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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발 강가에서(성령강림후 열두번째 주일, 2020년 8월 23일)

김현식 | 2020.08.25 23:14 | 조회 1232

 

 

 

 

에스겔 1:1-3

때는 제 삼십년 넷째 달 오일이었다. 그 때에 내가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과 함께 그발 강 가에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보여 주신 환상을 보았다.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 온 지 오 년째가 되는 그 달 오일에,

주님께서 바빌로니아 땅의 그발 강 가에서 부시의 아들인 나 에스겔 제사장에게 특별히 말씀하셨으며, 거기에서 주님의 권능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발 강가에서

 

날씨가 덥습니다. 장마가 그치니까 바로 해가 쨍하게 뜨더니, 다시 비가 쏟아지기도 합니. 예측이 힘듭니다. 코로나도 예측이 힘든 상황입니다. 여름이 지나면 사그러들줄 알았는데, 다시금 집단 감염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며 영상으로 설교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본문을 통해 알아봅시다.

 

오늘의 본문은 에스겔입니다. 익숙하십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잘 읽게 되는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는데, 아마도 에스겔은 익숙하지 않은 책일 것입니다. 분량으로는 48장이나 되는 큰 책인데, 예언서라는 특징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마른뼈가 살아나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 본문이 에스겔 본문입니다.

 

에스겔이 다른 예언서와 다른점이 있다면 포로가 된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예언이라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진 뒤,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망하고 남유다가 바빌로니아에 망한 상태에서, 포로로 바빌로니아에 잡혀간 사람들에게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하는 책이 에스겔입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봅시다, 본문을 보면 글의 평범한 도입부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언서가 누구의 아들 아무개가 여호와께 받은 말씀이다, 묵시이다.”로 시작하는데 반해 에스겔은 뭔가 설명이 좀 많은데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뭐가 30년 넷째달이고, 그발강은 어디며, 여호야긴 왕은 누군지.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살펴봅시다.

 

구약의 인물은 이름이 중요한데, 에스겔이란 이름의 의미는 세가지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강하다. 2.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 3. 하나님이 억세게 만들다. 약간씩 다르지만 하나님의 권능, 능동성을 말하는 이름입니다.

1절의 30년 넷째달을 에스겔의 나이로 보면, 그가 태어난 해는 남유다에서 뛰어난 왕인 요시야왕이 개혁을 단행하던 주전 622년입니다. 열왕기하 23:25에 보면 이와 같이 마음을 다 기울이고 생명을 다하고 힘을 다 기울여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주님께로 돌이킨 왕은, 이전에도 없었고 그 뒤로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의 왕입니다. 그가 성전을 수리하다가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하여 읽은 후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다고 회개하면서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해 우상을 철폐하는 개혁을 시작하는 시기가 에스겔이 태어난 해입니다.

 

3절을 보니 에스겔은 제사장가문의 사람입니다. 당시의 제사장은 세습직이고 사회지도층이기도 합니다. 레위 가문중에서도 제사장직은 일부만이 할수 있었습니다. 어릴때부터 교육을 받아서 25세쯤에는 예비훈련, 요즘식으로 말하면 인턴직을 수행하고 30세부터 정식으로 제사장 업무를 시작합니다. 이들은 율법을 가르치고, 환자를 가려내기도 하며, 재판을 주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성전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1절을 보니 포로로 잡혀왔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앞서 말했듯이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이 당시는 북이스라엘은 이미 망하고 남유다만 남아있을 때였는데, 당시 서아시아의 판세는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대결구도였습니다. 주전 605년에 둘은 갈그미스에서 크게 전쟁을 벌이는데 여기서 바빌로니아가 승리하게 되자 남유다는 바빌로니아에 조공을 바치게 됩니다. 그런데 4년후에 벌어진 재전쟁에서 서로 승리를 주장하는 상황이 되자 유다는 이집트에 조공을 바치게 됩니다. 이렇게 갈팡질팡하니까 바빌로니아가 남유다에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되고, 그때 유다의 왕 여호야김이 죽고 여호야긴이 왕이 됩니다. 그가 왕된지 3개월뒤에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점령해서 왕, 왕족, 사회지도층, 기술자들을 포로로 잡아갑니다. 이때에 에스겔도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렇게 잡혀온지가 5년째라는 것이 2절에 나타나있습니다.

 

정리해봅시다, 한 남자가 강가에 서있습니다. 그는 개혁의 열망, 신앙의 열망이 피어나는 해에 태어나 제사장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사장훈련을 본격적으로 받아야 하는 25세때에는 나라가 패전해서 포로로 끌려오게 되고 제사장직을 시작해야 하는 30세에 눈앞에 있는 것은 찬란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바빌로니아의 그발 강입니다.

제 삼십년 넷째 달 오일이었다. 그 때에 내가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과 함께 그발 강 가에 있었다.” 라는 구절은 그런 의미입니다. 그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절망과 패배감, 하나님께 대한 질문, 허무함. 요즘 하는 말 그대로 멘탈이 붕괴되었을 것입니다.

 

에스겔이 가졌던 질문을 정리해보면 세가지 정도가 됩니다.

첫째,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도 하나님의 백성인가?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을 받았고 특별히 다윗왕과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다윗왕조는 영원하리라고 굳게 믿었는데, 어떻게 이 나라가 망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인데?

 

둘째,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는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면 어떻게 바빌로니아에게 질 수 있는가? 고대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이 상황은 바빌로니아의 신인 말둑과 유다의 신인 여호와가 싸워서 여호와가 진 것입니다.

 

셋째, 성전이 파괴되었는데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나?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에는 출애굽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냈던 법궤가 성전 깊은곳 지성소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법궤는 일반인이 접촉해서는 안되고 오직 레위인만이 옮길수 있었고 법궤가 보관된 지성소에는 1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이제는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나?

특히 이 문제는 에스겔에게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해서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에 나라를 세우게 하셔서 그것을 감사하며 드리는 예배를 주관하는 제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들은 에스겔에는 이해도 동의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특단의 조치로 에스겔에게 네가지의 환상을 통해 그에게 답을 보여주십니다.

 

첫째 환상은 하나님의 보좌를 보여주십니다. 오늘 본문 뒤인 4절부터 등장하는데 에스겔은 하나님의 보좌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워 같았다.” “마치 처럼 보였다.” “-비슷한등으로 표현하는데 기본 모티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전의 법궤입니다. 그리고 이 법궤를 하나님이 보좌로 삼아 자유자재로 움직일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신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역대하 6장에서 솔로몬의 성전봉헌기도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러나 하나님,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땅 위에 계시기를 우리가 어찌 바라겠습니까? 저 하늘, 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모시기에 부족할 터인데, 내가 지은 이 성전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6:18) 그러나이 곳은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주님의 종이 이 곳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이 종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이름을 두겠다고 하신곳이기에 머무시는 곳입니다.

 

둘째 환상은 성전의 타락상을 보여줍니다. 9장부터 나타나는 환상은 예루살렘의 타락상을 보여주며 성전 동편 문으로 하나님의 보좌가 떠나가는 환상입니다. 이 두 환상을 통해 성전이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가? 이스라엘이 어떻게 망한단 말인가? 성전이 없는데 어찌 예배를 드려야 하나? 에 대한 답을 주십니다. 일종의 패러다임 쉬프트입니다. 성소로 나아간다는 개념이 왜곡되서 하나님은 오직 예루살렘-시온에만 계신다. 그러니 예루살렘에 와서 제사장 앞에 꿇어라 하는 식으로 권력화된 것이 당대의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시온에만 계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립니다. 사실은 이것이 당연한 것인데 당대에는 권력의 독점을 위해서 하나님은 시온에만 계심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은 그것에 익숙한것이죠. 그에게 왜 하나님이 시온에 붙들려 있는가? 하나님 없으면 시온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는 전후좌우 하나님의 영이 가고자 하는대로 가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 부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종교의 형식이나 외적인 것들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면 안됩니다. 교리는 우리의 가이드지만 진리는 아닙니다, 이것이 진리인가? 형식인가? 문화인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잠정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면 고착되게 되고 거기서 타락이 생깁니다. 특별히 우리 개신교는 그렇게 타락했던 카톨릭에서 개혁해 나온 교파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개혁신앙입니다.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말둑이 여호와보다 위대해서가 아니라 타락에 대한 심판이며, 성전의 타락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떠나신 것입니다. 성전이라서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에 성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이곳. 그발강가가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예루살렘은 영원히 망한것입니까? 더 이상 희망은 없습니까? 그에 대한 답이 세 번째 환상, 37장에 나오는 마른뼈 골짜기 환상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골짜기를 보여주십니다. 그곳에는 말라버린 뼈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물어보십니다. “저것이 살아나겠느냐?” 에스겔은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답하지만, 사실은 살아날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른뼈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큰 군대가 되게 하십니다. 전혀 회복할수 없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네 번째 환상은 40장부터 나오는 새로운 성전, 나라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새롭게 지으신 예루살렘 성전의 구조를 보여주시며 회복된 이스라엘 민족의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해주십니다. 그리고 떠나갔던 여호와의 영광의 보좌가 다시 성전 동편문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렇게 회복된 예루살렘의 이름을 여호와 샤마라고 부르는 것으로 에스겔은 끝을 맺습니다. 그 뜻은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을 돌아봅시다. 코로나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서울에서는 10명이상의 모임이 금지되었고, 질본에서는 이번 주말에 확산을 막지 못하면 3단계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을 고민중이라 밝혔습니다. 우리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원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정의가 있나? 상황이 나아질 순 있을까? 이러다가 집단감염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황중에 있는 우리의 마음은 그발강가의 에스겔과 같습니다.

 

성전의 파괴는 하나님의 패배가 아닌 성전의 정화였던것처럼 지금 우리가 모이는 교회로 함께 할수 없는 것은 흩어지는 교회를 하나님이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모임이나 건물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이 교회힘을 알려주시고자 함은 아닐까요. 혹은 너무 우리끼리만 좋았던 것은 아닐까요. 이럴때일수록 고통받는 것은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들과 함께 하고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에스겔의 절망의 장소였던 그발 강가는 하나님이 임하심으로 영광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마른뼈를 살리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살리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샤마, 여호와가 거기 계시는 곳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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