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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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회개,복음,믿음(2005년6월19일,성령강림절후다섯째주일)

하늘기차 | 2005.06.20 09:41 | 조회 2448
하나님 나라,회개,복음,믿음

2005년6월19일(성령강림절후다섯째주일) 막1:14-20;요1:43-51

오늘 말씀 막1:14-20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단어 5개가 있습니다.하나님의 나라,회개,복음,믿음 그리고 때,시간에 대한 개념입니다.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전하신 첫 번째 말씀입니다.“때가 찿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14절 말씀에 보니까 에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합니다.글자 그대로 복된 소식입니다.기쁜 소식입니다.과연 기쁜 소식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보니 예수님이 전한 말씀의 내용은 극히 간략합니다.“때가 찿고,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입니다.어떻게 보면 특별한 내용이 없습니다.그렇다면 기쁘고,복된 소식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요?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서 부터입니다.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서 그 내용의 무게가 실립니다.그 느낌이 옵니다.내용이 있고 그 내용의 전달자가 어떤 전달자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좋은 내용을 좋은 전달자가 전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따로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3월에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 5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사립으로 5년 동안 그것도 질적으로 탁월하게 어린이도서관을 이끌었다는 것은 정말 기념할만한 일입니다.그래서 그동안에 함께했던 사람들과 같이하고,또 새로운 비죤을 제시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5주년 생일잔치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수지농협 강당을 빌려서 열었는데,그 테이블 보,테이블 위의 꽃 한송이,커피잔,접시,간단한 먹거리와 식혜같은 음료수 모두 그동안 함께했던 엄마들이 자신들의 집에서 아끼던 것들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일회용으로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엄마들,아이들,거기서 강화의 새샘터 대안학교에다니던 희주,희갑이도 만났는데,시종일관 화기애애하고,그 얼굴에 정말 축하하는 마음의 진심어림이 넘쳐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그 값진 기쁜 소식을 어떤 몸과마음,그리고 말로 전하는 것은 중요한 것인데,어떤 모습으로 전하는 것이 복음에 걸 맞을까요?베드로의 모습은 어떨까요?왜 베드로의 모습이 복음의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좋은 그릇,좋은 모습인가하면 베드로는 제자들 중에 가장 열정적이고,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던 제자입니다.그러나 실수도 많았고,겁도 많았던 제자인데,이 베드로가 십자가와 부활 이후에 변한 것입니다.사도행전에 나오는 첫 설교자가 누구인가요?바로 베드로입니다.복음서의 첫 설교가 예수님에게서 부터라고 한다면,사도행전의 첫 설교는 베드로에게서 부터입니다.어떻게 겁많고,다혈질적이고,몰이해한 베드로가 예수가 전하던 말씀을 전하며,에수가 행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베드로의 변화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그릇은 변화입니다.어느날 늘 술에 고주망태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집에 들어와서,이제 나 술 끊었어하며,실제 끊는다면,그래서 변하였다면 어떨까요?기쁘죠?기쁨입니다.도박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사람이 어느날 그만두기 시작햇어요?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이 얼마나 기쁠까요?늘 우유부단하고,자기 속내 들어내지 않고,늘 하릴없이 늘 빈둥빈둥하던 사람이 갑자기,어떤 일에 땀흘려 매진 한 것을 볼 때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복음입니다.기쁜 소식이란 말입니다.그런데 이런 변화가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 교회는 개화주가 없어 난 출하는 없는데,아마도 올 겨울에는 얼마 정도는 꽃대가 올라 와 출하할 것 같은데,A-One이라는 품종이 있습니다.이 품종은 꽃대가 반 듯하게 서지 않고 구부러집니다.그래서 그냥두면 꽃대가 난 화분을 올려놓는 화분대 아래로 거꾸로 내려갑니다.90도가 아니라 180도까지 구부러집니다.관리소홀이지요,제 때 제 때 꽃 대를 잡아주어야 하는데,그러지 못한 것입니다.아마 우리의 삶도 똑바로 서지 못하고 구부러지는 것은 자랄 때 바로 서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그래서 180도 구부러진 꽃대를 세우다 보면 어떤 것들은 세워지지만,결국은 부러지고 마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재배자가 억지로 세우려 하면 여지없이 부러지고 맙니다.그런데 꽃대가 완전히 굳어있지 않아 어느정도 탄력을 갖고 있으면 천천히 꽃대를 180도 돌려 세울 수가 있습니다.거의 예술입니다.

우리의 변화라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구부러지고,휘어지고,비뚤어진 것이 반듯하게 펴지는 것이 변화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힘으로 안됩니다.법으로 안됩니다.의지력으로 안됩니다.복음입니다.변화의 능력인 복음으로 변화됩니다.

그런데 복음으로 변화된다는 것은 생명현상입니다.변화는 씨앗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씨앗은 환경,여건을 만들어주면 싹을 티웁니다.언젠가 해외 토픽에서 들은 기억이 나는데,이집트에서 미이라가 발견되었는데,미이라 옆에 그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씨앗이 있어 그 씨앗에 물을 주고 햇빛을 쪼었더니 싹이 나더라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씨앗에서 싹을 티우는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생명이 있는 것은 기필코 싹을 티우고 변화합니다.복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은 변화된 자가 전하는데,베드로가 바로 그렇습니다.변화된 자가 생명의 근원,변화의 바탕인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데 전하는 자나,받는 자 모두에게 기쁨입니다.기쁨은 생명의 현상입니다.그런데 그 생명이 씨앗이라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생명,그 변화의 씨앗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변하는 것입니다.그래서복음이고,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에대하여 비유를 많이 드셨는데,한 번은 하나님나라는 누룩과 같다고 하셨습니다.그런데 이 어법을 자세히 들어보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룩이 되라’하지 않습니다.하나님나라의 복음은‘너희는 빛과 소금이 되라’하지 않습니다.하나님 나라의 복음은‘너희는 세상의 빛이되라’가 아니라‘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합니다.우리가 부드럽고,맛있는 입에 사르르 녹는 빵을 먹을 수 잇는 것은 바로 누룩이 밀가루를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바로 하나님의 나라는 변화요,변화의 능력인 것입니다.그런데 에수님은 우리에게‘세상에 가서 누룩이 되라,그래서 세상을 변화시켜라!’하지 않습니다.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그리고 너희 안에 그 누룩이 있다는 것입니다.생명 씨앗이 있다는 것입니다.빛과 소금이 되라가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소금이라는 것입니다.그러면 내가 누룩이,또는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 아니라,누룩이며,빛과 소금이려면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요?부활이요,생명이신 예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나다나엘이 에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그 때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인정해줍니다.그런데 나다나엘은 예수에대한 소식을 듣자 대뜸“나사렛에서 무슨선한 것이 날 수가 있어?”합니다.“나사렛 그 촌 동네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 수있어”하는 말입니다.“고기리,대장동 이 촌 구석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 수있어?”하는 것입니다.자조적인,자기 비하의 발언입니다.예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에수님은 나다나엘을 보고“보라!이는 참 이스라엘이다.”하며 나다나엘을 인정합니다.그러자 나다나엘이“나를 어떻게 아십니까?”예수님이“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다.”고 합니다.그때서야 나다나엘의 생명의 씨앗에 싹이 트기 시작합니다.나다나엘은 이렇게 말합니다.“선생님,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이것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예수와 만나면서 찿은 것입니다.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아닙니까?혼돈과 어두움과 공허함속에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닙니까?,바로 그 생명과 창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보게된 것입니다.감추어 있던,잠자고 있던 생명 씨앗이 움을 튼 것입니다.바로 그것이 회개입니다.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수련회를 오는 교회들을 보면 어느 교회든지 똑같습니다.밤이되면 한바탕 소란합니다.기도회를 하는데 고막이 찢어져라,목이 시어라,방성대곡하며 소란함과,부르짖음과...혼란스럽습니다.과연 생명의 만남이 있을까?예수님이 나다나엘과 만나는 그런 인격적인 만남이 있는가?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나다나엘도 보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말씀,기도에 깊이 젖어들었지만,물론 아주 신실하였지만,사실은 무심한 종교심만 키운 것은 아니었는가?하는 것입니다.진정 창조적인 생명의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부터였습니다.오늘 이러한 만남이 교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많은 경우 억지와 이기적인,그리고 무심한 종교냄새만 풀풀 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을 봅니다.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단 한마디“나를 따라 오너라.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입니다.그러자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고 합니다.야고보와 요한은 한 술 더 뜹니다.예수님이 부르시자 어떻게 하였습니까?아버지 세베데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두고“예수를 따랐다고 합니다.예수님과 이들 사이에 무슨일이 벌어졌기에 자신들의 직업과 가족을 버리고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었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생명력입니다.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자,이들 어둠 속에 있던 생명 씨앗에 싹이 트기 시작한 것입니다.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니 기존의 모든 상황과 관습,습관,생각 등의 모든 것들이 깨어져 버리고 맙니다.마치 식물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면 바위를 쪼개고,아스팔트를 파고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합니다.이 회개하라는 말의 어원은‘메타노이아’즉 돌아서다입니다.예수님은 사람들을만날 때 목에 힘줄세우고“돌아서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일 그렇게 하셨다면 난의 꽃대가 부러지듯이 되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을 만나실 때 만나는 사람 속에 있는 생명 씨앗을 티우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자“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하니 모두 사라지고,그 여자만 홀로 남았을 때,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가서 이제 다시 죄를 짓지 말라!”하십니다.주님은 주님께 오는 모든 사람들을 인정하십니다.여리고성을 지나가시다가 뽕나무에 올라갔던 삭케오를 만났을 때도“내가 너의 집에 가서 하루 묵겟다”고 합니다.죄인인데,모두 싫어하는 사람인데,그러나 예수님은 삭케오의 마음 속 깊이에 들어있는생명의 변화의 씨앗의 움을 티운 것입니다.

예수님과 이렇게 만나야 회개가 있습니다.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 하십니다.주님의 말씀입니다.이 복음을 믿으라 합니다.복음,이 생명의 싹이 트는 기쁨을 믿으라는 것입니다.어떻게 믿을까요?서로와 서로에게서 생명의 씨앗이 있음을 믿어주는 것입니다.옆의 사람에게 생명의 씨앗이 있으니 인정하라는 것입니다.주님이 삭케오를 인정하듯이 우리 자녀,나의 사랑하는 아내,나의 남편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씨앗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싹을 티웁니다.이것이 믿음입니다.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요,보이는 것의 증거입니다.믿음은 보이는 것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일,하나님나라의 일인 것입니다.

도저희 변화될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모습 안에 변화의 생명 씨앗이 있다는 것을 보는 눈,이 씨앗이 눈을 티우면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보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의 믿음인 것입니다.38년된 앉은뱅이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네가 믿느냐?”또“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믿음되로 될 지어다.”합니다.온 이스라엘의 믿음,예루살렘의 성전,율법,제사의 종교로 인하여 다 말라버린 생명의 씨앗을 주께서 티우십니다.

교우여러분,이제 고기리,대장동 그리고 이 지역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과 전인적인 만남을 통해 생명 기쁨의 싹을 티우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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