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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교회의 현상(대강절첫째주, 2022년11월27일)

하늘기차 | 2022.11.27 13:31 | 조회 397


                           라오디게아교회의 현상

20221120(대강절첫째주일)                                                                  3:14-22

   김경숙 성도님, 규원할머니를 통해 석운동 한 빵집에서 적지 않은 빵을 교회에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는데, 아마도 가난한 이웃들과의 나눔을 전제하지 않았겠나 싶은데, 그래서 우리 지역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였습니다. 2, 30여년 전 고기리에는 어려운 분들이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모두 외부로 나갔다고 아니, 땅도, 집도 없기 때문에 밀려나간 것입니다. 당시에 고기리에서 함께 살았던 여러분들이 기억납니다. 정신적 질환을 겪었던 재혁님 이모, 그리고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 우물을 판다고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로 둥굴게 아마도 3길은 족히 파내려가 여전히 아래에서 땅을 긁어내는 모습. 소를 안 방에서 키우던 모습. 어떤 청년은 술 한 잔 하면 온통 가축똥을 옷에 묻힌채 사택문을 노크도 없이 쾅 하고 밀고 들어 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 참 하다가 가기도 하고, 장투리 방앗간에서 살다가 방아간이 폐쇄되면서 집이 없어져 대장동 교회난하우스 관리사를 내어주어 살게하다가, 거기도 철거 명령이 떨어져 밤토실 개울 바로 건너편에 이태훈집사님과 하우스집 한 채를 지었던 일, 결국 그 자리도 주인이 내어달라고 하여, 어떻게 하나 하다가 다행히 용인시에서 장애인 임대주택시설신청 기회가 생겨 수지로 이사가던 일, 어느 분 집 청소를 해 주는데 냉장고에서 죽은 쥐가 나오던 일, 세탁소 하시던 여자분인데 아저씨가 통장을 가지고 집을 나갔다고 해서 강원도 삼척 카지노를 새벽에 찿아간 일, 장례를 치르다가 멱살을 잡히던 일, 홀로 움막에 살던 할아버지, 역시 고기초 옆 움막에 살던 상이군인 아저씨, , ,저수지 아래 움막에 살던 장애를 가진 아저씨에게 목욕을 시켜드리려고 성남시에 목욕차를 요청하여 교회 마당에서 목욕을 시켜드리고, 보일러를 고쳐드리던 일. . . 어느날은 동네분들이 술먹다 칼부리림이 나서, 일하다 팔이 부러져서, 그나마 제가 타고 다니던 프라이드를 타고 수원 응급실로 향하던 일. 한 가정, 한 가정 삶의 이야기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그 때 빵을 준다고 하였다면 냉큼 받았을 것입니다. 느티나무 도서관과함께 고운 아이들이라는 결손아이들과 함께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얼마전에 종환, 종필 형제 중에 동생 종환이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형제를 데리고 포천 청소년 공동체, 강화도 카톨릭 공동체에 입소시키려고 노심초사했던 일, 거기서 사고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르기도 하고, 한 번은 겨울에 추울까 보아 전기 담요를 사가지고 방에 들어가니 글쎄 전기온풍기가 이불 위에 벌거케 달구어져 있는데. 아이는 새상 모르게 자고 있어 깜짝 놀랐던 일, 한 아이의 집에 들어가니 방에 온통 생선 통조림이 널부러져 있던 일. . .근데 한 아이가 서울대 문리학과에 입학 박사학위를 딴 일. . . 저는 이 번 수요성서연구하며 전도서를 통해, 살아가며 땀흘리는 수고를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는 헛됨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것은 헛됨이 아니고 나눔이며, 그 수고의 보람은 수고자의 몫이라는 말씀에 감사하였습니다. 홀로 세상에 남겨진 아이가 시민들의 함께하는 수고를 통해 성장하여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땀흘리는 자의 보람이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존감을 더해 줍니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2, 30 여년 전에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삶을 나눌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노동자분들이 계시지만, 그 당시의 절대적 빈곤은 아닌데, 그래서 지금은 절대빈곤의 문제가 해결되니 각자 자기 삶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어렵고 배고풀 때는 딱히 관심을 갖지 않아도, 교회 전체가 그리고 마을이 자연스럽게 한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는 삶의 이야기들이 넘쳐났는데, 지금은 이야기가 사라졌습니다. 이야기는 생명의 담론인데, 지금은 먹는 것, 여행가는 것, 어디 가면 무엇이 맛있더라는 것 만 공허하게 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어느 가정에 어떤 어려움과 아픔이 있고, 어떤 힘든 일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관심과 배려가 희미해지면서 관계의 끈을 놓쳐버린 것은 아닌지요. 교회 역시도 무관하며 개별적입니다. 먹는, 그리고 여행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삶, 그러니까 생명의 이야기를 만들고 창조해 내는 것이 교회입니다.그래서 구역모임이 중요한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이지 못했지만, 이제 내 년 부터는 구역모임을 시작해야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잘 모이는 구역은 성도분 하나 하나가 교회에 소속감, 한 가족이라는, 그래서 소외됨이 없는 교회의 지체임을 느끼게 하는 것을 봅니다. 구역은 지역의 작은 고기교회입니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 전, 분기 마다, 더 나아가 잘되면 격 월로 주일에 교회당이 아니라 공식적인 예배를 구역에서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역식구들이 지역과 구역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 서로가 하나가 되고, 구역원들과 그 구역의 지역일들을 놓고 같이 기도하고 지역과 나누는 작은 고기교회로 세워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고기교회는 중앙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교회의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지역교회로서의 작은 구역교회가 시작되어야 하겠다는 구상이 요즈음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계시록은 미래에 이루어질 종말의 사건도,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어떤 특정한 시대의 일들을 규정하는 선과 악의 투쟁을 그린 것도 아니며, 예수의 시대로부터 주님이 재림하실 날 까지의 모든 역사를 마치 측량자와 같이 계시록으로 시대를 재어보는 듯한 관점 모두 합당하지 않습니다. 계시록은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 하늘의 진리를 밝힙니다. 그러나 앞 날을 예견하는 그런 점쟁이가 아니라, 우리의 눈이 밝아져 현실의 역사 속에 숨어있는 진리를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묵시적 언어로 이야기하는데, 지구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물든, 특히 국가 폭력에 물든 세상의 종말을 선언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 완성, 그럼으로 믿음을 지킨 자들의 승리를 기뻐합니다. 소망하며, 고난의 시대를 관통합니다.

   그리이스가 지중해의 패권을 잡았을 당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이름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인간의 존엄과 영광을 드러내는 최상의 존재로, 인간이 우주의 중심임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우주의 중심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따르는데, 이스라엘 점령 당시 모세의 율법을 읽지 못하게 한다거나, 성전에 돼지 때를 집어넣었으며, 황제의 기를 세우고, 황제의 초상이 각인된 동전을 통용하고, 할례를 금하는 박해를 당하자, 이스라엘은 각 종파에 따라 바리새인들은 저항을, 특히 사카리당 같은 집단은 무력항쟁을, 기득권자글인 사두개인들은 타협을, 그러나 에세네파는 사해북동쪽에 비교적 비옥한 땅에 은둔하며, 소위 사해 두루마리를 기록하기도 하였는데, 그 보다 더 지독한 은둔을 한 쿰란공동체는 이 세상을 사탄이 직접 통치하는 시대로 규정을 하고, 세상 즐거움, 사유재산, 결혼을 포기하고 살아가면서 에녹, 12족장들의 이야기, 다니엘 등 묵시문학을 탄생시킵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 때에 기독교를 핍박하기 시작할 때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묵시문학적 전통에 바탕을 두고 기록한 서신입니다. 요한이 체포당한 것은 성도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교회는 흩어지기 시작하였고, 성도들의 신앙이 흔들릴 때에, 요한은 소아시아의 7교회에 이 세상 주관자는 로마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 시련과 박해는 잠시이며,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들의 신앙을 점금 같이 단련할 것이며, 결국 로마는 망한다고 하는 것을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묵시문학의 전통을 따라 상징, 은유, 숫자를 사용해 기록을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 중에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부자가 아니라 가난하고 비참하다. 벌거벗었으니 흰 옷을 사서 입고, 보지 못하니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책망을 합니다.

   7 교회 중에 책망을 받지 않은 교회가 2교회인데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피아 교회입니다. 그 중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가난으로 힘들지만 부요하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빌라델피아 교회 역시 힘은 적지만 말씀을 지키며 인내하였으니 박해 속에서도 굳굳히 복음의 문을 하나 열어두겠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칭찬을 받은 두 교회 모두 공히 가난하고 약합니다. 사도 바울이 누누히 말하고 있지만 약한 것이 강한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풍요로운 것입니다. 없지만 있고, 죽었지만 산 것입니다. 신앙은 역설입니다. 교우여러분! 지금 너무 힘들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로 우울하신가요. 시험입니다. 하나님 시험은 우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전에 가보지 않았던 길, 예비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새 힘을 주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돕는자를 보내 주십니다. 계시록은 마지막에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여기 이 시대에 그 완성의 비전이 남은자들을 통해 이루어질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러한 박해와 가난, 시험은 교회를 하나되게 하고, 말씀이외에는 달리 살기 어려워 믿음지키기에는 더 조건이 좋지않나 생각해 봅니다. 기도하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도하고, 말씀 읽으라 하지 않아도 살기위해 읽고, 모이라고 하지 않아도, 새로워지고 힘 얻고 위로하기 위해 매일 모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앙도, 교회도 나의 개별적인 삶의 여러 것 중에 하나가 되고 자기 개인에 몰입이 되어 하나님 신앙이 선택지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절대적이었던 교회와 신앙의 기준이 상대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현상은 더 심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시대의 흐름이요, 세상의 모습인데,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덥지도 차겁지도 않은, 하나님이 우리를 뱉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맛있고 부드러운 먹걸이에 익숙해져 복음이 이제는 입맛에 와 닿지 않아 우리가 복음을 뱉어버리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절박한 위기 때에 이 세상의 흐름 속에서 세상의 가치가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지를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 번째주일입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빛, 세상의 빛이 아니라 예수 탄생 때에 마굿간을 비친 별, 하늘의 별을 쫓는 동방 박사, 목동들 처럼 세상 나라의 가치를 0으로 보며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쫓는 우리서로같이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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