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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냐? 율법이냐?(성령강림후제12주일, 2018년 8월 12일)

하늘기차 | 2018.08.12 14:52 | 조회 947



                믿음이냐? 율법이냐?

2018812(성령강림후제12주일)                                                          2:16-21;8:1-11

     이스라엘은 고대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특권의식, 차별의식이 유난히 강합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과 중동의 국가들하고 끊임없이 분쟁을 유발하는 것 같습니다. 9:4은 유대인의 특권의식이 어디에 근거하는지 잘 말해줍니다. 한글개역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영광언약들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약속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특권의식을 가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7:7

              “주님께서 당신들을 사랑하시고 택하신 것은, 당신들이 다른 민족들

               보다 수가 더 많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들은 모든 민족 가운

               데서 수가 가장 적은 민족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당신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들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약속을 지키시려

               고, 강한 손으로 당신들을 이집트 왕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그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어 주신 것입니다.” 라고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특권의식을 가질까 노심초사하십니다. 둘째로는 십계명을 줄 때 시내산에 임했던것 같은 하나님의 영광에대한 놀라운 체험들입니다. 또 언약 백성입니다. 말씀을 받은 백성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율법입니다. 본래 율법은 처음 재정될 때 노예근성, 우상숭배근성, 이기심, 자기편의주의, 욕망. . .등에서 벗어나 오직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뜻이었는데, 이것이 종교집단의 기득권이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한 번은 예수님에게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법은 돌로 치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용서합니다. 예수님이 법을 넘어 판단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사랑에 근거합니다. 용서는 법적으로 불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판단과 결정은 모두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니 율법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율법에대한 태도를 못 마땅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듭 율법에대해 질문을 합니다. 22:34에서 한 율법사가 어느 계명이 제일 중요하냐? 12:28에서는 가장 으뜸되는 계명이 무엇이냐? 7:12에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요 정신이라고 거듭 말씀을 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이제 그 사랑의 정신은 사라지고 심판의 잣대, 행위의 잣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끊임없는 잣대를 들이댑니다. 남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 잣대는 다시 나를 심판합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돌로 치려하는 법의 공간을 허물어뜨린 것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법의 공간을 사랑의 공간으로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이게 아주 묘합니다. 율법도 죄를 밝히 드러내지만 지금 예수님의 말씀도 죄를 밝히 드러냅니다. 그러나 차원이 다릅니다. 율법은 강제하며 구속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합니다.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아니 스스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기 부정의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무장해제 시켜버렸습니다. 죄 없는자가 돌로 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칠 수 있으면 나 자신부터 치라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법 앞에 모두 죄인 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치지않고 다른 사람을 마녀사냥하며 치는 것이 인간입니다.

     법이 하는 일은 죄를 밝히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법 앞에 우리는 모두 노예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죄를 받아주고 인정하라고 합니다. 자유입니다. 매 번 죄에 매였는데, 그래 너 죄인이야, 이제 됐지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말어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서 오는 선언입니다. 자유이며, 평화이며, 감사입니다. 은혜입니다. 참 묘하지 않나요? 바리새인들도, 예수도 모두 죄를 드러내지만 하나는 죽음이요, 하나는 생명입니다. 이런 살리는 생명의 언어를 구사해야하는데, 이 언어는 마음에 언어이고, 이 마음은 십자가를 향하는 마음입니다. 낮아짐, 자기 비움의 언어입니다. 낮아져서 그 아픈 마음을 나눕니다. 죄인을 살립니다. 이것이 교회의 언어이며,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령의 내적 감동으로 아버지 하나님처럼 의롭다고 인정하는 말, 그러니까 가짜 믿음 말고 진짜 믿음의 말들이 샘 솟듯 솟아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자처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외면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쫓아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쫓았지만 율법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바울은 율법이 의에대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죄에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믿음 만이 오직 의에대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율법을 통해 죄가 들어와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습니다. 7:8은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인데, 죄가 계명을 통해 내 속에서 온갖 탐욕을 일으킴으로, 죄는 살아나고, 이로말미암아 나는 죽는다고 합니다. 율법의 기능이요, 법의 기능입니다. 벌하고, 심판합니다. 그러니 내가 죽습니다. 그러나 지난주에 십자가의 죽음에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율법으로인한 죽음과 다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아버지 뜻에 따르는 순종의 죽음이라 하였습니다. 이 죽음은 내가 죽지만 뜻에대한 순종으로 아버지의 뜻이 살고, 결국은 부활이라 한 것에 비해 율법이 불러일으키는 죽음은 징벌이요, 심판입니다. 그래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그 계명이, 도리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합니다. 삶의 수 많은 판단, 심판, 비교를 보면 누구를 정죄하든 우리가 똑 같다는 것 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법 안에서의 삶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율법이 우리를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율법 앞에 우리는 죄만 남습니다.

     이 죄가 어떤 죄인가하면 하나님 없음의 죄입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정, 사랑, 여행, 문화, 윤리, 도덕, 직업, 종교. . . 인간의 모든 지, , , 어떤 것도, 인간에게 속해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 아래 놓일 수 밖에 없기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8:12에서 율법은 거룩하다 합니다. 율법이 죄가 아니라, 우리 죄가 거룩한 율법을 통해 드러나니, 인생의 모든 것이 결국은 마지막 종착역이 죄라는 역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인간의 의로움은 없습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3:8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외에는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하면서,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는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도회의 앞에서 보고를 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헬라인 디도를 데리고 갔는데 디도는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몰래 들어온 유대인들, 거짓 신도라고 하는 이들이 할례를 강요하였는데,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고 했다는 겁니다. 여기서도 역시 법이 준동을 합니다. 아니 법을 핑계삼아 자신의 이기적인 거짓주장을 합리화시키려 합니다. 그런데 당시 예루살렘 총회는 참 건강하여 눈하나 깜박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이 번 세습문제로 진통을 격고 있는 우리 교단의 가을 총회가 거짓주장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성령의 내적 감동으로 한 마음이 되어 믿음과 복음의 뜻을 따르는 선택을 하면 좋겠습니다. 법이 작동을하면 우리는 바로 노예가 됩니다. 판단하고, 규정하고, 심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 19:17에서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5은 이 예루살렘회의에서 바리새파에 속했던 신도들이 모세 율법을 지키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유명하다는 사람들, 아마도 베드로 등 12사도인 것 같습니다. 이들이 이 할례문제에대해서 아무런 제안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도회의는 이후 4가지, 1)우상의 더러운 것. 2)음행. 3)목매어 죽인 것. 4)피를 금하고 모든 것을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여,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인정을 합니다. 참 멋진 총회입니다. 역할분담을 합니다. 여기서 그냥 스치고 지나가기에 넘 아까운 한 마디 말이 있습니다. 2:10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바란 것은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회의가 권면한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다만 가난한 사람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말이 참 좋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이라고 합니다. 늘 변함없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자선사업이 아닙니다. 마음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법은 죄를 드러내 우리를 죽게 하지만, 사랑과 성령의 법은 믿음을 따라 우리를 살립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 날마다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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