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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대림절 첫번째주일, 2019년11월24일)

하늘기차 | 2019.12.01 14:30 | 조회 980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

20191124(대림절 첫번째주일)                                                              13:11-14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잠에서 깨어나라고 합니다. 저는 이 깨어남을 3가지 점에서 보려고 합니다. 우선은 종교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2째는 역사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3째는 나의 자존과 삶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지난 주일 저녁 헤른후트묵상나눔에서 한 집사님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정말 주님이 다시오는 것을 기다리나요?” 그런데 왜 오지 않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할 수 있나요? 다른 성도님은 어렸을 적에 사람들이 지옥가면 안되기 때문에 그래서 열심히 구원을 위해 전도했다고도 하였습니다. 지난 주 묵시문학의 전통에 바탕을 둔 주의 날’, 그리고 예루살렘 멸망,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모든 만물의 회복의 날이 마24, 25장에서 함께 섞여 기록되어 있어 공포스럽고, 두렵기도 한데, 한 사람은 구름 타고 올라가고, 한 사람은 이 환난의 땅에 남아 고통받는 주의 날에대한 이야기는 고대의 우주관과, 당시의 묵시문학의 영향 속에서 그려진 우주적 대 파국에대한 전망이라 했습니다. 지구는 평평하고, 저 지구 대기권 밖에 하나님과 천국이 있어서 주의 날이 오면 하늘로부터 주님이 구름 타고 오셔서 이 땅을 심판할 때에 천당과 지옥으로 나뉘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주관이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이래 지구는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하나님은 이 지구 밖, 우주의 어느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 진지 500년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지구가 중심인 고대의 우주관과 묵시문학을 바탕으로 기록된 성경의 마지막 종말을 문자적으로 어정쩡하게 받아들입니다.

   교회가 진리의 소유자였던 중세는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으로인해 모두 깨지고, 진리의 소유권은 물리, 철학 등 세속의 학문으로 분화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논리와 과학과 합리성으로인해 고대의 고전적인 신앙, 우주관, 구원관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임에도 문자적인 근본주의적인 폐쇄적 신앙은 미국의 경우 여전히 소수로 남아 무기력한 상태이고, 유럽의 교회 역시 이러한 우주관, 역사관, 과학의 지식의 폭발로 위축되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신학 운동은 지금의 과학과 세속의 사회와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신앙이 나아갈 길을 찿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가 동양 중심이 아니라 서구, 특히 기독교 중심으로 이어져나간 것에대해서 신학자들은 그 바탕에 유대교와 기독교의 역사 중심신앙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밖에 계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여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신앙은 종교 개혁이후에도 계속되는 변치 않는 신앙관이며, 이러한 신앙관이 고대 동양의 철학이나 종교와 다른 역동적인 세속적인 열려있는 문화체계를 구축한 것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역사 속에 찿아오시는 하나님의 결정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사람으로 이 땅, 이 역사 속에 찿아 온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신앙의 때입니다. 그런면에서 사도 요한이 요3:18에서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하며 실존적인 심판, 종말을 선언한 것은 고대의 의식구조를 벗어난 역사 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잘 표현해 준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역사 속에, 이 땅에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신앙이 간과한 것이 있는데 바로 자연, 생태에대한 관점입니다. 이미 인간이 유일한 최고의 생명체라는 것도 다윈의 과학적 발견에의해 깨어져서 인간 만 독자적으로 하나님의 영성을 받은 존재가 아니라, 머나먼 150억광년 전 우주의 탄생, 그리고 생명의 태동으로, 인간의 시간으로는 추론할 수 없는 긴 진화의 과정 속에, 하나님의 창조로 인간이 탄생했다고 보는데, 보수적, 기득권적인 교회는 여전히 이 과학적 증언에대해 귀기울이지 않고, 기존의 인간 중심의 종교적 고집에 묶여있습니다. 21세기의 사회는 이미 그렇게 인간의 출현에대해 진화의 한 과정으로 보고 있고, 저 역시 앞으로 인간이 향할 진화는 영적 진화가 아닌가, 어느날 홀연히 아니면 지금 까지 처럼 인간이 지리한 도덕적 쇄락을 뛰어 넘어 하나님을 향한 탁월한 영적 전환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공유할 때가 오지 않겠나, 그 날이 바로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아니겠나 하는 겸손한 바램을 구합니다.

   지난 주 저녁 헤른후트묵상에서 이야기 나누었듯이 종말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의해서 이미 시작된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중간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가 자꾸 종말을 고대의 우주관을 가지고 2원론적으로, 그리고 연대기적인 시간관으로, 문자적으로 보려고 고집한다면 우리는 참 종말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가 기다리던 임박한 종말은 오지 않았고, 지금도 기다립니다. 그럼 주님의 약속은 연기되었나요? 무슨 기차 시간표인가요? 비행기 도착 시간표인가요? 그렇다면 주님은 불완전한가요? 연기되게요. 종말은 연대기적인 시간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건으로, 카이로스, 즉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해 들어오시는 사건으로, 희망의 신학을 주창하는 몰트만은 우리가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종말의 사건이 지금 우리의 삶 속에 찿아 와 우리의 신앙과 삶을 종말의 삶으로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역사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서구 문명이 세계 전체의 역사를 이끌었던 것은 다른 종교가 도덕적인 종교에 머무르는데 반해,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역사 신앙에 바탕을 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최근 우리 교회는 근현대 역사 강좌를 열어 하나님께서 이 민족의 역사 속에 어떻게 함께 하시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동학에서부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속에 일어난 수 많은 죽음, 분열의 고통 속에 하나님 함께하셨으며, 이제는 이 민족의 아픔을 돌이켜 회복시키실 것이며, 남과 북이 기필코, 방해하는 세력을 뒤로 하고 교류하며, 오고 가며 하나되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3.8선을 넘어, 앞록강을 건너 시베리아와 몽골의 대륙을 지나 유럽으로 뻗어가는 꿈을 꿉니다. 이사야가 고난받는 종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비젼을 보았듯이 우리도 우리의 신앙을 통해 우리 민족의 고난 속에서 남과 북이 하나가 될 뿐 아니라, 일류평화의 단초를 붙잡는 계기가 되지 않겠나 싶은 면에서 소성리에서 지금도 평화를 외치는 대구새민족 교회의 백창욱 목사님, 그리고 콘테이너에서 숙식하며 소성리에 머물고 있는 강형규 장로님, 그리고 제주 강정에서 해군기지가 들어와 있음에도, 그래서 제주를 전쟁기지화 하려는 미군의 계략을 폭로하고, 평화의 대학을 설립하고, 대만, 오키나와 제주를 삼각고리로 묶어 공존과 평화의 공평해를 주창하는 정말 바보 같은 송강호 박사의 꿈은 우리 극동아시아와 더 나아가 인류평화를 위한 소중한 행동이 될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송박사님이 바라는 한국의 5, 60 교회가 매 주 한 번 강정에 찿아와 예배드리며 함께 한다면 평화를 위한 작은 발걸음이 되지 않겠나, 세상은 이 보잘 것 없는 행보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마치 혈루증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것을 예수님이 알았듯이, 하나님이 이 작은 강정과 소성리에서 이루어지는 몸짓을 알고 계시며, 그 활동가들의 언행을 귀하게 쓰시리라 믿습니다.

   세 번째는 나의 자존과 삶의 잠에서 깨어나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엡5:8에서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살아야한다고 합니다. 그 열매는 바로 9, 모든 선과 의와 진실입니다. 주님과 함께하지 않는, 관계 없는 것들의 어두움입니다. 어두움인데 어두움을 모르는 것은 어두움에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밝고 따뜻한 빛이 있는데 빛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빛이 주는 색, 그리고 빛 아래에서 숨쉬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자취, 조화로움을 모릅니다. 마치 동굴에서 오래 살 다 보니 동굴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니 빛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각자에게 그 어두움은 재산 쌓기 일 수 있고, 자녀일 수 있고, 건강, 지식, 인간관계, , 게임, , , 결국 어둠에 익숙해지면 빛에 적응할 모든 감각과 생각이 동굴 속 생물처럼 퇴화됩니다.

   허무와 무기력, 절망의 동굴 속에서 어거스틴을 끌어 낸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수행이 아니라 “Tole Lege!”, “들어서 읽어라!”는 음성을 듣고 급히 성경을 펼쳐읽은 오늘 본문 13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라는 말씀 앞에 전 존재가 밑 바탕에서부터 흔들려 자신의 그 동안의 삶의 가치 체계가 한 순간에 모두 무너지는 체험을 통해서 였습니다. 지난 주 헤른후트 묵상 나누기에서 깨어나기가 어렵고, 두렵기도 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무력감, 자신 없음의 솔직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도의 깨어남, 교회와 기독교의 깨어남은 내 자신이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과 쉬임없는 기도 그리고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로워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내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에서부터 옵니다. 어두움에 익숙해 있다 보니 빛의 삶의 자존감을 잃어버렸습니다. 성도의 자존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이 아니라, ‘부름받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에 그 부름을 놓치 않았습니다.

   한 아이가 반찬거리 사오라는 부모의 심부름을 갑니다. 부모의 부름입니다. 길목의 먹거리와 놀이가 눈에 들어 옵니다. 심부름할 돈으로 불량간식 사서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며 신나게 놀며 길에 매몰되어 엄마의 부름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친구들도 떠나고, 혼자 남자, 아차! 그 때서야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광야길에 매몰되어 샘이 12, 종려나무가 70그루나 있는 오아시스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물 없다고 하나님 원망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지금은 대림절 첫 째 날입니다.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이 번 연속침묵기도에 모두 참여하여 기도에 머물러 아버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회복하고 확인하고 영적 잠에서 깨어나는 대림절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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