에 정신대로 끌려간 딸들과 징용을 당한 자식을 향해 울부짖는 모습이 아닌가, 지금도 노동 현장에서 죽어가는 자식을 부여잡은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가? 6년 전 세월호 침몰로 아이를 잃은 고통 받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류의 고통을 스스로 지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아들 예수를 속 깊은 마음으로 간직하고 눈물 흘리는 이 땅의 어머니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의 족보 속에 들어 있는 여인들은 자기의 삶을 운명이겠거니 하며 절망 속에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삶을 지혜, 순발력, 용기를 통해 새롭게 전환 시킨 여인들입니다. 이 신앙이 아기 예수 탄생의 기다림의 기간에, 지혜의 강줄기가 되어 우리 모두에게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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