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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 있는 은혜의 자리(2008년6월 8일, 성령강림주일후 네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8.06.08 13:44 | 조회 1966


지금 서 있는 은혜의 자리

2008년6월 8일(성령강림주일후 네번째주일) 롬5:1-11

지난 달에도 이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었는데, 그 때 성도는 구원 받은 은혜의 감격으로 세상을 보아야 온전히 세상을 볼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맞이하는 여러 가지 일들에 좌지우지 하는 그러한 삶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의 감격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바로 그 은혜의 자리에 서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이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 영광을 보면 죽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참 평화를 얻었을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바로 은혜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즐거운 은혜의 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 신문에서 북극의 얼음이 빠른 속도로 녹아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 기후 전문가들은 최근의 기후정보에 근거하여 1012년이면 북극의 얼음이 다 녹을 것이라는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이 북극의 얼음이 태양열의 80%를 반사하여 대양의 온도를 차갑게 유지시켜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빙하가 다 사라진다면 지구의 온난화는 가속화 될 텐데, 문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어마어마한 양의 온실가스가 얼음 형태로 차가운 북쪽 진흙과 해저에 매몰되어 있는데, 이 얼음이 대기 중 메탄의 3천배에 달하는 양을 지니고 있는데,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0배나 강한 온실효과를 내는 가스라는 것입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것은 기온이 단지 몇 도 오르는 것으로 이 가스는 휘발되어, 대기로 트림을 하게 되는데, 이는 더 많은 온도 상승을 가져오고, 다시 훨씬 많은 메탄이 방출되어, 온난화와 독가스가 지구와 해양을 덮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A.I 조류독감이 어느 정도 잡혔는지 모르겠는데, 이 병은 조류에 의해서 옮기는 전념성이 매우 강한 유행병인데, 사람에게도 옮긴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중국에서 번진 싸스가 바로 그 전염병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다행히 아직 발병을 하지않은 것으로 되어있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기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이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매년 가을이 되면 보건소에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평생에 한 번 아니면 어떤 유행성 질병이 돌 때 한 번 만 주사를 맞으면 되는데, 이독감 예방주사는 매 년 맞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매 년 변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맞은 독감 예방주사로는 이 번에 다가올 독감에 효력을 발휘할 수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가설인데 A바이러스에 걸린 닭과 B 바이러스에 걸린 닭이 만나서 더러운 C 변종 악성바이러스를 만들어 내서 그것이 인체를 감염시키거나 다른 동물 '돼지나 소'에게 감염이 되어 변종바이러스가 만들어져 인체에 감염될 수 있다는 가설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 악성 조류독감은 순식간에 수 많은 지역을 오염시켜 인류를 치명적으로 멸망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세 때에 패스트가 그랬고, 1918·1919년에 스페인에서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인플루엔자바이러스 A형의 변형인 H1N1 바이러스에 의해 유행한 독감이다. 감염된 사람만 6억명이고, 사망한 사람은 4천만~5천만명이었고, 한국에서도 740만명이 감염되어 14만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또 지질학적으로 지구의 심층에서 형성되어 있는 자기장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질학자의 견해도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왜 이런 괴담같은 이야기를 하는가하면 지구에대한 종말론적인 위기의 징표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징표들이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들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구체적인 연구 결과들과 그에따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징표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지금의 전 지구적 상황이 마치 버림받은 자녀와 같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권면을 합니다.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야단을 치고, 벌을 주고, 회초리를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에는 그냥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당분간은 신이 나겠지요, 그러나 스스로 점점 망가져 갑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보면 얼마나 망가지는가 하면,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으려고 하는데, 누가 주려고 하지 않아 그것 마저도 먹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탕자는 돼지 우리에서 인간 이하로 전락하여 짐승만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이 모습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2일 야생동물보호 단체 주관으로 거제에서 동물위령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길에서 죽은 동물을 애도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실제 지리산 지역의 도로에서 한 해에 3,000마리나 되는 많은 동물들이 죽어간다고 합니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서, 그리고 난개발의 욕망은 단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 동물 종을 멸절시키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이 파괴는 다시 인간에게 돌아 와 인간을 파괴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가장 큰 진노는 버려두는 것일 것입니다. 롬1:28절에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셔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하도록 놓아 두셨습니다.”고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미친소 수입하겠다는 정부의 선택으로 인하여 모두들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 미친소가 바로 대표적인 해서는 안되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초식동물에게 육류를 갈아서 만든 사료를 인간의 무뢰함, 방자함을 봅니다. 그냥 마음먹은 대로 합니다.

끝 없는 지구상의 전쟁도 그렇지만 작금의 이 지구전체의 자연생태적 위기 현상은 더 심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의 온갖 불경건함과 불의함에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졌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욕정과 욕망대로 살아갑니다. 내 버려진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버려두신 상태에서 팔장을 끼고 어디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버려둠의 결말이 어떨지 너무 잘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버려져 죄에 붙들린 우리를 구하기 위해 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이에대해 오늘 말씀 1절은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버클레이라는 신학자는 이 평화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표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평화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데 그 올바른 관계가 바로 믿음, 즉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믿음일까요? 믿음에대해 이야기 하자면 저는 늘 눅17:7-10의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7 번 죄를 짓고, 7 번 회개해도 그것을 다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한 번도 용서하기 힘든데 어떻게 7번이나 용서하라는 것인가 합니다. 그런데 7 은 완전 수입니다. 완전한 용서, 배려, 관용,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대뜸 예수님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 한 것입니다. 믿음을 더 달라 하는 것은 지금 믿음이 있는데, 이 믿음 가지고는 7 번은 다소 힘에 부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많으신 주님께서 믿음을 좀 보태주시면 좋지 않겠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바로 이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이 뽕나무 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으면 그렇게 뽕나무가 바다로 날라가 풍덩 하고 빠지게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포인트는 뽕나무가 바다에 풍덩 하고 빠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겨자씨 만한 믿음에 포인트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을 더 달라고 하는데, 믿음은 우리가 보기에 아주 적게 보이는, 어찌 보면 율법을 행하는 인간의 노력, 수고에 비하면 믿음은 어찌 보면 아주 보잘 것 없는 작아 보이는, 그래서 별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그러한 믿음인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은 어떤 믿음 일까요?

바로 오늘 말씀 7-10의 말씀인 것입니다. 양을 치는, 아니면 밭을 가는 종이 늦게 까지 일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이 수고 많이 했으니 어서 식탁에 와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는 주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너는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내 식사 시중을 들고, 그런 다음에 먹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이 주인이 명령한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고마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야박하게, 모질게 하시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강조 하시는지 잘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 이런 자세가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에게 아무런 공로나, 업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역설 아닙니까? 늘 저는 믿음이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 의롭다고 여기는 것이 믿음이라 하였는데, 지금 저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믿음인데, 그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이란 다름 아니라 바로 모든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내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내가 주고 받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믿음이고, 그러니까 관계가 회복되고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 그렇지 이 믿음이 나에게 좀처럼 찿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전적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 할 때는 어느 때 인가하면 내가 나의 것 이라고 하는 것을 잃어버릴 때입니다. 건강, 재산, 사랑하는 사람, 생명, 권력... 이러한 것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나에게 속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이라는 것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나의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행14:9에서 보면 사도 바울과 만난 앉은뱅이도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 속에서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 향한 마음을 바울이 본 것입니다. 그 앉은뱅이의 마음을 바울이 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고칠만한 믿음입니다. 일어나 걸으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앉은뱅이의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의 자리에 우리를 초청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그 은혜의 자리에 우리가 서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때는 우리들을 이 은혜의 자리에 서 있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혹독한 시련, 그리고 인내, 인격의 성숙, 그리고 소망의 자리에 까지 나아가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소망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실망시키는 소망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욕망일 수 있습니다. 성령은 바로 그러한 욕망을 분별케 합니다. 그리고 참 소망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참 소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납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는 소망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다시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참된 소망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어떤 때는 어려움을 주시고, 하도 어려워 살 소망 까지 끊어지는 어려움을 주시지만 그것은 참 소망,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다 기억나게 하십니다. 주시는 은혜를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다 빨아들이게 하십니다. 안에 있는 무질서한 욕망을 다 버리고, 새롭게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참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생명을 내어놓으시면서 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참 사랑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사랑을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의로운 일을 위해, 뜻 있는 일을 위해서도 자기 생명을 내어놓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약할 때, 죄의 욕심으로 가득차 있을 때에 바로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이 죽음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에대한 완전한 믿음을 주님께서는 온 인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이 신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1서 4:18에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형벌과 맞물려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화해함으로 우리는 그동안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버려진 상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는 나를 둘러싼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예수 사랑의 빛이 우리 가운데 오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과 화해 하여 참 평화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하나님과 하나님과 화해하여 참 평화를 얻었으니, 이제 우리는 어두움과 불안, 두려움에 붙들리지 말고, 평화를 만드는, 평화를 확장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자리에 있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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