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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2007년11월11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물네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7.11.11 17:01 | 조회 2047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

2007년11월11일(성령강림주일후스물네번째주일) 마6:25-34;요17:15-20

우리가 사람들하고 만날 때 통상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즘, 어때요, 바쁘지요”합니다. 그러면 “예, 좀 바쁩니다”, 아니면 “그저 그렇지요”, 또는 “하는 일 없이 바쁩니다”라고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종종 한 마디 합니다. “일이 바쁜게 아니라, 마음이 바쁘지요”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바쁜 것이 미덕입니다. 바쁘지 않다는 것은 유능치 못하다는 것과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끝내지 못 한 일, 못 지킨 약속, 행하지 못한 계획,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 바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가만히 있기 보다는 차라리 바쁜 척이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이 바쁨 속에 찿아오는 손님이 있습니다. 근심, 염려, 불안입니다. 직장을 잃지 않을까?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혹 난치병은 아닐까? 아이들 공부를 이정도 시켜가지고는 아무 구실도 못 할 것 같은데? 등 어떤 때는 걱정을 앞당겨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근심, 염려를 조심스럽게 보면, 그러한 걱정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경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건강만 하더라도 주변에 있는 분들이 난치병으로 인해 힘들어 하고, 가까운 분들과 사별을 하는 것을 보면 혹시 ‘나도’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간혹 T.V의 건강 프로그램이나, 약 선전하는 것을 보면 마치 내가 온갖 병에 걸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래서 어느 병원, 어느 약을 꼭 먹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가공된 정보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어찌 건강에대한 것 뿐이겠습니까?

이동통신 휴대폰 선전하는 것을 보노라면 자기내가 선전하는 휴대폰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연예도 잘하고, 행복해지고, 대인관계가 좋아지고...라고 합니다. 학원, 학습지 광고를 볼라치면 정도를 넘어섭니다. 자기내 학원에 들어와야, 자기내가 출판한 학습지로 공부를 해야 우등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원 다니지 않고, 학습지를 안하면 공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광고도 보면 재난지역을 무사히 통과하는 탁월한 자동차라고 합니다. 보험상품, 아파트 선전... 적지 않은 경우 상품광고의 배경에는 그렇게 불안의 요소들을 깔고 있어 이러한 광고, 선전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우리들은 그래서 무의식 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근심에 사로잡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뉴스거리 중에 하나는 모 대기업이 개발한 어느 전자칩이 우리 국가 경제를 먹여 살리는데, 갑자기 값이 폭락하면, 주가가 떨어지고, 그러면 국가 경제가 당장 어떻게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러다가 얼마가 지나면 바로 그 개발한 칩이 최고의 순 이익을 올리고 있다고 하면서 칭찬에 침이 마를 정도입니다. 그래서 소위 대기업의 회장이 범죄 행위를 해도 나라의 경제를 위해서 가석방 해야한다는 논리를 정당화 합니다. 그런 전체적인 시대 상황적 흐름을 보면 가공된 염려, 중독, 거짓된 기대감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시민은 자기에게 들려오는 정보를 선별할 줄 알아야합니다.

지금까지도 가장 우리를 불안케 하며, 우리의 모든 삶의 자유스러움을 얽어매는 거짓정보는 바로 Red Complex입니다. 이 번 선거에서도 극우의 단체들이 북한을 빨갱이로, 남과 북의 자유 왕래 통일을 적화, 전쟁...등의 언어로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사탄 마귀로 북한을 규정하며 이 번 선거에서 핵문제 해결없는 대화, 지원은 없다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빨갱이에대한 두려움으로 몰아갑니다.

하여간 우리의 일상을 보면 일, 염려, 바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삶이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가득 채워진 삶이 결코 쾌청하지 만은 않은 불만족의 경험들로 가득합니다. 어렸을 때 일일 시간표를 둥근 시간표에 맞추어 밥먹기, 체조, 공부, 놀기, 책읽기, T.V시청하기 등 하루의 스케줄을 빽빽이 가득 체워 그려 넣었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 시간표를 보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는데, 권태롭습니다. 바쁘게 뛰어다니며 하는 일에대해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일에대한 회의가 찿아옵니다. 바쁜데 권태롭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적개심이 생깁니다. 자신을 이용하고, 조작하고, 더 나아가 착취당하며, 그래서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에게 등 떠밀려 여기까지 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면에 분노가 생겨 쌓입니다. 처음에는 울분, 그래서 그것을 뜨거운 분노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차가운 분노로 바뀝니다. 찬바람이 휙하고 붑니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적개심이 사회의 기저에 흐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가장 치명적인 우울증에 걸립니다. 무언가 열심히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고, 무언가 여전히 가득 채워져 있지만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습니다. 차라리 자기 자신이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존재 가치에대한 의미를 상실해 갑니다. 관계가 단절됩니다. 아무하고도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가득 찬 것 같은데, 아직도 다 채우지 못한 허함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구해야 할 것,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해 허전해 합니다.

이런 우리의 삶에대하여 주님은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염려, 근심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우리 내 삶에대해 주님은 걱정하지 말라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세상 일에대하여 가치가 없다거나, 쓸모 없다 하시지 않습니다. 또 우리의 바쁜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평온하라 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디 걱정하고 싶어서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사이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 33절에 보니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것들로 바쁜 우리들에게 주시는 참 평화의 말씀입니다. 관심의 초점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 순위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많은 것으로 가득 채워진 우리의 삶의 무게 중심을 한 가지 꼭 필요한 것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삶의 패턴, 삶의 속도, 만나는 사람들, 만나는 사람과 관련해서는 삶의 중심이 이동을 하면 자연히 만나는 사람들이 바뀌어 지겠지요, 가치관이 바뀌는데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매일 만나던 사람 또 만나고, 그리고 또 그 사람을 만난다면, 삶의 변화는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은 결국 만남인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내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 많은 가치 체계, 관계를 멈추고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 가치 우선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근원, 삶의 의미에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80년 만에 미디안 광야 타지 않는 가시 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말입니다. 그의 옛 왕궁에서의 가치관, 현재의 자신의 추락해 버린 삶, 앞으로의 삶의 방향이 이 가시떨기 불꽃을 보는 순간에 해결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야곱이 얍뽁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동안 자기를 지탱하고 있던 모든 가치체계, 가치관, 인간관계, 연고, 즉 학연, 지연, 혈연 등을 내려 놓고 하나님 만을 바라 본 결과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만 바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 보다 더 바쁘셨습니다. 엄청 바쁘셨습니다. 막1:32-33에 보면 “해가 져서 날이 저물 때에,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온 동네 사람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또 35절에 보면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곳에 찿아온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모두 선생님을 찿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읽어보면 예수님의 삶도 꽉 차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가득차고 넘치고 있을까요?

예수님이 자신의 생각, 자신의 뜻, 자신의 일로 바쁘셨을까요? 눅2:49에 보면 예수님이 가족들과 함께 유월절 절기를 지키고 고향으로 내려오던 중 잃어버린 예수를 만났을 때, 예수님이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요5:19에 보면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 따라 할 뿐이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아들도 그대로 한다.” 또 요10:37에 보면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 또 요14:24에 보면
“너희가 듣고있는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해 있음을 봅니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은 죽기까지 자기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뜻과 하나가 되신 주님께서 요17:23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와 예수님이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아버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렇게 하나되게 하는가요?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계시는 한 성령의 임재, 성령의 감동, 성령의 역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의 삶의 깨달음, 회복, 인도하심, 기억케 하고, 가르치시는 모든 일을 성령께서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은 우리에게 이 바쁜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꽉 찬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세상을 벗어나라고 하지 않습니다. 요17: 18에도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냈다.”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렇지만 요17:16의 말씀처럼 “세상에 있으되 세상에 속하지 않은”사람입니다. 성령의 삶,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사는 사람이 바로 자유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더 이상 권태, 적개심, 우울함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감동을 줄 때 우리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과 일치시키려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과 확신에 찬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들은 성령에대해 다소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무어냐 하면 성령에 이끌리는 삶이라 하면, 우선 나오는 이야기가 ‘그러면 내 삶은 무엇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자유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류의 자유, 즉 무조건적인 자유, 자기가 원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 그런 자유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조된 존재로서 창세기의 인간 창조를 볼 것 같은면 본래적으로 부족한 존재, 가난한 존재, 올 때도 빈 손으로 왔지만 갈 때도 빈 손으로 가는 유한한 우리에게 자유는 유한한 것이고, 그 안에서 생명의 사랑의 평화를 누리고 나누는 자유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을 유혹할 때부터 무한한 자유가 아니면 자유가 아니라고, 그래서 하나님을 능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탄은 힘있는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사탄은 고통, 아픔, 부족함, 슬픔...등에서 벗어나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 안에서 자유하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삶의 슬픔 속에, 아픔 속에, 고통 속에 연약하고, 부족함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 자유, 참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스스로 견디기 힘든 삶의 정황 속에서 “피하라!”하지 않으시고참 자유하라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가 있습니까? 항상 기뻐하라고 해서 매일 실없이 웃음 지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스럽고, 절망적이며, 상황이 어두움일 때 - 사실은 그것이 우리의 유한한 삶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가짜들은 그것을 자꾸 뛰어 넘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평화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의 감동으로 기뻐합니다. 감사합니다.

가톨릭 예수회에 속해있는 취체크라는 신부가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한참 이방에 복음을 전파하는 운동이 뜨겁게 일어났을 때, 러시아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이 신부는 미국의 간첩으로 소련의 비밀 경찰에 체포되어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소련에 갖혀 살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감옥, 독방 생활, 끊임없는 조사, 그리고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에서의 중노동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회에서는 소식이 끊어잔 취체크 신부를 사망처리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가 23년 만에 살아 돌아 온 것입니다. 그당시 미국과 가톨릭은 놀라우을 금치 못했습니다. 미국의 공항 도착하여 기자회견을 가질 때, 한 기자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 곳에서 살아 올 수 있었는지요?”

그 때 취체크 신부는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를 둘러싼 상황은 점점 더 열악해 졌습니다. 건강, 추위, 두려움... 그러나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새롭게 삶의 의미를 더하여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날마다 취체크 신부와 함께 하여 새롭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비록 우리의 삶에 열악함, 어두움, 염려와 걱정이 늘 자리 하고 있지만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얻을것이요, 찿으라 찿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하면서 궁극에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다고 하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는 마땅히 구할 것을 구하고, 지금의 이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마땅히 누릴 것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세속의 가치 속에 살아야 하는 교우 여러분 성령을 통해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좋은 뜻을 따라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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