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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2010년11월 7일, 성령강림절후스물네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0.11.07 16:11 | 조회 2091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2010년11월 7일(성령강림절후스물네번째주일) 마28:16-20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면 서로 유무상통합니다.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모두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니 자신에게 있는 것도 서로 소통이 되었습니다.순전한 마음으로 모여 기쁨을 나누고,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주고, 능력과 기사가 있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찌 이런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번 주 신문에 ‘기독교사회복지은행 설립 발기인대회’가 G20 서울 정상회의 성공 기원 기도회와 함께 장충 체육관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 마디로 교회가 은행을 설립한다는 것입니다. 8,000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설립을 준비하는 위원회의 한 분이 나와서 말 하는 내용이 <한국 교회의 부동산 가치만 해도 80조원이 되고, 연간 헌금 총액만도 4조8천억원이라며, 기존 은행을 인수하거나 새 은행을 설립하는 방법으로 자본금 1조5000억원 규모의 제1금융권 기독교은행 설립을 추진할 것>이라고 선포했다고 합니다.

예전의 총선 때에는 기독교 당을 세우기도 했는데,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라는 것이 한국의 주류 기독교, 대형 교회들입니다. 그런데 이 번에는 이들이 한기총을 중심으로 은행을 설립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설립의 자본이 교회 부동산과, 헌금입니다. 1년에 헌금이 4조8천억이라고 합니다. 이 돈을 기존 은행에 넣느니, 기독교 은행을 만들어 그 돈을 흡수하여 금융사업, 즉 이자 놀이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금융사업을 하면서 무어라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경제대국으로 만드시고자 작정하고 G20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게 하셨고, 이제 금융계를 통해 여러분께 하나하나 넘겨주시는 역사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한기총의 엄신형 목사가 설교를 했습니다.

헌금도 교회의 부동산도 모두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위해 귀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돈 독이 올라 끝없이 욕심을 냅니다. 기가막힌 발상을 하였습니다. 지금 세계 경제 위기도 결국 금융, 돈 놀이에서 비롯되었고, 결국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고, 그래서 마치 바벨탑 처럼 무너지고 있는 때에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들이 모여 교회의 자산을 가지고 은행을 설립하여 돈 놀이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하였는데,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오늘 한국교회는 자기 좋은 일을 위해 끝 없이 자기 길을 달려 갑니다.

지난 수요일에 함께 나눈 말씀 요5:42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예수님에게 찿아 온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너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고 합니다. 눅16:14에 보면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비웃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들려주고 나서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자 즉각적으로 나온 반응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오늘 이 시대를 여전히 비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돈을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 돈 사랑입니다. 요5:43에서도 보면 “너희는 나를 영접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고 오면 너희는 그를 영접할 것이다.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와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일을 하지만 자기 일을 합니다. 이렇게 교회 까지도 물질 가치, 맘몬에 오염되어 있는 때에 정말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삶, 가치는 참 소중합니다.

얼마전 문탁이라는 인문 사회 가치를 지향하는 모임이 수지에 새로 생겼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도 자주 인문 사회 가치의 중요성을 자주 이야기 했고, 그런 가치를 위한 일들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큰 우상은 사람입니다. 인본주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중심에 반하는 인본주의 말입니다. 휴머니즘이지요, 근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 속에 1,2 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그 때에 과학 문명을 중심으로 하는 인본주의 가치가 최고조로 올랐을 때 였습니다. 결국 허무와 패배주의와 무신론적인 가치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문 사회 가치를 하나님 중심에 반(反)하는 인본주의로 보면 안됩니다. 지금 이 시대의 상황은 마치 예수님이 안식일 논쟁이 극심할 때 ‘안식일의 주인은 인자이며,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한 것 같은 관점에서 인문 사회 가치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최근 기독교계에 있었던 일중에 하나가 또 있는데, 그것은 강남의 봉은사에 어느 찬양 선교단체가 봉은사의 부처가 우상이라 하면서 봉은사 마당을 동려 땅 밟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 땅이 하나님의 거룩한 땅 이니 부처 우상은 망하고 하나님을 위한 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의 기도를 봉은사 곳곳을 돌며 했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를 진멸하고자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행위를 보면서 그 젊은이들이 아마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봅니다. 알면 그렇게 할 수가 없겠지요. 그들을 가르친 선교 단체와 교계의 지도자들이 더 문제가 있고, 최근에 붉어지는 기독교계의 행동들을 보면 이 것이 그들 단체만의 마인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 청년들은 그 들의 행위가 얼마나 폭력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가?’ 라는 것입니다. 폭력에 익숙해 있어, 해방 이후 거듭되는 군사 문화와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 속에 서바이벌 게임에 익숙해 있는 청년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가치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은 커녕, 함께 하는 것 조차도 견딜 수 없어 하는 싹쓸이 개념의 폭력이 그들 청년들 중심에 우상으로 우뚝 솟아 있는 것은 왜 못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관용과 배려의 그리스도의 마음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마치 그것은 사무엘 시대, 엘리야 대제사장 시대에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할 때에 계속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자, 율법궤를 전장터에 모시고 오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요단강을 건너는 여정 속에 늘 앞장 섰던 하나님의 율법궤를 전장터에 모셔 놓고 블레셋과 전쟁을 치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더 참담하게 패했고, 그 거룩한 율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의 정신은 버려 놓고, 껍데기인 율법만을 그 전쟁터에 내어 놓은 것입니다.

작금에 봉은사에서 벌어진 해프닝도 바로 그런 양상을 띱니다. 신앙의 정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 죽어야 산다는 부활의 정신은 없고, 타자에 대한 조금만치의 이해나 배려도 없이, 그들은 타자의 종교를 폭력으로 몰아부쳤습니다. 교만과 무지와 자기 열등의 소치가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전혀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사랑과 나눔의 신앙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자기 좋은 일을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망령되게 행한 것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왜곡된 가치에 몰입했던 것 같고, 문제는 그러한 파렴치함이 교회 안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성서를 바탕으로하는 인문 사회의 가치가 절실한 때입니다. 이런 인문 사회가치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공동체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듣고 하면서 이 시대를 잘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하면, 결국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공동체는 매우 다양합니다. 수도원 같은 신앙 공동체도 있고,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농사 공동체도 있고, 재산을 모두 헌납하고 공동 생산하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동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는 참 활성화 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함께 지역의 사람들과 마음과 뜻을 따뜻하게 나누는 생활, 삶의 공동체가 마음을 편하게 하고 기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포의 성미산 공동체는 오늘 이 시대의 귀한 발자취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저희 교회도 역시 늘 말씀드리지만 공동체 지향적입니다. 지역과 더불어 말입니다. 현 고기 교회의 공간은 앞으로 계속 변화하며 지향해 나갈 공동체를 세워나갈 귀하고도 아름다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터를 가꾸고 지켜 오는데 이제 45년이 되어갑니다. 개발과 변화를 추구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거부하며 이끼낀 돌담과 습지와 소나무 숲과 논과 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간 이렇게 공동체를 지향하는데 있어서 교회가 바라 볼 수 있는 모델은 역시 초대교회입니다.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정신이 오늘 이 시대에도 그대로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세워나가는데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초대교회가 서로 유무상통하며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우선적으로는 종말에대한 기대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령의 역사, 감동입니다. 예루살렘과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조만간에 동시대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으로 하루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완전히 이단 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는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기독교에대한 박해는 점점 심해지는데 다시 오시리라 기대하던 예수님은 다시 오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과 동행하며 함께 먹고 마셨던 제자들은 이제 나이를 먹어 점차 순교와 자연적인 죽음을 통해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교회는 종말에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종말은 우리가 오겠거니 생각하는 그 때에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종말은 우리가 생각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 창조의 선한 완성을 이루시기 위해 마련하신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바로 이 마지막 때는 언제 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도 모르신다 하였습니다. 그래도 궁굼하여 묻습니다. 그럼 언제일까요? 종말은 시간의 개념이지만, 또한 믿음의 개념입니다. 사이비 집단 처럼 흰 옷으로 갈아입고 한 곳에 모여 박수치며 들려 올리워 갈 것을 기다리는 그런 종말이 아닙니다. 종말은 주님이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소망하며 이 세상을 종말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오실 때 인간이 쌓아온 모든 가치가 0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무엇이 종말을 살아가는 것인가요? 롬1장 이하에 인류에 죄와 유대인의 죄에대하여 언급되고 있는데, 그 속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 길 간다’는 것입니다. 죄의 모습입니다. 이 번 기독교 은행 설립도 이런 형국입니다. 하나님 뜻과 상관 없이 자기길 갑니다. 예수님은 요5:44에서 이런 사람들에대해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 받으면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구하지”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고 있습니다.

딤후3에 보면 마지막 때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성경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자기 사랑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딤후 3장 내용을 보면 자기 좋은 일을 끝 없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기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사회의 구조가 그렇게 이기적으로 내 몰고 있습니다. 그러니 싸울 수 밖에 없고, 용서하지 못하고 관용이나, 배려, 감사가 없습니다. 롬1:28 이하에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줍니다. 시기, 살의, 분쟁, 적의, 수군거림, 하나님 미워함, 오만함, 불손함, 우매하고, 무정하고, 싸우면 화해를 해야하는데 화해할 줄을 모릅니다. 로마서는 이런 모습을 보며 내 버려졌다고 합니다. 자기 길을 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딤후3:1의 말씀의 첫 마디가 어려워 하며, 즉 힘들어하며, 다시말해 고통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밤 늦게 까지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으며 힘들어 합니다. 고통스러워 합니다. 그런데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먹는 먹거리도 농약과 방부제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그래서 난치병을 유발하여 우리 나라가 암 발생율이 1위 까지 올라 가고 있는데, 그래서 고통스러운데, 그래도 그 길을 그냥 갑니다. 술과 마약도 그렇습니다. 컴퓨터 게임도 그렇습니다. 하구나면 너무 힘든데 그래서 고통스러운데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시대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데, 그래서 고통스러운데 그래도 그 속에서 그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는 나의 존귀함, 타자와의 소통, 진정성, 진지함, 자존감은 찿아 보기 힘들며 회복과 변화의 소망이 없습니다. 버려진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란 바로 그렇게 자기 길 가며 버려져 힘들어 하는 사람들 속에서 부름을 받아 회복과 소망 평화의 삶을 함께 살아 가는 것입니다. 그런 생명과 평화의 가치의 전도사인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바로 마지막 때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고통스러워 하는 때에 버려져 죄의 열매로 고통스러워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돌이켜 선한, 온존한, 기쁨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기름 붇듯이 부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선하고도 온존한 생명과 평화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께서 친히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이 성령은 어떤 분인가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함께 하셨던 바로 그 창조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세상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움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세상을 하나님과 함께 성령님께서 질서와 충만함과 밝음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은 오늘 이 시대에도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세상을 회복시키십니다. 버려져 자기길 가는 사람들과 세상을 회복시키십니다.

이 회복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의 마지막 구절인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말씀입니다. 그 마지막 구절인 20절을 보면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상 끝 날은 어떤 모습일까요? 창1:2의 말씀 처럼 혼돈, 공허, 어두움입니다. 거짓과 진실, 참된 신앙과 불 신앙, 그리고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사랑과 미움, 거짓 평화와 참된 평화, , , 모든 것들이 섞여 혼란스럽습니다. 사람들은 거짓된 즐거움에 공허해 합니다. 그러면서 어두움에 익숙해 갑니다. 이러다가는 정말 SF 영화처럼 밝은 것, 평화로운 것, 기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주님께서 하늘로 들리워 올라가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향하여, 그러니까 교회를 향하여, 그러니까 공동체를 향하여 한상 함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희망입니다. 그래서 감사고, 평화입니다. 이 함께 하는 은혜를 힘입어 생명과 평화의 기쁨을 나누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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