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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거지 나사로( 2007년10월14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무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7.10.14 13:36 | 조회 2363


부자와거지 나사로

2007년10월14일(성령강림주일후열여덟번째주일) 눅16:19-31

예수를 믿든지 않 믿든지 천당에대해, 영생에대해 궁굼해 하고, 집착하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영생은 최고의 관심사였습니다. 어느 바리새인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진정으로 구원을 받고 싶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질문한 것이 아니라, 이미 스스로 확보해 놓은 구원에대한 완벽함을 예수님께 드러내고 싶어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가진 재산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습니다.

눅13:22이하에서도 어느 한 사람이 비슷한 질문을 예수님께 합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이것도 역시 자신은 구원을 확실히 받았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비치는 질문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구원의 확신에 차있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하고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하고 대답할 것이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집 주인이 문을 닫아버리자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며 “우리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그리고 주인님은 우리를 길에서 가르치셨습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닫힌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2 번이나 거듭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욱 심한 말로 “악을 행하는 자들아, 모두 나에게서 물러가라”고 합니다.

왜 바리새인 부자 청년은 수심이 가득찬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예수님을 떠났을까요? 왜 문을 힘차게 두드리던 사람들은 예수님께 심한 핀잔을 들었을까요? 모두가 영생과 구원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고,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인데, 왜 이런식으로 결론이 났을까요? 그런데 이런 질문은 예수님 당시 만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됩니다. 저도 구원과 관련된 질문을 종종 받아봅니다. 목사님!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천당에 갈까요, 지옥에 갈까요? 이런 질문의 경우 대부분 10이면 10 거의 확실한 답을 갖고 질문합니다. 자신을 포함해서 믿는 사람은 천당이고, 안 믿는 사람은 지옥행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언젠가 “구원 받았습니까?”하고 묻고서는 구원 받았다고 하면, 재차 “언제 구원을 받았습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몇 년, 몇 월, 몇 일에 구원 받았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답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눅 13장, 18장의 말씀을 보면,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가짜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묻는 사람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셨습니다. 과연 누가 영생을 얻어, 천국문에 들어갈 수있을까요? 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주인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 주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주인과 한 자리에서 먹고 마셨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주인을 너무나 잘 안다고 하는데, 주인은 그 사람에 대해 전혀, 거듭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 주인은 이 사람을 모른다고 할까요? 흥미로운 것은 주인이 모르는 것에 대해 천국에 들어가려는 사람들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눅13:26에 보면 주인님이 자기들을 길에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문점은 풀립니다. 주인님이 가르쳤는데 이 사람들이 가르친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 자기 멋대로 한 것입니다.

어느 부자가 있는데, 그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고 하는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누워,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했고,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개들이 그의 헌데를 핥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거지가 먼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거지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곧 부자도 죽었는데, 이 부자는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다. 하도 고통스러워 물 한 손가락 찍어달라고 요청하지만, 거지가 있는 곳과 부자가 있는 곳은 서로 오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지상에서 살고 있는 형제들에게 거지 나사로를 내려 보내 이 곳에 오지 못하도록 이야기 좀 잘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모세와 예언자들이 부자의 형제들에게 이야기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이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거지나사로를 세상에 내려 보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거듭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나사로가 살아 그들에게 가도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려고 하였을까요? 교우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좁은 문으로 들어 가려는 사람은 많지만 들어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못 들어 갈까요? 가르침대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가르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 뒤에서도 무슨 이야기가 나옵니까? 부자의 형제들이 모세와 예언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듣지 않으면 죽은자가 살아 나도 믿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왜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지 못했을까요? 부자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아무리 살펴도 부자의 죄를 찿을 수가 없습니다. 거지가 문 앞에 있는 것이 보기 싫어 내어 쫒거나, 빵 부스러기를 주워먹지 못하도록 방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부자가 지옥에 떨어져야만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나사로에대한 무관심이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문 앞에 누어 있었는데, 온몸에 종기와 진물, 고름이 나고, 냄새가 나서, 개들이 그의 고름나는 몸을 핥지만, 움직일 수가 없어 달려드는 개를 쫓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한 편 빵 부스러기나마 얻어 먹으려 했지만, 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그것도 여의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썩은 고기덩어리 같이 되어버린 몸을 부자의 집 문 옆에 뉘었지만, 아무도 나사로를 돌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음식을 갖다 주지도, 아픈 곳을 감싸 주고 치료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부자는 자신의 재물에 취하여 호화로운 물질의 쾌락에 깊이 빠져있어서 자기 집 앞에 절대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사람 대접하지 않고, 그저 있어야 할 것이 거기 있고, 없으면 더 좋고 하는식으로 거지 나사로를 그 곳에 그냥 놓아 두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죄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왜 지옥에 떨어진 것일까 하고 의아해 할지 모르겠습니다.

눅12:33에 보면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고 하면서 영생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또 눅16:1이하의 불의한 청지기의 이야기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친구가 되기 위해 세상에서 열심히 땀흘려 벌은 재물을 사용하면 그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또 마25:31이하에서 마지막 심판 때에 사람을 양과 염소로 나눈다고 하면서, 가난하고, 헐벗고, 배고프고, 병든자를 돌아보는 것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기준으로 양과 염소를 가른다고 합니다. 자선은 영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제는 믿음의 고백이요, 나눔의 실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와 더불어 함께 하는 자가 영생을 얻고 그렇지 않은 자가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부자가 천당에 가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면서 나사로가 어떤 신앙을 가졌길래 천당에 갈 수 있었는지를 찿아내어 거기에서 위로를 받으려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 어디에도 나사로의 신앙에대해 언급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나사로는 처참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8복에서 가난한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는 가난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대뜸 말할 것입니다.

아니 그러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하며 혼돈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바리새인 부자 청년이 수심에 가득찬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예수님을 떠날 때, 예수님이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자 제자들이 “어이쿠 이렇게 훌륭한 사람도 구원을 못 얻는데, 그럼 누가 구원을 얻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무어라 답변하였는가요? 예수님은 그 때 “사람은 할 수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생은, 구원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구원을 받든, 가난한 자가 구원을 받든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구원에대해 잘 알고 있고, 스스로 구원을 판단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저는 종종 롬2:15 말씀을 들어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양심을 따라 심판을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금방 반응이 옵니다. 시큰둥합니다. 에이! 그러면 무엇하러 예수님을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니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 다 똑 같이 구원을 받는다면 무엇하러 예수를 믿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같이 구원을 받는다면 억울한가요?

포도원에 오전 9시에 일하러 온 사람과 오후 6시 일이 끝나기 1시간 전인 5시에 포도원에 와서 일한 사람과 똑같은 일당을 주는 포도원 주인을 원망하는 것 처럼, 또 탕자의비유에서 아버지의재산 다 탕진하고 돌아 온 작은 아들을 아버지가 기쁨으로 맞이하는 것을 보며 미워서 못 견뎌하는 큰 아들처럼 못 마땅해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전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포도원에 오전 9시에 와서 오후 6시 까지 일한 사람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까지 불안과 허탄함 속에서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불리움을 받아 1 시간을 포도원에서 일 한 사람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아침부터 포도원에서 일 한 사람은 하루 동안 온전히 주님의 포도원에서 열심히 땀흘려 일하는 기쁨, 하나님 나라의 일꾼의 기쁨, 옥토에 뿌려진 씨앗을 바라보는 씨뿌리는 자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기쁨입니다.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평화, 정의
의 기쁨입니다.

설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양심을 따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고 할 지라도, 그럼에도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한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자기를 낳아준 부모의 후원을 받아 갓난 애기 때부터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이 잘 성장했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기를 후원해 주고 뒤에서 돌보아 준 분을 알 수가 없다고 한다면, 그 얼마나 답답할까요, 더 안타까운 것은 자기를 낳아준 친 부모가 엄연히 살아 계신데도 한 번도 죽을 때 까지 부모와 만나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 보다 더 가슴 아픈 비극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자기를 낳아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건강하고, 온전하게 클 수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3:18에 보면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요1:1 이하에서 처럼 빛이 왔는데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는 어두움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우리는 어두움이 아니라 빛 안에, 은혜의 빛 안에 있습니다.
에베소서 1:3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 주관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이 세상을 이끄시는 계획과 그 비밀을 교회를 통해 우리들에게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죄를 용서하시는 은혜, 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흠 없게 하시려고 성령으로 우리를 온전케 세우시는 은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가 넘치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를 모르는 사람을 그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고 하니, 이 또한 얼마나 값지고 귀한 은혜 이겠습니까? 나 하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혜가 커서 감당키 어려운데, 어찌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받은 은혜에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다.

구원은 나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빌2:12에에서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합니다. 그렇습니다. 몇 년 몇 월 몇 일에 구원 받았다고 하면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이미 하나님으로 부터 구원의 큰 은혜의 자리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놀랍고, 감격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삶 속에서 갈등하며, 신앙의 흔들림을 받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야곱 역시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여전히 삼촌 라반의 집에서 예전의 자기 방식대로 이기적인 삶을 꾸려갑니다. 야곱이 구원의 한 점을 찍은 것은 얍복강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계속 되어야 하고 그렇다면 구원이란 어느 한 지점에서 점을 찍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거듭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새롭게 하며, 시의 적절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 그 말씀대로 살려할 때에 성령의 감동으로 스스로의 삶을 인도받고, 도움을 받으며 생명력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구원 받은 복있는 자의 삶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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