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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인간·변하는 하나님 (성령강림후네번째주일,2022년7월3일)

하늘기차 | 2022.07.03 13:56 | 조회 578


               변하지 않는 인간, 변하는 하나님

성령강림후네째주일                                                                                                   6:5,6;18:1-4,21-24

     오늘 말씀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이 불공정하다는 백성들의 항의에대해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변론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아직도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이 회자되고 있는데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들이 자기들이 멸망하게 된 것은 조상들 때문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변명할 합리적인 이유를 찿습니다. 그래서 숙명론이나, 무책임주의로 빠집니다. 자신들은 아무 죄가 없는데 선조들 때문에 억울하게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죄악을 은폐하려 합니다. 이것은 출20:5“...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는 말씀을 빙자한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지금 이스라엘이 이렇게 참담하게 패망한 것은 과거의 죄 때문이 아니라 현재 스스로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하며, 하나님은 눈동자와 같이 이스라엘 각 자의 죄를 보시고 그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단언 합니다

     TBC성서연구가 이제 원역사를 넘어 구원 역사의 시작점인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지난 주에 아담과 하와, 가인, 노아, 그리고 바벨탑 등 역사 이전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죄가 점점 깊어갑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이 세상을 새롭게 다시 창조하지만, 인간은 바벨탑을 쌓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바라본 성경이 전하는 인간의 역사는 죄의 역사였습니다. 유일하게 죄의 문제에 집착하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왜 기독교는 유독 죄에 집착할까요? 그것은 교회가 믿는 신앙의 대상이 창조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윤리나 도덕의 차원이 아닙니다. 죄라는 말의 헬라어 하말티아는 표적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1-24절 앞부분의 제사문서와 24절 뒷부분 이후의 야웨문서의 두 기록을 보면, 지리적인 배경이 전혀 다릅니다. 1장의 창조이야기의 배경을 보면 물이 넘쳐납니다. 고대 근동의 우주관에 따르면 하늘 위 궁창 넘어와 땅 아래가 모두 물인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티그리스강, 유프라데스강 유역의 문명의 발생지에서 경험한 홍수와 범람으로 어디나 물이 넘치는 지리적인 경험담이 창조의 배경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2장은 비가 내리지 않고 나무나 풀 한 포기 없이 땅을 갈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은 메마른 가나안 지역을 배경으로 역사적으로는 다윗과 솔로몬 왕이 거대한 제국을 이룰 때, 끊임없는 전쟁과 건축으로 도탄에 빠진 하층민들의 고통이 그대로 2:5절에서 황폐한 땅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1장 역시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희망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성전은 다 무너졌고, 성벽도 훼파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창세기 기자는 창조의 배경을 흑암, 공허, 그리고 혼돈이라 기록하며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였다고 신앙을 고백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희망합니다. 두 이야기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차이가 나지만 모두 국가권력이 최고에 다 다른 바벨론제국과 다윗과 솔로몬 제국의 횡포, 불법, 불의, 편법, 폭력 속에 고통받는 땅의 사람들, 아암 하레츠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특히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르짖는다는 고발은 창세기 원역사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보면 아벨은 대화 속에 등장하지를 않으며, 가인의 폭행으로 죽음을 맞이하여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통상 아벨은 좋은 제물을 드리고 가인은 나쁜 제물을 드렸다고 보는데,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제물에대해 일체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은 후에, 6절에 하나님이 가인에게 왜 화를 내고 있느냐? 얼굴색이 변했느냐?’는 질문에 있습니다. 가인을 범죄시하는 말이 아닙니다. 개연적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읽혀집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가인을 외면하지 않고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하면서 가인아 네가 아무래도 올바른 일을 하지 않은 것 같구나, 왜 그랬어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죄가 너의 문 앞에서 너를 지배하려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가인은 아직 자유로우며 선택할 수 있으며, 선을 행할 수 있음에도 하나님께 답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자, 문 앞에 도사리고 있던 죄가 사자와 같이(이 표현은 이사야서에 추가된 표현인데)가인을 덥석 물어뜯어 동생 아벨을 살해합니다. 아벨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자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듣고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제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며 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있느냐?”라고 개인의 죄에대해 묻는데, 아벨에대한 질문은 사회적 공의, 하나님의 의에대한 질문입니다. 땅에 속한 하층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제국의 논리로 합리화 시킨 것이 바로 당시의 바벨론 신화입니다. 하늘의 신 마루둑이 땅의 신 티아마트와 싸워 이겨서 티아마트의 시신을 갈아 흙에 섞어 인간을 창조하는데, 인간을 창조한 이유는 중간계층의 신들이 노동하는 것에 불만을 품자, 신들의 노예로 부리기 위해 인간을 창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제국의 시대에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온 제사장계열의 창세기 기자는 고대 근동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혁명적인 선언을 합니다.

     노아의 이야기에서 홍수는 배경입니다. 노아 이야기의 주제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공의로 세상을 심판할 수 밖에 없어 마음 아퍼하며 세상을 창조한 것을 후회하며, 힘들어합니다. 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사람이 노아입니다. 노아는 이름 뜻 그대로 하나님을 위로한 사람입니다. 창세기는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다, 꼭 그대로 했다는 말을 반복하며 하나님을 위로합니다. 또 하나의 주제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홍수 이 후에 창9:16을 보면 땅 위에 있는 살과 피를 지닌 모든 것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하며 땅을 포기하지 않고 땅에서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런데 죄의 역사는 계속 이어집니다. 세상을 다 쓸어버리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죽은 그 엄청난 홍수를 겪었지만 인간은 다시 악을 행하며 바벨탑을 쌓아갑니다.

     11장에서 하나님은 도시문명을 상징하는 바벨탑을 언어를 다르게 하여, 하나님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욕망을 무력화시킵니다. 인간은 악이 극에 달하여 범죄한 인간들에게 그나마 주신 생육 번성 충만하라는 축복 마져도 저버리고 서로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같은 동질, 동종의 이기적 단일체를 만들어 도시 문명의 탑을 쌓아갑니다.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의 단일함과 성경의 하나됨은 다릅니다. 서로의 차이, 다름을 존중하며 조화로운 그러나 뒤섞여 혼합되지 않는 하나됨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미 노아 이 전에 하나님의 사람들과 사람의 딸 들이 서로 뒤 섞여 네피림, 거인족이 태어나면서부터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삶이 무너지고 집단적인, 전체주의적인 이기적 삶이 더 심화되어 세상은 점점 더 황폐해 갑니다.

     최근 전 세계를 힘들게 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보면 창세기에서 이야기하는 땅의 저주를 봅니다. 가인과 아벨처럼 누가 하나 죽기 전에는 이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노아가 나타나야 합니다. 정도령이 나타나서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무릎 꿇는, 말씀을 하나도 어김없이 그대로 행하는 성도, 교회가 세워져야 합니다. 이미 유럽과 러시아의교회는 이미 쇄하여 노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한 반도는 그래도 희망이 보입니다. 제주도에서 제주도의 구렁비 바위를 부등켜 안고, 군사기지가 되어버린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바꾸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여 평화대학을 만들고 공평해를 주장하며 날마다 기지 앞에서 평화를 기도하는 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외의 산지 성주의 소성리에는 느닷없이 평화로운 마을에 미사일기지를 들여와 마을을 훼파한 국가 폭력에 저항하는 강형규 장로님, 그리고 백창욱 목사님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와 극동아시아의 평화를 봅니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기도 모임이 있습니다. 어떤 외교, 경제, 정치적인 행보 보다 믿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아무 댓가 없이 고통받는 현장을 지키는 홍천양수발전소현장, 수명이 다한 고리2호기 영구폐지를 외치는 박철 목사님이 있어 하나님을 위로 합니다. 인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여 보시기에 좋다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하나님을 위로하는 우리서로같이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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