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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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굴로라는 광풍(2005년9월11일,성령강림절후열일곱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5.09.13 05:45 | 조회 2369
유라굴로라는 광풍

2005년9월11일(성령강림절후열일곱번째주일) 행27:9-26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그런데 항해라는 것이 어떤 때는 바람이 불지 않아 마냥 멈추어 서 있는 무풍지대를 지날 때가 있고,순풍에 돛 달듯이라는 말대로 바람이 목적한 방향으로 불어주어서 배가 힘차게 미끄러져 나가는 모습도 볼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어떤 때는 큰 파도,거센 풍랑으로 배가 좌초될 위험이 찿아오기도 하는 것입니다.또한 뱃 길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어 방심하다간 여지없이 배가 깨지는 경우도 봅니다.이런 항해를 보면 인생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은 3차전도 여행 후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이스라엘의 총독 벨리스 앞에 서게 되었는데 1)선동했으며 2)나사렛 예수를 전파했으며 3)성전을 더렵혔다는 죄목으로 고발을 당합니다.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Rome시민권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예루살렘이 아니라 로마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합니다.그래서 바울은 로마행 배를 타게 됩니다.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아 미항이라는 항구에 도착합니다.

바울은 금식절기가 지났으니 항해가 어려울 텐데 이 곳 미항에서 겨울을 난 다음에 로마로 가자고 합니다.왜냐하면 아마 이맘때가 되면 태풍이 자주 불기 때문에 항해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그러나 호송 책임자인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항해를 계속할 것을 주장합니다.결국 항해를 계속하기로 결정이되었고,마침 남풍이 불어 항해가 순조로운 듯 하더니만 얼마안가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나 바울을 포함한 배에탄 276명의 사람들이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여기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모두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을 담대하게 말합니다.

오늘 말씀에 유라굴로라는 폭풍이 섬쪽에서 몰아쳤다고 합니다.바람에 맞설 수가 없어 배가 떠밀려 간다고 합니다.한글 개역에는 광풍이 대작했다고 하니 미친 바람이 바울이 탄 배를 뒤 흔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바울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갔을까요?사도 바울의 모습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자세를 찿아 봅니다.

오늘 이 사회도 두가지 큰 광풍에 맞닥드린 것 같습니다.하나는 부동산 광풍입니다.나라가 부동산을 통해 이익을 확대 재생산 하고,그러한 구조적 틀 속에서 경제를 키워나가니 모든 나라의 이익 집단은 그런 부동산 투기로 경제적 버팀 목을 삼을 수 밖에 없습니다.이제는 개인들도 모두 그 풍조에 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소위 이러한 투기적 이득을 재테크라고 하여 미화하여 부릅니다.언론에서도 이러한 재테크를 어떻게 할까라는 주제로 기사화 하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어느 외국인이 거리 마다“부자되세요”라는 말이 들려오고,보이길래 무슨 뜻인 줄 물었고,그 뜻을 알고는 기겁을 했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대학입시입니다.우리 때에도 과외공부가 있었습니다.그래서 과외망국병이라 한 적도 있었고,저도 초등학교 때에 과외공부에 이리 저리 휘둘린 기억도 납니다.확실 한 것은 그 때 나는 별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모두들 과외를 하니까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그러한 사교육 망국병을 없에고,어떻게 해서든지 공교육을 정상화 해 참 인격이 살아있는 교육을 해 보려고 하는데 자꾸 변칙이 생겨,결국 끊임없이 사교육 위주로 교육이 흘러갑니다.기독교인은 이러한 광풍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이 탄 배가 바람부는대로 밀려갔다고 합니다.조정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표류한다는 것입니다.이 나라도 이 부동산과 사교육 광풍에 온통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이 두 광풍에 표류합니다.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 바울은 이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어떻게 예견했을까요?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을까요?그렇지 않습니다.로마로 향하던 배가 미항에 도착했을대,바울은 대속죄일,즉 금식기간이 지난 후에는 태풍이 불기 쉬우니 이 곳 미항에서 겨울을 지내고 로마로 향하자고 합니다.교우 여러분 바울의 권면은 상식이었습니다.그러나 상식이 안통하고,진리가 가리워질 때가 있습니다.이럴때 기독교인은 상식을 알고,말하고 행동하여야 합니다.그러나 이 당연한 상식은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교우 여러분 상식적이기 바랍니다.아주 단순합니다.사심,이기심,미움,열등,교만,거짓,욕망...을 버리면 상식적이 됩니다.그러나 상식을 살아낼려면 용기와 신앙이 필요합니다.

종종 말씀드리지만 은혜는 합리성과 상식을 초월합니다.그러나 상식과 합리성을 파괴하고 깨뜨리는 몰상식,비합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상식과 합리성을 품는 초월함입니다.

왜 배에 탄 사람들은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바울을 로마 까지 호송할 책임이 있는 로마 황제의 친위부대인 아구스도부대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의 상식적인 이야기를 따르지 않고,선주와 선장의 이야기를 듣습니다.선주는 하루라도 빨리 로마에 도착해야 보다 많은 이익이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그래서 항해에 방해되는 것들을 감수하라고 합니다.태풍이 예상됨에도 선주는 선장을 독려하여 미항보다는 뵈닉스항에서 겨울을 날 것을 촉구합니다.결국 바울의 권면은 무시되고 선주와 선장의 주장이 득세를 합니다.

오늘 이 세상이 광풍을 만나 표류하는 것 같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선장과 선주의 결정,그리고 그것이 합당치 못한데도 그 주장의 힘에 밀려 그 논리에 따르는 백부장의 모습에 있는 것 같습니다.그렇습니다.오늘날 세상의 적지않은 일들이 경제적인 이익 때문에 파행적 으로 추진됩니다.낙생저수지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돈이되면 공공의 이익,함께 나누는 일은 무시됩니다.이익을 위해 특해가 주어지고,불법과 폭력이 동원되는 것을 우리는 옛 저유소 저지 운동을 할 때도 익히 보았습니다.이러한 경제적인 논리에 배를 이끌어가는 선장이 말려들고,백부장도 어쩔 수 없이 따릅니다.아마 그 때에도 선주와 선장,그리고 백부장 사이에 불법적인 커넥션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또 하나 주시할 것은 왜 뵈닉스 항에서 겨울을 나자고 할까요?그것은 미항은 작은 어촌 정도의 규모의 항구이지만 뵈닉스는 그 당시 한창 뻗어나가는 번화한 항구 도시였습니다.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술과 여자,도박,화려한 쾌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선장,선주,아니 선원들과 병사들 배에 탄 승객 모두는 미항 보다는 뵈닉스에서 겨울을 즐기며 보내려고 했을 것입니다.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무리한 경제적 욕심과 말초적 쾌락은 자신을 망치고,가정과 나아가 사회를 파손 시키기 십상인 것입니다.배안의 모든 흐름은 뵈닉스로의 항해였고,거기서 상식이 통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유라굴로라는 광풍에 배는 표류하게 됩니다.배에 탄 선원들은 급기야 실고 가던 짐을 모두 버리고 3일째 되던 날에는 배의 연장 마저 모두 버리고,몇 날 몇 일 동안 해와 별을 볼 수 없는,죽음의 지경에 이르자 모두 식음을 전폐하게 됩니다.이 때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배에 탄 사람들을 안심시키고,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위로합니다.생명에는 지장이 없을것일고 사람들에게 확신시킵니다.

바울은 지금 죄수로 이 배에 탔습니다.세상의 기준으로 보아 바울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위치에 처해있습니다.그러나 지금 배에 탄 모두에게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기독인이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기독인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보잘것 없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기독인은 영적인 탁월함과 수준 높은 도덕성으로 이 세상 속에 빛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성경은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이요,거룩한 백성이요,택함받은 족속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구는 하나요,한 배를 탔다는 말이 있습니다.그것은 한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한민족이 한 배를 탔다는 것은 같은 공동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적게는 우리 마을,우리 가정도 한 배를 탓다고 합니다.교회도 물론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 때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기독교인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기독교 인터넷 웹사이트에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교회가 그동안 은행에서 대출받아 부동산을 사서 얻은 이익 회개하고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최근 들어서는 교회가 사회사업을 한다고 대안학교니,복지사업이니 해서 세금면제를 받아 부를 축적해 나간다고 하는데 교회가 자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합니다.어느 탈랜트 장로님은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 당첨된 것을 축복으로 여겼다고 하며 지금은 회개한다고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부동산 투기를 자행하면서 번 돈을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간주하고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리며 교회에서 어깨에 힘을 주는 것,교회가 부동산을 사서 차등 이익을 남긴 것을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라고 축복기도 하는 것에대해 이제는 다시 한 번 돌아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실제 향심교회라고 하는 교회는 한겨레 신문에도 나왔는데 교회가 가진 부동산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얻은 40억 이익을 사회에 환언한다고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오늘 이 시대가 부동산을 갖지 않고는 돈을 벌 수 없는 시대이지만 그 속에서도 이런 향기나는 행동을 실천하는 남은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누구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정말 작금의 세상흐름 따라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었다면 누구보다도 뛰어났을 분이 부동산에 눈 길 하나 돌리지 않고,오직 집 한 채로,이웃들과 순전하게 살아가는 삶이 아름다운 분을 저는 알고 있고,참 그러한 삶이 보기 좋습니다.부동산 투기 하지 않아도,이것은 분명히 천박함인데,이 나라가 그러한 천박한 소용돌이에 휘둘렸고,교회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 한 처지에 있는 현실 속에서 그렇게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모습을 너무 좋습니다.

사교육 문제도 그렇습니다.아직도 어렸을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초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 모르지만 동기부여가 안되니까 아무리 과외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던 기억이 납니다.들은 이야기를 해서는 안되겠지만 바로 세상이 결국 들은 이야기들을 유통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데,강남의 아파트 단지의 많은 부모들이 남의 자식이 하니까,우리 아이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안하면 뒤 떨어질 것 같으니까 아이의 적성이나 심리 상태,앞날의 꿈에대한 확신 없이 전부 다 그 흐름을 탑니다.아이가 정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대한 생각 없이 그냥 전과목 학원에,아니면 족집게 학원에,특별 지도에 아이들을 맡깁니다.그런데 없어서 그렇지 이 흐름은 우리 모두에게 진행형입니다.모든 것이 입시 점수 올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속에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그러니 핸드폰으로 집단 컨닝하는 사태까지 지금 내 몰렸습니다.집단 사기,폭력이 되어버렸습니다.그것이 바로 올 해 있었던 일인데 사람들은 까마득하게 잃어버리고 입시 점수 한 점 올리려고 혈안이되어 있습니다.또한 대학에서는 변별력을 키우기위해 종합어학논술을 실시한다고 합니다.그러나 기독인이라면 어느 곳에 살든지,강남에 살든지,변두리 지역에 살든지,그리고 경제적 능력이 없어도 경제력이 있는 아이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이런 고민없이 우리 아이 다른 아이에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소시민적 개인주의에 바탕하여 입시체제를 볼 것이 아니라,현 입시를 비록 보잘것 없을 지라도,남이 알아주지 않을 지라도,다른 아이와 함께 인격적인 나눔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조그마한 여지가 있어야 할텐데 그 싻을 아예 키워보지도 않고 사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입시의 흐름 속에 우리 자녀를 흘려 보낸다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지난 8월 말 광풍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하였습니다.그 이후 지금 까지의 상황을 보도를 통해 보고 듣게 되었는데,특히 뉴올리언스의 상징인 미식축구장 슈퍼돔은 아비규환,지옥 악몽등으로 표현될 정도로,살인,강간,폭력,강도...이루 말 할 수 없는,참혹함이었다고 합니다.실제 연방군이 민간인을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하였습니다.물이 오염되어 더 큰 재앙이 우려된다고도 합니다.죽은 시체를 몇 일체 옆에 두고 할 수 있었던 조치는 시체 썩는 냄새를 막기위해 얼굴에 수건을 두르는 정도였다고 합니다.인분 냄새,시체 썩는 냄새 악몽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그 아비규환 속에서 이런 사건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또 패싸움이 벌어지자 20여명의 주방위군이 공포탄을 쏘면서 질서유지에 나섰으나 그것마저 먹혀들지 않는 절박한 순간에 한 그룹의 여성이 성가를 부르면서 겨우 긴박한 상황을 모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산마루교회의 이주연 목사님은 이 현상을 바라보면서

숲이 죽은 자리엔
생명이 유지될 수 없고

공동체성이 무너진 자리엔
인간다움이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구 위에선 숲이 죽어가고 있고
인간 사회에선 공동체성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현상의
원인은 한 가지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물질주의!

뉴 올리언스의 허리케인이 남긴 것은
수마가 할퀴고간 흔적보다는
공동체성이 무너진 자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방화와 강간과 약탈, 인종차별과 상호불신!

공동체성이 무너지지 않은 자리였다면
오히려 아름다운 인간애의 꽃과 향기가 피었을 것을.

오늘 우리가 향하는 방향은 어디입니까?
뉴 올리언즈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가던 길을 멈추고 생각을 해 보면 어떨까요.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죽음의 순간에 오히려 담대할 수 있었고,여유로울 수 있었습니다.어떻게 그럴 수 있엇을까요?사도 바울은 생을 포기한 배에 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합니다.바로 그 믿음에서 바울은 담대함과 용기,그리고 지혜를 얻습니다.이 믿음은 바로 하나님에게서부터 오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사울에게“바울아,두려워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합니다.

사명받은 자,하나님의 은혜를 지켜나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러한 귀한 은혜를 주십니다.오늘 우리 사회가 부동산,입시의 광풍 속에서 표류하고 있습니다.바울이 탄 배의 선주,선장,백부장이 모두 경제와 쾌락에 붙들리어 상식적인 선택을 하지 못 합니다.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자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고난도 함께 따릅니다.기독인이 기독인의 부르심의 뜻을 잃어버리고 마땅히 해야할 일을 외면해 버린다면 요나의 배가 요나 때문에 파선 직전에 이른 것 같이 기독교와 함께하는 가정,이웃,사회,나라,온세계는 광풍에 표류할 수 밖에 없으며 세상의 표류하는 배와 함께 그저 개인의가진 것 가지고 이기적인 성취감을 맛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여전히 이 시대를 흔드는 죽음의 어두움에 붙들려 살 수 밖에 없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오늘 이 세상에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상식적으로,그리고 합리적으로 감당해 나갈 때,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시대를 흔들어 놓는 유라굴라 같은 미치광이 광풍 속에서도 기독인은 담대함과 평화와 은혜의 감격을 맛보며 나누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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