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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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의 가정(2005년5월8일,부활절일곱째주일,어버이주일)

하늘기차 | 2005.05.15 17:46 | 조회 2056
임마누엘의 가정

2005년5월8일(부활절일곱째주일) 수24:14-18/엡6:1-4

성경에는 두 가지의 은혜의 큰 줄기가 있는데,그 하나가 창조의 은혜요 또 하나는 구속의 은혜입니다.창조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고 그리고 가정을 창조하시면서(하와 창조)창조의 절정을 이루고,구속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거기에서 탄생되는 교회를 통해 그 정점에 이릅니다.가정과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공동체이며,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대한 그리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에서 비롯되었습니다.그런데 늘 이야기 되는 것이지만 이 한국 교회와 가정에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얼마전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목사)주최로 한국교회의 원로 세 분이 한국교회와 사회 앞에 회개를 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극히이례적이라 할 수 밖에 없는)그런데 그중의 한 분이“잘 살아서 미안합니다.”라고 죄를 고백했습니다.그런데 이 고백에대해 어느 네티즌이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잘 살아서 미안”하다니,그게아니라“잘살아서 고맙고,여러분도 그렇게 사십시요”해야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그렇지 않다면“비싼집에서,비싼차와 비싼옷 등 너무 풍요롭고 사치스럽게 살아 죄송합니다.”라고 했어야 하지않느냐 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이런 고백을 한 어르신이 잘사는 것에대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고,한 평생을 교회를 위해 봉사하신 분께서 잘사는 것과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인데,럭셔리하고,외적인 것을 중시여기며,고급 APT와 외제 차,메이커 있는 옷,고급 Restaurant,그리고 레져...그러니까 잘 먹고,잘 입고,잘 즐기는 삶,소위 요즘 모두가 이야기하는 Wellbeing,소비지향적 삶,T.V나 대중 매체를 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어 우리를 혼돈케하는 그러한 삶을 잘 산다고 하는 것인데,그동안 교회가 그렇게 착각하고 있었다면 이것은 무언가 잘 못 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풍요롭고,넘치는 삶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규모있게 나누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닌가요?끝없는 욕구,무질서한 애착,무분별함,가치불확실,문화충돌,정체성의 위기...등,이 시대의 한 사람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복되고도 잘 사는 것일까요?오늘 본문 말씀 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이제 정착해서 살아야 할 즈음에 가나안의 우상숭배,물질숭배,문화충돌,가치혼돈 등의 현실의 위기 속에서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아 놓고“나와 내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신앙을 고백합니다.가정을 회의적으로 보는 이 때에 가정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미국 뉴욕의 흑인 빈민가의 가족형태를 어느 심리학자들이 조사를 해 보았는데 무려 86가지 였다는 것입니다.오늘 이 시대 속에 과연 고전적 의미의 가족형태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우리는 이 질문에 대하여 성경 속에 등장하는 가정,특히 믿음의 조상들의 가정은 어떠한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사실 아브라함,이삭,야곱 등의 가정을 보면 완벽할 것 같은데,모두 콩가루 집안이라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아브라함은 미래가 불확실한 속에 오직 약속을 바라며 떠돌이 생활을 하였습니다.가나안의 가믐을 피하여 이집트로 내려갔지만 그 곳에서 거짓말로 위기를 자초해 아내를 잃고,가정이 무너질 지경까지 이르렀었고,하갈과 사라의 갈등,사촌 롯과의 재산 다툼,큰 전쟁,이삭을 잃을 뻔한 위기 속에서 일생을 보냅니다.

이삭은 온유,성실,순종,과묵하지만,그것을 역으로 생각해 본다면 매사에 미지근하고,답답한 스타일이 아니었나 추론해 보면서,그러니 아내 리브가가 자식에 애착을 가지는 바,특히 믿음에 무관심한 큰 아들 에서 보다는 부모의 신앙을 따르는 작은 아들 야곱에 더 사랑이 가는데-이런 가정 깨지기 십상이지요-에서와 야곱은 평생 갈등을 합니다.

야곱은 생의 출발부터 부도덕합니다.거짓으로 장자의 축복을 빼앗고,삼촌 라반의 집에서 사기를 쳐서 재산을 획득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는데,와중에 딸로인한 위기를 극복하고 얍뽁강에서 극적인 하나님체험으로 변화된 바,야곱이 자기를 죽이려고 다가오는 형 에서에대해“형님 얼굴이 하나님 얼굴 같습니다”라는 이 한 마디에 모든 원한,분노,증오가 눈 녹듯 녹아버립니다.결국 이 가정을 온전히 세운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입니다.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는 자리에서“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입니다.”하고 자기 12아들을 소개합니다.

요셉은 꿈쟁이였습니다.그 꿈으로 배다른 형제들의 질시를 받고 이집트로 팔려가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의 꿈이 그대로 이루어지는데,이러한 편애로 가정이 흩어진 꼴이 되었지만 그 갈등과 시기,질투 등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미리 나를 보내셨습니다.”라는 이 한마디의 신앙고백이 그 동안의 모든 고난을 감싸주고 있음을 봅니다.또 다윗 가정 만큼 처참하게 무너진 가정이 어디있겠습니까?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단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자손을 통해 영원히 변치않을 왕권을 세우리라고 약속하며 축복해 줍니다.결국 이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이 다윗과 그 가정을 회복시켜 줍니다.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자기를 이제 나오미(기쁨)라 부르지 말고 마라(쓰다)라고 불러달라는 나오미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다윗의 조상으로 삼은 이 은혜가 얼마나 귀합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오늘 이 시대의 가정의 형태가 너무 다양해 그 고전적 의미가 상실된 이 때에도 우리는 믿음의 조상들의 가정이 온전히 회복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야 말로,하나님이 가정에 함께하는 것이야 말로,오늘 이 시대의 모든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보게됩니다.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가정에 넘칠까?어떻게 임마누엘의 가정이 될까?

“물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분위기를 표현하는 말입니다.가정에도 분위기가 있습니다.영적 분위기 말입니다.부모가 책 읽고,글쓰고 하는 것이 늘 상이면,아이도 자연스럽게 그 흐름을 탑니다.부모가 행복하면 아이들도 행복합니다.부모가 먹고 마시는 일에 탐익해 있으면,가정의 분위기가 그러한 방향으로 갑니다.과연 우리 가정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몇 년 전 Adam이라는 미국 입양아가 우리나라에 왔다가 갔는데,참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습니다.T.V를 통해 그 가족의 사는 모습이 방영되었는데,정말로 그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 그리 환하고,밝은지요?Adam은 태어날 때부터 팔 다리가 없는 아이로 태어나 부모가 버린 아이였는데,미국의 Charles King이라는 분에 의해서 입양이 되었습니다.그런데 이 분은 Adam을 포함해서 한국아이 4명,친 자녀 3명,그리고 미국 흑인 2명 해서 모두 자녀가 9인데 정말 그 가족의 표정 속에 기쁨,행복이 묻어나오는 것입니다.어떻게 아이들의 표정이 이렇게 밝을 수 있을까?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아!그렇구나!!였습니다.그것은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노는 모습이었습니다.권위?아니요!평가?아니요!Charles King은 컴퓨터 관련 직장에 다녔는데.월급이 적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 위
해 재택근무를 택했습니다.그런데 아이드과 양적으로 많은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문제는 얼마나 아이들과 마음이 통하느냐인 것입니다.그 가정의 물이 참 좋았습니다.마치 물 흐를 듯이 서로가 통하며 하나된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주에 교회로 오는 중에 어느 초등학교 앞에서 엄마인 것 같은데 학교에 늦지않게 하려고아이를 끌고 학교로 가는데 아이는 가기 싫어서 뒤로 버팅기며 끌려갑니다.이게 남의 일이 아닙니다.자녀와 부모와의 관계가 어떻게 건강하게 유지될까 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 준영이는 재영이와 달리 모든 면에 늦습니다.갓 난 아기 때 옹알이,뒤집기,일어서기,걷기가 전체로 늦었습니다.한글을 깨치고,수를 셈하는 것도 늦습니다.늦지 않고 잘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노는 것입니다.노는 것은 정말 끝내줍니다.그 추운날도 양말 안신고 하루 종일 뛰어노니,코에 늘 콧물자국이 있습니다.아이가 노는 것 너무 당연항 것 아닙니까?지난 학기초 받아쓰기 시험을 보았는데,10문제 중에 다 틀리고 간신이 한 문제를 맞았습니다.속상하기 보다는 안타까웠습니다.아이가 혹시 실망하여 공부를 포기하지 않을까?벌써부터 포기하면 안될텐데,그래서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어!받침하나 틀렸네,‘ㅐ’를‘ㅔ’라구 했구나,아유 정말 아쉽네,다음에는 바로쓰자”하니까 아이가 편안해 합니다.일기를 쓰는데 정말 무슨 말인지 한 참을 들여다 보아야 알 수 있겠드라구요.지금은 받아쓰기에 탄력이 붙어서 훨씬 좋아졌고,일기도 거의 받침 몇 개 틀리는 것 외에는 거의 알아 볼 수가 있습니다.준영이 일기가 너무 재미있습니다.하여간 이렇게 인정해 주고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이들과 부모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오늘 말씀 엡6:1-4에 보면 부모와 자녀에게 모두 주는 교훈인데 자녀에게는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고,부모에게는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가르치라 하면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이러한 좋은 관계가 유지되려면 먼저 부모와 자식간에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창18:18,19에 보면“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한 것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옳고 바른 일을 지시하여 하나님의 가르침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라고 하면서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그대로 이룰 것이라고 합니다.여기서 하나님은 그 선택과 그 목적,그 축복이 아브라함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그 자녀와 후손에게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한 언약이 어떻게 후손에게 이어지고 있나요?우리는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다시 바치라고 명령했을 때,두 말없이 사흘길을 걸어 모리아산에 도착하여 이삭을 제물로 드린 것을 알고 있습니다.그 시험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갈대아우르를 떠날 때 약속한 언약을 다시 한 번 갱신합니다.이 축복의 언약이 그대로 갱신될 수 있었던 근본은 바로 말 없는 순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철저한 순종으로 하늘의 축복을 이 지상으로 끌어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축복이 지금 우리들의 귀에까지 들리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또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에대한 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의 순종이 없었다면 그 축복은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와 땅에 묻혔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중의 에베소서의 말씀은 출애굽기 20 장 중에 5번째 계명을 인용한 것인데,그 첫 번째에서 4번째 까지가 하나님 사랑이며,5번째에서 10번째 까지가 이웃 사랑인데,그 이웃 사랑의 첫 번째가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자녀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우리가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바로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에 바탕해야하지 않을까요?남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 어디에서부터 흘러넘칠까요?바로 5번째 계명에서부터인 것입니다.이 부모 순종은 단지 효의 개념이 아닙니다.이 순종에는 아브라함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인“큰 민족을 이루고”,“이름이 창대하며”,“복의 근원이 될지라”는 언약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이 제5계명은 생명을 살리는 계명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통해 계속 이어져,강줄기 같이 흘러 다윗에게 까지 이르러 열매를 맺었으며(다윗이 율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 나단 예언자로부터 축복을 받는데,다윗은 이 축복을 삼하7:29에서 기도로 고백합니다.즉“이제 주님의 종의 집 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셔서,나의 자손이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대를 잇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이 축복은 결국 열매를 맺었읍니다.)계속 믿음의 순종을 통해 이 축복의 강줄기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까지 이어집니다.

이 믿음의 축복의 강줄기는 마태복음 첫 장에서 믿음의 족보로 언급되는데,이 족보야말로 축복의 폭포수요,줄기인 것입니다.이 폭포와 같은 축복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분기점이 되었으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자기 생명을 다 해 말씀에대해 순종하여,이 축복을 온 인류에게 구원의 말씀으로,생명의 은혜로,복음으로,기쁜 소식으로 전파되게 한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약속이 있는 5번째 계명이 여러분에게도 생명의 축복으로 다가오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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