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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2010년 1월10일, 주현절후첫째주일)

하늘기차 | 2010.01.10 15:19 | 조회 1837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2010년 1월10일(주현절후첫째주일) 고후5:17-21

5년 전 수요일에 벧엘성경공부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온 교우가 열심을 냈던 기억이 납니다. 2편인 생활편을 시작해야 할텐데, 늘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그 때 이태훈 집사님이 반장님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것만 기억나면 안될 것 같아서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그 때 벧엘공부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는지요? 복의근원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반대를 생각해 보면 복을 누리며 살지 못하는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복되게 살지 못할까요? 무엇이 참된 복이며 행복일까요?

시1편의 주제도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는데,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있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요? 그 시대가 악하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활개를 치고, 인정을 받고, 겉으로 볼 때 잘 사는 것 같은 악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의 말씀을 보더라도 그 배경으로 공허와 어두움, 그리고 무질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악함이 창세기 기록의 배경으로 깔려있습니다. 그런데 이 악하다고 하는 것을 선과 악으로 이원론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소위 악하다는 것에 사실은 하나님의 선함이 있습니다. 지금 악의 기운이 승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여전히 그 안에 살아 있고, 그 기운, 그 생명력이 넘친다는 것을 감지한다면 그것이 복되며, 그리고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 것은 악하고, 이 것은 선하다'라고 구별 지으며 살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음식, 공기, 물, 세상 가치 . . . 사실 그 모든 것들을 누리며 나쁜 공기, 나쁜 물, 나쁜 음식, 나쁜 정보와 지식과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나쁜 것에 젖어서 살고 있지요. 성경은 그 악함, 나쁜 것에대해 우상숭배, 거짓, , , 등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특히 지금 있는 것을 넘어가는 욕망, 욕심에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창세기 에덴 동산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 악함을 볼 수 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그 선악과를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뱀이 말하는 죽지 않는 삶은 끝없는 욕망의 삶인 것입니다. 다 채워도 만족하지 못하는 무제한의 욕망의 덫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까지 올라가는 욕망이지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욕망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하는데, 따서 먹는 욕망말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의 유한함, 제한됨, 벌거벗음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존재자체가 구조적으로 유한합니다. 그것이 아무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한하며, 제한되어 있으며, 연약하지만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충만하다', '넘친다'는 말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으로 충만하다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충만할 수 있을까요?

지난 주에 사울 왕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울 왕이 하나님의 감동을 먹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감동을 먹을 수 있을까요? 삼상10장에서 사울이 사무엘에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과정을 보면 사울이 예언자들과 함께하며 성령의 감동을 받을 것에대해 이야기 하면서 전혀 딴 사람으로 변할 터인데 그러한 일들이 나타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충만하다', '넘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수요일 동안 에스겔서를 보았는데,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의해 멸망할 때에 하나님께서 환상가운데에서 예루살렘을 떠나는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예루살렘 성전이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난다 할지라도 그 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저 썩어 없어질 것들만 남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하고 부족하고, 힘이 없더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여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중매체, 물질주의를 대변하는 T.V, 인터넷 매체들은 구조적으로 당연한 우리들의 모습, 즉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으며, 부족함을 심리적인 결핍, 심리적으로 부족하게 느끼게 합니다. T.V, 냉장고, 차, 집, 옷 등, 의약품, 병원, , , 그리고 공교육에서 벌어지는 1등 거품, , , 또 키 크지 않으면, 얼굴이 못 생겨도 , , , 안된다는 있을 수 없는 병리적 현상들이 이 사회 전체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또 ‘생각대로 T’, 즉 생각한대로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정말 무섭고도 큰일 날 소리인데, 이러한 욕망의 메시지들이 시도 때도 없이 무작위로 우리들의 삶 한 가운데로 날아옵니다. 그야말로 요세 박성광의 게그에서 “나라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성도들은 어떤 삶을 살아 내야 할 까라는 것입니다. 뭔가 채워지지 않은, 난 더 행복할 수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거야 하는 피해의식이 우리 사회 저변에 깊숙이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비록 부족하고, 한정적이지만 그래도 행복을 위한 모든 것은 다 구비되어 있는데, 이러한 욕구를 부추기고 자극하는 메시지에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자기 자신의 삶에대해 자신감을 잃고, 늘 부족하여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메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들려오는 전혀 새로운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 갔을 때입니다.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라"는 권유에 예수님은 일꾼들에게 물항아리 여섯이 있는 것을 보시고 그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라 하십니다. 잔치를 맡은 자는 그 포도주 맛을 보고 신랑에게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 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덜 좋은 것을 내어 놓는데, 당신은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두었다고 칭찬을 합니다. 이 포도주가 어디에서 났을까요?

잔치가 이제 달아 오르려 하는데 포도주가 떨어져 파장이 되려고 합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난감할 것입니다. 이 상황은 바로 우리의 삶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축제가 있고,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넘쳐야 하는데 이런 잔치가 시작되자 마자 중간에 끝 날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혹 이렇게 시작 하자 마자 바로 식어버린 잔치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파장이 되어버릴 상황에 처한 잔치집에 주님이 찿아 오신 것입니다. 그 잔치에 기꺼이 함께하셔서 즐기십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하십니다. 그리고는 "가져다 주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이 전에 맛 보지 못한 향과 맛과 색이 이렇게 좋은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변화된 것입니다. 잔치가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변화되지 않으면, 즉 새로워지지 않으면 조금씩 우리는 구습과 관행에 붙들리기 십상입니다. 또한 우리 본래의 모습인 유한, 연약, 부족함이 결핍으로, 심리적인 부족함으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변화되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뀐 것입니다. 저는 늘 이야기 합니다. 돌을 떡이 되라 하지 말고, 물이 포도주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이 떡이되라 하는 것은 에덴 동산의 마귀가 다시 예수님에게 나타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라 한 것과 똑같은 시험을 예수님에게 행한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을 ‘생각대로’ 무한하게 키우는 유혹인 것입니다.

물이 어떻게 포도주가 될 수 있었을까요? 우선 주님이 그 곳에 찿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삶은 잔치입니다. 아니 잔치여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잔치집에 물항아리가 6개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결예식을 위한 유대교의 규례를 상징하는데, 이 유대교의 규례가 잔치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가정에도 이러한 항아리가 6개는 더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지탱하는 것들 말입니다. 직업, 부부관계, 아이들 교육, 교회생활, 가족, 가까운 이웃, 취미 생활, 봉사 , , , 그러나 그것은 금방 식어지기 일 수 인 것입니다. 당연히 유한하며, 부족하며, 연약합니다. 이러한 항아리들은 쉽게 깨질 수가 있고, 금방 비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공허해 져서 무언가 채우려고 하고, 그러다 보면 엉뚱한 것들이 우리 삶을 주관하며 지배할 수가 있습니다. 이기적이고도 개인적인 욕심으로 ‘생각대로’ 삶이 채워져 간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잔치의 흥겨움, 생명력, 관용과 하나됨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일상에 꼭 없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근간이 되는 항아리들 사이에 주님이 찿아 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 항아리에 물이 가득 채워지고 그리고 그 물이 포도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고후5:17, 18말씀을 통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새 것이 어디에서 났다구요?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마음의 감동을 통해 새로워 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롭다는 것, 또는 새 것은 없다 했습니다. 새 것이라 하는 순간 새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 마음, 새 사람, 새 삶이라고 하는 것은 '회복이다'라고 했습니다. 좋은 것, 선 한 것에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지요, 새 학년이 되어 무언가 새 마음을 가지고 계획을 세웠는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처음의 계획되로 되지 않을 때, 그 처음 것을 다시 회복하는 것 말입니다. 초발심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결혼 잔치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다시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날마다 새로워질까요? 오늘 결혼잔치에서 새 포도주가 어디에서 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일꾼들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도 안되고, 황당하지만 일꾼들이 말씀 앞에 자기를 낮추었습니다. 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 기적, 생명의 축제가 살아난 것입니다. 이 감동은 그렇게 순종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울왕의 영적 감동도 자기를 낮추는 것에서부터 왔습니다.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는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에 나가는 사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떠한 것도 살려두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대에, 아니 어느 시대에나 전쟁의 목적은 전리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도 살려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전쟁입니다. 세속의 가치나 목적과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도 살려두지 말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믿고따르라는 말씀이었던것입니다. 그것은 전리품을 포기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전쟁의 동력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차마 그 명령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삼15:24에 보면 자기가 거느린 부하가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전쟁에 이겼는데 전리품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군인들에게서 불만과 폭동을 유발시킬 뿐 아니라, 그나라 다른 11지파의 호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도 흔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간과해 버렸습니다. 전쟁이 하나님에게 속하여 있다는 것과 자신의 모든 조건이 왕이되기에는 부족하였지만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잃어버린것입니다. 결국 사울은 전리품을 남겼고, 사무엘이 살아있는 것들이 있는 것을 묻자, 하나님께 드릴 최고의 제물을남겨두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한 사울에게 사무엘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삼상15:17절 말씀입니다.
“임금님이 스스로를 하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던 그무렵에, 주님께서 임금님께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이 되신 것이 아닙니까?”하고 묻습니다.

스스로 하찮다고 하는 것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기 낮춤이요, 겸손이요, 순종인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당시 지중해 권에서 최고의 권력자였음에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왔다고 하면서 "하늘의 주 하나님이 나에게 이 땅에 있는 모든 나라를 주셔서 다스리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백성들을 자유롭게 자기의 나라로 모두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이것은 회복입니다. 자유입니다. 평화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로부터 났으며, 바로 겸손, 자기 낮춤의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부터 난 것을 따르려면, 그 은혜를 맛 보려면 하나님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후5:18은 이 새 것, 이 변화에대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라고 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그 맛과 색과 향이 다른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포도주가 하나님에게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일꾼들은 알고있습니다. 이 맛갈스러운 포도주를 나누고자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이 곳에 초대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여, 우리의 본래의 연약하고, 약하며 부족함이 날마다 하나님에게서부터 난 것으로 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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