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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떨림의 예배(성령강림후제11주일, 2018년 8월 5일)

하늘기차 | 2018.08.05 13:15 | 조회 1180


                        두렵고 떨림의 예배

201885(성령강림후제11주일)                                                              4:23,24;12:1,2

     지난주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 구원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말이 짐이 되지만 주님은 내 멍에가 편하고 가벼우니 배우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두렵고 떨림으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짐을 지셨습니다. 이 순종의 십자가야말로 인류의 도도하게 흐르는 물질 문명을 멈추게 하여 되돌려 영적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어제 새벽기도회 때 읽은 시2:11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합니다. 어떻게 두려워하며 찬양을 해! 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절제된 자유로운 긴장감은 부름 받은 백성의 좋은 모습입니다. 자발적인 경외심입니다. 초대교회가 그렇게 내어놓음과 내려놓음의 두려움과 떨림을 서로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경외심이 다른 타자에게도 이어져 서로의 자존감이 됩니다. 하나님 경외가 없다면, 온 갖 생명체를 포함하는 피조물에대한 존중, 존엄을 상실할 것입니다. 그 경외함은 예배로 가장 아름답고도 선하게 드러납니다. 전에도 그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경외함, 두렵고 떨림이 드러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기뻐하심에대해 2번 언급합니다. 내가 아니라 아버지의 기뻐하심입니다. 하나는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둘 째는 분별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분별하나요? 무엇과 무엇을 분별하나요?

     하나님은 광야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만나기 위해 회막을 만드시고, 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릴 제사를 위해 성막을 만들어 다른 장소와 구별하십니다. 성막을 어떻게 만들고, 그리고 성물의 배치는 어떻게 하고, 또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을 위하여 제사장의 복장, 시간, 당번, 제사 때 사용하는 그릇,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물, 제사의 과정 하나 하나, 절기 축제 모두를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구별을 통해 이스라엘이 노예근성, 우상숭배근성, 이기심, 자기편의주의, 욕망. . .등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을 온 몸으로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도록 하였습니다.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인 24:25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세우고, 율례와 법도를 만들고,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증거를 세웁니다. 왜 이렇게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할까요?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을 거듭 반복하여 교육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육은 반복이라고 합니다. 카톨릭의 탁월한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 신부는 Radio, T.V, 신문 등의 모든 매체들이 세상을 찬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주일 동안 세상의 무수한 세속의 정보들을 넘치도록 듣고, 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들을 수 있고, 맛 볼 수 있는 시간은 그 일 주일 중에 겨우 주일 1시간 뿐입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말씀, 은혜가 늘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데, 세속의 가치, 즐거움, 편안함, 세상의 근심으로 우리의 시간이 체워진다면, 우리는 세상의 삶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인생은 생각하고, 판단하여 결정하기 보다는 한 순간 무의식적으로 삶의 소중한 것을 판단하고 이행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익숙한 가치와 반복되는 정보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즈음은 예배도 일상의 많은 것들 중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기서를 통해 구별을 말씀하시고 제도화하고, 지키게 하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애굽의 노예적 삶에서 벗어나 자유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를 통해서 끊임없이 세상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바로 구별입니다. 그런데 그 구별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내용은 없고 형식만 남게되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분리된자라는 뜻입니다. 이 바리새 운동, 구별하며, 성별하는 운동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강대국의 우상 숭배와, 당시의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세속의 가치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는 평신도 운동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지만 예수님 시대로 들어오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종교집단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거룩이 그렇게 퇴락해버린 당시의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만나면서 점점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대뜸 우리 조상은 저 산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들은 예배 드릴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하면서 거룩함이 오염되었음을 이야기 합니다. 잘 진행되던 대화가 예배에서 막혀버립니다.

     이 때 예수님은 바로 요4:23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찿으신다.”신령한 영적 예배에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5 말씀의 뒷 부분을 보면 우리들이 드리는 눈에 보이는 제물을 원치 않으신다고 하면서,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라고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을 하나님께서 손 수 마련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입니다. 이것은 이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예표된 것입니다. 22:7에서 아들 이삭이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아버지 아브라함은 예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산 제물이 되나요? 왜냐하면 그 죽음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는 죽지만, 그 죽음을 통해 아버지의 뜻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산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 외에 없습니다. 그러면 산제물을 드리는 나는 어떤 모습이야할까요? 지난주에 성도들도 껍질을 벗지 않으면 세속의 옷 겹겹이 껴입고 죽은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내어놓으며, 예수님의 아버지 뜻에 따르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생명의 예배, 부활의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찿으십니다.

     안네의 일기에대한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 안네의 식구들이 다락방에서 불 빛이 세어나가지 않게 밀폐시킨 상태에서 부림절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림절 예배는 페르시아의 하만에게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여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페르시아의 하만으로부터 구원받듯이. 지금 안네의 식구들도 나치의 치하에서 구원받기를 기원하며 드리는 예배였는데, 극히 간절하고, 엄숙한 분위기이면서도 머리에 고깔 모자를 쓰고, 촛불을 밝힌 모습과 원을 돌며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그 억압 속에서도 축제를 담담하게 즐기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 속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서 예배가 왜 중요한지를 보았습니다. 이 예배를 통해 가족이 언제 아우슈비츠로 끌려갈지 모르는 죽음의 상황속에서 위로받고, 희망을 다시 세우고, 서로가 하나되며, 내적 생명의 역동성을 키워 점차 다가오는 억압을 온 몸으로 감당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생명의 자유함은 예배였습니다.

     예배는 나의 참 주인에게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동안 나에게 서 주인 노릇을 했던 온갖 잡다한 것들로부터 벗어나 참 생명과 참 자유, 참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온갖 잡다한 것들에 무릎을 꿇어, 삶이 걸레와 같이 너덜 거렸지만 이제는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순전한 예배에로 나아가 생명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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