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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는 하나님의 선하심(성령강림후제13주일, 2018년 8월 19일)

하늘기차 | 2018.08.19 13:21 | 조회 1041


                      진짜는 하나님의 선하심    

 

2018819(성령강림후제13주일)                                                                      3:1-10

     11:14이하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은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자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들을 내쫓는다고 합니다. 내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요한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끊임없이 나의 일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일이요, 뜻이라고 천명합니다. 나중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무엇을 근거로 네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느냐고 시비를 걸 정도였습니다. 포도나무 비유에서도 아버지는 농부이고, 주님은 참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가지라고 하면서 예수님은 15:10에서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

                         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

                         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10:30에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속하여있는, 머물러 있는 모습입니다. 속한다고 하여 굴종적이거나, 부자유한 것이 아닙니다. 참 자유와 평화가 거기에 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에게 속하여 있는데 어느정도인가 하면 둘이 따루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부부일심동체라고 하지않나요? 그렇게 보면 조금은 느낌이 오지않나 십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포도나무 비유에서는 하나됨을 계명을 지켜는 것이라 합니다. 예수님에게는 귀신을 쫓아내고, 눈먼자의 눈을 뜨게 하고, 걷게하고, 문둥병을 고치는 아버지의 능력이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심과 따루가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조화입니다. 이 선함과 능력, 그리고 인자하심이 예수님에게 뿐 아니라,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도 드러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대한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늘 말씀에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성전 미문 앞에서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웠기 때문입니다. 근데 사람들은 예수 이름은 다 잊어버리고, 일어나 걸은 것에 주목하여 놀라며 이상히 여겼습니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돌아 보면 예수님이 보리떡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를 남기었을 때와 똑같습니다. 배불리 먹은 것 만 기억하지 그 징표와 뜻은 관심이 없다고 주님은 다시 찿아온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라고 기도하라고 하면서, 두드려라, 구하라, 찿으라고 하시는데, 그렇다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을 강조하는 설교자들 처럼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기도를 무조건적으로 들어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성전청소 후에 무화과나무 이야기를하면서 마21에서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라고 한 것도 전후문맥을 살펴보면 어떤 물질적인 욕구를 체우라는 뜻이기 보다는, 다가오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어떤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대한 변함없는 믿음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다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에대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라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라고 하실 때, 좋은 하나님 만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은 바로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바로 이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능력이신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에게 귀속되,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고 하며, 아버지 하나님에대한 철저한 신뢰를 바탕으로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에대한 믿음을 통해 병자들을 고치시며 예수님 당시 사라져버린 믿음을 회복시켰습니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너의 믿음이 너의 병을 낳게 한다고 한 그 말씀에서 그 믿음은 예수님의 믿음의 실제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믿으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믿읍시다.

     라노프라는 신학자는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그 순진무구한 신데렐라의 마음이라 하면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기적적으로 소망을 이룬 것은 어리석을 정도로 순전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데, 배다른 언니들의 시기심과 학대 속에서도 분노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기꺼이 굿굿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며 하늘에 주먹질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앙생활하며 난관에 부딪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아무런 응답도, 변화도 불러일으키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에대해 섭섭한 마음을 갖게됩니다. 율라노프는 이러한 마음을 하나님에대한 시기심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 선함, 인자함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 비천함에 스스로 좌절하며, 쓸모없는 존재로, 나쁜 존재로 인식하며 하나님을 거역한다고 합니다. 율라노프는 이러한 시기심을 극복하는 것을 회개라고하며, 자신에게서 생겨난 부정적인 감정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시기심에서 비롯된 증오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함을 버리고자 했던 우리 자신에대해 스스로 깨닫는 것을 회개라고 하면서, 이제는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하나님의 선함, 능력, 인자함에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선하심에대한 따뜻한 기대감을 갖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함은 어떤 소유물이 아니라, 언제나 존재하며, 우리와 함께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때 악이되며, 다른 사람은 행복해 보이고, 잘 사는 것 같은데,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시기하여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거나,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함이 나에게 베풀어줄 풍요로움, 기쁨, 감사의 고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함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악함을 물리치고, 모든 병을 고치는 만병통치약이나, 해결사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의 고통과 함께하며, 고통을 짊어지는, 고난받는 종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를 평화로 인도하십니다.

     본래 우리는 약하고, 부족하며, 가난한데, 이 본래의 모습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인바, 그래서 애초에 우리를 창조하신 이 모습 이대로 선한데, 누군가 장난질을 쳐서 하나님의 완전함 앞에 나의 결핍됨, 사실은 결핍이 아니라, 유한한 피조물의 당연하고도 선한 모습인데, 무엇에 홀렸는지 왜곡이되어 하나님 앞에 시기하는 자로, 화가 나 있는 자(오늘의 자본 중심의 문병사회에 길들여져있는 우리의 모습)로 서게되어 선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전하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연약함, 부족함, 가난함을 다 내어 놓으시며 아버지 하나님의 선함을 죽기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신데렐라이야기에서 나오는 배다른 언니들의 시기심 처럼, 세상이 예수님에게 치명적인 원수로 다가왔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과 인자함을 받아들여, 자기에게 다가오는 폭력에대해 대꾸하거나, 방어, 보복하지 않고, 끝까지 침묵으로 복종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함과 사랑은 조건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베풀 때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선하심을 주님에게서 보고 믿고 찿아온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대해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칭찬해 주었고, 그 믿음을 인정해 준 것입니다.

     기적은 당시의 성곽 같은 견고한 종교적 기득권의 틀을 깬 역사입니다. 사람들의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모두 차단하여 사람들을 하나님에게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던 구조를 깨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기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다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3번의 기적은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의미를 본다는 것은 배부른 것을, 벌떡 일어난 것 보다는 하나님의 선함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중에 요5장은 베데스다못가의 중풍병환자가 회복되는 기적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찿아와 네가 낫고 싶으냐?’ 고 묻자, 이 사람은 물이 동하면 자기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곧 나아서,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갔다고 합니다. 어떤 설명도, 믿음에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이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길래 그대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말했을까? 아니 요한은 예수님의 기적을 다른 복음이나 사도행전의 기록과 달리 왜 이렇게 기록하였을까요? 저는 이 기적에대한 요한의 해석을 저 나름대로 봅니다. 자리에대한 문제입니다. 38년이나 병에 메여있습니다. 물이 동할 때 자기를 물 속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못가에 올 때도 자기가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 사람을 못가에 까지 데려다 줍니다. 오늘 말씀의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환자도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를 못합니다. 그런 중풍병환자에게 예수님은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라 합니다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동안 이 환자를 일어서지 못하게 한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의지하여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늘 습관적으로 의지하려 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중풍병환자의 주저 앉아 있는 마음을 보고, 이 사람을 주저앉힌 그 자리를 직접 네가 걷어가지고 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네가 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일어나 자기가 누워있던 그 자리를 둘둘 말아서 걸어갔습니다. 간절함과 믿음을 따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본인 스스로 자신을 주저앉힌 자리에서 탈탈 털고 일어나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불쌍히여기며, 회복하시며, 치료하는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 결핍된 선함을 체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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