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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속의 은혜(2007년4월29일, 부활 네째주일)

하늘기차 | 2007.04.29 15:13 | 조회 2183


싸움 속의 은혜

2007년4월29일(부활 네째주일) 창25:19-26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우린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세 사람의 삶의 모양이 각기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세상과의 연을 끊고,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돌렸으며, 용광로의 불과 같은 체험을 감당한, 믿음의 장을 연 조상입니다. 반면 이삭은 순종과 풍요, 그리고 평화의 조상입니다. 그는 인접해 있는 블레셋과 생명의 근원인 우물로 인하여 얼마든지 피비린네 나는 싸움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10 번을 전부 다 양보하면서 평화를 누린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또 야곱은 싸움과 시련의 조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야곱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공감대를 얻는 믿음의 조상일 것입니다.

야곱은 애굽 왕 바로 앞에 나아갔을 때 자기 자신의 삶에대해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 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진정 야곱의 일생은 험악한 것들로 점철된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모든 나날들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나가는 방편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의 삶은 싸움과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형 에서와의 싸움, 또 삼촌 라반과의 싸움, 딸 디나로 인하여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큰 실수를 범했을 때의 세겜 족속과의 갈등, 그리고 궁극적으로 얍복강가에서의 하나님과의 싸움 등, 그의 인생은 싸움, 갈등, 시련으로 점철된 글자 그대로의 험악한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야곱의 삶의 여정은 이미 정해진, 타고난 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23절은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안에서 두 백성이 나뉠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라고 합니다. 즉 같은 집, 같은 땅에서 살며, 같은 물, 공기를 마시며 둘이서 경쟁의식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카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남과 북,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흑과 백, 기업주와 노동자, 배운자와 배우지 못한 자, 가진자와 없는자 등 이들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과 싸움이 있습니다.

싸움, 전쟁, 갈등은 인류 역사의 영원한 주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싸움, 갈등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부, 재화입니다. 성공, 승리입니다. 부가, 풍요로움이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지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에 한 번도 풍요가 공평하게 나누어진적이 없습니다. 풍요롭기위해, 잘 살기위해 싸웁니다. 야곱의 이야기도 이 풍요로움을 얻기위한 싸움에서 시작이 됩니다.

야곱의 싸움은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뱃 속에서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는데, 쌍둥이를 잉태합니다. 그런데 그 둘이 태 속에서 서로 싸웁니다. 리브가가 복 중에서 둘이 서로 싸우는 것을 느끼면서 말합니다.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님께 나아갑니다. 서로 싸우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하는 걱정을 리브가가 합니다. 그런데 서로 싸우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걱정은 리브가만의 걱정이 아니라 인생의 길을 가야하는 우리 모두의 걱정입니다. 이 생존경쟁의 처절한 싸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서로 싸우는 것에대해 하나님께 묻자, 하나님께서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안에서 두 백성이 나뉠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교우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하고 걱정하는 것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길이 있음을 봅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야곱은 사냥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 와, 기진해버린 형에게서 부친의 상속권을 뺏고자 팥죽 한 그릇을 가지고 흥정합니다. 에서는 내가 배가 고파 죽게 되었는데, 이 딴 상속권이 무슨 의미가 있느가 하여,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고, 팥죽 한 그릇을 얻어 먹습니다. 25:34에 보면 에서가 “맏 아들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팥죽 이야기 속에 우리 인생의 장면들이 그대로 들어있음을 봅니다. 에서의 모습 속에서 팥죽, 즉 물질을, 돈을 위해서는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는 모습을 봅니다. 환경이 파괴되고, 생명이 천시여겨지고, 인권이 유린되고, 진실이 왜곡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가 깨어지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떡, 팥죽 한 그릇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셨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한 그릇의 팥죽 때문에 하늘의 귀한 보화를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정말 내가 깊이 간직하고 지켜야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다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야곱은 어떻습니까? 그 귀한 상속권을 얻기위해 어떻게 했나요? 동생 야곱은 축복을 얻기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천대하는 에서나, 비록 소중한 것을 얻고자 하여도, 그 방법이 잘못된 야곱이나, 모두 다 비뚤어진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 삶의 탐욕적인 생존경쟁 속에서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사는 방법이 똑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야곱을 택하였습니다. 에서가 아니고 야곱을 택하였습니다. 비열하고, 이기적인,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속권을 빼앗은, 그러나 여전히 약하고, 부족하며, 모순덩어리인 야곱을 택하였습니다.

에서는 창세기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여전히 강하며, 야곱은 여전히 약함을 봅니다. 또한 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있는 반면, 야곱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있음을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여 야곱의 악한 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인생여정 속에 삶의 커다란 전환점이 2번 있는 것을 봅니다. 한 번은 벧엘이요, 한 번은 브니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이라는 인생의 큰 과제인 풍요로움을 얻고자하는 야곱의 인생여정에 들어오셔서 야곱의 삶 전체를 뒤 흔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을 완전히 변화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얍복강가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환도뼈가 탈골되었다는 기록을 봅니다. 이것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벌은 재산과 가족을 여전히 부등켜 안고, 세속적인 재물을 끌어 안고 하나님께 나아간 야곱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뒤 바꾸어 놓은 장면인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밤 새 기도하고 이제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고, 자신을 죽이려하는 에서에게 환도뼈가 탈골된체로 절뚝거리며 에서에게 걸어나가는 모습을 봅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돌린 야곱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생존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오셔서 세상적인 모든 악한 질서와 관습을 뒤 바꾸어 놓으십니다. 강한 자가 더 강해지고, 부요한 자가 더 부요해 지는 것이 세상의 질서입니다. 강남 사람이 늘 강남사람되고, 에서가 늘 에서되는 것이 세상 질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한자를 들어 강하게 하시며 가난한자를 택하여 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같이 비열하고 약한 사람을 택하여 하나님의 순전한 축복을 내리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택함의 신비를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여 변화시켜 끝까지 함께하셨습니다.

저의 아들 재영이가 중2가 되니까 아이의 진학문제가 관심일 수 밖에 없는데, 지금의 공교육 상황을 바라 보면서 어떤 고등학교를 보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런데 제가 잘아는 거창 고등학교를 보면 지금도 여전히 겨울이면 토끼몰이를 하고, 가을의 축제, 연극대회, 신앙강좌, 특강, 합창대회, 체육대회, 다양한 동아리 활동 그리고 고3학생들에게도 여전히 성경공부를 가르치는데, 참 귀한 것은 이 학교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서울대학교를 가고, 그 다음 잘하는 아이들은 연고대를 가고, 그리고 공부에 관심없는 아이들은 꼭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사회에 나가 자기 밥벌이를 합니다.

그런데 거창고등학교의 학교 생활을 보면 지금의 공교육 처럼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들을 포함해서 학교 전체가 공부에 올 인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청소년기에 해야할 것들을 학창시절에 맞추어 다 하면서, 공부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여, 결국 자기가 원하는 인류대학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가 좀 딸리는 아이들도 자기 나름대로 건강하게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공부 잘하는 소수의 아이들, 모든 면에서 탁월한 아이들은 일류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잘 하여 정부의 고위직, 소위 엘리트가 되어 나라를 위해, 지도자로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 얼마나 보람되고 마땅한 일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학업에대한 성취도와는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이 입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는 것입니다. 아니 아이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 선생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이 인류대학, 학원열풍에 모두 휘둘리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런 세상의 풍조에 휘둘이어, 생존경쟁을 치르는 우리나라 백성들이 너무 안타깝고, 너무 소모적인 일에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이 답답합니다. 모두 일등하려고 한다면, 2등은 누가하고, 3등은 누가 하겠느가 하는 것입니다. 아니 어디 인생이 1, 2, 3 등으로 정해질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바뀌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상처받고, 고통 당하는 것은 주변부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되고 바뀌어야 합니다.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가치의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에 올인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모와 아이가 함께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해야 합니다.

하여간 삼촌 라반의 집에서 14년 동안 봉사하고, 재물과 가족을 얻은 야곱이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강한 형에서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은 풍요를 추구하는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야곱이 범한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형 에서의 마음을 바꾸어 놓습니다.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다리를 절뚝이며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나아가는 야곱 앞에 나타난 에서는 14년 동안, 그리고 바로 어저께 까지 근심 걱정했던 그 눈 부릎뜨고 자신을 죽이려는 칼을 높이든 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창33:10은 에서에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께서 저를 이렇게 너그럽게 맞아 주시니,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듯합니다.” 이것은 야곱이 에서에게 아첨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에서의 환한 얼굴 광채 속에서 야곱은 형의 마음을 변화시킨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본 것입니다. 이 은혜를 야곱은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변화된자, 약한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만 변화시키신 것이 아니라, 형 에서의 마음도 변화시켜 서로 만나 화해케 하신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우리 남과 북을 그렇게 변화시켜 화해하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 북은 한창 변화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쪽은 어떤지요?

또한 딸 디나의 강간 사건으로 온 가족이 세겜 사람들에게 몰살당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야곱은 먼저 창35:3에보면
“이제 우리는 이 곳을 떠나서, 베델로 올라간다. 거기에다 나는, 내가 고생할 때에 나의 간구를 들어주시고, 내가 가는 길 어디에서나 나와 함게 다니면서 보살펴 주신, 그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치고자 한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리고자 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 죽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야곱을 구합니다.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이 사방에 있는 모든 성읍을 두려워 떨게 하셨으므로, 아무도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인생의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야곱은 여전히 약하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변화와 은혜를 체험합니다. 아브라함은 근동의 5개 나라의 왕들과 싸워 조카 롯을 구할 만한 힘이 있었습니다. 이삭은 이웃 족속들과 화평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삶의 소용돌이 속에 여전히 약하고 부족합니다. 그런데 그 야곱은 하나님께서 택하여 함께 하시며 변화시켜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삶의 처절한 소용돌이 속 한 가운데에서 우리를 부르셔서 은혜를 주십니다.

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신 은혜입니다. 구약은 예언을 통해 약한자가 강해지고, 병든자가 고침을 받고, 어리석은 자가 지혜로와 지며, 가난한자가 부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주님께서 그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누가 가장 연약했습니까? 누가 가장 어리석었습니까? 누가 가장 가난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가장 부하고, 강하고, 지혜로워 지금 그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십니다.

교우여러분, 우리가 우리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인생을 비뚤어진 틀 속에 끼어 맞추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난한 것 같으나 풍요로우며, 연약한 것 같으나 강한, 어리석은 것 같으나 지혜로운 은혜 속에 자유로이 사는 여러분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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