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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2012년 2월19일, 산상변모주일)

하늘기차 | 2012.02.19 16:20 | 조회 2502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2012년 2월19일(산상변모주일) 눅9:28-36

예수님의 모습이 변한 사건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야요, 구주로 고백을 한 직후에 일어난 사건인데, 예수님은 그 고백을 기뻐 받으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또한 그렇게 칭찬을 받은 베드로가 그 직후 바로 ‘사탄아 물러가라!’고 예수님께 직격탄을 맞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의 인기가 한창일 때 고백되어진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이 고백 이후 곤두박질을 칩니다. 따르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떠납니다. 왜 떠나게 되었을까요? 당신께서 이제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체포당하여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며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을 선언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와 함께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기도 중에 변화하셨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은 ‘그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변하면서 예수님 앞에 구약의 모세와 엘리야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고, 베드로는 그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그 세 사람을 위해 초막 3을 짓겠다고 합니다. 그 때에 갑자기 구름이 일어 그 3 사람을 덮으며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산을 내려오셨습니다.

다소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베드로의 고백 이후 8일쯤 되었다고 합니다. 8일 전 쯤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주님의 갈릴리로부터 시작된 긴 여정이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을 즈음, 제자들은 예수님의 뜻, 예수님의 방향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방해하고 있는 모습을 복음서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변화 사건 앞에서는 예수님의 고난에대한 발언을 거부하며 말리는 장면이나, 산 아래로 내려와서 귀신들린 아이 앞에서 쩔쩔 매는 모습이나, 제자들 사이에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지 다투는 내용들은 지금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하여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고 난 후부터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에대해 말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 감추었던 비밀, 즉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이 제자들에의해서 드러난 것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예수님 사역의 분기점,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이사랴 빌립보는 예수님의 공생애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오늘 말씀에 여드레 쯤 되었다는 말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고백한 메시야에대한 상을 예수님은 바로 잡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예수님은 나귀를 타지 못하고 백마를 타고 점령군처럼 예루살렘으로 개선행진하는 식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12제자에게 포위된 형국입니다. 그 12제자가 바라보는 예수님의 모습은 유대인들이 바라는 메시야, 다윗왕권을 회복하는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그러한 메시야 상이었습니다. 또 자신들의 이기적 욕망으로 덧 입혀진 메시야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이 있은 직 후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메시야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드러내고자하는 메시야 상을 제자들에게 선언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발끈했고, 그러한 제자들에게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스스로 고난과 핍박, 죽음, 십자가에 달리는 메시야에대해 말씀하신지 한 주 쯤 지나 예수님은 변화하신 것입니다.

사실 누가 복음의 말씀에 나오는 변화라는 단어는 단순히 겉 모습의 변화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얼굴 모습이 변’했다고 하는데, 표현이 좀 부족한듯 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그 모습이 변해 얼굴이 해 같이 빛났다고 합니다. 생태적 변화입니다. 마치 누에가 나비가 되듯이, 벼 이삭이 벼가 되듯이 말입니다.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변화된 모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무덤으로 달려간 여인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오늘 말씀을 통해 세 제자들이 목격한 예수님의 변화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황홀한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왜 변화산에 올라가셨나요? 학자들은 이 산을 헤르몬산으로 추정합니다. 3,000m가 넘는 늘 만년설이 있는 웅장하고도 수려한 풍광이 있는 산입니다. 예수님은 이적과 기사, 병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생명의 말씀을 통해 유대에 이제 널리 알려졌습니다. 사람에게 다윗의 자손으로서, 메시야로 점차 인식되어가던 때였습니다. 바로 그 때에 주님은 그 모든 인간 중심적인 메시야상, 유대적 메시야 상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변하신 때는 바로 그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메시야 관이 최고조로 달아 올라 있을 때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에대해 말씀하신 후에 그 십자가의 고난이 정녕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확증하기 위해 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8일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몰 이해 속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라고 고백한 시기였습니다. 바로 그 즈음에 예수님은 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때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합니다. 몰라보게 변하셨습니다.

어떻게 변할 수 있었을까요? 헤르몬산에 오르기 8일 전 예수님은 베드로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책망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점을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은 바로 아버지의 뜻이 어디있는지 묻고 확인하기 위해 헤르몬산에 머문 것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생각에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동안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이래 거듭해서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였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베드로에의해 당신이 메시야라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하신 나는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뜻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숨을 고르시기 위해, 그리고 온갖 오해와 편견과 거짓. . . 인간적인 연민과 생각들을 멈추게 하시기 위해 기도하려고 헤르몬 산에 오른 것입니다.

29절에 보면 기도 중에 예수님은 변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 앞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늘 말씀에 그 대화의 내용을 짧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누가는 이 대화사건에대해 ‘예수님의 떠나가심’이라고 합니다. 한글개역은 ‘별세’로 되어있는데,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분당 한신교회의 고 이중표 목사님은 평생 이 말씀을 붙잡고 별세신학, 별세 목회를 하셨습니다. 이 말 ‘떠나가심’의 어원인 엑소도스는 단순히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출애굽 사건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노예로 살던 이집트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며, 자유를 위한 십자가의 죽음을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 처음으로 기도하며 거부하셨던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메시야의 껍질을 벗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예루살렘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인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 이기심을 부추기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경제, 정치, 종교의 틀을 뚫고 자유함을 얻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의 길인 것을 모세와 엘리야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높이 들려 그 길이 유일한 길이요, 그 길에 서 있지 않은 모든 것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2:22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밖혔나니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합니다. 별세는 십자가에 못 박힘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심을 뜻합니다. 이 신비, 이 변화에로 오늘 말씀은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이 끝날 것 같고,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등을 돌렸지만, ‘떠나가심’의 신비로움은 그 때 부터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 동안 무엇인가 부여잡고 나름대로 무언가 해 보려고 땀흘리며, 잘 살아보려고 했던 우리의 삶의 틀, 결국 올무가 되어 평생 붙들려 살 수 밖에 없고, 자손에게도 물려줄 수밖에 없는 그 틀을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즉 ‘떠나가심’을 통해 벗어나 자유함, 해방, 평화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변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제자들입니다. 왜 변할 수 없을까요? 32에 보면 잠을 이기지 못하여 졸다가 깨었습니다. 깨어보니 이미 주님은 변하셨고 예수의 영광을 보았다고 합니다. 변화는 못 보고 영광 만 봅니다. 오늘 교회가 영광만을 보는 이유가 이렇게 깨어있지 못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 우리가 변하지 못하는 걸까요? 기도의 중심에 십자가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십자가에대하여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일 곧 그의 떠나가심’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대하여 제자들에게 이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놓고 아버지 하나님께 묻고, 확인하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안중에 없습니다. 그저 자기 생각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황홀한 광경을 목격하고는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예루살렘에 가 있는데, 제자들은 그저 자기가 있는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자기 일 하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습, 변하지 않은 제자들의 모습은 산에서 내려 오자 마자 바로 나타납니다. 귀신들린 아이 앞에 쩔쩔매며 사탄 마귀에게 조롱당하는 모습이나,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누가 기득권을 잡을 까라는 논란에 휩싸입니다.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기도의 중심에 십자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도 예수님은 예수님이 지시는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 하시는데,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 십자가를 보고 엄두가 안나 외면하거나 예수님 십자가 질려고 평생을 소일하다가 별세합니다. 이에대해 오늘 말씀은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기도하는 중에 변하셨습니다. 변하지 않고는 아버지의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양을 치다가 타지않는 떨기나무 불꽃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양을 치는 일을 멈추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집트의 바로에게 나아갑니다. 엘리야도 아합왕때의 거짓예언자들, 우상 숭배자들과의 싸움의 과정 속에서 여왕 이세벨에게 쫓겨 역시 호렙산 동굴에 도착하여,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더 이상 도망 갈 기력도, 살 의욕도 다 잃어버려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할 지경 까지 이르렀을 때에 폭풍과 지진 가운데서 미세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엘리아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다시 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엘리아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가 자기 자신에 몰입하여 자기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자가 7천명이나 남아 있다고 하십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자기 혼자 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이 7천명이나 남아있다고 합니다. 아마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엘리야는 죽을 때 까지 자기 혼자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통상 기가막히는 어려움을 당할 때, 보통 사람들은 자기 혼자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실패, 가정불화, 건강 악화, 친구 떠나고, 돈 떨어지면 이제 남은 것은 자기 혼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 때부터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3 제자는 여전히 자기 관심, 자기 중심에 메여있어 지금 구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무슨 일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을 독려합니다.
“지금 까지 잘 해 오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고비가 남았는데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길을 통해 주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다 이루시는 것이니 그렇게 하십시오” 그런데 제자들은 여기가 좋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주저 앉히려 합니다. 진정 33절 말씀 처럼 베드로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8일 전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때도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에게 놀아나는 자라고 크게 야단을 맞았는데 말입니다. 이럴 즈음에 구름이 에수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를 휘감아, 세 사람은 구름 속에 들어갑니다. 이 광경에 제자들은 두려워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급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욕심, 자기 고집은 끝이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를 모릅니다. 아마도 여기가 좋다고, 이대로가 좋다고 하는 상황을 그대로 놓아두면 베드로가 더 치구 나가서 예수님을 주저 앉힐 것 같으니까 하나님께서 다급히 ‘이는 내 아들’이라 합니다. ‘내가 택한 자’라 합니다. 그러면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아마 베드로는 여전히 이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뒤에 서로 자기가 더 예수님과 더 가깝고, 예수님을 더 잘 보좌해 드렸으니 내가 더 높은 자리에 앉는다고 다툰 것입니다. 변하지 않은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가 없는 모습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십자가 보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변합니다. 그러나 죽고자 하는 자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죽는 길인 줄 뻔히 알면서도 이전에 가던 길을 그대로 갑니다. 주님의 변화는 기도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며 변하지 않는다면 살 수 없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무슨 배짱으로 기도하지 않나요? 기도로 변하여 능력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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