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아침 마다 새로운 주님의 긍휼(창조절세번째주일, 2021년9월19일)

하늘기차 | 2021.09.18 15:24 | 조회 674

 

               아침 마다 새로운 주님의 긍휼

창조절세번째주일                                                                                                               애3:19-26

     최근 새벽기도 때에 에스겔서를 읽고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다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정말 단지 저의 부끄러운 연민입니다. 하나님의 언행은 가혹하고 일말의 여지도 없습니다. 성전을 떠나시는 하나님, 포위당한 예루살렘, 거짓 예언자들의 종말, 지긋지긋한 우상숭배, 머리카락과 수염을 깍는 상징, 타 버린 포도나무, 전염병, 굶주림, 창녀와 같이 타락한 이스라엘, 피로 물든 예루살렘 등, 망연자실합니다. 단지 이스라엘에대한 경고가 아니라 주변의 암몬, 모압, 두로, 이집트, 그 당시의 지중해권의 모든 세계를 심판하십니다. 바로 다가 올 기후재앙과 오버랩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예언 속에서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36:25 주께서 맑은 물을 뿌려 우리를 정결케 하며, 우상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주며, 새로운 마음과 영을 우리 안에 넣어 주어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는 말씀을 읽으며 아직 그 댓가도 치르지 않았는데, 돌아서지도 않았는데, 벌써 회복에대한 말씀에 위로부터 받으려는 나의 얄팍함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는 중에 이 번 주 헤른후트 설교 본문을 읽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서입니다. 예레미야 역시 같은 시대에 남쪽 유다의 멸망을 바라본 눈물의 예언자입니다. 예루살렘은 18개월 동안 바벨론에게 포위가 되고, 아이를 삶아 먹을 정도로 큰 고통을 겪습니다. 결국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벽은 훼파되고 성전도 무너집니다. 오늘 본문 319은 쓸개즙 같고, 쓴 쑥과 같은 고난을 잊지 못해 울적한 마음 가눌길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22-26은 오히려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 같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 다.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나는 늘 말하였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참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 ”

     이 희망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이 반전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예레미야는 21절에서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 .”라고 합니다. 바로 기도의 자리에 머무는 예레미야의 모습입니다. 교우 여러분! 고기교회는 이 번 창조절4번째 마지막 주간(27-10.1)을 연속침묵기도주간으로 정하였습니다. 이 기도 기간에 우리가 얼마나 지구촌의 생태계를 망쳐놓았는지를 회계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질서 회복에 조금이나마 함께 동참할 실마리를 찿을 수 있는지를 돌아보는 기도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 까지 이니 바쁜 일상이겠지만 시간을 내어, 신앙은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자기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드립시다. 그렇게 시간을 내어 가능한 기도에 참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지난 날들에서 돌아 서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찿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예레미야가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한결같으며, 그 자비함이 끝이 없다고 고백한 것은 바로 기도의 자리에 머물면서 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 쫓기며 예루살렘 성을 빠져 나와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로 들어섰을 때 다윗은 시63:1에서 주는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을 합니다. 이 환난이 자신의 죄로부터 오고 있는 것을 알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처럼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히려 죄 중에서, 죄 보다 큰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그 사랑에대해 다윗은 생명 보다 귀한 한결같은 사랑이라 고백을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생명인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때 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살았지만 산 것이 아닙니다. 찬송 435장 첫 구절은 나의 영원 하신 기업 생명 보다 귀하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 하소서라고 찬송을 합니다.

     고기 교회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지 벌써 16개월이 지나갑니다. 몇 번 마당에서 그리고 새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릴 기회도 있었지만, 코로나 상황은 성도들을 교회당 밖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종종 교회가 그냥 적당히 변칙적으로 예배를 드린다고도 하는데, 소상공인들과 코로나로 벼랑 끝에 몰린 이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당, 예배 장소에 나아가지 못하는 이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수금을 걸어놓고 눈물 흘리며, 노래 한 번 불러 보라는 조롱섞인 바벨론 사람들의 요구에 어찌 그들을 위해 노래할 수 있느냐며 예루살렘을 기억합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에게 시온, 즉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거룩한 생명의 자리,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오늘 예레미야는 쓸개즙 같고, 쓴 쑥과 같은 고난에 울적한 마음 가눌 길이 없다하는데, 22절에서 반전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진다고 합니다. 이 반전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67:17에서 다윗은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반전은 성소에서부터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자리에 함께하는 하나님에게로 부터입니다. 63:2은 내가 성소에서 주님을 뵙고 주님의 권능과 주님의 영광을 보며, 3절에서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내 입술로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기도의 자리는 주님을 만나는 자리요 생명 보다 귀한 은혜의 자리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그 쓴 쑥과 같은 고통에서 희망을 퍼 올린 것은 그 자리,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한결 같은 사랑과 긍휼이 마르지 않는 샘 같이 솟아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삶이 역동적일 수 있는 것은, 비록 하루 하루가 싸움이고, 지겹기도 한, 무한 반복되는 무엇이라 딱히 말할 수 없지만, 마치 채바퀴 돌아가듯 무의미한 말과 행동이 반복된다면 오늘 23절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시기바랍니다. 아침 마다 새롭다고 합니다. 날 마다 새롭습니다. 어디서 오는 것인가요? 기도의 자리에서입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해가 떠오르는 시간을 맞이하며 바로 그 느낌입니다. 오늘도 나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바로 새벽기도의 자리에서 주시는 한결같은 사랑이요, 끝이 없는 긍휼입니다. 그래서 나의 주어진 삶이 감당이 됩니다. 성도들의 삶은 주어진 것입니다.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만큼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다윗은 시16:7에서 주님께서 날 마다 좋은 생각을 주시며, 밤 마다 나의 마음에 교훈을 주시니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레미야도 오늘 말씀에서 아침 마다 새롭다고 합니다. 저도 아침 마다 새롭습니다.

     몇 일 전에 명동 성당에 간 일이 있습니다. 여전히 시민들의 쉼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과연 여기 저기 조용히 기도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저도 뒤의 한 자리에 앉아 잠시 묵상을 드리고 나왔습니다. 교우여러분! 정말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 새교회당 문도 활짝 열려있습니다. 얼마든지 와서 홀로 하나님 앞에 조용히 머물 수 있습니다. 누가 무어라 하지 않습니다. 이 좋은 공간을 허락하셨는데 그냥 비워 둘건가요? 하나님께서 기도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자기의 의지와 생각과 감정으로 하루를 편협하게 열지 마시고,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 날 마다 새 힘 주시며, 새롭게 하시며 평화와 위로를 베푸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서로같이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7/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553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903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78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65 2005.09.02 16:30
855 회복의 여정에서 감사(추수감사주일, 2021년10월24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11 2021.10.24 07:01
854 그 무렵에(창조절일곱번째주일, 2021년10월1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91 2021.10.16 17:24
853 벽쪽으로 돌아서기(창조절여섯번째주일, 2021년10월1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11 2021.10.09 16:42
852 참 지식에 귀 기울이기(창조절네번째주일, 2021년9월2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57 2021.09.25 20:39
>> 아침 마다 새로운 주님의 긍휼(창조절세번째주일, 2021년9월1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75 2021.09.18 15:24
850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창조절두번째주일, 2021년9월1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48 2021.09.11 15:13
849 기후난민 아브라함(창조절첫번째주일, 2021년9월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55 2021.09.05 06:52
848 누가 사마리아인인가?(성령강림후열네번째주일, 2021년8월2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31 2021.08.28 15:38
847 에바다!(성령강림후열세번째주일, 2021년8월2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91 2021.08.21 15:48
846 죽이지 않으시고, 죽으신 은혜(성령강림후열두번째주일, 2021년8월1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91 2021.08.14 15:00
845 잊지 말아야 할 전제(성령강림후열한번째주일, 2021년8월8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45 2021.08.07 15:28
844 기뻐하며(성령강림후열번째주일, 2021년8월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33 2021.07.31 16:46
843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을 본다(성령강림후아홉번째주일, 2021년7월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87 2021.07.24 16:11
842 신앙은 ‘모두 다’이다(성령강림후여덟번째주일, 2021년7월18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47 2021.07.17 18:14
841 종말의 삶 : 기도, 감사, 기쁨(성령강림후일곱번째주일, 2021년7월1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55 2021.07.11 12:54
840 ‘구하고’, ‘찿다’가 아니라 ‘전하라’(성령강림후여섯번째주일, 2021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68 2021.07.04 12:51
839 가난으로부터 오는 윤리강령(성령강림후다섯번째주일, 2021년6월3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60 2021.06.27 13:02
838 주인의 기쁨에 초청받은 기쁨(성령강림네번째주일, 2021년6월2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83 2021.06.20 10:28
837 교회에 덕을 끼치는 은사를 사모하자(성령강림후세째주일, 2021년6월13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03 2021.06.13 13:51
836 내가 받은 은혜에 동참한 사람들(성령강림후두번째주일, 2021년6월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37 2021.06.05 1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