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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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엣 것을 찿으라(2007년9월30일, 성령강림주일후열여덟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7.09.30 14:21 | 조회 2076
위엣 것을 찿으라

2007년9월30일(성령강림주일후열여덟번째주일) 골3:1-4;창28:10-19

골로새서는 에베소서, 빌립보서와 함께 바울이 감옥에 갖혔을 때 기록한 서신으로서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로마의 감옥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감옥에 갖히어 있는 동안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골로새 교회가 이단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음을 알고 곧 편지를 보냅니다.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음을 증거합니다. 헬레니즘의 철학 사상, 유대의 율법주의, 동양의 신비주의가 혼합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퇴색시켰습니다. 할례와 금식을 강요하고, 금욕주의, 천사숭배, 영적 신비체험을 강조하여 성도들을 미혹시켰습니다. 이에대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함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도 그 뛰어난 예수 그리스도와 또한 그와 함께 함으로 그와 같이 되어야 할 우리들에 대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3:1에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면”합니다. ‘받았으면’의 본래의 뜻은 불확실한 가정이 아니라, 확정된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이상’ 이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니, 위엣 것을 찿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골2:20에 보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떠났다”고 합니다. 이것은 특별히 골로새 교회에대한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골로새 지방에서는 음식물, 명절, 제의 등을 엄격히 지켰고, 또 천사숭배, 깨끗게하는 정결의식 등을 중요시 하는 가르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교회에 까지 들어와 기독교인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신비적 깨달음이나, 영적체험을 주장하는 영지주의나, 금욕적인 그리고 청결을 강조하는 엣세네파의 영향을 받거나, 율법을 강조하는 유대주의나 동양의 신비로운 제의 등이 서로 뒤 섞이어 교회의 신앙을 흔들어 놓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기독교가 그러한 점들에대해 부족하게 보였고, 그리고 또 그러한 것들에 어떤 종교적 가치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기독교가 그러한 점에 결핍,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기독교의 가치에 관해 이해를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이며 이 점에대해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 무결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찬은 그러한 이단의 주장에 영향받을 필요가 없음을 가르쳤고, 따라서 그러한 것들 자체에, 즉 금식, 할례, 신비체험, 금욕 같은 것들에대한해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없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근본적으로 금욕주의적인 극기, 규율엄수의 엄격주의, 물질에대한 결벽주의와 같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 자체는 결코 멸시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신앙훈련을 위해서는 소중한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이 완성될 때 까지 단지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에 연연해 하며, 붙들려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자유함을 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이 이러한 것들을 자꾸 강조하여 골로새 교회를 혼란케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제 그만 그런 세상의 초보적인 것에서 대한 관심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그러한 원리에 죽고, 다시말해 무관, 무심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 추석에 어느 T.V에서 권정생선생님에대한 특집을 상영하였는데, 여러 학자들이 나와서 권정생 선생님에대한 평가, 그 분의 존재 가치의 소중함을 이야기 하는 중에 어느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즉 최근의 동화를 보면 행복, 즐거움, 기쁨...그리고 에피소드들을 글로 쓰는데, 그 것이 삶의 어떤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보다는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전개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통, 아픔, 소외, 가난에대하여 정면으로 바라보며 접근해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동화 작가 이상권님과의 대화 중에 자신이 권정생 선생님을 만나러 가 보면, 그 양반은 지독한 근본주의 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작가는 글을 쓸 때 밥을 먹기 위해 쓰면 안된다는 것에 철두철미 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어느 누구도 이 것에 동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상권님은 선생님을 떠 올릴 때 마다 마음 속으로 그러한 권 선생님의 삶을 바라보며 스스로 생존에대한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요즈음 그러한 작가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은 자기는 글을 통해 어떤 철학이나 정신을 이야기 할 것은 없고 그저 내가 좋아서 글을 쓰는 것이고, 그리고 밥을 먹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주장에대해 사람들은 솔직해서 좋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글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읽고 마음의 양식이되는 것인데, 어찌 스스로 작가정신에대해 무관한 듯이 이야기하는지, 그러한 것에대해 자신에게 기대하지 말라고 이야기 할 때는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하여간 말하고 싶은 것은 오늘 이러한 의식이 단지 동화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웰빙, 행복, 편리함, 부, 가정, 자녀, 건강 ... 등 삶의주제가 이러한 것이 주도합니다. 오늘 사회의 주요 관심거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도 이런 행복, 가정, 웰빙에대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교회는 행복합니다’. ‘편안합니다.’ ‘말씀이 좋습니다.’등 세상적인 흐름에 별 차이 없는 구호들을 교회 현수막을 통해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가정행복 지킴이 하이 패밀리’, ‘행복한 믿음의 고백’, ‘영성수련, 단기 선교,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축복을 누리는 교회’, ‘지경을 넓히고 높이는 교회’, ‘성도의 웰빙을 책임지고 지역사회를 변혁하는교회’ - 그리고는 사랑하며 섬기는 교회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것을 다하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보여주신 사랑으로 봉사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십자가, 고난, 죽으심, 회개에대한 말씀이 아니라, 행복, 가정의 행복, 그러다 보니 심리학, 가정학, 상담학 ... 등이 들어와서 마치 그러한 것들이 복음인 것 처럼 착각하게 합니다. 복음 아닌 다른 것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대신합니다. 아마 사도 바울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았다면 오늘 교회에대하여 무어라 말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세속적인 가치관으로부터 마음 돌려 무어라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위에 있는 것들을 찿으라 합니다.

창세기 본문에서 야곱은 형 에서에게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인수받고 아버지 이삭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고는 형이 무서워 급히 도망을 갑니다. 날이 저물어 들판에서 잠을 청하는데, 그 때 꿈 속에서 사닥다리 하나가 하늘 끝까지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봅니다. 그 때에 한 음성이 들립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때 야곱이 잠을 깨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라고 합니다. 야곱의 평생에 이러한 체험은 처음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에게 늘 말로만 듣던 그 하나님을 지금 체험한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막막하고, 앞 날에대한 보장도 없는 그렇게 내어 몰린 길이었는데, 그 곳에 하나님이 함께한 것입니다. 야곱은 그제서야 자기가 지고 가던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보고서야 자기의 가야할 길의 뜻과 그 소망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 전에는 아버지가 자기 형에게만 재산과 축복을 베풀었으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 욕심에 사로잡혀 형제의 의리도 끊어버린 야곱이었습니다. 아마 이 야곱의 모습이야말로 오늘 이 나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 싸우며, 하나라도 더 얻으려 하고, 서로에게 상처주고, 평화가 없어 마치 삶에 지쳐 들판에 돌베게 베고 누어버린 모습,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일진데, 이제 야곱은 그 곳에서 그야말로 위에 것을 바라 본 것이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의 모든 근심, 염려, 걱정, 두려움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자신이 지금 왜 이 곳에 서 있는지, 무엇을 향하여 가고 있는지, 자신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위엣 것이라 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 사실은 위의 것이 아니라 땅의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교회도 위엣 것이 아니라 땅의 것을 가지고 위엣 것인 양 자기 만족과, 인위적 종교성에 흠뻑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1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심을 받았으면’이라고 합니다. 이 것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 외에 복음은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십자가와 부활의 죄 용서의 은혜 만이 참 복음이며 위의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단지 그림자일 뿐 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가 웰빙, 행복, 단기선교, 가정, 상담 등, 여러 가지 것으로 교회의 신앙의 본질을 감추려 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 앞에서 죄 용서의 은혜를 입는 것 만이 유일한 우리의 복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럼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 아래에서 입는 죄 용서의 은혜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너무 단순하고, 더 이상 풀어낼 것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 무언가 살을 더 붙여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단지 풀어본다면 야곱이 벧엘의 들판에서 하늘에 닿은 사다리를 보며 들은 소리입니다. 무엇인가요?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모세에게도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을 받고 두려워 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이삭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고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에게 미움을 사 쫓겨나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른 하갈에게 찿아오셔서 너와 함께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라는 말, 구원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요 임마누엘입니다. 주님이 너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금 세기에 교회 신앙의 사표가 될 만한 스승들이 있습니다. 유불선을 꽤 뚫는 다석 유영모 선생님, 함석헌 선생님, 문익환 목사님, 장기려 박사님, 그리고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좁쌀 장일순 선생님, 그리고 최근에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님 등 나도 이런 신앙을 쫓아가야 하겠다는 신앙의 스승이 있습니다. 이 분들의 삶은 단연코 시대적 요청에 따르는 삶을 살았기에 기독교를 떠나서 모든 사람들의 삶의 사표가 될 법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세상에는 이름이 나 있지 않은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있는데, 그 중에 최근에 많이 이야기되는 영성의 참 지도자인 이현필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그 분의 책을 읽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그 분의 삶이나 말에대한 이야기들을 단편적으로 들을 수 있었는데.

특히 이현필 선생님께서 마지막 돌아가실 때에 항상 따르던 제자들이 함께하였는데, 그 때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생선죽을 끓여오라 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현필 선생님은 살아 생전에 기인이라 할 정도의 금욕, 극기의 생활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겨울에도 맨 발로 다니셨고, 고기는 일체 드시지 않는 채식을 하였고, 기도 생활 중 24시간 기도는 셀 수 없고, 자급자족 생활 하는 중에 빨래를 할 때도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고, 후두결핵을 알을 때에는 각혈을 하면서도 이 병이 자기에게서 떠나지 말아 달라고 찬양과 기도를 하는 등, 그 분의 기행은 말로 더 할 수 없는 분이셨는데, 그런데 마지막으로 생선죽을 끓여가지고 오라했으니 그동안 이현필 선생님의 인생의 시금석이었던 금욕, 극기를 깨는 말씀이었습니다. 의아해 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자신이 그동안 예수 이름을 위해 행한 여러 삶의 행적들이 있는데, 혹 그러한 행적들이 마치 구원에 이르는 길인 양 잘 못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면 그동안 자기가 정말 잘 못을 저질렀다고 하면서, 이제 그것의 무의미함을 보일터이니 생선죽을 끓여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죽을 한 잎 드시고는 하신 말씀이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다고 신신 당부하면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의 길을 그동안 막지 않았나 두렵다고 하면서 거듭 고행, 극기가 아니라 예수 십자가의 구원 밖에 없다고 신신 당부했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십자가에서 생명을 다 내어 놓으시며 보여주신 은혜를 우리가 입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3:1에서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면”합니다. 그 십자가에 은혜를 입었는가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의 중심에 있는가 말입니다? 그 사랑의 십자가의 죽음이 없어서 오늘 교회가 소위 단기선교를 포함한 그 숫한 프로그램들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죽으심의 사랑이 없음을 스스로를 위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다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랑이 우리 마음 중심에, 나의 삶의 중심에, 오늘 이 시대 역사의 한 자리에 그 사랑이 있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무엇을 더 필요로 하겠습니까?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보여주신 하늘 위 사랑을 여러분 삶의 중심에 꼭 간직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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