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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와 경건(2006년7월23일,성령강림절후일곱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6.07.23 15:42 | 조회 2075


하나님의 나라와 경건

2006년7월23일(성령강림절후일곱번째주일) 요17:11-19

이 번 여름성경학교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와 경건”입니다.이 경건을 우리는 거룩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레11:45에 보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주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그래서 이 거룩이라는 것은 좁은 의미로 보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리고 이 레위기 말씀처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는데, 바로 이 너희도 거룩하라는 이 말을 우리는 경건으로 보면 좋지 않겠나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거룩에대한우리 성도들의 모습이 바로 경건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이란 하나님의 거룩으로 나아가는,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되는 하나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롬 8장 28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한 과정인데, 여기서 한 과정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주일 저녁에, 그리고 수요일 저녁에 가끔 말씀드렸습니다.

부르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그리고 그 사람을 영화롭게 하신다는 데, 바로 영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입니까? 그렇지요 거룩입니다. 반드시 거룩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빌2장 12에 보면 “더욱 더 순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고 합니다. 또 3:12에 보면 “나는 이 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쫓아 가고 있습니다..”고 합니다. 과정입니다.

우리는 거룩, 또는 경건이라고 할 때, 성경, 찬송을 끼고 좌, 우 곁눈질 하지 않고,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 가끔 길에서 원불교의 여성직자들이 하얀 저고리, 검은 치마를 입고 가는 모습, 또 신부님들의 로만 칼러의 복장을 한 모습 속에서 거룩함, 또는 경건함을 느끼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것은 거룩함이라기 보다는, 거룩함에대한 개인적인 인위적 느낌이지요,그것은 마치 유치원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그려 보라고 하면 하얀 도포 자락에 흰 수염을 휘날리는 할아버지를 그리는 것과 같지 않은 가 하는 것입니다.이것은 다 넌센스입니다.

그러면 거룩은 무엇일까요? 예를들어 축구시합을 한다고 하지요, 축구는 11명이 뛰는데, 늘 벤취만 지키는 선수가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감독이 후반전에 그 후보 선수를 지명하여 교체 선수로 경기에 뛰게 하였습니다. 이 선수의 느낌이 어떠했을까요? 하여간 45분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뛰었습니다. 그리고 그 팀이 이겼습니다.어떨까요? 승리의 영광을 나누게 되겠지요.

거룩이란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 첫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부르심입니다. 부르심이 없다면, 인정받는 것도 없고, 거룩함도 없고, 그렇다면 영광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일까요? 바로 드려짐의 과정입니다. 아마 이 선수는 감독의 부름에 감격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공을 찼을 것입니다. 감독이 부르지 않았다면 뛸 수도 없었을 것이고,씁쓸히 벤취에 앉아 있지 않았겠나 하는 것입니다.

경건도 그렇습니다. 어두움에 있던 우리를, 죄 가운데에서 부르셔서 인정해 주신 것에 감사하여, 은혜의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오늘 말씀 요17장 15-17절 말씀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
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거룩은 부름받은, 죄용서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최소한의 자기 정체성인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두고 가는 제자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고 하면서,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렇다면 거룩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고백하신 것처럼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흙탕물을 유리 그릇에 담으면 처음에는 뿌옇게 보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 떠다니던 이물질이 그릇 밑에 가라 앉으면, 물은 이내 맑아집니다.거룩,경건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세상의 혼탁한 가치 기준들이 내 안에서 모두 잠잠해 지는 것 아닐까요?성도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성도들의 정체 그 자체이지요.

그렇다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먹고 마시지 말라는 것일까요? 그저 단순히 부정적인 태도, 윤리적 순결일까요?그렇지 않습니다.오늘 말씀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룩한 것은 저들 즉, 이 세상에 두고 가는 제자들의 거룩함을 위한 것입니다. 렘1장 5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 대하여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타지 않는 가시 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만날 때, 모세가 그 놀라운 광경을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고 할 때, 하나님은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여 부르시어,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시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합니다.

요10:36에서 눈먼 장님을 고친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여 세상에 보내신 사람이, 자기를 하
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을 가지고, 너희는 그가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고 합니다. 여기서도 보면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낼 때 거룩하게 하여 세상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거룩은, 즉 경건은 무엇을 위할 때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한 여자가 아이를 낳고 그리고 자녀를 키울 때, 여자는 그냥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가 됩니다.아이를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어머니가 됩니다. 축구 선수가 그냥 운동장 벤취에 앉아 있어서는 축구 선수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감독의 명령을 받고 운동장에 들어가 최선을 다하여 달릴 때, 그는 진정한 축구 선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거룩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8절에도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으로 보”냈다고 합니다.그러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무엇을 위하는 모습이 없다면 그것은 거룩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말씀 공부하고, 무수히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위하는 삶이 없으면, 그것은 위선이기 십상입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올라갔는데, 바리새인이 나는 일주일에 금식을 두 번씩이나 하고, 십일조를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지도 않고...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바레새인에게는 위하는 삶이 없습니다.그저 자기 기득권 지키는 종교 행위만 있을 뿐입니다.특히 이 거룩이라는 말에는 구별짓는 다는 의미가 있어서 세상과 자신을 구별짓는데,세상은 악하고,그러니까 자기는 거룩한 이분법적인 사고 속에서, 결국 자기가 거룩한 것처럼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18절에 보면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그렇습니다.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오늘 이 시대를 보면 경제제일 주의 가치관이 만연합니다.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합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일년 연봉이 얼마인지, 이전의 월급을 받을 때에는 모두 거의 같은 임금을 받아서 서로에게 평가되는 그러한 관계는 없었는데, 같은 입사 동기이더라도, 연봉의 차이로 차별화되는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축구 선수 아무개의 몸 값이 얼마랄지, 우리는 사람을 쉽게 돈이란 수치로 평가를 내리는데 어느덧 익숙해져 갑니다.

사람의 가치가 마치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사고 파는 물건처럼 상품 가치로 전락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최근에는 성형외과 병원이 잘 된다고 합니다.특히 방학에 병원이 붐빈다고 합니다.외모 지상주의와 아름다움에대한 획일화로 말미암아 자기 얼굴과 외모에대한 자존감을 포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요즘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보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됩니다.다 성형을 했다는 것인데, 그래서 성형 미인입니다.개성이 없어졌습니다.자기 존엄,자기 정체를 잃어버린다는 것이지요.문제는 일반 사람들도 그 흐름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성형하지 않으면 어디 원시인 취급 받지는 않는지, 너 왜 쌍커플 수술 받지 않느냐구?코 좀 높여야 겠어!턱 뼈 좀 더 깍아서 더 부드럽게 하구^^.몰 개성 시대를 살아가는데, 이것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는 세상입니다.

경제제일주의 가치관 속에 생활 방식이 한 가지로 획일하 됩니다.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결혼식을 올린 다음에 신혼 여행은 어디로 가야하고,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의 날이 오면 백화점에 비슷한 상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만원입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경쟁에 뒤쳐질까봐 두려워하는 심리가 만연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런 세상의 흐름에 함께 갑니다. 기도의 경우도 마치 백화점 매장에서 물건 고르듯이, 우리의 입맛대로 하나님께 이것저것 달라고 조르는 경우를 봅니다. 이러한 기도 속에는 하나님을 마치 하늘 나라의 슈퍼 마켓 주인으로 착가하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기복적인 신앙에 빠져 있는 기도는 오늘 이 시대의 흐름인 물량주의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우의 기독교 신앙은 마치 든든한 보험에 가입한 것 같고, 하나님을 보장의 하나님으로 이해하지 않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때를 따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또 어김없이 베풀어 주시는 그런 보장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집에서 아이들과 부모 사이에 주고 받는 말 중에 적지 않게 오가는 말이 있습니다.“컴퓨터 좀 그만해라.”, “게임 좀 그만해라.”입니다.30분 정도 면 그런데로 피로도 풀고 정신 건강에도 좋을 법 합니다.그런데 아이들이 30분이 아니라, 1시간이고,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그러디 보면 사람이 몽롱해지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산만해 학업 능률을 올릴 수 없다고 합니다.이렇게 무엇엔가 빠져버리면, 일반적인 삶의 리듬이 깨집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에, 마약에, 도박에 빠지면, 삶의 리듬이 깨지믐 것이 아니라,인생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거룩은 바로 이런 세속적인 힘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힘입니다. 교회 앞에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그 그림이 참 좋습니다. 대륙으로 표현된 마음과 손은 삶의 전 영역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거기 물고기 한 마리가 치솟아 오르는데,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경건을 상징하는 것인데, 마치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살아있는 물고기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어요, 그래요 그것이 맞습니다. 경건은 성도들의 살아있는 표입니다. 성도에게 거룩이 없다면, 구별됨이 없다면 세속에 파묻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삶의 역동성도,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김의욱 집사님께서 주신 YMCA의 등대라는 잡지에 심수철씨의 판화 그림이 하나 실린 생각이 납니다.무어라 했냐하면

“꽃이 피어서 제 안에 있던 빛이
다 드러났구나 밝고 아름답구나”라고 합니다.

경건은, 거룩은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 가장 소중한,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본래 자기 모습을 피워내는 근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야 말로 나의 모습을 회복시키는 생명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을 종교적인 틀로 얽매면 안되겠지요.

오늘 이런 물량주의, 경제 제일 주의의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정체성을 찿는 삶이 바로 거룩한 삶인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좀 손해를 볼 수 있어도,남들과 똑 같이 사고 싶은 것,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못하더라도, 축구 선수가 운동장에 부름을 받아 최선을 다하여 승리할 때, 그 승리의 영광을 모두와 함게 나누듯이, 오늘 우리도이 세상 속에 살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인 그 거룩을 지키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늘의 영광을 하늘의 기쁨과 평화 속에서 주님과 함께 나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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