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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를 의지하지 말라 (창조절 일곱째주일, 2016.10.16)

mungge | 2016.10.21 17:22 | 조회 1423

(2016.9.25. 교회 대청소 하는 날)

 

제목: 군마를 의지하지 마라

본문: 이사야 311~3

설교자: 김준표 목사

 

0. 경기노회 어린이 체육대회

어제 경기노회 어린이 체육대회에 축구와 이어달리기에 참가했습니다. 지난주 광고때는 대회에 나갈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결과는 아동부 축구에서 준우승을 해냈습니다. 우리교회 아이들과, 고기초등학교 친구들, 훈련을 이끌어준 안준영 청년과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신 주조양 선생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제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지역의 소중한 가치가 곧 고기교회의 자산이 되고, 고기교회의 소중한 가치가 지역의 자산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계선이 없이 이웃에게 언제나 열려있고,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유지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내는 우리교회가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1. 정치와 종교의 관계

국가나 사회의 운명을 좌우할 민감한 쟁점이 불거졌을 때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질문의 대상은 종교인들이지만, 실은 이 대답만큼은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에게 큰 관심거리입니다. 왜냐하면 종교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에게 종교인들만큼 다루기 힘든 사람들이 없습니다. 종교인들은 일반 국민들과는 달리, 개인의 이익에 매이지 않을뿐더러 개인에게 닥치는 어떤 위협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교분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교회 주류 목사님들이 자주 강조합니다. 종교는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되고, 정치도 종교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정교분리를 강조하는 분들에게 종교는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영적인 일인데, 어떻게 세속적인 정치 따위에 관심을 빼앗길 수 있냐고 펄쩍 뜁니다. 그러면서 당연히 세상권력과 정치는 종교영역에 침범해 들어오지 말라고 분명한 경계선을 긋습니다. 맞는 말입니까?

일제 조선총독부와 20세기 초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에게는 맞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정교분리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직후입니다. 전체 국민의 2%도 안 되었던 당시 기독인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섰고, 독립만세운동 피해의 40%이상을 교회가 감당해야 했습니다. 수많은 기독인들이 투옥되고, 고문 받고, 옥사했습니다. 수많은 교회가 폐쇄되었고 심지어 당시 수원군에 있었던 제암리 교회는 성도들이 학살당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예배당마저 불타버렸습니다.

독립만세운동이 잔인하게 진압 된 후 외국에서 들어온 선교사들은 당황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기독인들을 보호하고, 이들은 은밀하게 도와주던 소수의 선교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잘못 가르쳤구나 하고 탄식했답니다. 그래서 교파와 출신나라를 초월해서 선교사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고, 그 결과를 식민지 조선을 지배하고 수탈하는데 앞장서는 조선총독부와 논의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야합을 합니다. “우리가 조선인들에게 일본 지배를 받아들이고,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도록 가르치겠소. 그러니 우리의 종교 포교활동을 보장해 주시오.” 이게 대한민국의 정교분리의 시작이자 정신입니다.

 

2. One Peace 종교시민평화결사

저는 지난 11일 화요일에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One Peace 종교시민 평화결사에 참여했습니다. 정부가 사드 배치를 성주 외곽 골프장으로 결정하자 원불교가 김천, 성주 주민들과 함께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며 개최한 집회였습니다. 언론을 통해 이미 아시겠지만 새롭게 사드배치 예정지로 정해진 초전면은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송규 종사의 생가터와 구도지가 있는 원불교 성지입니다. 웬만해서는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지 않던 원불교는 국방부 앞에서 매일 같이 평화기도회를 열고 있고, 이 날에는 개신교, 가톨릭, 불교 종교인들과 함께 종교시민평화결사를 연 것입니다.

이 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연대 발언이 있었지만, 한 원불교 교무님이 하신 말씀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공부를 해보니 사드는 한반도에 위험을 높이고, 국제관계도 어렵게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에 원불교는 사드보다 평화를 주장하고자 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종교가 평화운동에 앞장서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즉 원불교는 단순히 성지여서 사드는 안된다는 주장을 넘어서 보다 궁극적인 대안인 평화를 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날 줄기차게 외쳤던 구호는 사드 가고 평화 오라. 진짜 안보는 평화다.”였습니다.

연대발언을 해준 성주, 김천 주민대책위원회 분들도 한결같은 말을 했습니다. 지역주민들에게 이제 사드 문제는 자신들의 지역에 배치되고 안 되고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어느 곳에도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되었고,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운동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습니다.

 

3. 사드 배치는 하나님의 뜻인가?

, 우리 기독인들은 사드배치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지난 8.15 광복절 즈음에 이미 설교를 통해 말씀을 드렸었는데, 대다수의 교회에서 목사님들은 어떻게 이야기 하나 사실 궁금합니다. 북한 핵 위협에 맞서, 혹은 영원한 혈맹이자 기독교 국가인 미국과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찬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반대해야 한다고 말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많은 목사님들은 교회가 이렇게 첨예한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정교분리 원칙에 맞게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성서를 보면 분명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독인으로서 올바른 판단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 우리는 늘 성서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처한 한반도 상황에서 구약의 예언서 말씀은 우리를 강렬하게 비추는 빛과도 같습니다. 예언서는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분단되고 앗시리아, 애굽, 바벨론 등 주변의 강대국에게 둘러싸여 국가존망 위기에 처했을 때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선포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은 당시의 국제정세에 밝았고, 국가의 장래를 꿰뚫어보는 영적 혜안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고난의 심연에서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국난 해법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남북이 분단되고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현실 속에서 예언서의 말씀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과도 같습니다.

 

4. 강대국과 군사력에 의지하지 말라

예언자 이사야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당한 후 앗시리아의 침략에 노출된 남왕국 유다왕실을 향해 매우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합니다. 당시 히스기야왕과 유다왕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애굽과의 동맹을 통해, 그리고 군사력의 증강을 통해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그 길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도움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그들은 군마를 의지하고, 많은 병거를 믿고 기마병의 막강한 힘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바라보지도 않고, 주님께 구하지도 않는다.”(31:1)

이집트 사람은 사람일 뿐이요, 하나님이 아니며, 그들의 군마 또한 고깃덩이일 뿐이요 영이 아니다. 주님께서 손을 들고 치시면, 돕던 자가 넘어지고, 도움을 받던 자도 쓰러져서, 모두 함께 멸망하고 말 것이다.”(31:3)

핵심은 강대국과 군사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그저 열심히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인가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애타게 애원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지만, 기도만 하고 우리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꼬마 아이들이 TV앞에 앉아 만화영화를 보며 주문을 따라 외우면서 현실과 공상을 오가는 모습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모습 속에 꼭 함께 있어야 할 것은 공평하고 정의로운 삶입니다.

(5:7)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님의 포도원이고,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

(5:8) “너희가, 더 차지할 곳이 없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 나가, 땅 한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였으니,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5:23) “그들은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고 하며, 의인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는구나.”

 

이사야의 고발내용이 3000년전 이스라엘 땅을 향할 뿐만 아니라, 2016년의 대한민국에게도 똑같이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동산을 독점하고, 뇌물로 부를 늘이며, 세월호 희생자들의 피눈물에 저주 내리는 저 지배권력의 불의와 오만과 부패를 향해 분명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우리가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 안의 올바른 변화와 개혁은 눈 감은채, 동맹국과 군사력에만 의지하려는 행태야말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입니다.

 

(미가6:8)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사드배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정치인의 주장보다 소위 전문가들의 논리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난의 역사의 한복판에서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고기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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