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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를 기다리는 계절Ⅰ(2005년12월 4일,대강절 두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5.12.12 14:31 | 조회 2283
메시야를 기다리는 계절 Ⅰ

2005년12월 4일(대강절 두번째주일) 사11:1-5

복음서 중에 구약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복음서는 아마 마태복음일 것입니다.왜냐하면 성서는 쓰여질 때 대상을 분명히 하여 기록을 하는데,마태는 바로 자기 동족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바,그래서 한 마디로 마태는 예수가 바로 우리 이스라엘이 오랜 동안 기다려 왔던 유대인의 왕이요,메시야라는 것입니다.그래서 마태는 유난희 구약의 성경을 자주 인용하여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즉 그리스도임을 증거합니다.

마태복음의 맨 처음에 예수의 족보가 먼저 언급되는 것은 바로 예수가 구약의 말씀대로 다윗 왕 족보의 사람이요,아브라함의 후손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그래서 요한복음 같은 경우에는 예수의 족보가 나오지 않습니다.왜냐하면 요한복음은 헬라인들을 위하여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제일 처음 거론되는 것은 Logos입니다.헬라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인 이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증명합니다.

오늘은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 2번째 주일입니다.어린이도서관 내부 수리를 하느라고 하도 정신 없이 지내다 보니,이 맘 때 쯤 되면 불어오는 세속적인 성탄의 바람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오히려 순전히 예수 탄생을 바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드렸지만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바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야임을 증거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역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기다리긴 기다렸는데 잘 못 기다렸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은 메시야를 인류를 위한 메시야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메시야로 이해했습니다.왜 이스라엘은 메시야에대해 그릇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세상의 이치가 그렇습니다.자기 중심적이고,이기적일 때 대의를 그르칩니다.이스라엘도 바로 자기 민족만 보았지,하나님과 하나님이 사랑하는 인류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오늘 2번째 대강절에 아기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어떻게 아기 예수를 맞이하고 준비하는 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잘못하다간 예수님 태어날 곳을 준비하지 못하여 당황했던 사람들처럼 될 수가 있고,아니면 황금,유향,몰약을 준비해서 아기 예수께 경배했던 동방박사와 같이.또한 들의 목자같은 준비된 사람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의 기다림은 어떤 기다림인가요?이 기다림은 공허한,아무런 보증없는 기다림이 아니라 준비된,그리고 예고된 또한 약속되어진 것에대한 기다림이라는 것입니다.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다윗왕의 위를 계승하고,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선지자요,왕이요,제사장으로 오실,또한 고난 받으시고,침 밷음을 당하고,옷이 제비 뽑히고,뼈가 꺽이지 않으시고...등 이러한 예언의 말씀들을 볼 것 같으면 마치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큰 강 줄기가 되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무수히 작은 말씀의 개울들이 메시야 인류 구원의 강줄기를 형성하여 신약의 강줄기를 타고 흘러 가는 것을 봅니다.우리의 기다림은 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언약의 강줄기의 기다림인 것입니다.이 구속의 은혜의 강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 나라의 목적지에 다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 강 줄기에 몸을 적시고,마시고 하면서 강 포구에 다다른 것입니다.이 언약의 말씀의 강줄기는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의 발원지로부터 조금씩 흘러 처음은 미약했고 혹은 지하수로 숨겨지기도 하고,깊어지기도 하고,얕아 지기도 하고,폭포처럼 떨어지기도 하고,때로는 바다와 같이 넓어져,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모여져 하나님의 마지막 때를 향한 주님 다시 오실 방향을 향하여 흘러갑니다.우리의 메시야 기다림,아기 예수 탄생의 기다림은 바로 이런 언약의 강 줄기를 타는 기다림입니다.

누가 복음에서 우리는 아기 예수 탄생의 이 언약의 강줄기의 흐름을 타고 있는 두 사람을 봅니다.바로 시므온과 안나입니다.시므온에 대하여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합니다.또 안나라는 여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대해 말했다고 합니다.두 사람 모두 다 기다리는 것에대해 관련되어 있습니다.그렇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메시야 대망,아기 예수 탄생을 어떻게 준비하는가 할 때에 이것은 바로 기다림입니다.메시야 구원의 대망의 강줄기를 접하여 그 흐름에 젖어들 때의 우리의 자세는 기다림입니다.그런데 잘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시37:9은“...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라고 하는데,히브리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기다리는 사람이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히11:9,10은 아브라함이 다른 민족의 땅을 약속으로 받고 거기서 나그네로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 설계자가 되시고,건축자가 되어 자기 자신과 그 후손이 살 터를 마련해 주실 것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시37:9에서 여호와를 기다리는 사람은 땅을 차지한다고 했는데,이러한 기다림은 어떤 기다림일까요?산상수훈의 팔복 말씀에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의 복에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여기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이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온유함입니다.성경은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가‘모세’라고 합니다.민수기12:3은“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했습니다.실제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가나안으로 가는 첫 단계에서 가장 큰 시련을 당합니다.즉 홍해를 만나게 됩니다.그리고 곧 바로 뒤 쪽에서 애굽의 군대가 쫓아 옵니다.그 때 모세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희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
히 보지 못하리라,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
희 있을지어다.“(출14:13)
라고 합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기다리라는 것입니다.앞에는 홍해 바다요,뒤에는 애굽 군사가 들이 닥쳐 그야말고 진퇴양단 이 되고 말았는데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보라고 합니다.기다림입니다.바로 온유함입니다.온유함은 인간의 많은 생각과 시도,계획....등을 잠재웁니다.이 온유함은 사람끼리 사이에 관계하는 순하다는 뜻의 온유함입니다.말씀 앞에 침묵하는 온유함입니다.

이 온유함으로 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온유함이 그 온전한 모습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하나님 말씀 지킴의 온유함이 있습니다.우리의 상처 받은,썩어 문드러진,강포해진,이기적인,속물적인 그 심성,도저희 내 안에 틀어 박혀 옛 가옥에 숨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구렁이처럼 빠져나올 줄 모르는 이 나쁜 것들이 예수 십자가의 온유함,말씀 순종의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을 바라 볼 때 조금식 나의 그 상처 투성이의 마음들이 모두 치유되고,변화되고,새로와져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마음을 지혜롭다고 했고,바로 그 마음이야 말로 생명을 살리는 마음입니다.그런데 이 말씀 지켜 행함은 치열합니다.예수의 감람산에서의 피 땀어린 기도가 바로 그러한 말씀을 지키기위한 치열하고도 처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온유함입니다.이것은 침묵입니다.예수님의 이 온유함,기다림이 말씀지켜 행하고자 하는 치열함에 가리워져있는지 모르겠지만,그 치열함 중심에는 하나님 말씀에대한 우리의 것들의 침묵이 있습니다.마치 그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했듯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은 침묵이며,실제 예수님께서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보이신 그 침묵입니다.

이 침묵,이 기다림,이 온유함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잠재우기에 충분합니다.예수님은 공중의 나는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면서 이 새와 백합화의 침묵을 배우라고 합니다.이 새와 백합은 조물주에게 왜 나를 배로와 학으로 만들어 주지 않고,참새로 까마귀로 만들어 주셨는지?왜 나를 장미와 같은 화려한,인기 있는 꽃으로 만들어 주시지 않고 이름없는 들 풀로 만들어 주셨는지,시끄럽게 외치지 않고,자기가 있는 곳,피어난 곳,날아다니는 곳에서 마음껏 하나님의 영광을 지저귀고,찬양하며,그 영광을 피어냅니다.

침묵이야 말로 오늘 우리 대강절 기간에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의 온유함입니다.이 침묵의 온유함을 통해 이 대강절에 아기 예수 탄생의 은혜를 입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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