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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사순절세번째주일, 2020년3월15일)

하늘기차 | 2020.03.14 18:35 | 조회 1132




                          두려움과 떨림

사순절세번째주일(2020315)                                                                22:9-12

   모두들 잘 지내시는지요. 근데 우리 아동부, 유치부 아이들 모두 다 잘 있나요. 모두 몸이 근질근질 할텐데 말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입시준비 중인 범수, 실인이, 다솔이와 청년 몇몇이 모여서 주문한 피자와 소연이 엄마가 집에서 싸준 김밥, 그리고 안서영 청년이 집에서 해온 볶음밥을 같이 맛있게 먹었구요. 남선교회에서는 예배당 페인팅하며 간간히들 교회에 다녀가고, 어제도 이삿짐 나르고 집무실 윗쪽에 피어나는 바람꽃 등 봄의 전령들을 건축 때문에 옮겨주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여전도회에서는 음식을 준비하여 이 곳 저곳에 나누는 시간들도 있었는데, 모두 다 보고 싶습니다. 함께 드리는 예배와 친교가 그립습니다. 매 주일의 교회생활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당분간 어쩔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소리, 부스럭 거리는 소음이 들리는 가족 단위의 정겨운 가정예배는 우리를 2000년 전의 초대교회 예배로 초대하는 것 같습니다. 집단적인, 전체적인 것에서 벗어나 교회신앙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 번 코로나바이러스19는 대중 매체와 SNS를 통해 또 다른 전염병을 퍼뜨렸습니다. 바로 불안 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동안 물이 없을 때, 식량이 부족할 때, 그리고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마찬가지의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21:4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이 먹을 것 때문에 탐욕을 품으니, 이스라엘 자손들도 또다시 울며 불평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함께 따라나온 사람들이 불안의 숙주 역할을 한 것입니다. 불안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공포 영화가 그렇잖아요. 좀처럼 초반부에는 공포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공포가 극대화됩니다. 이 번 코로나바이러스19도 그런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증상이 초기에는 보이질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불안, 공포, 그로부터 오는 차별, 혐오는 모두 한 핏줄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불안과 공포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소외되자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사실은 부끄러움에서부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였던 아담과 하와가 욕심으로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을 지키내지 못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자 스스로 부끄러워 숨은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되기를 포기한 것에서부터 오는 자괴감에 무화과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지만 자신의 죄를 어찌하지 못하고 홀로 남았다는 것, 무방비 상태라는 것,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괴리는 그동안의 이웃과의 정감어린 관계가 무너지고 주변이 갑자기 적이 되어 자기를 공격할 것 같은 불안에 젖어들기 시작합니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그렇게 무화과잎으로 자기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시작하는 것에서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가 자기이기를 포기한 부끄러움이 두려움으로 그리고 집단화되어 관용과 배려가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려움은 자발적인 무릎 꿇음이고, 떨림은 자기 한계에대한 자기 넘어의 존재에대한 미쳐 예측하지 못한 인식이요, 경이로운 체험이요, 느낌인데 반하여 불안은 자기 발현의 두려움과 떨림에서 벗어난 이기적인 집단적 발현입니다. 실존철학의 시조인 덴마크의 키에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의 인물로 성서의 아브라함을 지목합니다.

    아브라함은 충실한 종 엘리에셀을 넘어, 이스마엘을 뒤로 하고 드디어 상속자 이삭을 얻어 즐거운 노년을 만끽하던 즈음에 청천벽력 같은 날벼락을 맞습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22:3은 바로 다음날 아침 일찍 나귀등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이삭에게 떠날 준비를 시켰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라, 이삭, 두 종,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이삭을 죽여야 하는 길을 떠납니다.

    모리아 산으로 향하는 침묵의 여정에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 같은 후손에대한 약속과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이 아브라함 안에서 충돌합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신앙은 동전을 뒤집어 보면 자식을 죽이는 인륜을 거역하는 윤리와 충돌합니다. 또한 오직 한 분 하나님과의 관계에 직면하여 그동안 함께 해 왔던 사람들, 이웃들, 부족들을 무시하고 이 모든 엄청난 일을 혼자 처리합니다.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에대한 배신입니다. 이 역시 충돌합니다. 개별자보편자가 충돌합니다. 어찌보면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그동안 교회와 함께했던 전체적인, 다중적인 신앙과 지금의 홀로 드리는 개별적 가정 예배도 충돌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자신 만 알고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품고 이른 아침 모리아산으로 떠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만일 아브라함이 부족의 후계자를 남겨 놓기 위해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고 자살을 했다면 애뜻한 경탄의 대상,과 영웅은 되었겠지만, 불안에 떠는 자를 구원하는 길을 열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칼 끝을 자기가 아니라 이삭에게 향했다고 합니다. 만일 칼 끝을 이삭에게 향하는 흉내만 내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신앙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앙은 바로의 군대와 홍해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요구하지만 요구하지 않으시리라는 역설을 믿었습니다. 불안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만약 이삭이 죽었다면 이것은 윤리도, 믿음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딜레머를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교회당에 오면서 이삭에게 칼을 드리대는 흉내만을 내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과 윤리, 살인과 신앙 사이에서 그는 불안을 향했습니다. 역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불안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리지 않으면 믿음이 아닙니다. ‘믿사오니 믿음 없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하자 주님이 그의 아들의 병을 고쳐주셨듯이 이것이 주님이 인정하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렇게 인정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믿음일 수 없습니다. 또한 이삭을 죽이고 그리고 저 세상 천국에서의 행복만을 믿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신앙은 본래 역설입니다. 죽음과 부활, 하나님과 인간, 하늘과 땅, 영과 육,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인식할 수 없는 불안의 자리에 우리는 초대받은 것입니다. 이 불안의 자리에서 우리는 아담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쫓습니다.

    이 번 코로나바이러스19는 우리의 집단적인, 좋은 의미의 공동체신앙에서 우리를 떨어뜨려 나 홀로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설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아무쪼록 코로나바이러스19의 확산이 멈추어지기를 바라고, 환자와 가족들의 회복, 의료진, 방역당국의 직원들, 그리고 말 없이 수고하는 봉사자들 모두를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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