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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마리아(주현절 후 세째주, 2019년 1월 27일)

하늘기차 | 2019.01.27 15:39 | 조회 998


                          아! 사마리아

2019127(주현절 후 세째주)                                                              4:5-14

   가나의 결혼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은 2:1에 보면 공생애 사흘째 되는 날에 일어납니다. 사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무덤에 묻힌 후 부활하신 기간입니다. 이 변화는 정결예식에 사용하는 6개의 물항아리가 상징하는 유대교에서 기독교 공동체로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잔치가 식어가는데도 이스라엘이 가장 중요시하는 유대 정결법의 6동이 물항아리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물동이의 물을 포도주로 바꾸며 그 축제의 흥을 다시 살려냅니다. 그런데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사람들이 몰랐다고 합니다. 이 모른다는 주제는 4 복음서와 바울 서신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주님은 어머니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할 때, 내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그 때에 사람들은 어떻게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세상의 모든 것들의 관점과 가치관이 변화하는 때, 바로 십자가의 때, 그리고 1절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사흘 만에 부활하는 때에 세상은 그 변화를 보게될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공관복음과 달리 요한 복음에서는 영광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요1:1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며,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창조한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내재하여 말씀으로, 성령으로 우주와 역사로 뻗어있는 지혜의 빛으로 함께하는 예수님이신데,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세상과의 관계에서 치욕과 수치와 굴욕으로 표현하지만, 요한복음이 영광으로 표현하는 것은, 말씀의 빛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계심이 밖으로 드러난 절정으로 주님 안의 영광으로, 시내산의 영광을 넘어, 장막의 율법궤의 영광, 예루살렘의 지성소의 율법궤의 영광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어서, 십자가를 아버지의 뜻, 섭리와 경륜의 면류관이요, 영광으로 바라봅니다.

   이 표적은 요한복음 처음에 있어야 할 만한 표징으로서 앞으로 보여줄 요한 복음의 영생을 위한 적절한 시작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통해 변화하는 첫 번째가 바로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을 단지 몸을 파는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개심한다는 남성 중심적인 전통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것은 요한 복음을 본질적으로 왜곡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여인과의 대화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물은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에서 짝짓기를 하는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신부를 찿기 위해 늙은 하인을 고향으로 보내는데, 근처 우물가에서 자기와 낙타에게 물을 주는 여인을 신부감으로 정하고자 기도합니다. 리브가가 신부감을 고르기 위한 계획에 맞추어 물을 주자, 하인은 그녀의 집으로 가서 통성명을 하는 가운데 그 부친이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손녀라는 것을 알게 되어 혼사를 성사시킵니다. 또 우물은 야곱이 자기 아내를 구할 때에도 등장합니다. 형 에서는 우상을 섬기는 지역의 여자와 결혼을 하지만 야곱은 고향으로 향하여 하란 근처 우물가에서 우물의 덮개를 여는 라헬을 도와주는 계기로 삼촌 라반의 집에 모두 14년을 머물며 라헬과의 혼인을 성사시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모세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쫓겨 우물가에 당도하는데,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의 7딸들이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다가 지역의 목자들이 그녀들을 쫓아내려고 하여 그녀들을 보호해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주어, 집에 초청을 받아 그 딸 중에 십보라와 결혼을 합니다. 우물가는 생명을 낳는 결혼과 관련하여 남녀가 만나는 장소로 거듭 등장하는데, 영적 생명을 주제로 하는 요한복음의 이야기에 걸맞습니다.

   사마리아 우물이야기의 구조가 흥미로운 것은 가나에서 보여주신 표징도 결혼잔치 이고,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과 만난 후에 예수님은 다시 가나로 돌아가시는 구조여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의 사건이 가나의 결혼잔치 축제의 사이에 놓여있습니다. 결혼은 생명이요, 사랑이요, 잔치입니다. 예수님은 처음에 구약의 조상들처럼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신랑입니다. 이스라엘이 사람 취급하지 않던 사마리아 사람들을 새로운 이스라엘, 즉 새로운 계약의 교회공동체의 신부로 초대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이 교회공동체의 신랑인 예수의 구혼을 거부하며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분열의 역사로 대화를 전환합니다.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이 분열은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의 열지파가 르호보암의 폭정에 저항하여 유다 왕국으로부터 분리하여 북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을 때 부터인데, 서로 대립하는 중에 결국 북이스라엘은 B.C.723년에 남쪽 유다의 방관 속에서 앗시리아에 멸망하고, 앗시리아는 반역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중동지역의 이방인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켜 족외혼을 시키며 이스라엘을 혼혈인종이 되게합니다. 그 때 이방의 종교도 같이 들어와 북이스라엘의 야웨신앙은 훼파됩니다. 또한 남쪽 유다도 578년에 신흥제국인 바벨론에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가는데, 이들은 바벨론에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신앙과 혈통을 철저히 지켜나갔으며, 포로생활 70년이지나 고향으로 돌아 온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가나안 땅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차별합니다. 사마리아인들과는 상종을 하지 않았고, 사람 취급 조차도 하지 않아 유대인들이 북으로 갈 때에는 사마리아를 지나가지 않고 요단을 건너서 우회하여 다닐 정도였습니다.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는 부정한 여인의 개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좁혀질 수 없는 갈라짐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경계선들, 그리고 갈등들 속에 예수님이 신랑으로 오셔서 어떻게 우리를 평화, 사랑, 위로, 소망의 새 교회공동체의 신부로 부르시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물을 달라고 하자 여인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적대 관계요, 원수관계라는 것을 명시하지만 예수님은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이제는 오히려 역으로 생수를 주겠다고 합니다. 영적 샘물, 성령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의 말이 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이 대화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문자에 갖힌 것입니다. 문자적인 한계에 붙들려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요2장의 율법에 능하며, 이스라엘의 스승인 니고데모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를 통해 인류 역사에 말씀과 지혜로부터 오는 내재적인 하나님의 빛으로부터 펼쳐지는 십자가의 영광의 지혜로의 초대, 그 십자가와 부활에서부터 성령의 김동으로 생겨난 교회공동체로의 초대에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서를 문자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드레박도 없는데 어떻게 물을 주냐고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님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여인은 우리라고 하면서 옛 믿음의 조상과 여전히 한 뿌리이며, 여전히 조상들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 백성이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이 갈등의 갈라짐을 넘어서는 참 생명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자 이 여인이 그제야 조금은 관심을 보이며 그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내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자.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신통력을 발휘해 이 여인의 전 생애를 알고 있다는 듯이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의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말에 예수님을 예언자로 부르는데, 여전히 이스라엘 역사의 갈등의 핵심을 건드립니다.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습니까? 에발산에서 드려야합니까? 그리심산에서 드려야합니까? 여전히 이스라엘 역사의 아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이 구원은 유대인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지만, 이것은 그동안 버려졌던 사마리아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품기 위해 유대적 한계를 뛰어 넘는 단초에 불과하며, 바로 예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때가 왔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사람을 찿는다고 말씀하시며, 지금이 그 때라 합니다. 이 여인은 불륜의 여자가 아니라 사마리아를 상징합니다.

   다섯 남편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신통력을 발휘하여 이 여인의 생애를 돌아 본 것이 아니라, 왕하 17:24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을 사마리아에서 쫓아낸 앗시리아 왕은 바빌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스발와임으로부터 사람들을 데려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성읍에 살게 하였다.”고 합니다. 5이방 족속입니다. 그리고 앗시리아왕은 포로로 잡혀 온 제사장 한 사람을 사마리아에 보내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라고 명령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은 다섯 나라의 우상에 사로잡혀 택한 백성으로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는 이 여인이 메시야에대한 갈급함을 이야기하자 내가 그다라며 대화가 끝이 납니다. 영어로 한 번 더 풀면 ‘I am that I am’, 나는 나다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나는 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호렙산에서 만날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고 물을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I am that I am’, ‘나는 나다’, 히브리어로는 YHWH야웨라고 했듯이 지금 예수님이 내가 그다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의 다윗왕권 역사를 써 내려가기 전, 호렙산에서 모든 문화와 종교, 인간적인 것을 뛰어 넘어 최초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을 알렸던 순간이 지금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속에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에 억압당하던 이스라엘을 자유케 하였듯이 이제는 또 다른 얽매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셔서 새로운 교회공동체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고, 사마리아 역시 모든 인류가 새롭게 세워지는 주님이 머리되시는 교회공동체 안에 포함되어야하며, 단지 눈에 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온 역사와 우주와 피조물에 열려있는 교회공동체의 중심이 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계, 분열, 편견, 욕망을 벗어나 참 생명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에대한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이 때, 이 대화는 돌아 온 제자들 때문에 방해를 받습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이 것은 문자에 매여 있는 제자들의 입을 빌어 바로 문자적인 신앙,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라는 사인입니다. 반면에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리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의 감격을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마을로 뛰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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