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가장 큰 사람(2008년2월11일, 사순절첫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8.02.10 13:21 | 조회 2240


가장 큰 사람

2008년2월10일(사순절첫번째주일) 마18:1-5

우현이 재현이를 보면 그 귀여움에 웃음을 함빡 먹게 됩니다. 지금도 아직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잘 구별이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 준영이는 확실하게 구분을 합니다. 아마 같이 함께 뛰어 놀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외모가 같다고 성격, 사고, 감정, 취향이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우현이, 재현이가 어떤 모습으로 커 갈지 함께 기도하고 관심을 갖겠지만 어떤 직업, 어떤 결혼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같아 보이지만 다른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의 내용은 이렇게 같아 보이고,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삶의 모습에 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 즉 천국 백성과 이 세상 백성과는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비슷하게 어울려 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쌍둥이가 외모는 같아 보여도 내용으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조 지방에서 십자가의 고난에 대하여 예고를 한 후, 변화산 체험을 하게 되고, 이어서 두 번째로 십자가 고난에대해 제자들에게 말씀을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심히 근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 오늘 읽은 말씀의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누가 큰가?’라는 것입니다. 말이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큰가?’이지 이것은 권력 싸움인 것입니다.

요즈음 대선이 끝나고, 이제 곧 총선이 실시 될텐데 각 정당의 모습들을 보면 가관입니다. 각 정단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특히 수권정당에서 소리치는 것을 보면 제자들이 ‘누가 큰가?’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같습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예수님을 줄 곳 3년 동안 따라다닌 결실을 맺고자 하는 단계입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늘 그러하듯이 다윗 왕국의 회복을 꿈꾸며 풍운의 꿈을 안고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클까? 누가 가장 예수님에게 잘 보였을까? 이 번 기회를 놓친다면 영영 기득권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을텐데! 아니지 이럴게 아니라 우리 솔직히 공과와 업적을 밝혀서 자리 메김을 합시다. “예수님!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에 미리 국무총리, 내무, 외교, 경제, 교육, 국방 등의 내각을 다 결정해야 헤롯에게서, 로마 총독에게서 국가의 전반적인 것을 인수하기 쉽지 않을까요? 수권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요?”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찿아와 묻습니다. “예수님 누가 큽니까?” 그 때 주께서“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 줄곧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 13장에는 무려 하나님 나라에대한 비유를 7 번이나 말씀하고 계신 것을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는데, 실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비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뒤에 예수님께서 그 비유를 하나 하나 설명해 주십니다. 왜 이해를 못했을까요?

명절 동안 T.V에서 가족 전체가 볼 수 있는 오락 프로그램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한 프로에서 탈랜트 노주현씨가 한창 인기있을 당시의 상대 여자 탈랜트에대해 이야기를 하니까 20대의 젊은 연예인들은 못 알아듣더라구요 누구, 어느 별 이야기 하는 듯이 바라보드라구요.

마찬가지로 지금 예수님이 비유로 들려주시는 하나님 나라에대해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을 포함해서 당시의 사람들은 세례 요한 까지도 모두 율법적인 사고의 틀에 젖어있어서 이 천국비유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천국 비유의 말씀의 내면에는 십자가, 고난, 희생,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데, 율법은 문자에 묶이어 한 구절, 한 구절 정해진 것을 모두 준행하느냐 안하느냐, 법을 지키면 의인이요, 안 지키면 죄인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벼이삭 까서 먹은 것, 안식일에 병 고친 것 등등 이 모두가 죄인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정으로 병 고친 사랑을 율법의 눈으로 죄로 규정하는 이러한 율법적인 사고의 틀에 젖어있는 유대인에게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이해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율법의 관점으로 보는 한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요원합니다.

일본의 신앙인 중에 하천풍언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평생을 도시 빈민들과 함께 하며 예수님 사랑을 실천하신 분인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거할 집을 마련하여 그 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지방관청에 있는 사람들이 찿아와 이렇게 사는 것이 위법이라 하면서 집을 비우라고 하였답니다. 사랑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법으로 그 공동체를 바라봅니다. 법은 이렇게 삶을 죄인되게 합니다.

주님은 ‘누가 크냐?’고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오늘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할 때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돌이켜서’라고 하였습니다. 교우여러분 어서 빨리 돌이키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아니 가고 있는 곳에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돌이키지 않고는 아이처럼 될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아이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처럼 되라고 하십니다.

시131편은 그런면에서 오늘 말씀을 좀 더 명확하게 해 줍니다. 돌아선다는 것은 오만함으로부터, 교만함으로부터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즉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엄마 품에 안긴 젖뗀 아이처럼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이의 성품 중에 가장 아이다운 모습입니다. 아이는 작습니다. 낮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이들은 이기적입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 것 만 압니다. 그러니까 그런 아이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처럼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아이의 성품 중에 바로 낮은 모습, 작은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어린 아이와 같이 낮추라 하였습니다. 어찌보면 그래서 어린 아이의 없으며, 부족하며, 연약하고, 약한 모습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와 가장 가까운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는 시점을 마가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갖힌 때 부터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이 감옥에서 예수님의 활동 소식을 듣고 요한의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게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요한에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마11:11에 보면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 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세례 요한이 얼마나 위대한가, 요한이 얼마나 큰 일을 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주목할 것은 바로 그 세례 요한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극히 보잘것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의 나라는 질적으로 차원이 틀리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으로 표상되는 이 세상의 가장 귀한 것! 인류 역사의 모든 것! 인류의 물질 문명 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보다 나은 자, 메시야의 앞 길을 예비한 자,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자, 그러나 바로 그 요한, 그리고 그 요한의 삶을 다 하여 한 일과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일인데, 이것을 세례 요한이 모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부터 오는 세례 요한과는 전혀 다른 세계인 것입니다.

가끔 불교나 카톨릭에서 ‘큰 스님’, 또는 ‘큰 신부님’이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데 그러한 호칭이 그 분의 공과나 업적, 깨달음이라 한다면 성경말씀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쌍둥이가 겉으로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내용으로 전혀 다른 것 처럼 같은 것 같지만 다릅니다. 그러면 성경은 큰 자에대하여 무어라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 고전 15:47, 49를 보면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므로 흙으로 되어 있지만,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났습니다....우리가 흙으로 빚은 그 사람의 형상을 입은 것과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세례 요한이 땅에 속한, 즉 아담의 후손 중에 가장 큰 자로서, 그래서 결국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제 둘 째 사람에대해 말합니다. 이 둘째 사람은 땅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렇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읽은 본문에서 ‘돌이키라!’했는데, 그것은 바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라는 것이 아닐까요?하늘에 속한 자, 하늘로부터 난 자는 누구일까요? 요3:13,14에 보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하는 중에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 밖에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든 것 같이 높이 들린 자가 누구입니까? 교우 여러분 소위 하늘에서 난 자, 하늘에 속한 자가 누구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는 바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높이 들린 자입니다. 누가 높이 들렸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높이 들렸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십자가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는가요? 죄에 늪에 빠져 죽을 수 밖에 없는 죄된 우리에대한 연민, 사랑, 불쌍히 여김, 아버지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뜻에대한 온전한 순종, 믿음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세례 요한에게는 이 인류를 위해 높이 들려야 하는 십자가의 죽음이 없습니다. 정의로운 죽임일 수는 있지만 십자가의 죽음은 아닙니다. 인간의 최고지선의 죽음일 수는 있지만, 십자가의 죽음은 없습니다. 이 세상 최고의 물질, 문명, 사상, 문화, 종교, 예술에도 이 십자가에 높이 들린 죽음은 없습니다. 같은 죽음인 것 같지만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돌이키라’했을 때의 그 돌이킴은 바로 십자가에 높이 들린 예수님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돌이키라는 뜻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룻의 아내처럼 되기가 십상인 것입니다. 이 돌이킴 속에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빠져 나온 룻이 감당할 유혹과 시험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높이 들린 십자가를 바라 볼 때 한눈팔지 말고, 다른 생각 하지 말고 그 사랑, 그 은혜 속에 푹 젖어야 합니다. 인류 구원의 소망, 나의 삶의 소망이 이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 안에 모두 담기어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은혜 안에,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팔과 편 손 안에 어린 아이와 같이 뛰어 놀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뛰어 논다는 표현이 좋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문규현 신부님의 은퇴 미사가 지난 1월24일에 있었습니다. 얼마전 까지 평택 대추리 마을에서 쫒겨나는 사람들과 함께하셨던 그 모습처럼 문 신부님은 그 이미지가 늘 투쟁의 이미지로만 보이지만 사실 문 신부님은 ‘작은 자매의 집’에서 21년을 장애아들과 함께 살으셨던 분이십니다. 아이들과 떠나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떠날 때 떠나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곳에 살면서 4명의 아이들을 먼저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장애자입니다. 누구나 부족한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질이 못 돼 먹어서 장애자입니다. 저는 떠나가지만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해 오셨지만, 우리 아이들의 눈으로 보고 아이들을 보살피고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사랑했습니다. 수녀님과 선생님들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을 간직하고 그 사랑 안에서 서로를 오래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하셨답니다.

송연정 생활재활교사가 송사를 읽는 중에 문신부님에대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제관 앞의 꽃밭과 바둑이, 등교할 때면 아이들에게 물을 뿌려 한바탕 웃게 하신, 버릇없이 수염을 잡아당겨도 허허허 웃으시는 환한 얼굴, 언제나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하신 모습들 그 모습이야 말로 바로 예수님이 공생애를 살아가신 아이처럼의 모습이 아닌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인류 구원을 위해 바친 예수처럼 사제의 삶의 반인 21년을, 아이들에게 바친 희생적인 삶을 성체로 나누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도 이러했으리라 고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낮추는 것이 바로 온전한 사람됨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함께 다 같이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어린아이 처럼 되어야, 그러니까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의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는 ‘큰 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셨지만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비참한 십자가에까지 낮추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 땅에서는 십자가로 나타납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 이 세상에서 권위적인 것으로, 물질적인 것으로, 집단적인 것으로 나타나면 안됩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은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자기 낮춤입니다. 이 낮춤은 어린 아이의 낮춤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에 어린아이처럼 속하고자 할 때 우리는 가장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존심, 자존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명을 앗길 찌라도 자존감을 잃으면 안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인간의 자존감, 등 자존심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가장 소중한 가치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어린아이처럼 되라하는데 어린 아이의 자존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린 아이의 자존감은 바로 엄마 품에 안기어 있는 모습입니다. 여기 하원이가 지금 엄마 무릎 위에 앉아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 자존감이야 말로 가장 큰 자의 자존감이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안에 어린아이처럼 거하며 평화롭고 복된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2/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650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976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360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951 2005.09.02 16:30
155 [일반] 회개하지 않으면(2008년3월 2일,사순절네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74 2008.03.02 15:10
154 [일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가난의 축복’(2008년2월24일, 사순절세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45 2008.02.25 08:48
153 [일반] 은혜 안에서 죄인으로 발견되는 기쁨(2008년2월17일, 사순절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94 2008.02.18 18:24
>> [일반] 가장 큰 사람(2008년2월11일, 사순절첫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41 2008.02.10 13:21
151 [일반] 좋은 것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2008년2월 3일, 주현절후네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94 2008.02.03 14:07
150 [일반]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2008년1월27일,주현절후세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04 2008.01.27 13:43
149 [일반] 너는 참 이스라엘이라!(2008년1월13일, 주현절후첫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77 2008.01.13 13:12
148 [일반] 주님을 찿는 큰 기쁨(2008년 1월 6일,주현절)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69 2008.01.06 17:07
147 [일반] 끊임없이 새로워지기(2007년12월30일, 성탄절후첫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882 2007.12.30 13:36
146 [일반] 복음의 능력( 2007년12월23일, 네번째대강절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52 2007.12.23 14:31
145 [일반] 앞 길을 예비하는 자(2007년12월 9일, 대강절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878 2007.12.09 13:21
144 [일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2007년12월2일, 대강절 첫번째주 첨부파일 하늘기차 2227 2007.12.02 16:13
143 [일반] 하나님을 힘써서 알자 ! (2007년11월25일,성령강림주일후스물여섯번째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14 2007.11.25 13:47
142 [일반] 내 안의 그리스도(2007년11월18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물다섯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70 2007.11.18 15:40
141 [일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2007년11월11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물네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48 2007.11.11 17:01
140 [일반] 감사하는 마음으로(2007년10월21일, 추수감사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72 2007.10.28 16:37
139 [일반] 믿음, 소망, 사랑(2007년10월21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물한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33 2007.10.21 15:27
138 [일반] 부자와 거지 나사로( 2007년10월14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무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64 2007.10.14 13:36
137 [일반] 물을 찿지 못하였다(2007년10월 7일, 성령강림주일후열아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91 2007.10.09 14:12
136 [일반] 위엣 것을 찿으라(2007년9월30일, 성령강림주일후열여덟번 첨부파일 [1] 하늘기차 2077 2007.09.30 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