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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서 죽겠습니다(2009년 3월15일, 사순절세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9.03.15 16:47 | 조회 1943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2009년 3월15일(사순절세번째주일) 욘4:9-11

오늘은 사순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주일을 뺀 40일입니다. 이 기간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바라보는 기간인데, 그러면 이 사순절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왜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럴까요?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 나라, 이름을 바라 보라는 것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이 바로 나의 뜻, 세상 나라의 가치, 나의 감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는 날들이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그렇게 보내어지는 기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 적절하게 이 번 사순절 기간 첫 날 재의 수요일 부터 요나서를 함께 읽었고, 지난 주에 다 읽었습니다.

요나는 배를 타고 니느웨로 가지 않고 스페인으로 향합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라 했지만 요나는 스페인으로 갔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요나에대해 ‘주님의 낯을 피하’였다고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죄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싫었습니다.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의 적대국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 못 마땅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스페인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하는 예언자가 폐쇄적인 민족주의에 빠져 하나님의 뜻을 져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계의 모든 사람을 구원코자 하십니다. 요나가 탄 배가 스페인으로 향하여 출항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큰 폭풍으로 몰아치십니다. 배가 깨져 침몰할 것 같으니까 웬만한 배의 물건들은 전부 버립니다. 배 안이 온통 아수라장입니다. 그 때에 요나는 배 밑에 내려가 누워 깊이 잠이 든 상태였습니다. 온 배가 난리 법석인데도 요나는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그 때 바삐 움직이던 선장이 배 밑에서 깊은 잠에 빠진 요나를 발견합니다.

요나의 깊은 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피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잠들었다는 것은 영적 죽음을 무감각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살아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립니다. 선장이 잠든 요나를 깨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깨우십니다. 폭풍이 심하면 심할 수록, 환란이 심하면 심할수록, 삶이 혼란스러우면, 삶의 목적이 요원하면 할수록 우리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롬13:11에서 사도 바울은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살전5:6에서도 거듭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면서, 정신을 차립시다. 잠자는 사람들은 밤에 자고, 술에 취하는 사람들도 밤에 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28:7은
“유다 사람이 포도주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독한 술에 취하여 휘청거린다. 제사장과 예언자가 독한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포도주 항아리에 빠졌다. 독한 술에 취하여 휘청거리니, 환상을 제대로 못 보며, 판결을 올바로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깨우십니다. 일어나라 언제까지 잠만 자고 있을 것인가!? 잠자는 자를 지금 깨우십니다. 나에게 아니면 나라와 민족, 또는 한 가족에게 어려움이 닥치고 환란이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적 잠에서 우리를 깨우시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깨우시기 위해 폭풍을 일으키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나에게 사람들이 묻습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어디서 오는 길이요?, 어느 나라 사람이요? 어떤 백성이요? 하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잠에서 깬 우리들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 여러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세속 가치에 목 메인 세상 나라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인가? 그 때 요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대답을 합니다. 욘1:9입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그분을 섬기는 사람이오” 그렇습니다. 요나는 자기가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자기 정체를 분명히 밝히는 것을 보고 아! 이 사람은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잠에서 깨어났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은 누구인가요? 교우 여러분 아무리 세상이 혼탁하더라도, 또 아무리 세상이 요동친다 하더라도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창조자요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자기 정체를 밝히고는 이 풍랑이 자기 때문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오늘 이 나라에 불어 닥치는 풍랑은 누구 때문일까요? 전 지구적인 풍랑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아니 우리 가족의 풍랑은 누구에게서 부터인가요?

이 사순절은 바로 그렇게 자기를 돌아보는 기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시 자신을 내어 놓고 지금의 나의 삶을 하나님께 묻는 기간인 것입니다. 요나는 이 폭풍이 자기 때문이라 하며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 합니다.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 질 것이라 합니다. 요나는 죽기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요나는 바다 속에 던져집니다. 그런데 17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큰 물고기를 준비하여 요나를 삼키게 합니다. 성경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말도 안되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요나가 큰 물고기 뱃 속에 삼키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요나는 깊은 죽음의 자리에까지 내려 갔다 온 것입니다.

2장에서 요나는 큰 물고기 뱃 속에서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요나는 물이 자기 영혼까지 둘렀다고 합니다. 땅 속 멧부리까지 내려갔다고 합니다. 땅이 빗장을 질러 자기를 영영 가두어 두려 했다고 합니다. 요나는 죽음을, 지옥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 곳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고기가 자기를 뱉어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자꾸 기적을 보여달라고 하자 이제는 요나의 기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왜 요나의 기적일까요? 요나의 큰 물고기 뱃 속의 사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 사흘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나를 큰 물고기 뱃 속에서 건지어 내었듯이,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죽음에서 살리어 부활케 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어느 조직 깡패가 예수를 믿게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옛 친구들이 찿아와 술과 폭력, 도박을 권합니다. 이제 세례를 받는 날이 다가오는데 정말 이전의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이 사람은 한가지 꽤를 냈습니다. 세례를 받은 다음 날자로 부고장을 돌린 것입니다. 이 아무개의 장례를 치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와 가족들은 멀정한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니 난리가 났습니다.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문상을 하러 모여들었습니다. 빈소에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환히 웃는 친구의 사진 앞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하며 안타까워 하며 조문을 합니다.

그런데 장례를 다 마치고 나거 그 친구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습니다. 이전의 나는 죽었다고 분명히 못을 박드라는 것입니다. 늘 술과 폭력과 도박에 쩌들었던 그 모습은 이제 죽고 이제는 주님 만이 나의 주인으로 내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 모시고 산다고 못을 박아 버린 것입니다. 요나의 기적은 이렇게 죽지 않고는 다시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요나는 그렇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 명하십니다. 3:2에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고 합니다. 1;3에서는 낯을 피하여 스페인으로 도망가려고, 길을 떠났다고 하는데 3:2에서는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나 니느웨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설마했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극악 무도한 잔인하고 포악한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듣고 왕으로부터 짐승에 이르기 까지 하나도 빠짐이 없이 모두 하나님께 나아와 무릎을 꿇고 회개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니느웨 사람들이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았다고 합니다. 잿더미에 앉았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들이 타고 남은 먼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 타 없어진 아무 것도 느끼거나 의욕을 가지고 무엇을 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허무한 재, 인생의 허무, 죽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베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베옷은 통상 장례 때에 입는 까끌 까끌한 입기 편치 않은 옷입니다. 비단은 부드럽고 편하지만 베옷은 편히 누울 수 있는 옷이 아닙니다. 죽은 자의 장례를 치르며 입는 죽은 의 옷입니다.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을 끊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죄를 고백하며 회개를 하였습니다.

사순절 기간은 우리가 죽음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하나님께 나아와 요나 처럼, 주님 처럼 죽음 앞에 죽을 수 밖에 없음을 겸허히 고백하며 ‘나는 죽음입니다’하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백성임을 바라보는 기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화가 머리 꼭데기 까지 났습니다. 4장에 보면 하나님은 그러한 요나에게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하고 책망하셨습니다. 두 번이나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적대국의 수도인 니느웨가 잘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회개를 선포한 니느웨가 어떻게 되는가 보기 위하여 성읍의 동쪽으로 빠져 나가 그 곳에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았습니다. 그 곳에 하나님은 박 넝쿨을 하나 마련하여 자라게 하셔서 초막에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요나는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동이 트면서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벌레를 한 마리 마련하여서 그 잘 자란 박넝쿨을 다 갉아먹게 하였습니다. 박 넝쿨은 이내 시들어버렸고, 그리고는 해가 높이 떠올랐는데, 이 번에는 지중해로부터 뜨거운 바람을 불어 오게 하셨읍니다. 지중해로부터 사막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매우 뜨겁고 건조한 열풍으로 일사병을 유발하는 매우 무서운 바람으로서 모든 농작물을 다 태워 버릴 정도의 뜨거운 바람이라고 합니다. 이 바람이 요나가 있는 곳에 들이 닥쳤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기력을 잃고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하나님께 죽기를 자청합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왜 화를 내느냐는 것입니다.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요나가 대답합니다. ‘옳다뿐이겠습니까?’하면서 자기는 화가 나서 죽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화가나면 죽습니다. 화는 자기외에는 없다는 것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깊은 잠에 빠진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역시 하나님 떠난 모습입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기 직전에도 하나님은 카인에게 왜 화가 났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카인은 하나님께 대답하지 않고 얼굴이 붉어져 하나님에게서 떠나갔습니다. 왜 요나가 화가 났습니까? 왜 요나가 깊은 잠에 빠졌습니까? 욘4:9은 요나가 어떠한지 분명히 말합니다. “옳다뿐이겠습니까? 화가 나서 죽겠다”는 것입니다.

요나서의 중심 내용은 바로 자기 의로 가득차 있는 인간의 자기의의 공허함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화가 잔뜩 나 있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부드럽게 말씀하십니다. 10,11절입니다.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 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그리고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하나님이 박넝쿨을 준비하시고, 벌레를 , 동풍을 그리고 앞 전에 풍랑과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깨우쳐 주시려 하지만 요나는 자기의 의로움, 자기 이기심에 붙들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얄팍한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편협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몰라 봅니다. 요나의 행태는 니느웨 성 동쪽으로 빠져나가 초막을 짓는 모습에서 극에 달합니다. 자기가 하는 행동을 모릅니다.

민족을 위하는 일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마치 발가락의 때 만도 못한 자기 의인 것입니다. 요나는 마음이 온통 이기심으로 타올라 개인의 생각과 감정에 붙들려 하나님에게 거부하며, 저항하며, 분노합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말했듯이 화는 죽음입니다.

교우여러분!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 죽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이 사순절이 이 전 과 똑같은 날들로 체워지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살며 죽음이 우리 곁에 어떻게 다가와 우리와 함께 있는지 모르며 사니 우리가 죽음과 벗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벗어나 생명이신 하나님 앞에 선다면 우리를 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보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사순절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 분노를 접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지를 바라보는 기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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