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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으며 자라는 자녀(2008년5월 4일, 어린이주일)

하늘기차 | 2008.05.04 16:21 | 조회 2114


사랑받으며 자라는 자녀

2008년5월 4일(어린이주일) 눅2:41-52

성서에는 예수님의 어릴적 이야기가 아주 적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과 관련해서 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유대인들의 의식에 따라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태어나서 8일이 되자 아기 예수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거룩하게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마치 그것은 요즈음의 유아 세례와 같은 의미입니다. 신앙의 부부가 하나님이 주신 아이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의식입니다.

창17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아직 이삭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 다시 한 번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가정의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합니다. 아직 이삭이 태어나지 않은 때에 이스마엘은 13살 때에 할례를 받습니다. 이렇게 구별의식은 이스라엘의 삶에 이어서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또한 모세는 미디안 광야의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하라는 명을 듣고 이집트를 향할 때에 길을 가던 중 출4:24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합니다. 깜짝 놀란 모세의 부인 십보라가 칼을 가지고 아들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죽게된 것은 바로 아들의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어야 할 정도로 그렇게 준엄한가 할지 모르겠는데, 이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에 아브라함에게 명한 언약인데, 그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베풀라 하면서 무어라 하는가 하면 “ 이것은 너와 네 뒤에 자손과 세우는 나의 언약이요, 모두가 지켜야할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할례의 언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그 사람은 나의 백성에게서 끊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죽게될 지경에 이른 것은 아마도 모세가 하나님과 미디안 광야에서 만나 얼떨결에 이집트로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바로 앞에 서야할 스스로도 경황이 없을 때여서 아마도 모세가 자녀에게 마땅히 베풀었어야할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아내 십보라가 급히 칼을 들고 아들의 할례를 행한 것을 보면 이방인이었던 아내 십보라가 하나님의 언약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가 남편이 죽게될 지경에 이르러서야 할례의 중요성을 깨닫고 황급히 아들의 할례를 행하여 그 할례의 표피를 남편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피 남편’이라 한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비록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억압에서 구하라 하는 하나님의 큰 뜻을 앞에 두고 있더라도 이런 하나님과의 언약이 비록 작게 보일지라도 소홀히 넘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40일 이 되어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아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을 행합니다. 이 의식은 출애굽기 13장에서 언급되는 의식인데 처음 태어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이집트의 처음 태어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치실 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정에서는 처음 난 것이 죽음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도착하자 이스라엘의 생명, 이스라엘의 삶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지를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해 처음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을 드렸는데, 유대인 남자아이를 위해서는 대신 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그리고 비둘기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가정은 비둘기를 2 마리 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양 대신 비둘기를 바칠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인데 그래서 예수님의 가족은 비둘기 한 마리는 번제물로, 다른 비둘기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두 마리 비둘기를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드렸다고 합니다. 번제물은 글자 그대로 불살라 드린다는 것입니다. 번제를 드릴 때에는 양이면 양 그 가축의 모든 것을 전부 불태워 하나님께 드립니다. 예를들어 화목제를 드릴 때에는 일부는 번제로 드리고 일부는 제사드리는 사람과 제사장이 그 남은 부분을 나누어 가졌는데, 번제는 똥이나 오물만 버리고 내장이고, 기름기고 모두를 다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번제는 헌신의 제사인데, 그래서 이 제사는 의무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원제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께 기꺼이 드리고 싶을 때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드린다는 것입니다. 제물이 번제단에서 타오를 때 그 하늘로 올라가는 향을 통해 자신의 헌신이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속죄제물은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 한 것을 용서받는 제사입니다. 자기를 대신해서 송아지이든 양이든 자신이 가지고 온 가축의 머리에 손을 얹은 다음에 그 가축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그리고 그 제물을 번제단에 태워 하나님께 죄용서를 구하는 의식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아이가 태어나 8일 째 되는 날, 그리고 40일이 되는 날에 그 아이를 위한 의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구약의 율법 의식이 다 지나갔는데 목사님이 왜 이렇게 의식을 이야기 하는가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즈음의 자녀들을 키우는 가정 마다, 느끼는 것은 아이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특히 성도들의 가정에서 조차도 정말 아이에게 주어야 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특히 공교육이 그 본래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게 되니 부모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제도권 교육에서 못해주는 것을 자녀에게 해 주려고 애를 씁니다. 최근에 들어 익숙해 진 것 중에 하나가 체험학습입니다. 과학체험, 생태체험, 스포츠, 만들기,,, 얼마나 많은 체험 프로그램이 생겨났는지 모릅니다. 또 아이들을 위해 대안학교가 이 곳 저 곳에서 세워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아이들에대한 관심을 가지고 여러가지 일들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신앙교육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대해 짧게 기록하고 있지만 그 핵심에대해서는 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눅2:40에 보면
“아기는 자라며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찼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또 52절에 보면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단지 몸이 튼튼해지고, 지식이나 지혜가 자랐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어떻게 자녀들을 키워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짧게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몸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좋은 음식, 영양제, 그리고 스포츠 클럽에 열심히 다니게 합니다. 아이들의 지식 습득을 위해 학원을 보냅니다. 그런데 자녀들의 신앙 훈련을 위해서는 무관심으로 흐릅니다. 엄마 나 오늘 교회 쉴래 그러면 그래 그럼 그렇게 해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엄마 오늘 나 하루 학원 쉴래”하면 엄마가 거품을 뭅니다.

예수의 어머니와 우리들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유대인 남성은 12살이되면 율법의 아들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2살이 되어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첫 예루살렘 나들이에 무척이나 고무되었을 것입니다. 성전의 웅장함과 화려함, 성전에서 드려지는 의식,기도, 예배, 제사등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흥분시켰을 것입니다.

절기를 마치고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갈 때는 노인들,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은 먼저 출발을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걸음이 늦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도록,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에는 늦게 출발한 남자들과 합류할 수 있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아버지 요셉은 소년 예수가 어머니와 함께 있을거라고 생각을 했고, 어머니 마리아는 큰 아들 예수가 당연히 아버지와 함께 내려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예수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급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를 찿았습니다. 유월절 절기에는 예루살렘 공의회가 일반 사람들과 성전에서 만나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하여 들을 수 있게 신앙과 신학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발견한 것입니다. 예수는 그 토론을 열심히 경청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랍비들에게 묻고 답하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의 그러한 슬기로운 모습에 모두 놀랐다고 합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은 그렇게 그 토론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예수를 본 것입니다.

놀란 마리아는 예수에게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찿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부모에게“어찌하여 나를 찿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였습니까?”하고 반문을 합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아들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시할 것은 예수가 자라면서 자의식이 싹 텃을 텐데, 유월절 절기의 종교적인 집회의 열기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독특한 자기 인식을 이 날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날 예수는 ‘아버지’라는 말을 육신의 아버지 요셉에게 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불경이요, 신성모독의 발언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부모도 그렇고 거기에 있던 사람들도 예수가 한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를 못 알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가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그래서 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까지 예수가 어디 인도에 가서 도를 닦는 것을 배웠다는 둥, 히말아야의 요기에게 명상을 배웠다는 둥, 뜬금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오늘 말씀 2:51의 말씀은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에 돌아와서, 부모에게 순종하면
서 지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고
합니다.

이전에 구역별로 이야기 성경공부를 하던 중에 누가 복음을 같이 읽은 적이 있는데 이 본문을 가지고 이야기 하던 중에 바로 그러한 질문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는 그 때까지 무엇을 했을까? 여러 이야기가 나왔는데, 지금도 그 때 이야기가 생생합니다. 그 때 김영순 장로님이 무어라 했냐하면, 장로님은 기억 못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 예수님이 그 먼 곳에 도 닦으러 갈 여유가 어디 있었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남으로서 목수인 아버지 일을 도우면서 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눈코뜰새 없이 바뻤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예수는 틈틈이 마을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갈릴리 바닷가를 거닐며 하나님 나라와 아버지 하나님과 늘 교제하였을 것입니다. 로마의 폭정, 꼭두각시 정권인 헤롯왕의 정치, 그리고 여러 독립투쟁 단체들, ‘땅의 사람들’이라는 정말 처참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 쿰란같은 여러 공동체들, 예루살렘 성전과 율법과 제사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 기득권자들 등 많은 것들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코 교만하거나,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를 낮추어 부모를 돕고, 동생들을 돌보며 마땅히 누려야 할, 그리고 마땅히 지켜아 할 자기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아마 말씀 지키는 삶을 살려고 치열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 마지막 절을 보면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자녀에게 많은 것들을 주려고 합니다. 정말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되 돌아 보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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