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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 2007년12월23일, 네번째대강절주일)

하늘기차 | 2007.12.23 14:31 | 조회 2151


복음의 능력

2007년12월23일(네번째대강절주일) 롬1:16-17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때문에 빌립보에서 감옥에 갖히고, 데살로니가에서 쫓겨나고, 베뢰아에서 몰래 도망 나왔고, 아테네와 고린도에서는 무관심과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는 죽은 자의 다시 살아남에 대해 이야기 하자, 조롱하고, 아니면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다시 듣겠다고 점잖게 외면하기도 하고, 거의 복음을 이해 하지 못하여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였습니다. 고린도에서는 너무 힘들어 복음을 전하지 않으려고 까지 한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선교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말입니다.

시대적인 상황으로 볼 때 당시는 헬라의 문화, 로마의 통치 시대의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로마로 통하는 시대에 로마의 식민지 중에서도 가장 변두리로 치는 이스라엘 벽촌에서 태어난 한 젊은이, 바로 예수에 대해 한 젊은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데 있어서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요?

사도 바울은 로마를 향하여 말합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그렇게 가고 싶어했습니다. 롬1:13에도 여러번 로마에 가려고 계획했다가 길이 막혀 가지 못했는데, 바울은 기필코 죄인이 되어 로마로 향합니다. 왜 사도 바울은 감옥행을 자청하면서 까지 로마에 가려고 했을까요? 사도 바울은 당시 로마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인간의 죄악상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당시 로마의 상황은 온 세상을 대상으로 전쟁을 치르는 나라로서 피로 범벅이 된 나라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정신은 날로 피폐해 갔습니다. 전쟁의 승리로 얻어지는 영토, 노예, 물질 등의 재화에서 얻어지는 풍요는 삶의 역동성, 생명력을 다 빼앗아 가버리고, 게으름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으로 치닫게 하였습니다. 원형 경기장의 복도를 톱밥대신 황금가루로 대치 하기도 하고, 연회를 쉬지 않고 베풀며, 먹고, 또 먹기 위해 귀족들의 집문 입구에는 토를 위한 항아리가 자리했다고 합니다. 성적 타락은 더 할 나위없어 1년에 이혼 결혼을 반복하여 6 번이나 반복하는 사람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여왕이 자신의 쾌락을 위해 몸을 파는 여인으로 변장하고 사창가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무엇이 진리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돈이되고, 즐거울 수 있는가가 당시의 풍조였습니다. 일상적인 무료함을 탈피하기 위해 새로운 자극을 추구했습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무료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파렴치함과 광란에 가까운 쾌락추구는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당시 사람들의 도덕적 파멸, 문화적 몰락, 가치의 혼란으로 인하여 로마 사람들이 버려지고, 황폐해진 그 참담함을, 그 삶의 공허함을 누구 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당시의 로마 사람들에대하여 롬1:21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 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 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라고 합니다. 마음이 어두어지니 순리를 역리로 풉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은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로마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저는 어항에 고기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수족관을 그냥 지나가지를 못합니다. 고기 노는 것을 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어항 속에서 고기들이 노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차분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물고기 키우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물고기를 길러 본 분은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물고기의 배설물과 남아있는 먹이들이 어항 안을 오염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항을 정화시키는 정화제와 물고기에게 면역성을 높이기 위해 약물을 넣어보고, 물을 1/3씩 10일 마다 한 번 씩 갈아 보아도, 어항의 물고기가 계속 죽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도저히 물고기를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항을 오염시키는 그 근본원인이 제거되지 않으니까 약물처리 하는 것 정도로는 잘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항의 자갈, 모래, 수초를 전부 꺼내 닦아서 다시 집어 넣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집사님, 장로님 모두 8분이 태안반도 만리포에 다녀왔습니다. 초기 대응을 잘 하여 해안 모래밭은 눈으로 보기에 거의 깨끗하였습니다. 그런데 해안가를 따라 가는데 그 처음 원유가 밀려 올 때의 상황과 흔적을 보여 주는 대형 플라스틱 통들, 양동이, 오삽... 그 처절했던 흔적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는 섬은 그 오염 정도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하여간 만리포 오염 현장에 내려가서 다른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열심히 바닷가 모래와 자갈을 일일이 하나씩 닦았습니다.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가도 보았고, 오염 현장에서도 보았는데, 차에 현수막을 걸었는데, 단체 이름을 써서 ‘우리가 태안을 돕습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써서 붙여 놓았는데 보면 다 교회입니다. 0 0 교회, 또는 000 기독 연합회 라고 써 붙였는데, 그 곳에 수 많은 단체들이 왔을텐데, 그렇게 꼭 드러내는 것은 교회입니다.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입니다. 그냥 단체 이름을 붙여 놓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꼭 무슨 ‘누구를 위해서 왔습니다.’, ‘우리가 돕겠습니다.’ 등 호들갑을 떱니다. 이런 유아기적인 태도에서 언제쯤 벗어날지 부끄럽습니다.

하여간 털퍼덕 자리잡고 앉아서 열심히 기름을 닦는데, 보면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납니다. ‘인간이 왠수다’, ‘이 죄를 어떻게 다 용서 받나’합니다. 어제 ‘너무 더운 지구’라는 올해의 가장 영향을 끼친 책 중의 하나를 설명하는 신문의 글에서 ‘지구온난화’에대한 글을 읽는 중에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찬반논쟁과 정치적 이슈화가 미국 대선 정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저는 ‘인간이 배출한 온실 가스’라는 짧은 구절이 눈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어항 생각도 났습니다. 기분 나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항과 지구가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배설한 것으로 전 지구가 오염되어 어느 한 순간 모든 것이 생명을 잃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더 고취시킵니다. 실제 앞으로 10여년, 아니 20년, 아니 우리가 살아 있을 금세기에 석유 문명은, 원유생산량이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사라져 갈텐데, 그 과정을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석유문명의 결과로 결국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고 있는 현재에, 지구 전체의 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머무니 모든 것이 일순간에 정지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지구온난화 문제는 전 지구적, 세기말적 현상이라 생각이 듭니다.

어항이 오염되는 것은 인간이 자기 욕심을 위해, 자연의 물고기를 작은 공간 안에 키우는 것에서 비롯되었으니, 물고기를 키우지 않고 자연으로 돌리면 되겠는데, 지구 오염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라는 것입니다. 지구 오염, 온난화는 인간의 욕심입니다. 그 욕망, 그 이기주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자라서 사망을 낳습니다.’라고 합니다. 욕심은 그냥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힘을 키우고, 시스템을 만듭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을 통해 욕심은 온 인류, 전 지구를 욕망과 죄의 방향으로, 결국은 죽음으로 전 인류 공동체를 내 몰아가고 있습니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욕심은 시대에 편승하여 재 빨리 도덕적, 사회적 문화적 틀을 만들어 사람들을 그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거대한 시스템의 힘 앞에, 스스로 정화 하는 윤리, 건전한 문화, 예술, 교육, 종교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꽤하지만 근본적인 새로움을 도출해 내지 못합니다. 근본적으로 그 욕망, 그 어두운 힘의 지혜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인간은 시대의 힘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마치 그것은 오염된 어항을 약물로, 그리고 물갈이를 통해 새롭게 해 보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 사도 바울은 로마의 사회상을 보며 그러한 인간의 한계를 본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롬1:16에서 “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바울 자신을 죄에서, 육의 행실에서, 율법이라는 종교적 틀에 얽매어 하나님 보다 율법 지키려고 사람을 죽이러 나선 자신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얼마나 자기 욕심에, 교만에, 이기심에 꽉 붙들려, 그것을 종교적 틀, 즉 시스템으로 고정시키고 있는지를 본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자신의 종교적 신념, 종교적 시스템을 따라 자기 할 일을 하던 중에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복음 앞에 완전히 무장해제를 당한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신념, 경험, 가치를 벗어버렸습니다. 과연 무엇이 그 당시의 최고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을 돌아서게 했을까요?

이 번에 태안에서 기름닦는 일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그곳에 함께 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스스러움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번에 준석이라는 학생을 만났습니다. 어제 보니까 벌써 교회 홈피 게시판에 인사 글을 올렸드라구요. 사람좋은 우리 김태춘 집사님이 대번에 이 준석이 하구 친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입도 즐거웠고, 귀도, 그래서 마음도 즐거웠습니다. 이 아이는 수능을 본 아이인데, 딱이 소일거리도 없고 해서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물어 물어 만리포에 온 것입니다. 참 신통하고, 귀엽고 해서 우리 교인들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그런데 준석이 뿐만아니라 그 곳의 모든 사람들이 십시일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따뜻한 눈 길을 나누었습니다. 얼마전 한겨레 신문에 태안반도에대한 시가 올라온적이 있었는데 그 시에서 향토 시인 정낙추님은
“그들에게 2007년 겨울, 태안의 바다는 절망이자 또 다른 희망이다”라고 읊었는데, 처음에 ‘희망이다’라는 말을 이해를 못하겠드라구요, 그런데 현장에 와서 보니 그 곳에, 그리고 그 곳에 오지 않았더라도 그 곳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하는 마음과 마음은 희망인 것입니다.

동남아 쪽에 큰 물난리가 났을 때 물이 넘지 못하는 작은 언덕이 있어 미쳐 피하지 못한 짐승들이 그 곳에 다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현상은 그 곳에 맹수들이 초식동물과 서로 몸을 의지하고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자연의 큰 힘 앞에 모든 생물들이 두려워 하고, 그 두려움 속에 서로 연약해진 마음을 나누는 그러한 상황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그리고 서로에게서 느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바로 그 것 아니겠습니까?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이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을까요? 사도 바울이 롬1:21에서 말씀하였듯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 감사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넘어서려는 것에서 오늘 인류의 멸망의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보자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즉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단 한 번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십자가에 달리어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십자가는 ‘종말론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세상의 끝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 지혜, 율법, 철학, 종교, 우상, 물질, 윤리, 가치...그 모든 것에대한 종말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멈추게 합니다. 체바퀴 처럼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 바퀴, 그 동안 쌓아온 인간의 물질, 문명을 멈추게 하는, 분주하고 바쁜 세상을 멈추게하는, 이 세상의 것으로 눈물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며, 원통해 하며, 쇄하여 가는 것을 멈추게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말씀에대한 순종입니다. 이 세상의 힘, 시스템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율법을 따라 씨름하며 지켜도, 지켜도 평화가 없었던, 그 율법의 굴레에서 사울을 건져 준 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구원의 힘인 것입니다. 아마도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것을 다 버린 예수의 모습을 볼 때, 세상의 힘이 아닌 자신을 내어놓는 힘을 보는 것입니다. 마치 태안반도에 온 자원봉자들이 자연 재해의 참담함 속에서 자신에게 있는 세상의 것들을 다 내려놓고 여린 마음으로 만나듯이,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의 것을 다 내어 놓은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 예수가 우리의 힘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아무나 다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믿는자에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들음입니다. 인간의 이성, 윤리, 철학 등의 가치 체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면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기말적인 지구온난화의 위기의 시대를, 신자유주의의 맘몬의 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삶을 살아낼 힘인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힘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사도 바울은 17절에서 ‘이 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라고 합니다. 이 일 즉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 즉 능력 있는 구원의 삶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을 듣고 따르는 것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고, 유대인은 기적을 구한다 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세기말적인 시대적 흐름 속에 있지만, 욕망의 힘, 시스템의 흐름에 위치 해 있지만, 이제 예수가 십자가에서 보여준 그 내어놓음의 힘, 내어놓음으로 평화한 그 힘, 세상에대하여 참 종말, 멈춤을 선언하는 그 힘으로 능히 이 세상을 생명력있게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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