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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4(2006년 7월2일,성령강림절후네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6.07.02 16:21 | 조회 2147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4


2006년 7월2일(성령강림절후네번째주일) 롬12:1-2

그동안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자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온다고 거듭 말씀드렸습니다.우리의 노력만으로는 드려질 수 없는 예배입니다.그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십자가 였습니다.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 외아들 이삭을 바치려 할 때에 준비된 수 양 한 마리 처럼, 이 십자가는 창세 전에 죄인인 우리를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이 준비하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약속이 있는 제사가 드려졌습니다.이렇게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것이야 말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히 10:10은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 번에 드림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합니다.그런데 오늘 말씀 롬12:2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
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읽어 보니 예배라는 것이 단지 주일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예배를 통해 받는 은혜가 우리의 생활에 그대로 연결되어 생활 속에 스며들어 삶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키며,열매 맺는 생활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고 하는 말씀을 볼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예배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인 것 같은데,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예배를 먼저 드린 아브라함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에대해 접근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 12장에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빌로니아의 우르라는 곳을 떠나 가나안에 이르릅니다.그러나 기근이 심하여 약속의 땅을 벗어나 애굽으로 향하였다고 합니다.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무엇이냐 하면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이야기 합니다.당신의 미모가 특출하니,혹시 이 곳 사람들이 당신의 미모에 반하여 나를 죽이고 당신을 취할가 겁이 나니,이제부터는 나한테 오빠라고 부르라고 합니다.창12장에 보면 “그렇게 하여야, 내가 당신 덕분에 대접을 잘 받고, 또 당신 덕분에 이 목숨도 부지할 수 있을 거요.”그렇게 다짐을 하고 애굽으로 들어갑니다.황당합니다.그런데 그 계략도 그대로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못합니다.

아니나 다를까?애굽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보자 그 미모에 반하여 아브라함의 아내를 바로에게 데리고 갔고,바로도 사라의 미모에 반하여 사라를 후궁으로 삼게됩니다.그래서 아브라함은 생명을 부지할 수가 있었고,그 뿐만아니라, 16절에 보면 아내를 바로에게 보낸 덕분에 양과 소,암수 나귀와 남녀 종,그리고 낙타 까지 얻었다고 합니다.졸지에 횡재를 한 것입니다.로또에 당첨이 된 것입니다.그러나 아내는 빼앗겼습니다.이런 시나리오는 아니었는데,그런데 어쩌란 말입니까?스스로 판 우물입니다.이것으로 상황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 개입해 들어오십니다.이 일로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이 내리고,후궁으로 취한 사라가 아브라함의 누이가 아니라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어,바로는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다시 돌려 보내게 됩니다.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내와 함께 바로의 궁을 빠져 나와 다시 가나안 땅으로 향합니다.창13:2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육축과 은,금이 많은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이것은 바로에게 공짜로 얻은 재물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였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아브라함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가 13장에서 시작이 되는데,애굽에서 빠져나와 벧엘로 향하는 아브라함 일행에게 즐거운 문제가 일어납니다.무엇이냐 하면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가축이 늘어나 서로 함께 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아브라함과 롯의 목동들이 서로 자신들의 가축에게 먼저 좋은 물과 풀을 먹이려고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그 때에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불러 분가를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땅의 선택권을 삼촌인 자기가 당연히 가져야 마땅한데도,조카 롯에게 주어 롯으로 하여금 가야할 곳을 먼저 선택하게 합니다.그리하여 롯은 창13:10처럼‘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과도 같고,이집트 땅과도 같은’땅을 선점합니다.

이 두 가지의 사건은 연이어 기록되어 있으면서 아브라함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12장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자기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조강지처를 버립니다.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지 모릅니다.그러나 13장에서는 12장의 그 비인간적인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자기 희생적인,자기 이익을 돌보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12장 말씀에서 몇 가지 지혜를 봅니다.

우선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시험이 온다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적인 해결,즉 약속,그러니까 말씀에서 벗어난 해결 방법
은 인기응변은 되지만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창12장과 13장의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것입니다.이것은 잘못되었고,이것은 잘 되었다고 말 할 수 있읍니다.윤리적으로 이것은 선하고,이것은 악하다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인생을 들여다 보면 우리의 삶이 이 둘 사이를 오락 가락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입니다.창12장을 통해서 우리는 인생의 근심,시험,어려움을 봅니다.그러나 한 편 13장에서는 모든 것을 감내하는 자기 희생적인 삶을 봅니다.

그런데 성서 기자는 어떤 것이 옳고,어떤 것이 잘 못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창12장과 창13장의 이야기 속에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약속의 하나님,축복의 하나님께서 광야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어떤 모습으로 우리들이 살아가든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호사다마한 삶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끝까지 지키시며,보호하시며,지키신다는 것입니다.창12장,13장은 바로 그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이것이 바로 복음이고,기쁨입니다.그래서 기쁨의 예배,살아있는 예배,거룩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이 창12장의 삶과 13장의 삶도 다 괜찮으니, 그렇게 늘 오락가락하며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하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오늘 롬12:2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고 합니다.아브라함과 롯이 삶을 선택해야 할 때에 롯은 창13:10에서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과도 같고,이집트 땅과도 같은 땅’을 선택합니다.그러나 아브라함은 12절 말씀에 보면 ‘가나안 땅에 살’았다고 합니다.이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롯은 평지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소돔 가까이에 이르러서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13절에 보면 소돔 사람들은 악하였으며,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었다고 합니다.

롯이 물질과 쾌락에,세상 것에 붙들리어 결국 멸망의 도시 소돔으로 향합니다.그러나 좋은 선택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비죤을 봅니다.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찿아오십니다.창13:14-17을 보면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북쪽과 남쪽,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내가 너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누구
든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너의 자손을 셀 수 있
을 것이다.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니,너는 가서,길이로도 걸어 보고
너비로도 걸어 보아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갱신하며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십니다.하나님께서는 오락가락하는 삶 저 넘어에 있는 약속의 삶을 일깨워 주십니다.미쳐 광야같은 삶에 묶이어 이리 저리 흔들리는 우리들의 삶 속에 믿음의 삶을 일깨워 주십니다.

오늘 롬12:2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고 합니다.시행착오가 있겠지만,그러나 거듭 좋은 선택,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택을 하려할 때,당연히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며,궁극에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거룩한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복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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