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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열심(2008년 10월 5일, 성령강림절후스물두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8.10.12 14:19 | 조회 2129


하나님의 열심
2008년 10월 5일(성령강림절후스물두번째주일) 민25:1-13

기업에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 기업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꽤 노력들을 한다고 합니다. 불량품이 발생한다십으면 리콜을 하여 무료 보상을 하여 기업 이미지를 지킵니다. 대 기업의 로고의 값어치는 천문학적인 경제적 가치가 있어서 그 로고를 통해 그 기업의 이미지를 상징화하고 그 기업의 가치를 선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하나님의 이름이 실추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실추된 이름을 회복시키고자 열심을 다한다고 겔39장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들어오는데 그 때 산헤립은 온갖 비방과 조롱과 멸시로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보내 온 편지를 그대로 들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을 부르짓습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가 그 소식을 듣고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왕하19장에 보면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그리고 구원코자 하는 ‘나 주의 열심이’ 앗수르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시작할까요? 요즈음 수요일에 에스라의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1:1에 보면 “주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자의적이거나, 이기적으로, 억압적으로 하지 않으시고 감동을 통해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러니까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일 하실 때에 하나님은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하는 방법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의 지각을 띠어 넘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바벨론과 앗수르의 폭력정치에 의해 포로로 잡혀온 온 나라의 사람들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이전과는달리 문화정책을 펴서 모든 백성들에게 위화 정책을 펴지만 하나님의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감동시켜서 이루어 진 일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열심에 동역한 비느하스라는 사람에대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아간지 꽤 오래된, 이제 광야 생활에 이력이 난 때, 싯딤이라는 곳에 머물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자와 음행을 합니다. 이것은 모압 사람들이 그들의 신 바알브올에게 제사를 드릴 때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함께 절하고 음식을 나누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알과 아스다롯 신 숭배는 농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서 바알과 아스다롯의 성적 관계를 통해 이러한 풍요가 이루어지는 바, 바알 숭배 의식 속에는 이런 성적 물란과 난잡함이 뒤 따랐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의 여자들과 성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므로 인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혈통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이스라엘이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였습니다. 백성의 두령을 목 메어 달라고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바알브올에게 속한 자를 죽이라 합니다. 이 음행한 일로 인하여 온 백성이 하나님의 회막 앞에 울며 회개할 때에 한 이스라엘 사람이 바알을 섬기는 이방 여자와 함께 천막으로 들어갑니다. 그 때에 비느하스라고 하는 제사장 아론의 손자가 이 두 남녀를 따라 들어가 창으로 두 남녀의 배를 꿰뚫습니다. 그 두 사람이 죽자 염병이 그쳤다고 합니다. 염병으로 죽은자가 24,000이라고 합니다. 비느하스의 행동이 없었다면 아마도 더 많은 사람이, 아니 이스라엘 전체가 광야에서 모두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 말씀 민25:11은 이 비느하스에대해 한글 개역 성경은
“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라고 합니다. 13에서도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2절에 보면 비느하스와 평화의 언약을 맺고자 하는 것을 봅니다.

모두들 하나님께 범죄하여 어쩔줄 모르고 눈물만 흘리고 있을 때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열심히 두 남녀를 심판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고 모두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약에는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바로 세우고 하나님에대한 신앙을 회복시킨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합 왕 때의 엘리야도 바로 바알의 450 거짓 예언자와 싸워 그들을 진멸한 사건이 나오는데, 그 때 불안해 하며 달아나던 에리야가 하나님께 고백하는 말 가운데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라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무엇에 열심합니까? 세상 친구 만나기에, 남의 말 비방하고 흠 잡는 일에, 어두운 일에 절망하기, 거짓된 일 등, 헛된 것에 열심히 붙잡혀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을 위한 열심을 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은 민25:12 말씀 처럼 평화를 주십니다. 세상을 위한 열심히 우리의 마음이 어마나 들 끓으며, 불안해 하며, 원망과 시비와 통한과 고통으로 가득찹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먼저 하나님을 주인의 자리에 다시 놓을 때 우리에게 그 많던 번민은 평화로 바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열심에대한 약속입니다.

신앙의 특징 중에 하나는 열심입니다. 믿는다고 할 때 거기에는 열심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찬양하고, 열심히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집회를 지키려 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전도하고...이렇게 열심으로 하는 것을신앙생활 한다고 합니다. 소위 예수쟁이라는 말은 특히 열심있는 것을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행2:42에 보면 초대교회의 열심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이 모습에대해 43절에 보면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 했다고 합니다. 47에는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샀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렇게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행2:13에 보면 초대교회 교인들이 성령 충만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조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구제하여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호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열심히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열심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딛2:14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속량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큰 은혜 입은 자의 도리는 주의 뜻, 하나님의 나라, 주의 복을 위해 열심을 다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 믿읍시다고 하면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다음으로 미룹니다.“가정에 어려운 일이 있으니 이 문제를 다 해결하고 교회에 나오겠습니다.”,“지금 직장을 쉬고 있어 부끄러운데 직장을 얻은 다음에 나오겠습니다.”,“술 담배 끊고 나오겠습니다.”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서도 똑 같은 이유들이 입에서 나옵니다. 다음에는 꼭 참여하겠습니다, 약속이 있어서, 밭 일이 좀 남아서, 아이 때문에, 학원에 가야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모습이 드믑니다. 오직, 먼저 하나님을 찿는 것, 그것도 열심히 기쁨으로 감사하여 하나님을 힘껏 찿고, 바라고, 구하는 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피곤하고, 일이 있고, 개인 사정으로, 몸 컨디션이 안좋아서,,,등 하나님이 추락해 버렸습니다. 몸 컨디션 안좋은 것과 하나님이 같은 가치, 같은 비중의 것으로, 상대적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여러 가지 살아가는 일 중의 한 가지, 아주 작은 한 가지 가 되어버렸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5교회는 꾸중을 듣고 서머나 교회와 필라델피아 교회는 칭찬을 듣습니다. 계3:7은 필라델피아 교회를 다음과 같이 칭찬합니다.
“네가 힘은 적으나,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2:9에서는 서머나 교회에대해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고 합니다. 아마 그리 교회가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만은 어려움 속에서 그 시험과 핍박을 잘 견디고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그렇게 시간이 많은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시간이 많은 사람 있습니까? 요즈음 아프지 않은 사람 있나요?, 다 아프고, 시간이 없이 바쁘지요. 현대인의 모습아닌가요? 그러니까 그렇게 바쁘고, 몸이 아프기도 하지만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처음자리 밭에서 이 번에 고구마가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땅이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먹거리를 내드라구요. 그러니까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도 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잃, 하나님의 뜻을 위해 바쁜 시간 속에서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것을, 그리고 미치지 못할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바라십니다. 몸이 아파서, 시간이 없어서 가진것 없어서 하나님께 열심하디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아프면 아픈대로, 시간이 없으면 없는대로, 내 모습 그대로 삶의 자리에서 그대로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5병2어의 기적. 동전 2랩돈을 헌금하는 과부의 손길, 물이 포도주로 바뀔 때의 하인들의 순종하는 모습, 그러한 작은 열심히 하나님의 열심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들이는, 하나님을 관여케하는 역사를 이룹니다. 마치 그것은 처음 펌프로 우물을 끌어 올릴 때 사용하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과 같습니다.
고전1:27-28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지혜롭고 부유하고 똑똑하고 잘 생긴 것, 건강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연약하고, 부족한 것을 들어 쓰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요, 지혜요, 경륜입니다.

언젠가 한 번 이야기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전설적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경기도 양주군에 몰골안이라는 마을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오래된 ‘수동교회’가 있습니다. 그 수동교회 안에는 ‘최군명 장로 공로비’가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끕니다. 공로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최군명 장로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의 일입니다. 그 곳에는 교회가 없어 그곳에서 120리, 그러니까 48Km떨어진 서울 정동에 있는 정동제일 감리교회를 다녔다고 합니다. 교회 갈 때면 감자 큰 것 2개를 삶아서 봇짐에 차고 토요일 밤 9시 출발하여 자정 12시에 서울과 경기도 경계 언덕에서 쉬면서 감자 하난 먹소, 그리고 서울로 들어가 정동교회에 도착하여 나머지 한 개로 아침을 먹고 그리고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배를 마치면 다시 120리 길을 돌아서 걸어 갔다고 합니다. 그 교회 다니는 일을 매 주 한 번도 빠짐없이 3년 동안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의 열심에 감동한 선교사가 그 지역에 땅을 사서 교회를 세운 것이 지금의 ‘수동교회’라고 합니다.

이 최군명 장로님의 열심은 얼마나 약하며 어리석습니까? 그리고 가난합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얼마나 작은 모습입니까? 꾸중을 듣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면 차지도, 덥지도 아니하며...너를 토하여 내 치리라고 합니다. 스스로 부유하다고 하지만 곤고하며 가련하고, 가난하다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이 처음 예수를 믿고 사모하며 갈급하여 구하던 하나님의 열심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과 바꾸었습니까? 다시 가서 물르시기 바랍니다. 다시 가서 찿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꾸짖으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계3:19에 보면
“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여라.”고 합니다. 먼저 첫 사랑의 열심을 회복하려면 하나님 앞에 열심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필라델피아 교회를 칭찬하시면서 그 교회 앞에 문 하나를 열어 두었는데 그 문을 닫을 자가 없다고 합니다.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다하는 주의 백성에게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는 일,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열심히 이루십니다. 주의 백성이 열심히 하든, 열심히 하지 않든 하나님께서는 기필코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어둠움 속에서 빛을 내십니다. 이 열심을 당할 자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변화시키시며, 새롭게 하시며, 회복케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은 자기의 외 아들을 내어 놓으시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순전하게, 그렇게 신실하게, 치열하게, 그 깊은 사랑으로 인류를 회복시키고자 하는데, 자녀된 자로서 어찌 팔장을 끼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 바라보듯이 주의 열심을 바라만 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열심 앞에서 바라만 보는 모습은 그 자체가 저주요, 불행이요,멸망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우리 교회 교인들의 삶과 신앙을 회복시키시며, 변화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마을, 이 나라, 전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든, 열심하지 않든 하나님의 열심은 하나님의 일을 기필코 이루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열심을 사용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비느하스와 같은 엘리야와 같은, 아니 동전 두렙돈의 과부 같이, 5병2어의 소년과 같이, 작고 가난하고 약한 열심으로 하나님의 열심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그래서 여러분의 앞 길에 이 세상 어떤 힘과 권세와 공중 권세도 닫을 수 없는 여러분 앞에 열려있는 열심의 문을 통해 들고 나며 삶을 이끌어 비느하스의 열심을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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