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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나는 새와 들의 백합을 보라!(성령강림절후열여섯번째주일,2020년9월20일)

하늘기차 | 2020.09.20 15:19 | 조회 1173


                 공중에 나는 새와 들의 백합을 보라!

2020920(성령강림후열여섯번째주일)                                                      6:24-34

   공중에 나는 새와 들의 백합 이야기는 24절과 이어져 있습니다. 24절은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고 합니다. 한쪽은 하나님, 다른 한 쪽은 재물입니다. 사랑과 미움, 소중한 것과 멸시하는 것, 현재와 미래 사이에 이것과 저것 사이에 가나안땅과 이집트 사이에 근심과 걱정입니다. 마음에 분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을 보라고 합니다. 주님은 바쁘고, 힘든 일상에 파묻혀 시야를 돌리지 못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며 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맨 뒤에 나옵니다. 33절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는 24절 본문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33절 말씀은 쌍둥이 형제입니다. 마음이 나뉘어 한 분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못합니다. 재물을 쫓는, 세상의 가치를 따르는, 무수한 관계들과 자기 일에 빠져있는 우리를 보시고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다른 것들과 함께 뒤 섞여 있어서 선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에는 먼저가 필요합니다. 먼저가 아닌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짝퉁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냥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나름 애쓰고 수고 했는데 할지 모르지만 이 순간 만큼은 하나님은 매우 엄격하며 엄중합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사람들은 자꾸 무엇을 먼저 해야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무언가 책감에 마음 만 급하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대한 분별은 없습니다. 아니 자기 개인적인, 그리고 이기적인 것에 붙들려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무엇을 하라고 하신다는 강박이 있는데, 그렇다면 의무가 되며, 그것은 복음, 즉 기쁨일 수 없습니다. 보리떡5개와 물고기2마리의 기적 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찿아왔습니다. 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6:27에서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의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냐고 묻자, 예수님은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곧 하나님의 일이라 합니다. 일에 매몰된-그래야 결과와 실적이 드러나니까요-사람들에게, 믿음으로 눈을 돌리게 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보면 여전히 그들은 일에 매몰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먼저니다. 먼저를 예수님은 공중의 나는 새와 들의 백합에게 배우라고 합니다. 무엇을 배우라는 것인가요? 덴마크의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공중의 나는 새와 들의 백합에게서 침묵을 배우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 마음이 나뉘어 허겁 지겁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을 통해 침묵을 배우라고 합니다. 침묵먼저입니다. 저는 이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교회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먼저를 열어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지구가 힘들어한다고 이야기하고, 위기가 오고, 눈 앞에 재앙이 찿아오는데도 들으려 하지 않고, 보려 하지 않고 신앙으로 고백하지 않으려 하니 먼저 할 일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침묵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게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교회 역시 한 술 더 떠 하나님을 듣지 않고 자신의 무지한 소리를 냅니다.

   하나님의 뜻, 즉 의는 쉽게 드러나지도 않으며 익히 알기도 쉽지 않습니다. 종종 목사님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뜻은 감추어져 있어 그렇게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엡1:9에서 감추어 있는 하나님의 의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통해 드러났다고 말씀합니다. 코로나 19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맞습니다. 코로나의 재난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의 해석입니다. 저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현상입니다. 인간의 문명이 한 정점에서 기후 이변과 바이러스의 저항으로 멈추고 말았습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무엇 보다 자본이 멈추고 말았습니다. 아마 전쟁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모일 수가 없으니까요. 흩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바벨탑은 욕망으로 하나님 꼭데기 까지 오르려다가 서로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되자 흩어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하나님이 아니라도 욕망으로 그 말들이 얼마나 서로 다를까. 소통이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논쟁, 싸움, 결국 전쟁이 당연히 일어났을 것이고 결국 흩어질 수 밖에 없었을텐데, 코로나 바이러스-19 역시 우리 인류를, 인간의 문명을 흩으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주관적인 영적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흩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이 흩어짐을 보고계십니다.

   그러나 진정 우리를 멈추게 하신 분이 계십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2천년 전에 인류의 나아가는 길목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놓아 가던 길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다들 무시하고 지나가지만 교회는 그 앞에 멈추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섰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듯이, 엠마오의 2 제자가 돌아가 교회공동체에 속한 것 처럼 말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19는 그렇게 우리를 멈추게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는 초록십자가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결코 생명을 죽이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순리 속에 존재하는 코로나를 굳이 문명으로 끌어내어 지금의 암울한 현상이 된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무엇인지 해석합시다. 여러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연구와 논리를 존중하며, 하나님 앞에 침묵합시다.

   침묵은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설수록 이미 하나님이 우리의 사정을 알고 계시다는 것에 모든 말을 멈추게 합니다. 그러나 침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듣는 것입니다. 새는 침묵 속에서 계절을 기다리며, 비와 햇볕과 바람을 기다립니다. 왜 비가 오지 않는다든지, 바람이 너무 차갑다든지, 왜 나는 이 시궁창 같은 곳에 피어났지, 왜 나는 독수리가 아니고 참새이지 등을 말하지 않고 지금의 상황을 침묵으로, 생명으로 엄숙하게 백합이요, 새입니다. 새와 백합에게 괴로움과 힘듦은 그 자체로 현존하며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없습니다. 지금의 이 고통이 정해진 것인지, 더 확장되어질지에 대해 새와 백합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괴로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침묵을 통해 얻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나라가, 인류가 모두 힘들어 합니다. 바로 새와 백합을 통해서 배웁시다. 바로 고요함. 하나님에대한 경외, 하나님의 질서에대한 머리숙임입니다. 침묵 속에 하나님과 하나임을 알게 됩니다. 그 순간 말은, 언어는 사라집니다. 이제 절대적 순종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영적 침묵입니다.

   이 영적 침묵 속에 머물러 있으면 기쁨이 찿아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가지에 붙어 있으라 하면서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하나이며, 주님과 성령의 감동 속에 모두 하나인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 내 심령 속에서 솟아나옵니다. 새와 백합은 어떤 조건이나 경우의 기쁨이 아니라, 기쁨 그 자체로 꽃을 피우고 노래하며 창공을 날아다닙니다. 자유 그 자체이며 아름다움 그 자체로 기쁨입니다. 그래서 기쁨은 지금 입니다. 내일 기쁨이 아니라 지금 기쁨입니다. 그러나 걱정과 염려는 지금, 현재가 아니라 내일입니다. 내일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걱정은 내일이 알아서 하고 기쁨은 지금입니다. 먼저, 침묵, 절대적 순종을 통해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있다’, 즉 지금 하나님처럼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코로나 바이러스-19의 문명사적 현상으로 힘들어 합니다. 깊은 침묵 속에, 절대 순종의 자연을 바라보며 지금 더 어렵고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하나님 안에 머물러, 지금 침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절대순종에서 오는 절대 기쁨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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