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공감=보이기 시작함=부활(부활주일, 2019년 4월 21일)
공감=보이기 시작함=부활
2019년 4월 21일(부활절) 요20:19-23
2년 전 우리교회에서 ‘친구들’이라는 다큐영화를 보았습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친구들에대한 영상인데,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들의 친구들이 예상치 못 할 정도로 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2~30명의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공감 기록단’이라는 이름하에 모집이 되어 찍은 것입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공감기록단이 뭐 할러 우리에게 찿아왔나 하고 경계심을 가졌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의 아픔에 마음을 포개주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오히려 공감기록단 아이들이 세월호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들의 아픔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 이혼하여 힘들었던 일. 아빠가 민주화 운동하다가 어릴 때 자기 앞에서 구속당하여 끌려가는 것을 목도하고 충격에 빠져 지내다가, 이제 청년이 되어 작년에 아빠가 출소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아픔과 아픔이 만나며 공감하고 소통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자가 되어 이전의 자기 모습을 회복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장 와 닿았던 장면은, 처음에 세월호친구들은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기 아픔을 감당할 수 없어 자기 만 보이지, 옆 사람 조차도 볼 수 없었는데, 어느 순간 공감기록단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다음엔 뒤에서 촬영하고 계시는 카메라멘들이 보이고,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홍혜신박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그러다 보니 그 공간 안에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아픔도 넘쳐나고 있는 것을 느끼며, 방을 넘어 세상을 보게되면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 후원자들 한 분 한 분에대한 고마움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아! 이세상에는 정말 마음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아픔은 뒤로하고, 우리는 희생자도, 희생자의 가족도, 생존자도 아니야. 영화로 치면 우린 주연이 아니고 조연, 조연 중에서도 제일 끝줄에 있는 조연 같은 거잖아 하며, 우리가 가족들 보다 아프면 안되잖아’ 라고 하는 아이들 속에 이미 절절히 평화의 메시지가 담겨있었습니다. 이미 아이들은 아픔을 통해 누군가와 공감하며, 평화를 나누기위해 잘 준비되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단지 찿지를 못했을 뿐이고, 못 보았을 뿐입니다. 아! 평화가 다른데 있지 않구나. 이미 와 있구나. 아픔이 서로가 서로를 더 깊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마음 중에 가장 깊고, 높고, 넓은 마음이 아픈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거듭 이야기한 십자가 후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을 뿐만아니라, 보고도 믿지를 못하였는 데, ‘공감하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듣고, 예수님의 손에 난 못자국을 만지고, 허리의 창자국에 손을 넣어보며, 다시는 생각지 않으려했던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기억하며 고개를 들어 서로가 서로를 진정어린 마음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도 이 부활주일에 서로 마음을 나누며 우리의 일상 속에 감추어져 있는 부활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소망, 기다림의 소망,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헛웃음 넘치는 공허한 기다림이 아니라, 위로가 있는 평화의 기다림으로부터 바라보는 소망, 그리고 믿음, 그냥 주여 주여하는 믿음이 아니라, 행동하는 믿음이어야 하니, 용기가 필요한 믿음,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열매가 있는 믿음, 그리고 사랑, 말로하는 사랑이 아니라, 수고하는 사랑, 그래서 함께하는 사람들 속에 축제가 되고, 잔치가 되는 사랑이 공감하는 부활 속에 가정에서, 일터에서, 동네에서, 아파트 단지 내에서 무엇 보다도 교회에서 넘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