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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2010년8월29일, 성령강림절후열네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0.08.29 14:30 | 조회 2616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2010년8월29일(성령강림절후열네번째주일) 고후12:7-10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거짓 교사들에 의해서 고린도 교회가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디도를 보내어 그 문제들을 해결한 후에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아직도 자신에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감사의 편지를 보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바로 그러한 정황 속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11:16 이하에서 볼 것 같으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지말라, 그런데 여러분이 만일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이 어리석은 사람의 자랑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시오 하면서, 다른 사람들 못지 않다면서 스스로 자랑을 합니다. 바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 복음의 본질을 조금씩 훼손시키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할례를 받아야 한다느니, 파당을 만들지 않나,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하지 않나, 게다가 바울의 외모를 흠잡으며 인신공격을 하는 거짓 교사들에대해 바울은 울화가 치밀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자기 자신도 그들 거짓 교사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모든 것에 뛰어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죽을 고비에, 돌에 맞고, 감옥에 갖히고, 강도 만나고, 몽둥이로 맞고, 굶주림과 추위 등, 그리고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 임을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11:30에 볼 것 같으면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자기가 한 이야기는 유대인들이 자기를 어리석다고 하며 업신여기니까 자기도 어리석은 모습으로 이야기한 것인데, 그 것을 떠나 내가 여러분에게 정말 자랑할 것은 자신의 약함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함, 자신의 약점은 ‘육체의 가시’인데, 바로 육체적인 질병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서 갈4:10-15에서 볼 것 같으면 자신의 병을 안질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을 볼 때, 치명적인 눈 병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육체적인 병인 것 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 병을 고쳐달라고 바울은 주님께 세 번 이나 간구하였는데,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바울이 깊이 깨달은 것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것 이었습니다.

어려움이나, 답답하고, 속상한 일, 그리고 도저히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부딛쳤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요? 기도해야지요. 어떤 기도일 까요? 받은 은혜에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깊은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은혜 앞에 세상의 모든 일이 은혜인 것입니다. 혹 ‘죽겠다’, 또는 ‘못살겠다 ’고 합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 은혜 안에서 죽을 일이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죽음이 하나님 보다 큰가?’ 라는 것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정보와 지식들이 사람의 마음을 죽음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은혜 입은 자에게 세상에 죽을 일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내 은혜’, ‘내 능력’ 할 때의 ‘내’는 바울이 아니라 예수님을 지칭하는데, 그것은 내가 너에게 줄 은혜를 너에게 모두 다 주었고, 그리고 주님의 능력은 인간의 강한 곳에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약한 곳에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약한 곳에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람의 소리가 커지면 하나님의 소리는 작아집니다. 사람의 권능이 커지면 하나님의 권능은 작아집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하나님께 아뢸 때,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나를 온전케 해 줍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을 가장 힘들고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여러분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약점이 될 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스스로 가장 부끄럽고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나의 연약함, 부족함을 아시며, 오히려 그 부끄러울 것 같은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면 이 은혜란 무엇일까요? 엡2:8은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라고 합니다. 이 말을 풀어보면 우리의 구원은 은혜인데, 그 은혜라는 것이 바로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원의 은혜, 선물을 받을 수 있는가 하면 바로 믿음을 통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믿음의 대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대상인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인데, 그런즉 하나님의 은혜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고후8:9은 예수 그리스도에대해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가난하심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그러니까 본래 풍요로우신 분이셨으나 그 부요함을 버리고 낮아져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부족한 모습으로 우리와 똑 같은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어느 특별한 사람에게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전부 베푸는 것입니다. 마5:45에 보면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촉촉이 젖어들기 위해서는 그 은혜의 비가 나의 마음 밭을 촉촉이 적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믿음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엡2:8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은혜가 선물이라 했는데, 그래서 그 선물을 받으려면 그릇이 필요한데 바로 그 그릇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히11:1은 그 믿음에대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볼 것 같으면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자기에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구했다고 하는데, 그 때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깊이 깨달은 것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이 어떻게 사도 바울 선생님의 입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라는 것들을 지금 볼 수 없지만 지금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가장 힘들어 하는 육체적인 고통이 은혜인 것을 믿음을 통해 본 것입니다. 바로 보이지 않는, 들을 수 없는, 냄새 맡을 수 없는 ‘은혜의 경륜’, 즉 은혜가 이 땅에서 퍼져나가는 일을 믿음은 마치 레이다 처럼 정확히 포착해 냅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울은 자신의 가장 취약한 것이 은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을까요?

일본의 여류 작가 중에 미우라 아야꼬라는 ‘빙점’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가 있습니다. 이 분은 일생을 페결핵, 페렴, 그에따르는 합병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며 병과 싸우며 살았는데, 그는 ‘빛을 향하여’라는 그의 작품 서언에서 욥기 23:20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한글 개역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그는 자신에게 생긴 병이 자신을 정금으로 만들기 위해서 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바라는 모습’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미우라 아야꼬는 ‘나의 길을 오직 여호와께서 아신다’고 합니다. 바로 이렇게 여호와께서 아신다는 것이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바로 이 신앙 고백을 통해 미우라 아야꼬는 자기 몸의 고통과 병을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며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자신을 ‘정금’으로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보에 나온 시는 송명희 시인의 시입니다. 송명희 시인은 태어날 때 의사의 실수로 중증 뇌성마비환자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우유가 없어 쌀가루 끓인 물을 먹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부모님과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의 모든 것이 싫어 반항하던 사춘기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를 왜 이렇게 만드셨나 하면서 자살하려고도 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절망이었고 마치 깨진 질그릇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드디어 주님은 송명희 시인을 만나주셨습니다. 주님을 만나면서 그 동안의 자신의 생각과 표현과 모든 것들이 죄에 붙들린 모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면서 그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에대한 공부를 한 번도 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앞에 시적 영감을 끊임없이 떠오르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열어주소서 내 눈을, 열어주소서 내 귀를
주님 바라 볼 수 있도록,
주님 말씀 들을 수 있도록 열어주소서“라는
시도 이 때 쓴 시라고 합니다. 또한 집을 이사할 수 밖에 없게 되어서 그나마 사귀었던 친구들과 헤어지게 될 때 너무 속상하고 가슴이 아퍼할 때 였는데 그 때에도 시적 영감이 떠 올라 시를 쓰기 시작을 했는데 그 시가 바로 “나”였다고 합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
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
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 시를 쓰면서 스스로 굉장히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항의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못쓰겠어요!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요!”하고 하나님과 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굽히지를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고집에 송명희 시인은 무릎을 꿇고 이 시를 탈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사내용 그대로 하나님은 공평하다는 고백을 스스로 하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우여러분 하나님께서 송명희 시인에게 공평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깨우쳐 주셨지만, 주신 것을 자기 것으로 고백하는 것은 내 몫인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그 은혜를 은혜로 받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송명희 시인은 몸은 불편하지만 항상 당당하고, 기 죽지않고, 특히 유머어 감각이 탁월합니다. 상황이나 환경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 말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그러니 빨리 하나님께 가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내가 사는 날 까지 주님이 주시는 시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 존귀를 드러내며 감사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러니를 이야기 합니다. 역설말입니다. ‘나는 육체적 한계 때문에 고통받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래서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날마다 기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모두 장애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 때에 그렇게 한계가 있게 만들었습니다. 부족하며, 연약하며, 가난한게 본래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망각하고, 모두 힘들어 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서로 돕고 배려하며, 이해하며 살아야합니다. 바로 은혜를 깨닫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한 번은 극동방송에서 송명희 시인의 질병 치료를 제의해 왔다고 합니다. 미국의 전문치료기관인데, 그러나 송명희 시인은
“이대로가 좋아요, 주님이 만드신 이대로 살겠어요”라고 말하며
그 치료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순간 송명희 시인의 아버지는 전기에 감전된듯한 느낌에 몸이 부들부들 떨며 목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대로 주님이 허락하신 몸 그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지만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모르고 사는 우리가 장애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고백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한 이야기입니다. “휠체어에서 보는 나는 힘이 없다. 누군가 뒤에서 밀어 줘야 움직이고 누군가 동행해야 하는 약한 존재다. 그러나 휠체어에서 보는 주님은 언제나 나와 동행하신다. 나의 오른손을 잡아주며 ‘네가 약할수록 나는 더 가까이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지친 환자에게 감사를, 맘이 상한 자에게 위안을, 온갖 장애로 시달리는 자에게 용기를 줍니다. 우리는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 없는 것에 대해 슬퍼합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 현실과 부모 가족을 원망합니다. 문제를 내게서 찾지 않고 남에게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실은 그 모든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은혜아닌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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