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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서 가시는 생명의 삶 Ⅴ(2009년 6월14일, 성령강림후두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9.06.14 15:53 | 조회 2232


하나님 앞서 가시는 생명의 삶 Ⅴ

2009년 6월14일(성령강림후두번째주일) 시16:1-11

그리이스 신화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인간과 신이 서로 결혼도 하고, 그리고 또 인간이 끝없이 신이 되기를 구하고 신에게 도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신이 되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하며 동행하는 것에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에 그만 넘어가 그 존엄성을 잃고 추락을 합니다. 끝 없는 욕망의 결론은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그래서 결국 인간 이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함께 읽고 있는 시16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싸우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함께하는 것에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나되는 것에대해 이야기 합니다. 시16은 바로 하나님과 하나됨에서 오는 그 순전한 기쁨, 즐거움에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2절에서 “주님을 떠나서는 행복을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통해서 이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하나님과 하나되었는가 하면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여간 시16편 기자는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기쁨과 즐거움을 주십니다. 그런데 9절에서 기쁨으로 넘치는 자에게 시험이 온다는 것입니다. 환난이 옵니다. 무엇보다도 10,11절에서 죽음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사실 지난 주로 이 본문을 끝내려고 했는데, 본문을 읽는 중에 죽음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아! 시편 기자는 이 죽음을 어떻게 감당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오늘 10절 말씀에 죽음의 세력이 나의 생명을 삼키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 주님의 거룩한 백성을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얼마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였습니다. 스스로 생명을 내 놓으셨습니다. 자살을 금기시하는 것은 어느 종교나 사회에서나 다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스스로 결정한 사람의 그 고통, 아픔,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에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에 느꼈을 그 격렬한 충동, 더 구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있어서는 그 죽음의 과정 속에서 벌어진 폭력을 생각해 보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회한이 있습니다. 요즈음 같은 나라 분위기에서는 고 노 대통령의 삶의 철학이나, 정치 철학에대한 연민이 이 분의 죽음에대한 애도를 더 간절하게 드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어떤 경우 어처구니 없는 죽음도 있습니다. 지난 번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의 대표인 정명순님의 딸의 죽음은 얼마나 원통한 죽음인가요? 또 서강대 영문학교수인 장명희님에게 찿아온 병으로인한 죽음은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또 미쳐 이 세상에 태어나 보지도 못한 죽음도 있습니다. 전쟁에서 꽃 다운 나이에 총알받이로 죽어가는 청춘도 있습니다. 지금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용산의 세입자들도 있습니다.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애쓰다가 안전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다 라고 아주 강력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지혜자나, 어리석은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건강한 자나, 병든 자나 더 나아가 사람이나 짐승이나 죽음 앞에 마찬가지라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죽음 앞에 그저 허무한 존재로 몰락해 버릴 수 밖에 없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기자는 죽음의 세력이 나의 생명을 삼키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명에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경은 생명에대해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생명입니다. 육신으로 태어나는 생명에대해 ‘비오스’라고 합니다. 그러나 ‘조에’라고 하여 영원한 생명에대해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거듭 이 ‘조에’를 말씀합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는데, 바로 이 영생이 바로 자연적인 생명을 넘어서는, 아니면 품고 있는 생명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은 영생이며, 영원한 생명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서 십자가와 부활로 보여주셨습니다.

이 생명은 온 우주에 편만한 하나님의 생명인 것입니다. 나 홀로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 하는 편협한 이기적 생명이 아니라 온 우주에 넘치는 그래서 시편의 기자가 하늘과 땅 해와 달과 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생명인데, 요17:3은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라고 합니다. 요1장에 보면 그 생명의 빛이 이 세상에 오셨는데 오직 사람들이 그 생명의 빛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두움에 붙들린 사람들이 생명의 삶에 등을 돌린 것입니다. 거부한 것입니다.

그 어두움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죽음들, 아니 인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나타난 수 많은 원통하며, 억울하며, 이해할 수 없으며,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 죽음을 바라보며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모두를 죽게 한 바로 그 죽음의 힘입니다. 성경은 이 죽음에대해 폭력적이며, 거짓말하며 살인자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그 죽음을 맞이하신 것입니다. 그 살인과 거짓과 폭력의 죽음이 예수님을 어찌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죄가 자기에게 다가오자 죄의 일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죄의, 죽음의 힘이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죽음이 생명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6장에서 자기를 힘들게 했던 죽음에 대하여 고전15장에서는 죽음의 독침아! 하고 외치며 죽음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폭로합니다. 그러며 승리의 찬가를 부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42-46에서 어떻게 부활을 통해서 자연적인 생명이영원한 생명으로 변화되는지에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
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
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
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
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자연에 속한 것이 먼저요, 그 다음이 신령한 것입니다. ” 그런데 죄와 죽음이 이렇게 자
연적 생명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바로 죽음을 드러내는 죽음을 죽으신 그래서 두려운 것처럼 보였던 죽음의 한계를 드러내신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주님의 죽음에대해 롬6:10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단 한 번만 죽으신 것이요,
그가 지금 살아 계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죽음으로 하여금 죽음의 일을 하게 하고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 아래로 나아갑시다. 주님은 죽음에대해 그냥 그대로 죽으셨습니다. 그러니 죽음이 예수님 앞에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에대해 죽으니,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셨습니다. 죽으신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대하여 살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에대해 살아야 합니다.

이 시16:10,11의 ‘죽음의 세력이 나의 생명을 삼키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사도행전에서 두 번이나 인용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오순절 다락방에서인데 사도 베드로가 성령 강림의 체험을 한 후에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자리에서 이고(행2:27, 28), 또 한 번은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할 때(행13:35)였습니다.

그 중 사도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의 영원한 생명에대해 말씀하면서 롬6:13,14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
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
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은혜 아
래 거하라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죄에대해 죽고 하나님에대하여 사는 일은 은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에 익숙해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혜 있는 것 처럼, 또는 지식이 있는 것 처럼,, 많이 알고 있는 것 처럼 하지만 죽음 앞에 우리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명백하게 보여주신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 만이 우리를 생명으로 나아가게 할 수가 있습니다.

또 이렇게 생명의 말씀을 우리가 들었지만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생명의 새 순을 틔울 수 있을지는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 거듭 우리 처음자리 동산의 대나무와 포도나무가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려 새 순을 틔우고, 열매를 풍성히 맺듯이 우리도 하나님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어 생명의 새 순을 틔우고, 기쁨의 열매를 풍성히 맺자고 하였습니다. 마치 젖땐 아이가 어미 품에 안기듯이 그렇게 주님의 품에 안기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또한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롬8:11-16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그리스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 빚
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
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
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노예의 영을 받은 것
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
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

언젠가 ‘보리 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켄 노치라는 아일랜드 감독의 작품인데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형제들이 독립전쟁에 띠어들어 형제간에 원수가 되고 서로 죽이며 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영상화 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이 바람을 혁명의 바람으로 아니면 분노의 바람으로 나타냈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 보리밭을 감싸며 부는 바람이 마치 성령의 바람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독립이라는 민족의 염원에 한 가족이 휘말리면서, 배반, 갈등, 폭력, 으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아일랜드 국민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 분노 갈등, 두려움 등을 보리 밭에 불어오는 바람이 감싸 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들의 상처를 쓰다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생명의 싻을 틔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아미시라는 신앙 공동체가 있습니다. 전기나 자동차 같은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공동체인데 지난 2006년에 이 곳에서 총기 살인 사건이 일어나 온 미국과 전 세계를 충격 속에 빠뜨렸습니다. 찰스 로버츠라는 사람이 갓 태어난 자기의 딸이 곧 바로 죽음을 당하자 이것은 하나님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여 하나님에게 복수를 한다고 하여 아미시 공동체의 어린 여자 아이를 무려 5명이나 무참히 살해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건이 터진 바로 그 날 저녁에 희생당한 여자 아이들의 가족들이 가해자인 로버츠의 가족을 방문하여 화해와 용서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로버츠의 가족도 피해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서로의 아픔을 감싸고 위로하며 분노와 복수가 아니라 용서를 나누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어떻게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한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랐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마태복음에서 주님이 7곱 번씩 70번을 용서하라는 말씀이야말로 아미시 공동체가 늘 마음에 새기고 실천에 옮기는 말씀이였다는 것입니다.

주시해서 보아야 할 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그 가해자와 그 가족을 용서하고 화해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용서는 하루 아침에 생겨진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는 오랜 신앙 공동체의 삶 속에서 묻어 나온 삶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시16은 바로 깊은 신앙의 뿌리를 내린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엇 보다도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젖뗀 아이 같은 하나님 안에서의 은혜로운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이야기 했던 장영희 교수님이나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의 정명순님의 삶의 모습도 역시 이런 생명의 삶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이렇게 오고 가는 세대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생명을 맛보며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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