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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고’, ‘찿다’가 아니라 ‘전하라’(성령강림후여섯번째주일, 2021년7월4일)

하늘기차 | 2021.07.04 12:51 | 조회 568


           ‘구하고’, ‘찿다가 아니라 전하라

 성령강림후다여섯번째주일(202174)                                                      고전1:17-25

    사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중에 아테네 아레오 바고 광장에서 에피큐로스 그리고 스토잌 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아테네시민들은 당신이 말하는 이 새로운 교훈이 무엇이냐고 물으며, 죽은 사람들의 부활에대해서는 더러 비웃었고, 이 다음에 다시 들어 보겠다고 하며, 그저 몇 몇 사람들이 바울에게 가담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은 온 도시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하였다고 하는데, 화가 나서 아레오바고 광장에 서니, 복음의 증거자가 아니라, 비평자로서 금욕과, 쾌락주의에대해 비판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전도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지혜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했던 말씀을 행17:16 이하에서 보면 하나님, 우주, 생명, 호흡, 우상에대해 열변은 토하지만, 십자가가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등 종교를 포함해서 많은 신들, 하나님이 있는데, 교회의 하나님과 타 종교의 하나님을 선명하게 구별지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 후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로 향합니다. 아테네에서의 실패로 낙심하여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을 때 환상 가운데 무서워 하지 말라는 음성을 들은 것을 보면 사람들 앞에 서기가 힘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의 백성이 많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고린도에서 일년 육개월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그 후 3차 전도여행 중에 머물고 있던 에베소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찿아 와 교회의 문제들에대해 전하자 답변한 내용이 고린도전서입니다. 고전1장은 실제 고린도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들로 혼란스러운데 무엇보다 게바다, 아볼로다, 바울이다, 그리스도편이라며 교회가 갈라졌다는 소식에 바울은 그리스도가 나뉘었냐고 탄식을 합니다. 아테네에서도 그렇고, 고린도에서도 십자가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니 사람의 소리가 커지기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17절에서 교회가 서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준 일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세례를 주어 바울파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인데, 말의 지혜로 하지 않게 하셨다고 합니다. 말의 지혜로 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않게 하셨다고 합니다. 수동태입니다. 교회의 언어인데, 수동이지만, 그 수동을 능동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간혹 입으로만 수동적인 언어들이 교회에 난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착화되어 버립니다. 조심스럽습니다. 하여간 말의 지혜로 하지 않게 하셨다는 말은 아테네에서의 뼈 아픈 실패, 십자가가 빠진 논쟁을 연상케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멸망하는 자들, 구원을 받은 사람, 지혜로운자, 총명한자, 현자, 학자, 변론가 등 다수의 사람들을 언급하며, 이들은 기적을 구하, 지혜를 찿지만,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여기서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주권자, 창조자, 구원자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한마디로 신이 죽었습니다. 헬라 철학, 아니 인간의 지적구조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표현입니다. 아니 표현이 아니라 증언입니다. 이 증언은 나의 힘으로 고백되는 것이 아닌,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해 나의 언어로 세상에 전파됩니다. 그래서 수동적인 능동입니다. 복음은 논리적으로 내용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나의 그리스도요, 이 세상의 구원자라는 믿음의 체험을 증언하는 것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지금 기적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고, 헬라인은 지혜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그러나 24절 말씀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그냥 여기 이렇게, 그리고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드리고 있나요? 부름받은 것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어릴 때, 엄마가 저를 부르시며 그 당시 2, 3백원 인가 돈을 주시면서 저녁 반찬거리를 사오라고 하셨어요. ! 하고는 가게로 가다가 친구들을 만나, 서로 장난치다가 그만 엄마가 나를 불렀고, 심부름을 시킨 것은 잊어버리고, 그 돈으로 아이들하고 아마도 아이스 께끼도 사 먹고, 길거리에서 달고나 뽑기도 사먹으며 신나게 놀고는 아무렇지도 안은 듯이 집에 돌아와 종아리가 시퍼렇게 매를 맞은 기억이 납니다. 교우여러분, 우리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구하고, 찿고, 두드리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생명을 구원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능력입니다. 말이나 철학, 개념이 아닙니다.

     지난 달 글쎄다문학 동아리에서 유다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작가는 유다를 최초의, 유일한, 마지막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가룟지방의 훌륭한 가문에서 자라 예루살렘의 종교기득권에 속하여, 지도층으로부터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라는 명령을 받고, 예수공동체에 침투한다는 재미있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예수와 함께 먹고 마시며 지내다 보니, 예수가 진짜루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드러내기 보다는 사람의 아들이라며 스스로를 감춥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온 세상에 스승 예수가 메시야인 것을 알리기 위해 십자가를 모의합니다. 반드시 십자가에서 내려 올 것이다. 그러면 내가 믿고 따르는 예수가 얼마나 탁월한 하나님의 아들인지 알게 되고 온 세상이 믿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어갑니다. 오늘 말씀 그대로 유대인들은 기적을 통해 메시야 신앙을 확인하려 하는데, 예수는 정 반대의 길을 갑니다. 유다는 예수를 프로메테우스적 영웅으로 바라봅니다. 예수의 희생과 프로메테우스의 희생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기 의지로 자기를 희생합니다. 참 숭고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의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의지요, 뜻에 순종합니다. 모든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영웅적인 죽음이 아니라 모두가 외면하는 참혹한, 저주의 죽음입니다. 헬라의 담론은 인간적입니다. 그 인간적인 사랑에는 십자가의 사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사랑은 말씀이지만, 인류애는 자기사랑, 존재감에서부터 입니다. 예수님은 요6에서 나는 생명의 빵이라 하며, 38, 39에서

                      “그것은,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

                        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

                        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론은 논쟁이지만, 체험은 전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생활하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배운, 가지고 있는, 자기 인생의 가치와 경험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다가 예수를 믿는 것은 참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런데 삶의 방향, 가치는 그대로여서 예수를 믿었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가치는 없습니다. 자기의 욕심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둔갑시킵니다. 둔갑시킨다 그랬습니다. 마술같다는 것인데, 교회가 종교가 되면 그렇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가치를 마치 하나님 나라, 십자가와 부활의 가치인 것처럼 둔갑시키고, 그 마술을 교회가, 목사가 부리고, 교인들이 이에 호응하여 열광합니다. 가룟 유다는 그렇게 예수를 다윗 왕권의 회복, 유대교의 메시아니즘을 그대로 예수에게 덧 쒸워서 따랐으나, 예수님이 자기의 뜻대로 가지 않자, 그것은 베드로를 포함한 12제자들도 모두 똑 같았습니다. 십자를 말씀하자 제자들이, 특히 베드로가 제자들과 함께 예수를 꾸짖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유대교의 거스를 수 없는 커다란 프레임에 예수를 끼워 넣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달랐습니다. 보다 지독한 유대주의자였고, 헬라 철학에 정통한, 지식인이요, 종교인이요, 기득권자였지만,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든 것이 변하였습니다. 특히 유대교의 프레임을 다 내려 놓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배설물과 같이 여겼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우리도 세상의 프레임을 내려 놓아야합니다. 예수 십자가와 부활을 믿게되었으니, 그동안의 모든 지식과 인식, 그리고 경험, 관계, 종교의 체계를 다 내려 놉시다. 그래야 이제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십자가와 부활의 생명의 은헤를 세상에 전할 수 있습니다. 말이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으로 전합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언행을 통해 전달이됩니다. 불신 지옥, 예수 천당 만으로는 이제는 안됩니다.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오직 구원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에게서 만 온다는 것을 구원 받은 우리서로같이 교회가 온 세상에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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