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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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교회(2008년6월 1일, 성령강림주일후 세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8.06.01 15:15 | 조회 2155


아름다운 교회

2008년6월 1일(성령강림주일후 세번째주일) 행2:43-47

어느 교회의 성도가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님한테 그 지역에 좋은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하면서 말씀도 좋고, 사랑이 넘치고, 성령이 충만하며, 자녀들의 신앙 교육도 잘 하는 그런 교회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렇게 말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교회 있으면 나에게 소개시켜 달라, 나도 그 교회를 다니겠다고 하더랍니다.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신약성경 중 사도바울이 기록한 성경은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적지 않습니다.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등등 그런데 그 편지의 내용을 보노라면 칭찬을 듣는 부분도 있지만, 이럴 수가 있나 할 정도의 내용도 담겨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에베소서는 에베소 교인 중에 거짓말쟁이들과 혈기 부리는 사람, 도둑질하는 사람, 쌍소리나 음담을 지껄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회는 성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 처럼 교회에도 완벽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병들고,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손가락질 당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관용하며, 위로하며 나누며 온전히 세워져가는 교회가 좋은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상적인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있는 속에 주님이 계시는 교회 그것이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 고기교회가 어떻하면 좋겠는가?’라고 물으면 저는 주저없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의 나눔의 풍요,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변화, 생명의 잔치가 넘치는 교회,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어 나누는 교회,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온 지역으로 퍼져, 꽃이 벌과 나비를 부르듯 많은 사람들을 부르는 교회, 죽은 영혼을 살리고 끊어진 발걸음을 돌이키는 교회, 물질 사랑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눈 빛만 보아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예언자적인 역사적 통찰력을 갖고 이 시대를 바라보는 성도요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무엇 보다도 세상의 가치를 내려 놓을 수 있는 주님 다시 오시기를 바라는 지역과 함께하는 종말론 적인 신앙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려면 깊은 기도의 자리에 머물며, 말씀의 능력이 늘 우리 교회와 삶에 자리할 수 있는 교회여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다 들어갔네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항상 긴장감을 가지고 이러한 방향성을 잃지 말고 지속적으로 나아가면 우리의 삶에 생명력으로 넘쳐나며, 하나님의 이름이 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교회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명이나 정의를 내릴 수 있는데, 오늘 말씀 43절 이하에 볼 것 같으면 사도들을 통해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으며, 함께 지내며, 날마다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함께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나누고,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샀고,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했다고 합니다.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호감을 샀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가진 것을 내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나누고, 함께 생활하고, 날마다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찬양하며, 순전하고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며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모습의 바탕은 어디에 있을까요?

37절 이하에 보면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설교하자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의 마음이 찔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했다고 합니다. 또 베드로의 말을 듣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그렇게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씀을 받고, 회개하도록 한 성령의 역사는 어디에서부터 온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교회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구원의 은혜가 중심에 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땅이 아닙니다. 교회는 모임입니다. 모임에는여러 모임이 있습니다. 마을 부녀회, 노인회, 청년회, 동창회,,,그런데 교회는 어떤 모임인가요? 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부름으로 따지면 아브라함이 그랬고, 노아가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이사야가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그러했고, 삭개오가 그랬고, 교회는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다른 회,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불러서 모이는 것입니다. 야구나 조기 축구회나 다 모집 광고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되고, 지자체 단체장이되고, 군인이 되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다 부름에 응해서 그 회의 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떤 부름인가요? 필립 얀시의 ‘기도’라는 책에 어느 창녀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 여자는 코스타리카 여인인데 어머니가 4살 되던 해에 자기를 사창가에 팔아넘겼다는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자기는 몸을 파는 일을 해야 했는데, 수입은 모두 그 어머니에게 넘어갔다고 합니다. 평생 자신이 추하고 더럽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술과 마약에 손을 댔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삶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0대 때에 벌써 두 아이를 낳았지만 어머니가 나처럼 더러운 여자는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고 하여 아이를 뺏어 갔고,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 아이들에게 보내 그나마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몽은 망가질 때로 다 망가져 가고 있었는데, 하루는 어느 손님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야구방망이로 후려치는 바람에 머리뼈가 깨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제 죽어야 겠다는 생각에 몸에 연결해 놓은 튜브를 뜯어내기를 거듭 반복하여, 의사가 다시 와서 연결하는 그런 상황 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마침내 이 여자는 침대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애원했다고 합니다. 정말 몸을 파는 일을 그만하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도하는 중에‘라합 재단을 찿아가라!’는 글자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나라 말이 아니었더랍니다. 그래서 잘 읽을 줄도 몰랐고, 라합이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병원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전화 번호를 알아 그리로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그는 전화를 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정말 살아계시면 누군가 전화를 받게 해 주세요’ 그런데 그 전화를 마를리아나라는 여성이 받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바로 ‘라합 재단’의 대표였다고 합니다. 사실 그 날은 사무실을 여는 날이 아니었지만 서류를 가지러 잠간 들렀다가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이 것 저 것 가릴 처지가 못되어 ‘죽어가고 있어요, 제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어요!’ 하며 간절히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전화를 받은 여자분이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절대 혼자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사창가에서 탈출해서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직접 찿아와서 자기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몸에 붕대를 감은채 였다고 합니다. 집에 도착하여 마릴리아나는 자기를 꼭 껴안으며 ‘여기는 안전하다’고 하면서 라합은 성경에 나오는 기생이며 이스라엘의 영웅인 다윗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그렇게 구원을 받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위해 새로운 직업을 구하고 있고, 엄마가 되는 법을 배우며 라합 재단의 시설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와는 먼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런 극적 구원을 필요로 하는 것이 현 지구촌의 실상입니다. 지금의 그나마 안정적인 환경에 감사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의 참혹한 노예 생활에서 구원 받을 때, 그들을 구해준 것은 바로 집 문설주에 발라진 양의 피였습니다. 바로가 거듭 하나님의 말을 거역하자 마지막으로 첫 번째 태어난 모든 것이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죽음의 재앙 속에서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스라엘을 위해 대신 죽은 양의 희생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권세를 가진 죽음의 힘, 어두움의 힘이 이세상을 지배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기는 죄의 힘 앞에 참으로 나는 비참한 존재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로 부름 받은 사람들의 회(會)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중요하게 들어오는 내용은 그 모인 사람들의 모임, 나눔, 함께함입니다. 앞에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의 나눔의 풍요로움이 있는 교회라 했습니다. 이 기적은 너무나 놀라와 4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고, 또 예수님 하면 사람들이 이 5천명이 먹은 이 기적만을 생각하여 예수를 왕으로 모시려 하여 예수님이 사람들을 피하였고, 얼마동안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나면 그 생각만 떠올리는 그러한 큰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을 볼 것 같으면 제가 말할 때 5병2어의 풍요로운 나눔이 아니라, 5병2어의 나눔의 풍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적은 큰 것을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라, 작은 것, 정말 하찮은 것을 나누었는데, 글쎄 남자만 5천명이 먹고 12광주리나 남은 큰 기적이었습니다. 한 어린 아이의 나눔이었습니다. 지역의 대형 할인점에 가면 상품의 넘침은 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나눔은 없습니다. 돈도 있고, 물건도 풍성하지만 나눔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가 이렇게 시장화 해 갑니다. 그것도 전 세계가 큰 자본을 바탕으로 한 시장 구조로 향하고 있고, 이 나라도 그것에 발 맞추어 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본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눔의 본질은 작은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작은 것을 나누는데 5천의 풍요로움이 있어 두고 두고 기억이 됩니다. 이 나눔에는 마음이 같이 따라갑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한 마음’, ‘순전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나눔은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을 매개로 해서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교회는 도를 닦는 모임이 아닙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어린 아이 노는 것 같이 유치해 보입니다. 사상이나 철학도 빈곤해 보입니다. 그러나 만남과 모임과 함께함의 놀라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어떤 철학과, 사상, 명상을 넘어서는 놀라운 신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이 모여야 합니다. 자꾸 만나야 합니다. 어떤 분은 종종 집에서 성경보고 믿겠다고 하는 사람을 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몰라서 하는것입니다. 영적 질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에 한 청년이 있었는데, 잘 나오든 교회를 등한시하였습니다. 예배드리는것도 유치해 보이고, 그래서 모임에 잘 빠졌습니다. 혼자서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느해 겨울 저녁, 목사님은 그 고집센 청년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두 사람은 벽난로 앞에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나 교회 출석 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목사님이 벽난로 속에 타고 있던 석탄 덩어리 하나를 꺼내어 난로 밖에 따로 내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석탄은 이내 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벽난로 속에 있는 석탄은 여전히 붉은 빛을 내며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청년은 그제야 깨닫고 "목사님, 이번주일 부터는 교회에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꺼내놓은 석탄은 금새 꺼지지만 난로 속에 있는 석탄은 난로라는 보호막과 주위의 불씨들로 인해 계속해서 타오를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아무리 좋은 신앙인이라 할 지라도 꺼내놓은 석탄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과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는 더욱이나 이 시대를 돈의 가치가 아니라 신앙으로 살아내려면 나누어야 합니다. 혼자 있으면, 그저 자기 있는 것 자기 혼자 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감동도, 놀라움도 없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그저 자기 종교생활, 자기연민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이면 놀라운 일이 생겨나기 시작니다. 나누기 때문입니다. 비록 작아도 나눌 때 내가 없는 것들이 넘처나기 시작합니다.

최근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매일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 모인 사람들을 위해 어떤 택시 기사 분이 김밥 500개를 내어 놓았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촛와 종이컵, 어떤 분은 생수를 ..등등 그렇게 나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마이뉴스에도 천원, 2천원씩 기브한 금액이 7천만원을 넘겼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한가지 이야기를 하고 마치겠습니다. 스탈린 시대의 한 의사가 있었는데, 스탈린을 모독했다는 죄로 강제수용소에 갖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역할은 죄수들이 병원에서 죽지않고 일터에서 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까 병원에 찿아오는 죄수들을 웬만하면 모두 건강하다는 판정을 내려 모두 일터에 내 보내는 것이 그의 임무였습니다. 그러니 그의 치료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점차 의사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으로 힘들어하며, 스스로 인간성이 파괴되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한 동료 죄수에게 전도를 받았습니다. 그는 절망의 바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죄를 고백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그 수용소 안에 지하교회 공동체가 있어 그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날부터 자신이 복음의 빚진 자임을 깨닫고 환자들을 정성을 다해 치료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수인들을 몹시도 괴롭히던 간수 하나가 의무실에 왔는데 순간적으로 그는 약물주사로 그를 죽일까 하는 유혹을 받지만 이내 기도한 후 마음을 돌이키고 그를 살립니다. 그는 몇번씩 그가 의료품을 낭비하고 환자들에 관대하다는 경고를 받습니다. 다시 한번 죽을 사람을 살리면 그가 죽을 것이라고 통고를 받습니다. 한 번은 장암에 걸린 남자를 만나 그를 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 한번 수용소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를 살립니다. 그의 소생이 확실해진 어느날 치료받던 환자가 이렇게 하면 당신의 생명이 위험한데 왜 이런일을 하느냐고 묻자 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요. 당신과 나를 살리기 위해 이미 죽으신 분이 있으니까요”
“그가 누구냐”고 묻는 환자의 귀에 “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속삭입니다. 이 사람을 살린 것이 알려지면서 이 의사는 공개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던 그 순간 그에게 살림을 받은 환자는 의사가 전해준 복음의 소식을 상기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드리면서 흐느끼며 고백합니다.
“이제는 내 차례입니다. 이제는 내가 그 사랑을 그 생명을 전하겠습니다.” 그의 이름이 알렉산더 솔제니친(노벨상 수상작가요 우리 시대의 예언자적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교회는 이 구원의 감격의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앉은뱅이에게 사도 베드로는 금과은은 내게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 이름 외에 있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빌리는 것입니다. 자꾸 모여 내게 있는 것 함께 나누는 모임, 특히 내가 값없이 받은 그 은혜를 감사하게 나눌 때 그 교회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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