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건강한 긴장감 (주현절후여덟번째주일, 2022년2월27일)

김현식 | 2022.02.28 16:52 | 조회 389







 

 

건강한 긴장감

주현절후여덟번째 주일                                                                            빌립보서 2:12

 

서커스 좋아하십니까? 요즘은 명절때 티비에서 서커스를 방영해주는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영화들을 방송해 줍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티비에서 해외의 유명 서커스 공연을 방송해주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서커스에서 여러 곡예를 볼 수 있지만, 그중에 눈을 끄는 것은 공중그네입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곡예사가 높은 그네를 타고 타는. 공중그네의 하이라이트는 이쪽 그네에서 저쪽 그네로 건너뛰는 순간입니다. 저쪽 그네로 뛰기 위해서는 이쪽의 그네를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공중에 아무것도 잡지 않고 떠 있는 시간. 가장 불안하며 가장 짜릿한 순간. 어떤 학자는 그 순간을 중간지대의 불안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손에 잡고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을때. 그 순간 느끼는 불안감입니다.

 

우리는 확실한것을 원합니다.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거나, 3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이거야라고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확실한것. 이것이 물질만능이 되어버린 우리시대의 기준인지, 우리가 원래 가진 본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말씀은 우리를 알쏭달쏭, 혹은 불안하게 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가라. 그런데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라는 이야기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내가 구원을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그것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루어 가라고? 이게 무슨 이야기이지? 우리가 받은 구원은 확실한 것이 아니었나?

하지만 성경에는 정반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을 보면 초반부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라고 새번역은 기록하고 개역개정에서는 좀 더 강경한 말투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8장 후반부에서는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라고 기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빌립보서의 말씀과 로마서 8장의 말씀은 얼핏보면 상반되는것처럼 보입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구도 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너희가 받은 구원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완성으로 이루어 가라고 이야기 합니다. 거기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을 보면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라는 이야기도 써 있습니다. 성령이 소멸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신다는 말인가?

 

우리는 구원을 받은것인가요 받지 않은것인가요? 구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것인가요?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무엇을 해서가 아닌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구원이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모든 것이 완성될 그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서커스의 공중그네와 같이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것 같은 이 표현은 때로 우리를 불안케 합니다. 우리를 긴장하게 합니다.

구원에는 어떤 수치적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예배를 잘 드리시는걸 보니 구원치수가 5점 올랐습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여부는 타인도, 자신도 때로 잘 모를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두가지 상반된 기준을 동시에 주시는 것은 구원뿐만 아니라 성경 이곳저곳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악이 관영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셔서 노아와 그 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간을 홍수로 심판하신 정의의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그 사랑을 표현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정의와 사랑은 양립할수 없는 두가지의 명제, 기준을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예배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 것이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기에 무한한 기쁨으로 드리는 기쁨의 예배라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 한사람을 택하여 이 자리까지 불러주셨기에 오로지 우리가 드릴 것은 경배와 영광을 뿐이라는 경외의 예배라는 측면이 우리의 예배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앞뒤가 안맞는 모습을 보이실까요? 하나의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가 조금 더 하나님을 쉽게 알수 있을텐데. 왜 우리를 알쏭달쏭하게 하고 때로 불안하게 하시는 걸까요?

 

이럴 때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신 사건입니다. 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신분이 우리를 공포에 떨거나 불안하게 하거나 알쏭달쏭하려는 분이 아니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확실한 기준을 주셨다고 생각해봅시다. 신학교때에 이런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친필 기록이 있다면 정말 좋지 않을까? 복음 자체이신 그분이 기록한 복음서가 있다면? 그러나 그 이야기는 5분만에 반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필체, 그 두루마리를 만든 방식만이 성경을 기록할 방식이다! 라고 하는 전통이 생겨버리진 않았을까? 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의 기준이 생기면 우리는 오히려 그 기준에 매몰되어 버리기 쉽습니다.

 

이미 얻은 구원이 하나님의 기준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기뻐할 수 있겠지만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을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해도 구원은 취소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구원파와 같은 신앙을 가지기 쉬울 것입니다. 반대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에만 집중한다면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불안해 할것이고, 구원을 이루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이른바 행위 구원론으로 빠지기 쉬울것입니다. 이단과 사이비들이 이 부분을 강조해서 말하지요.

예배에서 기쁨만을 강조한다면 그 예배는 난잡해지고 방종해지기 쉬우며, 경외만을 강조한다면 무거운 엄숙주의에 빠지기 쉽겠죠.

이런 반작용이 아니더라도 세대가 넘어가면 하나의 기준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 상황과 환경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보이건 타락이건간에 하나의 기준만을 온전히 지켜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빌립보서입니다. 빌립보서는 이른바 옥중서신으로 구분됩니다. 감옥에서 썼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유대인들이 고발해서 법정에 서게 되고 로마시민권자의 권한을 사용해서 황제에게 재판받기를 청합니다. 그래서 재판을 받기위해 로마로 호송되며, 수감되어 기록한 서신입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이 직접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세우셨지만 동포에게 고발받아 감옥에 갇힌 현실. 낙심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갇혔으니 오히려 신변의 안전이 보장되고, 자신을 지키는 로마군인들에게 마음껏 복음을 전할수 있는 상황입니다. ,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도우심이구나! 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파송한 빌립보 교회에 기쁜 마음으로 쓴 서신입니다. 그래서 기쁨의 서신이라고도 합니다

특히 2장의 내용은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자신을 비워 종의 모습, 사람과 같이 되셨다. 거기다 자신을 더욱 낮춰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 죽음으로 얻은 구원이다. 그러니 그것을 감사하여 받은 것을 귀하게, 허투루 다루지 말고 이루라는 말입니다. 두려움과 떨림에서 두려움은 공포에 떨라는 것이 아니라 경외한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두가지의 기준은 사실은 우리를 위한 말씀입다. 그분이 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두가지 모순으로 주어지는 말씀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한쪽에 기준을 두면 다른쪽을 배제하거나 부정하기 쉽습니다. 또한 각자의 환경과 상황, 우리가 가진 다양성 때문에 종종 우리는 하나의 기준을 자신의 뜻대로 왜곡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기준 사이에 어쩔줄 모르게 되거나 불안하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선하신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공중그네가 우리에게 불안감과 짜릿함을 주는 이유는 점프했을 때 양손에 잡은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 기준 사이에 느끼는 불안감은 불안감이 아니라 건강한 긴장감이어야 합니다. 양손에 잡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안에서 그분의 손을 붙잡고 있는 우리이기에, 건강한 긴장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것이 공동체입니다. 마음과 상황을 나누는, 집단이나 모임이 아닌 공동의 몸입니다. 소중하고 어려운 단어입니다. 내가 아닌 타자를 나의 몸으로 느끼는 공동체를 주셔서 우리를 함께 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확실함을 원합니다. 그러나 확실함에 휘둘리거나 왜곡시키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순된 것 같이 보이는 두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감정은 양손에 잡은 것이 없어 느끼는 불안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안에 있기에 느끼는 건강한 긴장감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쉽지 않은 상황가운데 힘을 얻는 여러분과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6/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492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865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20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11 2005.09.02 16:30
875 생명의 빛: 죽음의 빛(탈핵연합/사순절첫번째주일,2022년3월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28 2022.03.06 14:03
>> 건강한 긴장감 (주현절후여덟번째주일, 2022년2월27일)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390 2022.02.28 16:52
873 창조의 빛 : 십자가의 빛(주현절후일곱번째주일,2022년2월2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77 2022.02.20 13:07
872 직무유기(주현절후여섯번째주일, 2022년2월13일/송강호박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50 2022.02.14 10:01
871 어떻게하면좋겠습니까?(주현절후다섯번째주일, 2022년2월6일/김주용목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58 2022.02.07 14:29
870 코로나 이후 시대의 신앙 (주현절후네번째주일, 2022년1월30일/유경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22 2022.01.29 17:30
869 믿음 : 은혜입은 종의고백(주현절후세번째주일, 2022년1월2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23 2022.01.23 10:50
868 복음 : 십자가와 영광의 역설(주현절후두번째주일, 2022년1월16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401 2022.01.16 13:11
867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 (주현절후첫번째주일, 2022년1월9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438 2022.01.09 14:02
866 생명, 빛, 사랑(성탄절후두번째주일,2022년1월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48 2022.01.02 10:18
865 주님의 구원을 보는 사람(성탄절후첫번째주일,2021녕12월2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92 2021.12.26 13:02
864 소망을 두는 사람 (성탄절, 2021년12월2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82 2021.12.25 12:53
863 보기만 합시다 Ⅱ(대강절네번째주일, 2021년12월1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48 2021.12.19 13:41
862 보기만 합시다(대강절세번째주일, 2021년12월1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85 2021.12.12 13:07
861 어서 오시옵소서!(대강절두번째주일,2021년12월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37 2021.12.05 13:44
860 자기 땅에 살리라(대강절첫번째주일,2019년11월28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81 2021.11.28 13:16
859 새하늘, 새땅, 새사람, 새예배(창조절열두번째주일,2021.11.21)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12 2021.11.21 13:53
858 부활의 신비 이 땅에서 살아내기(창조절열한번째주일, 2021년11월14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52 2021.11.14 13:34
857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내가 듣겠습니다(창조절열번째주일, 2021년11월7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58 2021.11.07 13:27
856 자유,인정,사랑,생명력(종교개혁주일, 2021년10월31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538 2021.10.31 0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