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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한알만한 믿음(2008년 11월16일,성령강림주일후스물일곱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8.11.16 14:24 | 조회 2891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

2008년 11월16일(성령강림주일후스물일곱번째주일) 눅17:1-10

한 번은 어느 바리새인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찿아와서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물어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자 청년은 고개를 떨구고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그 때에 ‘어이쿠!’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렇게 훌륭한 바리새인 부자 청년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세상에 구원 받을 사람 한 사람도 없겠네 한 것입니다. 여태 예수님 따라다닌 것이 헛 수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이지 너희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도 역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당황하여 ‘어이쿠’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 1-10절에는 모두 4개의 다른 이야기들로 되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죄짓게 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남을 용서하라는 것, 그리고 겨자씨만한 믿음에대한 예수님의 비유와 끝으로 종이 마땅히 해야할 도리에대한 이야기입니다. 어찌 보면 4개의 이야기가 다 각기 이지만 그러나 조심스럽게 살펴 보면 4가지 이야기가 모두 나름대로의 통일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작은 사람 하나 실족케 하면, 다시 말해서 죄짓게 하면 차라리 자기 목에 연자맷돌을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누가 너희에게 죄를 짓고 나서 찿아와 회개를 하면 일곱 번에 일곱 번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일흔번에 일곱 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말씀을 듣자 제자들이 또 ‘어이쿠’했습니다. 한숨이 터져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십니다. 낮은 자리에 앉으라 하십니다. 고난에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합니다.

그러자 오늘 말씀 6절에 보면 주께서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뽕나무 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도 제자들의 믿음에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시고 변화되어 내려오셨는데, 산 아래에서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쫓아내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을 때 주께서 그 아이로부터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 아이를 귀신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한 상황 속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조용히 찿아와서 자신들이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를 물어봅니다. 그 때에도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에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질문할 때 스스로 믿음이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이 있는 줄로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한 것입니다. 구원에대한 것도 그렇습니다. 오랜 교회 생활을 한 사람들은 스스로 구원에대해 자신있어 합니다. 눅13:22에 보면 예수님께서 좁은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의 시작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나름대로 꽤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생에대해 자신있게 질문을 던졌던 바리새인 부자 청년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구원에대해 자신있어하는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하십니다. 가지고 있는 것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예수님은 스스로 그래도 작은 믿음이나마 있는 줄로 생각하여 믿음을 좀 더 달라고 하는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소위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란 어떤 믿음일까요? 예수님은 눅13:18,19에서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로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겨자씨는 볼펜으로 살짝 찍을 정도로 자그마합니다. 그런데 그 겨자씨가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서 자라면 큰 그늘과 쉼터를 만들어 새들이 와서 깃들고, 또 사람들이 오다 가다 그 그늘 밑에서 쉬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그렇게 커져서 모두에게 자신을 나누어 주고 베푸는 겨자 나무가 그 시작은 극히 작은데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란, 믿음이 있으면 ‘이 뽕나무 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글자 그대로 믿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말기 바랍니다. 다시말해 이것은 과장법입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무가 말라 죽는 것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에게도 역시 믿음에대해 말씀하실 때, 역시 과장법을 써서 ‘이 산더러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해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놀라운 일의 시작은 겨자씨와 같은 작은 믿음에서부터 라는 것입니다. 바로 작은 것, 인정받지 못하는 것, 보잘 것 없는 것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사랑의 수고, 생명의 역동성, 하늘의 평화를 느끼고, 배려하며, 관용하며, 꿈을 꾸는 것,,,귀한것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이것이 바로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일까요?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7-10의 말씀을 보면 종이 양을 치거나, 밭에 나깠다 돌아와서 주인과 함께 한 자리에서 식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주인을 위해 음식 준비를 하여 상을 올리고 주인이 식사를 마칠 때 까지 식사 수종을 듭니다. 주인이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야 먹고 마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고 해서 주인이 종에게 수고했다고 사례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주인이 명령을 다 행한 후에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야말로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스스로 그래도 조금의 신앙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스스로 노력했고 그리고 남을 꽤 용서하기도 하며,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었지만 그러나 자기 힘만 가지고 7번씩 7번 용서하기가 벅차고, 연자 맷돌을 지고 물속에 빠지라는 말씀에 걱정이 들었습니다.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니까 신앙이 적은 것을 한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란 바로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내 자신 내어놓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에서 주인의 식사 시중을 다 들고는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종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 종의 마음이 어떤 마음일까요? 최근 이어령님께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언젠가 그 따님과 그 손자 모두가 꽤 오래 투병 생활을 할 때 너무 안타까워 하와이로 가서 하와이 어느 시골 조그마한 예배당에서 ‘딸을 고쳐주시면 이 마지막 남은 인생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라고 떨리는 두 손 모아 한 밤에 기도했던 그 분이 그 떨림을 가지고 지었던 시가 있어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별 사탕이나 혹은 풍선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는 없습니다.

너무 얇아서 작은 바람에도 찢기고 마는 까닭입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지요. 하나님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다가
풍선을 손에 든 채로 잠든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그리고 저 별을 만드실 때,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고통을 느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코피보다 진한
후회와 발톱 보다도 더 무감각한 망각 속에서
괴로워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떨리는 몸짓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 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가슴 속 암흑의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가장 향기로운 초원에 구름처럼 희고 탐스러운
새끼 양 한마리를 길러
모든 사람이 잠든 틈에 내 가난한 제단을 꾸미겠나이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 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살떨리는 구원의 감격, 죄용서 받은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맛보고 그 구원의 은혜를 마음 깊숙이 잃지 않고 꼭꼭 보물같이 여기는 자의 삶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며, 그래서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며 사는 삶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는데 귀신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 부끄럽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한 상황 속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조용히 찿아와서 자신들이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때에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에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는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에대해 말씀하셨지만 마가복음에서는 아!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하시면서 믿음 없는 우리를 바라보며 안타까워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자극을 받았는지 그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곧 바로 ‘내가 믿습니다’ 합니다. 그러나 금방 마음에 가책을 받았는지 자신에게 믿음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 없다하는 그 아버지의 귀신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조용히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느냐고 물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어라 말씀하셨나요? 그렇습니다. 막9:29 말씀을 보면 "이런 부류는 기도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낼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며 예수님께서 저주했던 무화과 나무가 나올 때 말라있는 것을 본 제자들이 크게 놀라하자 마21:21에 보면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내가 이 무화과나무에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산 더러 '벌떡 일어나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우여러분 기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변화산 사건 후에 귀신 쫓아내는 사건도 그렇고, 예루살렘에서 무화과 나무가 말라 죽는 사건이 있었을 때에도 그렇고 믿음에 관한한 이것은 기도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겨자씨 한알만한’ 이라면 그것은 기도의 씨앗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인이 아이를 나으려면 10개월을 뱃 속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마음 속에 간절한 살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의 씨앗을 품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씨앗을 늘 품고 다닙니다. 10개월 후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듯이 마음 속에 품은 기도의 씨앗들이 때가 되어 밖으로 드러납니다. 사랑의 씨앗, 소망의 씨앗, 기다림의 씨앗, 용서와 관용의 씨앗, 우리의 마음 밭에 이렇게 아름다운 영적 씨앗을 뿌리고 가꾸면 언젠가는 그 믿음의 씨앗, 기도의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어 새들이 와서 깃들기도 하고 사람들이 오고 가며 쉬기도 하고 그 나무에서 난 열매로 즐거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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