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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나아오자 Ⅳ(2010년10월3일, 성령강림절후열아홉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0.10.03 14:48 | 조회 2040


빛으로 나아오자 Ⅳ

2010년10월3일(성령강림절후열아홉번째주일) 요3:16-21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고,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고, 그리고 니고데모와 대화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고, 종교적인 틀이나 의식, 그러한 발상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니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이야기는 사마리아로 옮겨갑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히브리어로 ‘예배’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섬긴다’는 뜻이 있고, 다른 하나는 ‘일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사는 일과 교회에서 이루어 지는 일이 구별되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worship, service같은 영어에도 ‘경배하다, 섬기다. 나누다’ 라는 뜻이 들어있음을 봅니다.

그렇게 예배에는 수직적인 의미와 수평적인 의미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과 이 세상으로 향해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우리는 이 예배가 이렇게 위와 아래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10계명에대한 말씀 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에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데, 24절에 볼 것 같으면 그 제사의 내용이 2가지인데 바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번제는 헌신과 속죄의 제사입니다. 그래서 희생 제물을 드릴 때에도 드리는 짐승의 가죽 외에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불태워 드립니다. 그 때에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어 단 위에서 불살랐다고 합니다. 이것은 내장은 우리의 내면을 다리는 우리의 외적인 삶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안과 밖을 깨끗이 하여 주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다른 제사는 드린 제물을 나누어 먹기도 하는데, 번제에 사용되는 제물은 생명의 상징인 피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드립니다. 아마 가죽이 제외되는 것은 우리들의 삶의 찌꺼기,껍데기를 다 벗어버리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가지고 들어 온 모든 것, 즉 명예, 부, 권력, 지식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 사모하는 마음으로 깨끗이 다 태워 드리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게 제물을 차려 예배드리고 나서 그 제물로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공동식사를 하면서 허물과 죄를 용서하고 용서받으면서 새롭게 살기를 결단하는 예배입니다. 번제가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귐의 예배라고 한다면, 화목제는 수평적인 예배, 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고 사귀는 예배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의 두 가지 모습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모습을 통해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두 개의 나무 기둥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직으로 된 나무 기둥과 수평으로 된 나무기둥이 교차되어 있는 형틀로서 예수님이 그 형틀에 달리시어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예배가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가는 반면에 한 편으로는 수평으로 한 없이 뻗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부등켜 안는 사랑으로 십자가에 산 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죽은 동물을 잡아서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히10:5의 말씀을 보면 “주님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6절에서도“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합니다.여기서 신령이란 하나님의 영이란 뜻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영에의해서 인도되어야 합니다. 또한 진정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내 모습 있는 그대로, 현재의 모습 그대로 우리의 삶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그런대 내 모습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일까요? 내가 걸치고 있는 옷을 입고서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입고 있는 모든 공과 와 업이 모두 벗겨진 그 진정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10:5 말씀의 뒷 부분을 보면 우리들이 드리는 눈에 보이는 제물을 원치 않으신다고 하면서,
“...그래서 나에게 입히실 몸을 마련하셨습니다.”
라고 합니다.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라고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을 하나님께서 손 수 마련하신 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예물로 드려지는 예배는 이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드려졌습니다.

창22:7에서 아들 이삭이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아버지 아브라함은 “예야,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바로 그렇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산 제물의 예배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섬김과 이웃 사랑의 십자가에서 봅니다. 십자가의 고통,십자가의 순종,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의 소망, 그 모든 영적 예배가 이 십자가에서 다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것이 산 제물이 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그 죽음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는 죽지만, 그 죽음을 통해 아버지의 뜻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제물, 이러한 제사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친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수직적인 예배는 너무 잘 드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평적인 예배, 나눔을 통해 드려지는 예배는 점점 미약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빛으로 나아오자는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어떤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기록한 글인데 어느 날 두 분의 성직자에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분은 우리 나라의 이태석 신부님이시고, 다른 분은 미국의 조엘 오스틴 목사님인데, 이태석 신부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2천년 전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지난 1월에 대장암으로 돌아가셨고, 그래서 그 분의 다큐가 만들어지고 지난 9월에는 일반 영화관에서도 이 분의 다큐가 상영이 되었다고 적지 않은 분들이 이 분의 영상을 영화관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 홈피에도 이 분의 다큐를 또 올려놓았습니다. 한 번 꼭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의 성직자는 바로 미국의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신데, 목사님이 저녁에 이 목사님의 설교 방송을 t.v를 통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일리가 있었지만 혼란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즉 강하게 긍정하고 믿으면 그렇게 이루어지는 힘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메시지에서 위안을 얻고 힘을 얻는다면 비판만 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엘 오스틴이라는 목사님은 지금 꽤 알려진 베스트 셀러의 작가이십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서점에 가면 좌대에 스터디 셀러로 올라 있는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쓰신 목사님이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길을 생각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와, 조엘 오스틴 목사, 두 사람의 삶 모두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 분에게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치료하고 위안하던 예수님의 모습, 다른 한 분에게서는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니, 조엘 오스틴 목사의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비슷했으나 달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듯 했으나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이 없는 메시지였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은 예수님의 모습과 비슷했으나 실상은 예수님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은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은 하고 있지만 자기 자신의 소신이며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긍정하고, 믿으면 성공한다는 메시지는 소중한 것이라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긍정과 믿음의 힘에는 굳이 하나님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고 돌맹이 하나를 갖다 놓고 믿어두 오스틴 목사가 말하는 만큼만 믿으면 많을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성도들이 이태석 신부의 길보다, 오스틴 목사의 길에 더 가까이 다가 서 있어서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오스틴 목사의 길을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합니다. 이 두 성직자의 모습을 보며 '좁은 문'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또 떠올랐습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고 옳은 길은 많은 사람이 가기 힘든 법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도대체 이태석 신부가 어떤 분인가 하고 호기심이 작동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분을 인터넷을 통해 찿아 보았는데, 저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KBS의 다큐로, 그리고 지난 9월에는 영화로도 상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 동영상을 다 보고 교회에 홈피에도 링크시켜 놓았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젊은 나이에 의과대를 졸업하고 이제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길로 갈 수 있었지만, 그 길을 마다하고 신부 수업을 받고 지구상 가장 오지로 주목되는 아프리카의 수단으로 향합니다. 그 분의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라는 책에서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한센인)들의 신비스러운 힘 이
며, 무엇인가 이끌리는 향기가 자기를 이곳으로 데려왔고,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숙여 감사하게 된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워낙 가난하니까 여러 가지 계획을 많이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 같이 있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을 버리지 않고 함께 있어주고 싶다고 합니다.

동영상 중에 신부님이 만든 수단 최초의 브라스 밴드의 막내인 13살 산토 브린지가 신부님의 죽음을 접하고 안타까워하며 자기가 신부님에게 배운 나팔로 애도를 표현하는데, 그 때 화면에 그 소년의 나팔 소리와 함께 신부님과 함께 연습하는 사진이 뜨는데, 신부님이 이 아이에게 어떻게 나팔을 불지 입술을 모으며 밝은 웃음을 머금고 가리키는 모습을 보면, 신부님이 그 곳에서 어떤 사랑을 나누었는지를 금방 알 수 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누군가 자기에게 이렇게 애정을 갖고 지켜보아 준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것이지요. 그 분의 수단 주민들을 향한 섬세한 배려는 그 지역의 난세병 환자들의 문들어진 발들을 일일이 만져가면서 각자의 발에 맞는 신발을 한 사람, 한 사람 칫수를 제어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신발을 주문하여 만들어 오는 것을 통해 알 수가 있었습니다. 밤 늦게 찿아오는 환자에게 한 번도 ‘아니오’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밤에 찿아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멀리서 오랜 여행을 통해 저기에게 힘겹게 찿아 온 환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귀찮아 하거나 한 적이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신부님이 활동하던 수단의 톤즈라는 마을의 주민들이 신부님을 통해 의료, 교육, 물질적인 여러 가지 많은 도움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이 입고 있는 옷 한 벌, 슬립퍼, 그리고 그들이 마시는 우물, 집, 브라스 밴드의 단 복, 악기, , , 어느 하나 신부님의 손 길이 가지 않은 것이 없더라구요. 그러니 그 곳 주민들이 신부님을 그렇게 각별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영상의 첫 시작은 취재진이 이태석 신부님이 활동하던 톤즈에 찿아가서 신부님의 병상의 모습, 그리고 살아생전의 모습을 크게 인화한 사진을 나누어 주었고, 잠시 후 브라스 밴드가 그 사진들을 앞에 세우고 거리 행진을 하자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 애도를 하는데, 그 행열이 군 부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그 곳에는 바로 몇 일 전에 정부군과의 총격전이 이틀 동안 벌어져 20여명의 사람들이 죽은 사건이 있어서 일체 주민들이 모이는 것이 허락이 되지 않았는데, 이 날은 특별히 이 애도의 행진을 허락하는 것을 보고 이 신부님의 주민들 사랑이 어떻했는 지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죽 보면서 수단 톤즈의 주민들이 이 신부님을 통해 받은 그 모든 것에대해 그렇게 감사해 한다는 것입니다. 옷, 신발, 의료, 교육, 음악. . .그래서 느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 신발, 등, 모든 것이 누구로부터 왔는가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고, 그래서 정말 나에게 있는 것 하나 하나가 너무나 소중한 것이 아닌가 라는 것입니다. 어디 물질적인 것 뿐인가? 정말 그 것 뿐인가? 주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 사랑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만족해 하지 못하고, 짜증과 미움, 원망으로 우리 삶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번부터 계속 ‘빛으로 나아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기존의 공과나 업적, 또는 종교적 틀이나 행위를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와 더 이상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내 중심에서 진정 하나님 주권, 하나님 중심으로, 그러니까 밭에 감추어 있는 보물의 귀한 것을 알고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사는 사람의 그 기쁜 마음, 감사가 우리의 마음에 넘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영으로, 그러니까 살아있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나요.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자신은 죽고 아버지의 인류 구원의 뜻, 섭리와 경륜이 살아나는 것 같은 그런 아버지의 뜻이 살아나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 기뻐하는 빛으로 나아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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