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 합니까(성령강림후 열세번째 주일, 2020년 8월 30일)

만지다 | 2020.09.04 15:52 | 조회 858




마가복음 827-38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기독교 안에 있으면서도,

그 신앙이나 삶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재확산 사태를 경험하면서,

뼈져리게 상기해낼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재확산 사태의 중심에 있었던, 전광훈과 태극기 집회 속 개신교인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같은 개신교인으로써 그들, ‘우리라고 하며, 완전히 분리시킬 수 없는 지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은 잠시 차지해두고,,,

그들을 보면서, 과연 똑같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교회가 복음은 전파하지 않고, 바이러스를 전파한다는 조롱을 듣게 만들고,

교회가 우리 사회의 위험 요소이다는 비난을 듣게 했음에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시 한자리 모여 예배드리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던 우리의 소망을 망가뜨렸습니다.

아무래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입니다.

솔직히 너무 화가 납니다.

 

생각해보면,

같은 기독교인이지만, 이웃 종교인들보다 더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같은 신앙 용어를 사용하지만, 현실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전혀 다를 때가 많습니다.

같은 성서 텍스트를 공유하지만,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을 때가 많습니다.

 

사실 이것은 이번 사태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류의 오랜 역사동안, 다양한 시간과 장소 속에서 반복되왔던 것입니다.

수많은 전쟁들과 폭력들, 이념 논쟁, 종교 갈등, 노예제, 여성차별, 성소수자 혐오,

그리고 생태와 환경 문제 등의 주제들 가운데서,

하나의 기독교는 언제나 두 개의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이렇듯,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차별하고 혐오하고 생명을 죽이는데 반해,

어떤 사람은 환대하며 생명을 사랑하자고 합니다.

 

분명 하나의 종교이지만,

두 개의 목소리, 두 개의 실천, 그러한 두 개의 믿음이 존재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든 것일까요?’

하나의 종교 안에서, 그러한 두 개의 믿음으로 갈라지게 하는 지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그에 대한 답을 오늘 본문 말씀안에서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오늘 본문이 시작하는 827절을 마가복음의 분수령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이유는, 구성적으로 마가복음 딱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기도 하지만,

내용적으로도 이전까지는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시는, 능력의 예수님을 주로 나타나는데 비해,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이 고난의 길에 들어서시는 이야기가 주요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때부터 자신이 고난 당하실 것을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빌립보 가이샤라에 있는 마을로 향하시던 예수님은 문득,

당신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누구라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십니다.

이에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곧바로 이어서 예수님은, 사실 정말로 제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으셨던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 합니까?”

이것은 제자들에게, 오랫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끼면서 깨달은 것을 고백하라는 요청이기도 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확인하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예수님 앞에 준비되어있는 것은 고난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을 받은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는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옳은 고백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본문의 평행구절이 들어있는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이러한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너는 복이 있다...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라고 하시며 칭찬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분명 그것이 옳은 고백이었기에, 이렇게 과분하다 할 정도의 칭찬을 하셨던 것이겠죠.

 

사실 우리는 대부분이,

이 본문의 이야기를 여기까지만 읽고서, 결론을 짓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를 예수님이 칭찬하셨으니,

우리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고백하고 칭찬을 받는 성도가 됩시다하는 주제를 가진 설교에 익숙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본문의 핵심,

주요한 내용은 사실, 그러한 베드로의 고백 이후의 이야기에 담겨 있습니다.

이 다음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러한 베드로의 옳은 고백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며,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이상합니다.

분명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 자신이 칭찬까지 하실 만큼의 옳은 것이었을텐데,,,

그렇게 옳은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일텐데,,,

왜 예수님은 그 옳은 고백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셨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다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이 반드시 고난을 받고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했던 베드로의 성미를 건드렸습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항의를 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항의하다는 헬라어로,

예수님이 귀신을 축출할 때나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며 꾸짖을 때 사용하는 단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분명 선생님이자, 자신이 그리스도라 고백까지 했던 사람에게, 감히 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지만,

그만큼 베드로는 단단히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에 대한 예고를 온몸으로 거부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왜 고난의 길을 예고한 예수님께 그렇게까지 항의했던 것일까요?

 

우리는 이쯤에서 그리스도의 의미를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당시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리던 궁극적인 희망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을, 로마 제국의 압제에서, 성전지배 체제 속 권력의 횡포로부터 해방 시켜주며,

이스라엘 민족 중심 체제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영웅적인 왕이나 지도자로 여겨졌습니다.

그것은 힘과 능력과 승리의 이미지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이전에, 당시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여겼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사람들을 모아서 로마군대를 습격하거나, 예루살렘 성전의 지배자들을 테러하는 식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안타깝게도, 자신들이 압제와 횡포의 자리에 올라 설 위험이 있는 방식이었고,

힘을 충돌시키며 승리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폭력과 억압이 다시 반복될지도 모르는,,,

결과적으로 근본적으로 폭력과 억압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희망의 탈을 쓴 욕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그리스도 의미를 생각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을 품고 있었던 베드로의 고백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과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는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서, 자신이 생각하고 원했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화가 났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편,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칭찬하셨음에도,

동시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의하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이 말은 아무리 순화해서 표현할 수가 없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베드로는 사탄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위대한 고백이었지만, 동시에 악마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그리스도라는 옳은 고백을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실은 바로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옆에서 보고 듣고 느끼면서 깨달았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의 욕망과 확신이 투영된 그리스도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난받는 그리스도인 예수를 격렬히 거부하며 항의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 관념에 굴복시키려 했습니다.

고난받고, 배척받아 죽임을 당하는 것이 그리스도로써의 예수가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일이며,

고난과 배척, 죽음이 있은 뒤에, 부활이 오는 것인데,,,

베드로는 욕망과 자기확신 속에서 오직 승리와 영광만을 쫓으며 사람의 일만 생각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승리를 바랬지, 고난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말로는 그리스도를 앞세웠지만, 실상은 예수님보다 자신을 앞세웠던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 악마적인 것이고, 사탄입니다.

마치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예수님은 자신의 욕망을 앞세운 베드로에게

내 뒤로 물러가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 것은 베드로를 배척하고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앞세운 베드로에게 내 뒤로 돌아와라”, “내 뒤를 따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의 길은 반드시 가야 할 과정으로 못 박고,

그에 따라 제자들이 서야 할 위치, 곧 예수님의 뒤로 돌아와서 따를 것을 당부합니다.

사탄으로의 베드로마저도, 예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뒤를 따르게 하셨습니다.

진정 참 은혜입니다...

 

그러면서, 계속되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된 그리스도의 의미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34절과 35절의 말씀입니다.

가능하신 분들은 말씀을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생명을 잃을 것이고,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빼앗기려는 사람은 생명을 구할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을 뒤따르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타자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버리는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타자를 긍정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생명을 향해 열려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을 줄 압니다.

그는 결코 그리스도에게, 타자에게, 생명들에게, 자신의 확신과 욕망, 관념을 투영시키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서가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자 동시에,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맨 처음 밝혔던 우리 인류 역사의 주제들에 비추어 생각해보았을 때,

그리스도인은 전쟁과 폭력 속에서 평화를 외치는 사람입니다.

이념 논쟁과 종교 갈등을 화해시키는 사람이며.

노예제, 여성차별, 성소수자 혐오 속에서 자유와 평등,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또한 생태문제 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을 뒤따라갑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의 우리에게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 합니까?”라고 질문하십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남의 어떤 고백에 나를 그냥 내맡길 수 없습니다.

나는 나로써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해야합니다.

그러면서 그 고백은 삶으로, 마음은 몸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역사상 인간은 이 질문을 계속 받아왔으며 어떠한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세계의 판도가 달라지고 문화의 모습도 달라졌으며,

개인의 삶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질문을 엄숙히 받고 대답하며,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우리 삶에서 그려가야 합니다.

 


또한, 같은 기독교에 속한 사람이라도, 생각이 다른 이유, 믿음이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고백과 믿음은 기독교의 중심이기 때문에,

그것이 다르면 모든 생각과 행동이 다르게 됩니다.

거기에서 두 개의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지에 따라서,

생명을 차별하고 혐오하고 죽일수도,

혹은 생명을 환대하며 사랑할수도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그리스도에 자기 확신과 욕망, 관념과 신념을 담아내느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에 자기 확신과 욕망, 관념과 신념을 담아낼수록, 생명을 빼앗길 것이며,

그리스도에게서 자기 확신과 욕망, 관념과 신념을 덜어낼수록,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내 뜻이나 내 신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타자와 모든 생명들인, 당신!’의 뜻이, 내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말로,

우리 고기교회 성도님들은 예수를 누구라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을 매일의 삶 가운데 스스로 던져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시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

,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기를 지시면서,

자기확신과 욕망이나 관념을 그리스도와 모든 생명에게 투영하지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9/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497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870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25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15 2005.09.02 16:30
815 벅찬 희망으로 기다리자!(성탄절후첫번째주일, 12월2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11 2020.12.27 14:10
814 지혜의 강줄기가 다다른 곳(대강절네번째주일, 12월2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94 2020.12.19 18:19
813 이보다 더 힘찬 발걸음이 있나!(대강절세번째주일,12월1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90 2020.12.12 19:02
812 잠에서깨어나야할때! 2(두번째대강절주일,12월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94 2020.12.05 17:16
811 잠에서깨어나야할때(첫번째대강절주일, 2020.11월2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76 2020.12.01 07:21
810 복음의 총체성 (성령강림후 스물네번째주일, 2020년 11월 15일) 사진 첨부파일 마중물 761 2020.11.17 13:59
809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성령강림후 스물두째주일, 2020년 11월 1일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733 2020.11.05 17:04
808 한결같은...감사(성령강림절후스물한번째주일,2020년10월2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68 2020.10.25 13:33
807 성령 충만함으로 (성령강림후스무번째주일, 2020년10월18일) 사진 첨부파일 sikiryou 996 2020.10.22 00:37
806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성령강림 후 열아홉번째 주일. 2020년 10 마중물 862 2020.10.15 11:09
805 불가능으로의 열정 (성령강림절 후 열여덟째 주일, 2020년 10월 4 사진 첨부파일 만지다 788 2020.10.06 08:52
804 요나가 스페인으로 간 이유는 (성령강림절 후 열일곱째 주일, 2020년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1259 2020.10.03 23:32
803 공중에 나는 새와 들의 백합을 보라!(성령강림절후열여섯번째주일,2020년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173 2020.09.20 15:19
802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통치 (성령강림 후 열다섯번째 주일. 2020년 9 사진 첨부파일 마중물 969 2020.09.13 23:49
801 영적으로 깨어 분별하십시오 (성령강림후 열네번째주일, 2020년9월6일) 사진 첨부파일 sikiryou 957 2020.09.11 21:53
>>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 합니까(성령강림후 열세번째 주일, 2020년 8월 사진 첨부파일 만지다 859 2020.09.04 15:52
799 그발 강가에서(성령강림후 열두번째 주일, 2020년 8월 23일)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1235 2020.08.25 23:14
798 더 중요한 것(성령강림후열번째 주일.2020년8월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바람 900 2020.08.15 21:15
797 예수님의 필요충분조건(성령강림후아홉번째주일 2020년 8월 2일 사진 첨부파일 윤채아빠 831 2020.08.15 19:05
796 "보았다. 이제, 듣고 지키면...될 것이다"(성령강림 사진 첨부파일 sikiryou 1097 2020.07.26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