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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포도원 주인(주현절후다섯번째주, 2020년 2월 9일)

하늘기차 | 2020.02.09 13:28 | 조회 836


                         어떤 포도원 주인

202029(주현절후다섯번째주)                                                               20:1-16

   팔레스타인에서는 포도를 9월 말경에 수확한다고 합니다. 이 때는 우기가 시작되기 직전이라 서둘러서 포도를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장마들기 전에 수박이나 참외를 빨리 거두어 들이는 것 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진물러 먹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일꾼을 한 사람이라도 더 써서 수학을 최대한으로 많이 하려고 하는 때 입니다. 가장 농사가 바쁠 때는 추수할 때입니다. 우리말 속담에도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바쁩니다. 아마 오늘 말씀의 포도원 주인도 일꾼을 계속 구하러 나선 것을 보면 포도 수학을 할 때 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먼저 씨를 뿌린 사람이 있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간 것과 같다고 합니다. 언 땅이 녹으면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나무 마다 물이 오르고 싹이 돋아날 때 풍년을 희망하며 씨를 뿌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씨 뿌리는 이야기는 황당합니다. 밭도 갈아엎지 않고 그냥 씨를 뿌립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의 추수를 바라보는 씨앗 뿌리기의 마음은 그 품이 어느 정도일까요? 무엇을 바라고 씨를 뿌리실까요? 그렇게 뿌린 씨앗이 비바람과 병충해, 가믐을 이기고 예상치를 넘는 풍년이 왔습니다. 농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포도원이야기도 역시 황당합니다. 오전 9시에 포도원으로 들어 간 사람에게 10을 주었으면 오후 늦게 포도원에 들어 간 사람에게는 2을 주어야 형평에 맞는데, 모두 똑 같이 10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주인 맘대로 라고 하지만 제일 먼저 일하러 포도원에 들어 간 사람 입장에서는 속이 상합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이런 갑질도 없읍니다. 노동법으로 고소할 것입니다. 어제 저녁 같이 술 한 잔 한 옆집의 철수 아빠는 잔뜩 취해 퍼져버렸지만, 오전 9시 일꾼은 못 다한 잠 추스르며 아침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쓰린 속을 쓰다듬으며 포도원에서 일을 하였는데 어떻게 끝 무렵에 들어 온 철수 아빠하고 같은 취급을 당하는 지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항상 하나님이 트러블 메이커입니다. 그냥 사람들이 하는대로 놓아두면 될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하나님이 개입해 들어오시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카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는데,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습니다. 신약의 히브리서는 이것을 불신앙으로 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보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카인과 아벨에대해 성경은 아무런 평가도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너 왜 그랬어하고 묻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하나님이 제물을 받으시지 않자 카인은 화가나 안색이 변합니다. 그제서야 주님은 너 왜 화 났니?’하고 카인에게 묻습니다. 카인의 선택에대해 묻고 계십니다. 여기서 자유로운 카인은 하나님이 자기의 제물을 받으셨든지 안 받으셨든지 하나님의 질문에 귀 기울여야 했는데, 듣지 않고 결국 동생을 살해합니다. 노아의 홍수도 하나님의 분노하심 보다는 하나님의 탄식과 아퍼하심을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노아에게서 회복의 가능성을 보고 하나님이 위로를 받습니다. 하필 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들어놓으셨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선악과가 없었다면, 그런 욕망의 갈등도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아니 나의 신앙에 문제를 일으키시며 질문을 던집니다.

   욥기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예상을 빗 나가게 합니다. 통산 하나님은 무소부재하며 악을 물리치고, 선을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인데, 욥 앞에 그런 익숙하고 친숙한 하나님은 계시지 않음에 당황하며, 혼란해 하며, 고통합니다. 내가 그 동안 믿고 구하고 동행했던 나의 하나님은 정말 필요로 하는 지금 이 시간에 아무 말씀도 없읍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무장해제 당하며, 그 동안의 삶의 경험, 논리, 철학, 관계, 등 모든 가치가 무너집니다. 창세기로부터 시작되는 신앙의 이야기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동기가 부여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의 예측과 합리성을 넘어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 천국은 마치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고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포도원 주인에 비유하여 하나님 나라에대해 이야기합니다. 일이 끝 날 즈음에 5시에 온 사람부터 차례로 일당을 줍니다. 1데나리온을 받아 들은 5시 일꾼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아마 눈물이 핑 돌았을 것입니다. 집의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그런데 먼저 온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먼저 온 사람과 나중 온 사람들의 일당을 똑 같이 주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말합니다.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1 데나리온을 주는 것은 내 뜻이니, 내가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데 네가 알 바 아니라며, 오히려 주인은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너의 눈에 거슬리는가?”라고 반문을 합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오후 늦게 포도원에 들여보낸 사람뿐 아니라, 그 가족들도 보고 계시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잘 나가는 사람들 보다는 주춤거리며 어찌할 줄 몰라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카인에게 찿아가듯이 찿아오시며 함께 하십니다.

   포도원 이야기의 시작은 19장의 어느 바리새인청년에게서 부터입니다. 전형적인 유대인입니다. 이 청년은영생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이미 자기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질문을 합니다. 영적 갈급함에서가 아니라 자기를 드러내려 했든지, 아니면 예수님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것을 알고, 하나님 외에는 선한 분이 없다고 하면서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이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라고하며, 오히려아직도 무엇이 더 부족한 것이 있냐?”고 반문을 합니다. 이 바리새 청년은 내심으로 늘 스스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영생은 당연한 것인데, 단지 예수가 어떤 사람인가 보러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다 아시고, 그 청년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스스로 잘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시고는 그가 그동안 쌓아 놓았던 모든 공과를 한 말씀으로 일축합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자 청년은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납니다. 19:30에서 예수님은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말씀 20:16에서도 다시 한 번 언급됩니다. 신앙이 좋다 나쁘다는 것은 먼저 믿은 것과는 무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자처하며 이방인들을 멸시하는 유대인들에게 말씀 하신 것 처럼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라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세상 나라의 가치는 다릅니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 할 일꾼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할 사람을 지금 구하러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일이 너무 많아 통상적인 일꾼의 숫자를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 교회에서 600평 비닐하우스로 난을 키울 때였습니다. 지금 기억에 가장 잘 키웠던 난은 A1이라는 군청색 나는 꽃을 피우는 양란이었는데, 꽃대도 3, 4대씩 올라왔을 뿐만 아니라 잎도 파랗게 색이 좋아서 그 때 난협회 공판장에 출하했을 때 공판장 직원들이 이렇게 잘 키운 난은 여지껏 보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잘 키웠던 생각이 납니다.

   그 때 1000여개가 넘는 꽃 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니까 빨리 출하는 해야 하겠구 그래서 밤 새 꽃대에 지주를 세우고, 비닐로 씌우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정말 좋은 가격에 출하를 하기 때문에 피곤 한 줄 몰랐습니다. 정말 농사는 추수 때에 제일 바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바빠서 일꾼을 급히 구하러 나가는 주인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의 마음은 어떨까요? 모처럼의 풍년에 기분이 들 떠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무척 흥분대고 그 출하를 해서 얻을 이득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을 것입니다. 그동안의 빚도 갚고, 그리고 이 것 저것 그동안 미루었던 것들을 구입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무척이나 행복했을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렇게 열심히 땀 흘린 수고의 결실을 수확하는 기대감에 부풀어있는 포도원 주인과 같습니다. 아마 주인은 휘파람을 불며 벅찬 가슴을 안고 일꾼을 구하러 나갔을 것입니다. 그동안 애쓰고 수고한 보람의 결실이 눈 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가믐, 병충해, 태풍의 피해를 다 극복하고 추수를 하는 그 기쁨과 감격을 무어라 비교할수 있겠습니까? 농사꾼에게 이 이상 더 큰 즐거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가슴 벅찬 희망으로 삶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돈으로, 노력이나 수고로도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해도 얻을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데, 주님이 우리를 불러 이 나라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전 9시에 포도원에 들어 간 일꾼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통상적으로 임금을 일한 시간대로 지불했으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에 와서 일한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은 임금을 줍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는 자기가 물려 준 재산을 다 잃어버렸지만 돌아오는 아들을 꾸짖지 않으시고, 맨 발로 달려나가 맞이하지만 큰 아들은 아버지를 못 마땅해 합니다.

   교우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지 사람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추수의 풍요에 벅찬 감격하여, 하루 일과를 아무 성과 없이 마치고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서야할 무기력한 사람을 포도원으로 불러들여 기쁨을 안겨줍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벅찬 기쁨의 나라입니다. 그동안 각자 나름 애쓰고 수고한 결실을 칭찬해 주시며 잘했다고 인정해 주는 기쁨입니다. 그러려면 무엇을 하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하며, 그 마음을 따라야 합니다. 세상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는 기쁨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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