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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1(2006년 6월11일,성령강림절후첫째주일)

하늘기차 | 2006.06.13 11:39 | 조회 4032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1

2006년 6월11일(성령강림절후첫째주일) 롬12:1-2

창 4장에 보면 인류 최초의 예배가 카인과 아벨에 의해서 드려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그런데 카인의 예배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아벨의 예배는 받아들여집니다.왜 농사짓는 카인의 예물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양을 치는 아벨의 예물은 받아들여졌을까요?많은 주석가들과 신학자들이 그 이유를 추구해 봅니다.어떤 신학자는 이스라엘이 유목민족이고,가나안 족속들은 정착민족으로서 유목민족인 이스라엘이 아벨로 상징되고 정착원주민인 가나안 족속들은 카인으로 상징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카인이 드린 제물은 정성껏 드려지지 못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못했고,아벨은 온몸과 정성을 다하여 흠 없는 깨끗한 어린 양을 잡아 드렸기 때문에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그런데 사실 오늘 읽은 창세기 4장 본문 말씀 내용을 보면 어디에도 카인의 제물은 받아들여지지 않고,아벨만 받아들여진 것에대한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예배 이 후에 카인이 분노하고 있으며,이 분노하여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져버린 카인에게 하나님께서 질문합니다. 왜 네가 분노하느냐? 왜 네가 안색이 좋지 않으냐? 그리고 왜 낮을 들지 못하느냐?고 합니다.결국 카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맙니다.첫 번째 예배를 드리고 난 후의 결과가 살인입니다.

창4:7절에 죄가 문에 엎드려 있으며,죄의 소원이 카인에게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카인이 아벨을 죽인 주체라고 하기 보다는 죄가 카인을 범죄케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죄의 소원”이라고 했는데,이것은 단순히 인간의 갈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죄의 늪에 빠진 인간의 모습입니다.죄는 배고픈 사자와 같이 인간을 공격하기 위해 인간을 기다리며 인간을 무너뜨리는 어두운 힘인 것입니다.이 죄의 힘 앞에 카인은,그리고 인간은 무력해지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카인에게,인류에게 죄를 다스리라 하지만 죄는 우리 앞에 우는 사자와 같이 엎드려 있어 우리를 공격하려고 기회만 엿봅니다.그 죄의 힘 앞에 우리는 쓰러집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카인이 창4:13의 말씀처럼 죄의 벌로 인하여 견딜 수 없어할 때 찿아오시어 카인을 지켜주며,보호해 주는 것을 봅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그 주제가 지극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제물을 잘 못 드리면 벌을 내리신다는 것도 아니요,아벨처럼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물을 드리라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아니라,오히려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못한 카인과 하나님에대한 이야기입니다.그래서 4장의 뒷 부분으로 가면서 아벨은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카인을 지켜주며,돌보아 주시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인의 범죄가 점점 더 깊어지고 확대되어 가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죄의 힘에 대하여 스스로 자유할 수 있지만 스스로 죄를 택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무력함,그리고 그 죄속에서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또 한편으로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끝까지 찿아와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이것이 바로 복음이고,우리의 희망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카인이 예배를 드린 후에 형제에게 미움의 감정을 품고 적개심 속에서 살인을 합니다.이것은 단지 카인의 모습만이 아닙니다.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예배와 우리의 삶이 일치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예수님이 사마리아의 수가성에 물을 기르러 온 여인과 대화를 할 때에 이 여인이 예수님께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합니다.이것은 오늘날도 그렇지만 예수님 당시에도 예루살렘에서 드려지는 제사,그리고 율법,제사장의 전통 그 모든 유대교의 전통이 부정과 부패로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시대적 상황을 보여줍니다.이 때 예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텐데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합니다.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일까요?좀 막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그러나 우리는 이 예배라는 말의 의미를 단순히 풀어만 보아도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예배라는 말의 그 뜻은 글자 그대로‘예의를 갖추어 절한다.’는 뜻입니다.어느 신문에 보니 “절 받으십시오”라는 말이 ‘저를 받으십시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그러니까 예배라는 것이 자신을 절대자에게 다시 드리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히브리어로 ‘예배’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그 하나는‘섬긴다’는 뜻이 있고, 다른 하나는 ‘일한다’는 뜻입니다.이 것은 이 세상에서 사는 일과 교회에서 이루어 지는 일이 구별되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영어로는 예배라는 말로 worship,service가 사용되고 있는데,이 말에 우리는 ‘경배하다,섬기다.나누다,라는 뜻이 들어있음을 봅니다.

그러니 에배에는 수직적인 의미와 수평적인 의미가 함께 들어 있는 것을 봅니다.하나님께로 향하는 것과 이 세상으로 향해 있는 것입니다.구약 성경에서도 우리는 이 예배가 이렇게 위와 아래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봅니다.출애굽기 20장에 보면 10계명에대한 말씀 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에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데,24절에 볼 것 같으면 그 제사의 내용이 2가지인데 바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번제는 헌신과 속죄의 제사입니다.그래서 희생 제물을 드릴 때에도 드리는 짐승의 가죽 외에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불태워 드립니다.그 때에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어 단 위에서 불살랐다고 합니다.이것은 내장은 우리의 내면을 다리는 우리의 외적인 삶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안과 밖을 깨끗이 하여 주께 드렸다는 것입니다.다른 제사는 드린 제물을 나누어 먹기도 하는데,번제에 사용되는 제물은 생명의 상징인 피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드립니다.아마 가죽이 제외되는 것은 우리들의 삶의 찌꺼기,껍데기를 다 벗어버리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사회에서 가지고 들어 온 모든 것,명예,부,권력...그 외의 모든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오직 하나님 사모하는 마음으로 깨끗이 다 태워 드리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그렇지 않습니다.화목제는 하나님게 제물을 차려 예배드리고 나서 그 제물로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공동식사를 하면서 허물과 죄를 용서하고 용서받으면서 새롭게 살기를 결단하는 예배입니다.번제가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귐의 예배라고 한다면,화목제는 수평적인 예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고 사귀는 예배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의 두 가지 모습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모습을 통해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십자가는 두 개의 나무 기둥으로 되어 있습니다.수직으로 된 나무 기둥과,수평으로 된 나무기둥이 교차되어 있는 형틀로서 예수님이 그 형틀에 달리시어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이것은 우리의 예배가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가는 반면에 한 편으로는 수평으로 한 없이 뻗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부등켜 안는 사랑으로 십자가에 산 제물로 드려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롬12:1,2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라고 합니다.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룩한 산제물의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히10:5의 말씀을 보면 “주님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6절에서도“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합니다.여기서 신령이란 하나님의 영이란 뜻입니다.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영에의해서 인도되어야 합니다.또한 진정으로 드려져야 합니다.내 모습 있는 그대로,현재의 모습 그대로 드려져야 합니다.그런대 내 모습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일까요?내가 걸치고 있는 옷을 입고서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내가 입고 있는 모든 공과와 업이 모두 벗겨진 그 진정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결국 신령과 진정이라는 의미는 한 가지입니다.그런데 today's english 영어 성경에 보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말이 “하나님의 영적 힘에 인도되어 있는 그대로 예배 드린다”라고 되어 있습니다.영적 힘에 인도된다고 합니다.이 영적 힘이라는 것이 외적 완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그렇다면 이 영적 힘이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0:5 말씀의 뒷 부분을 보면 우리들이 드리는 눈에 보이는 제물을 원치 않으신다고 하면서,
“...그래서 나에게 입히실 몸을 마련하셨습니다.”
라고 합니다.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라고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하나님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을 하나님께서 손 수 마련하신 것입니다.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의 은혜입니다.이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예물로 드려지는 예배는 이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드려졌습니다.

창22:7에서 아들 이삭이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아버지 아브라함은“예야,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바로 그렇습니다.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우리는 이 산 제물의 예배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섬김과 이웃 사랑의 십자가에서 봅니다.십자가의 고통,십자가의 순종,십자가의 사랑,십자가의 소망,그 모든 영적 예배가 이 십자가에서 다 드러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이어야 합니다.죽은 제물 가지고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그러면 어떤 제물을 드려야 할 까요?그렇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그 것이 산 제물이 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그 죽음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는 죽지만,그 죽음을 통해 아버지의 뜻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바로 이 제물,이러한 제사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친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롬12:1,2에서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라야 한다고 합니다.그런데 이렇게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을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 두 번 언급되고 있는데 그 첫 째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을 때,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내 기뻐하는 자”라고 합니다.또한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화하실 때에도 기뻐하셨습니다.

세례는 깨끗이 씻는 모습입니다.공생애,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사적인,이기적인 것들을 다 벗어버리는 모습입니다.하나님께 양이나,소를 번제물로 드릴 때 마치 가죽을 벗기듯이 나의 겉 껍데기,나의 가식,나의 욕심,나만 살려고하는,내 주장,내 의지를 모두 벗어버리라는 뜻입니다.모세가 호렙산 가시 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때 신발을 벗는 모습입니다.이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영적인 힘에 인도되는 준비일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산 제물의 예배에 참여할 때 그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그 예배는 살아있으며,축제이며,역동적이며,다시 새로워지는,다시 살아나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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