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하나님의 어린 양(2008년3월16일,종려주일)

하늘기차 | 2008.03.16 13:28 | 조회 2310


하나님의 어린 양

2008년3월16일(종려주일) 사53:7-12;요1:29,30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종려란 나무 가지의 일종인데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오거나, 왕이 행차할 때에 사람들이 흔들고 길에 깔고 하며 환영할 때 사용되는 나뭇가지로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군중들이 성에서 나오기도 하고, 그리고 함께 따라온 무리들이 호산나 하며 예수님을 환영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마침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는 유월절이었는데, 이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이집트로부터의 구원을 기념하는 해방의 축제날인 것입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유월절 절기에 예루살렘은 늘 해방의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누가 불씨만 당기면 당장이라도 해방의 불꽃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그런 분위기 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갈릴리와 이스라엘의 외곽지역에서만 활동하던 예수가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 온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예루살렘의 지도층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 편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억압 속에서 살던 백성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다는 소식을 듣자 모두들 이구 동성으로 무언가 변화가 있겠지 하는 기대감 속에 예수를 기다리며 유월절 절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날 온 예루살렘이 예수를 맞이하였습니다. “호산나, 호산나”, “나를 구원하소서”, “나를 구원하소서”하면서 승리의 축제를 펼쳤습니다.

주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여 성전 앞 이방인의 뜰의 장사치들을 채찍으로 몰아낼 때에 아마도 해방과 승리의 분위기는 그 절정에 달했을 것입니다. 그 때만해도 유대인들은 드디어 우리의 바램이 이루어진다고 모두들 좋아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경비대와 로마의 수비대가 이러한 폭력을 목격하고도 예수를 체포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수에대한 호응과 지지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예루살렘에 모여든 모든 유대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예수의 예루살렘 탈환에대한 소망이 전파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몇 일이 지나도 정복에대한 소식이 없고 얼마 후 예수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자조와 탄식으로 예수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 예수가 섰는데, 유월절에는 총독 임의로 한 사람의 죄수를 풀어줄 권한이 있어서 빌라도 입장에서는 예수에게서 로마를 음해할, 그리고 백성들을 정치적으로 선동할 아무런 단서도 찿지 못하자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주려고 하지만 오히려 백성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군중들은 또 외칩니다. “바라바를 놓아 주라!”, “바라바를 놓아 주라!”합니다. 눅23:19에 보니까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자’라 합니다. 바라바는 일반 흉악범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하여 Rome와 대항하여 싸운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친 지도자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을 깨끗하게 하실 때만해도 예루살렘의 민중들은 드디어 Rome로부터 해방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한 껏 예수에 취했지만 결과는 실망이었습니다. 그런 무기력한 예수를 군중들은 달가와 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의 “호산나”는 이내 식어버리고, 바라바를 찿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운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외칩니다.

“바라바!”, “바라바!” 로마의 힘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예수를 이스라엘은 원치 않았습니다. 로마를 물리칠 큰 힘을 원했습니다. 예수의 이적과 기사를 통해 그 큰 힘을 보았는데, 로마의 힘 앞에 스스로 무릎 꿇는 예수를 이스라엘은 외면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라바!”를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 이 시대에도 여전히 바라바를 외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적인 영향을 받아 체면을 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차를 탈 때에도 이정도는 타야지 합니다. 아니 제가 말씀드리고 십은 것은 예를 들어서 그랜져 같이 대형차나 외제 고급 승용차를 타는 사람이 있으면, 소형차를 타거나, 아니면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맞춤양복이나 명품옷, 밍크코트를 입는 사람이 있으면, 그저 무명이나, 화학섬유로 만든 점퍼를 입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아파트도 50, 60 평에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23평이나 전세, 아니면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교육도 고등학교만 나와도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학원을 나와 박사학위를 따야 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보면 모두 대학을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기존 직장에서 인정해 주고 직원으로 채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서울의 명문대가 아니면 이력서도 어디 변변히 내밀지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시대가 오직 물질 가치만이 있습니다. 예를들어서 대학의 교수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으로 그 귀한 역할을 감당하면 되는데, 정치 일선에 나가기도 하고, 대 기업의 고문으로 앉아있습니다. 경제인은 경제를 열심히 해서 나라 살림을 잘 펴면 죄는데 정치에 입문합니다. 군인, 연예인 까지 모두 한 가지에 올 인 합니다. 왜냐하면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수일을 참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고치는데에는 정말 의사인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토요일 마다 모여 강령탈춤을 배우고 있는데, 가르치는 선생님이 이수자이십니다. 평생 강령탈춤을 끌어 앉고 사는 분이십니다. 그 귀함을 인정하고 그를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부자되십시오한!’하는 돈의 가치 한 가지 만이 존재하는 사회입니다.

오래전에 동네 청년과 이야기 하던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40살까지 일해서 돈벌어 그 후로는 골프치고, 고급차 타며 여행하며 인생을 즐길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지금 이 고생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남 부럽지 않게 떵떵 거리며 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게 그런데 바로 실제 우리 이야기가 입니다.

무언가 물질 가치가 아닌, 생명가치, 나눔의 가치를 실현시켜줄 차선의 인물은 없을까 하는 바램으로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투표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문국현이라는 분이 후보자로 나와 아! 이분이야말로 우리 나라를 참 된 가치의 질서로 인도할 수 있는 분이겠거니 했는데, 결국 그 분을 찍지 않었지만, 몇 일 전에 오마이 뉴스에 바로 그 문국현에대해 ‘문국현 현상’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역시 좌절을 겪은 사람들이 새로운 대안을 찿자고 정치 모임을 연 동영상을 얼핏 본 기억이 납니다.

최근 노동당은 결국 갈라졌고, 각 정단들은 지금 공천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바람! 물질가치가 아닌, 가진 사람이 더 잘 살 수 밖에 없는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 정말 이 시대를 아름다운 가치질서를 세우며 함께 살아갈 수는 있는 그런 능력있는 지도자는 없을까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도 온 백성들이 이러한 꿈을 꾸고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드디어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온대, 입에서 입으로, 소문에서 소문으로 퍼져갑니다. 드디어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가 나타났다! 호산나! 호산나! 합니다. 늑대같은 로마의 빌라도! 예수님도 말씀하셨지만 여우같은 헤롯! 종교적 틀에 안주하여 기득권을 행사하는 가야바 대제사장 같은 종교인들! 이제 모두 몰아내야지! 하며 예수를 환영했고, 왕으로 추대하려 합니다.

그러나 늑대나, 여우, 족제비 같은 기존의 기득권자에 대해 예수는 사자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뒤뚱거리는 나귀를 타고 온 어린 양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도 보면 기존 정치를 완전히 새롭게 갈아 엎을 정도령을 꿈꿉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권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우 여러분! 강부자, 고소영 오린지, 등과 같은 말이 풍기는 물신주의의 천박함, 비아냥, 불신의 상황 속에서는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새로운 사회의 꿈은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제가 국민학교 때부터 들었던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가 말해주는 경제! 오로지 경제! 가치추구 50년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 때 보면 “배고파서 못 살겠다 죽기전에 살길 찿자”, 그리고 새마을 운동 등의 것들 이래로 우리 백성들의 함께 나누고 베푸는 정서를 다 빼앗아 버리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라도 더 벌어 자꾸 자꾸 무엇이든지 쌓아두려는, 요즘 멋있는 말로 재테크에 혈안이 되었고, 이러한 생존경쟁에 모든 국민이 뛰어들어 싸우고, 찢고, 상하고, 슬퍼하고 타락과 폭력과 거짓, 폐륜, 불륜,,,무수히 많은 사회적 현상이 분출하여 백성들의 삶이 거의 질식할 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몇 일 전에는 서울시의 어느 의원이 학원 수업시간을 자율화 하자고 하는 이야기 까지 나왔습니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씨는 그 사람들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하면서 그 규정을 제의한 사람들을 먼저 직장에서 정상 8시간 근무시키고, 그리고 요즈음 몰입 영어교육을 한다는데, 영어학원에 보내 저녁 11시 까지 공부시키고, 그리고 조금 쉬었다가 심야 학원에 보내서 단 1주일만 공부시켜 보라고 신랄하게 비평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에 속이 좀 시원하기는 하더라구요.

교우여러분!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 속에서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이 사회를 살아갈까요? 오늘 본문 말씀 요1:29을 함께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튿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하면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고 합니다.그렇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거역하여 원망하고 시비할 때 불뱀에 물려 모두 죽게 되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구리뱀을 장대에 높이 메 달아, 이 구리뱀을 보면 살 것이라는 말씀에 구리뱀을 보고 살아난 이스라엘처럼 오늘 우리의 상황도 이와 같습니다.

교우여러분! 아마 오늘 우리는 불뱀 보다 더 독한 뱀에 모두들 물린 것 같습니다. 그 독이 얼마나 독한지 좀처럼 우리를 회생시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독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은 이 어린 양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고 합니다.

또 5절에 보면
“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라구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또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의 모습 아닌가요? 60년 이래로 “잘 살아보세!”에 상처받고, 찢긴 우리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의 모습 그대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60년 이 후의 우리 한국인들 만의 모습이겠습니까? 인류 문명 역사 이래로 우리 인류가 입은 상처 우리의 죄로 얼룩진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우리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찔리고, 상처입고, 고난을 당하여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사53:7에 보면
“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신주의, 폭력, 거짓, 억압에의해 받은 상처와 죄로 인한 고통과 굴레를 치료하기 위해 칼을 빼어든 것이 아니라, 묵묵히 그 아픔을 끌어 앉으셨습니다.

가난을 가난 그대로, 육신의 질고를 그 질고 그대로, 교육 받지 못한 모습 그대로, 집 없는자와 같이 방 한 칸 없는 모습 그대로, 힘 없음 그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모습 그대로, 비 정규직 직장인의 모습 그대로 가야바 앞에, 헤롯 앞에, 빌라도 앞에 섰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53:10에 보면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고자 하셨다. 주께서 그를 병들게 하셨다. 그가 그의 영혼을 속죄제물로 ” 드리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하나님은 인간의 죄된 고통, 아픔, 상처를 위해 아들 예수를 그 아픔 그대로 겪게 하셨습니다. 죄 없어서 그 고통, 아픔, 질고를 겪지 않아도 되지만 그대로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이 상함, 이 질고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제물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아픔을 받으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바로 속죄제물로 받으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삶이야 말로 우리를 아니 우리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우리 곁에 있다가 떠나셨습니다. 바로 권정생선생닌 같은 분이십니다. 선생님은 평생 질병을 말없이 안고 살았습니다. 늑막염, 폐결핵, 신장결핵, 방광결핵, 그 병치례 속에 교회의 종지기 역할도 하고, 동화도 쓰면서, 방안에 들락거리는 쥐와 개구리와 벗하며 단칸 방에서 평생을 사셨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가난과 질병에 찌들어 사신 것이 아니라, 가난과 질병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려면 힘이듭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성령을 요청하라 하시고 성령을 보내신다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 끝 날 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만이 참 사랑인 것입니다.

오토 다케라는 일본인이 있는데 이 사람은 팔 다리가 없는 반토막 몸만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분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10 여년 전에 이 오토 다케가 우리나라에 와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 때 우리 나라에도 똑 같이 반토막인 아이가 있었는데 바로 이 구원이라는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가 성장하여 작년에 수능을 보았다고 합니다.그런데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반 토막으로 태어난 아이를 보고 부모가 키울 자신이 없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를 카톨릭의 수사님들이 데려다가 이 만큼 성장 시킨 것입니다. 이 구원 학생의 글을 보면 사춘기의 성장 통, 자신이 불구라는 것에대한 아픔, 어머니가 자기를 버렸다는 것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진정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질고와 가난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질고와 아픔이 인류의 희망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사53:10을 좀 더 표현이 명확한 한글개역으로 보겠습니다. 뒷부분에 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 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바로 어린양의 모습으로 가난과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후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후손들이 바로 오늘 이 시대에 구약의 불뱀 보다 더 독한 물신의 뱀에 물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삶들을 회복시키며, 살리며, 치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씨, 표준 새번역으로 말하자면 그 자손은 누구인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우리이제 주저하지 말고 어린 양을 바라보며 이 불뱀이 만연한 시대에 또한 어린 양의 씨로서 가난과 질병을 품는 삶을 사는, 함께하는 사람들과 있는 것을 나누는 삶을 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1/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633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962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341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934 2005.09.02 16:30
175 [일반] 살리시는 영( 2008년8월 3일, 성령강림주일후열두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333 2008.08.03 16:06
174 [일반] 목자이신 임금(2008년7월27일, 성령강림주일후열한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63 2008.07.27 15:10
173 [일반] 전심으로 향하자(2008년7월20일, 성령강림주일후열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94 2008.07.20 18:43
172 [일반]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시기를(2008년7월13일, 성령강림주일후아홉번 첨부파일 하늘기차 2108 2008.07.13 16:26
171 [일반] 어리석은 것 (2008년7월 6일, 성령강림주일후여덟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886 2008.07.06 16:03
170 [일반] 새롭게 하는 삶( 2008년6월29일, 성령강림주일후일곱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862 2008.06.29 17:32
169 [일반] 지금도 창조하시는 주님(2008년6월22일, 성령강림주일후여섯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65 2008.06.22 14:37
168 피하고, 쫓고, 싸우고, 얻자(2008년6월15일, 성령강림주일후다섯번째 첨부파일 하늘기차 1853 2008.06.15 14:43
167 [일반] 지금 서 있는 은혜의 자리(2008년6월 8일, 성령강림주일후 네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63 2008.06.08 13:44
166 아름다운 교회(2008년6월 1일, 성령강림주일후 세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52 2008.06.01 15:15
165 [일반] 믿음으로 바로 서자(2008년5월17일, 성령강림주일후 첫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00 2008.05.18 15:09
164 [일반] 아름다운 우리 가정(2008년5월11일, 성령강림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70 2008.05.11 13:39
163 [일반] 사랑받으며 자라는 자녀(2008년5월 4일, 어린이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10 2008.05.04 16:21
162 [일반] 참되게 깨달은 그 날 부터(2008년4월27일, 부활여섯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15 2008.04.27 21:19
161 [일반] 주님이 주시는 멍에(2008년4월20일, 부활다섯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457 2008.04.20 14:21
160 [일반] 엠마오로 가는 길(2008년4월 6일, 부활세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89 2008.04.06 17:12
159 [일반]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2008년3월30일, 부활절둘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35 2008.03.30 13:12
158 [일반] 생명의 환희, 부활 (2008년3월23일, 부활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9 2008.03.23 13:40
>> [일반] 하나님의 어린 양(2008년3월16일,종려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11 2008.03.16 13:28
156 [일반] 솟아나는 생명의 샘(2008년3월 9일, 사순절다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34 2008.03.09 1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