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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2012년 1월 8일, 주현절후첫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2.01.08 15:09 | 조회 2427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
2012년 1월 8일(주현절후첫번째주일) 벧전2:9-12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대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는가 하면 불쌍히여긴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말과 불쌍히여긴다는 말과는 말의 느낌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왜 불쌍히 여긴다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언제 불쌍하다는 생각이드나요? 작년 일본에 불어닥친 쓰나미, 그리고 원전붕괘로 일본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할 때, 우리는 일본 사람들을 안타까운 모습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어떻게 도와줄 수는 없을까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바로 그 마음입니다.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원수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면 나와 거리가 멀지만 그렇게 위험에 몰린, 절대절명의 상황에 처할 때 우리는 어떤 정황 다 무시해 버리고 불쌍히 여깁니다. 사랑입니다. 이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야말로 원수 사이에도, 미움과 싸움 속에서도 적에대해서도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게합니다. 그래서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 진짜 사랑인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눈 녹듯이 녹게합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며 불쌍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절대절명의 위태로움에 놓여있다는 것 아닌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5병2어의 기적으로 5,000명을 먹이시기 직전에 예수님에게 찿아온 사람들을 보고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말은 바로 불쌍히 여김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불쌍한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스스로,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나에대해 능력있고, 재력있고 하며 나의 많은 것을 인정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불쌍히 바라보시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 불쌍히 여김을 받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인 것입니다.

최근에 희망버스의 주인공인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읽었습니다. 그는 도박꾼 아버지, 마을 읍네에서 국밥장사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노동을 하며, 그 노동과 노동자들에대한 멸시, 천대를 인식하면서 배우지 못하였지만 자신 스스로에대한 자기 정체의 소중함, 노동의 소중함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글쓰며 노동하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삶과 문학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후에 결혼도 해서 한 가정을 꾸려가는데, 시인의 마음이 참 여리고, 사물을 보는 눈이 사랑과 연민으로 넘친다는 것입니다.

나이 스물 한 살 어린 나이에 목수일을 접고 배관공으로 나섰을 때 하루는 아버지를 도와 어머니 가게 좁은 부엌에 접시나 컵을 올려 놓을 선반을 아버지와 함께 만드는데, 그 아버지에대한 회상이 평생 노름판을 기웃거리면서 가정불화를 자초하며 퇴락한 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질 낮은 성공신화와 처세술, 그리고 작은 이득에 연연하는 속 좁은 이기주의라고 정의를 하는데, 아버지와 선반을 하나 짜다가 무심코 아버지가 있는 뒤를 돌아보며 부지불식간에 ‘에, 형님 거기 투 인치 못 좀 주쇼’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못질을 하다가 아차 싶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개망난이라 하더라도 ‘아버지’를 비속하게 ‘형님’이라 부른 것입니다. 노가다판에서 늘 부르던 호칭에 익숙해 있다가 무심코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하늘이 노래지고, 식은 땀이 흐르는 듯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만약 아버지가 퇴락한 장사치가 아니었다면, 부자거나 명예가 있거나 높은 도덕과 지성을 겸비했더라면, 내가 아버지를 그렇게 부를 수 있었을까 하면서 그토록 미워만 했던 아버지의 삶이 측은하게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계속 작업을 하면서 마침 해가지며 붉은 노을에 자신의 낯 붉어짐의 쑥스러움이 노을 탓이라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를 용서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니 사랑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권위에 대한 사랑이 아닌,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벗 같은 자리에 퇴락한 아버지가 따뜻하게 다가와 앉아 있었고, 누구보다도 존경스러웠다고 기술합니다. 그 후 설 날에 아버지를 뵈었는데, 여전히 자식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 시장의 잇속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몫을 넓혀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자신이 잘못 살아 아들이 노동시를 쓰고 노동운동을 한다고 못내 측은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내가 진정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은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어 가능치도 않을 아버지의 세속적인 성공이 아니라, 아버지의 삶의 문화가 좀 더 인간적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는 것. 돈도 명예도 가질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본질적인 인간애, 자연애로 충만한 삶이라는 것. 아버지는 내게 힘겨운 가난과 노동 밖에 물려주지 못했다고 자책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속에서 참다운 삶의 연대와 사랑이 무엇인지를, 기다림이, 이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모두 살 수 있는 길은 한 가지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저는 이 책<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읽으며 무뎌진 제 마음을 추수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시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막 노동의 현장으로 내 몰렸습니다. 목수, 시멘트, 벽돌 나르고, 배관용접 등 잡다한 건축일을 배우며 건축노동자로 살며 어떤 때는 건축하는 건물에 스츠로폴을 깔고 잠을 자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함께 일하는 사람의 월세 방에 같이 기숙하기도 하면서 아침 거르고 참을 빵 우유 보다는 국물이 있는 라면을 원하며, 왜냐하면 빵 우유가지고는 오전 일을 체력적으로 버티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노동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그 면모를 섬세하게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의 책 전체에 흐르는 마음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출19:6에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시내산에 머물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 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400년 동안이나 이집트라는 거대한 제국 밑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들입니다. 사제랄지, 왕이랄지, 거룩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무리들은 가난하고 천박하고 힘없고 정처없이 갈 곳 없는 그러한 사람들의 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보다 강하고, 고상한, 품위가 있는 나라를 택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않고 노예, 종을 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았을까요? 노예는 어떻게 살아가나요?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일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오직 노역을 위해 살아갑니다. 아무런 권리도, 스스로의 정체성도 없이 살아갑니다. 자신의 뜻이나 생각 없이, 이리하라 하면 이리하고, 저리하라 하면 저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노예를 부르신 것입니다.

앞에서 송경동 시인에대해 이야기하였지만 그 분은 지금 부산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그의 책 서언은 아마도 그 구치소에서 쓴 것 같은데, 지금 자기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이 철장 몇 가닥이 아니라고 하면서 지금 자기가 갇혀있는 감옥은 ‘나’라는 지지리도 못난 에고의 감옥, ‘너’라는 집착의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현상 앞에서 늘 본질적인 물음들을 후퇴시키는 삶의 보수주의이고, 내 안에 도사린 어떤 역사와 진보에대한 패배의식이다. 결코 깨끗하게 털어내버리지 못하고 음습한 내 영혼이 기숙처로 삼는 이 뿌리 깊은 자본의 문화, 가부장제의 문화이다. . . 나는 이 일상의 감옥을 부숴야 한다. 내 의식을 꽁꽁 묶어두고 있는 이 무지를, 게으름을, 관습적 틀을, 두려움을 깨부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순해지고 편해진다. 그래서 구속이다, 아니다로 그들이 묶을 수 있는 것은 미안하지만 단 한 가지도 없다고 합니다.

시인은 지금 진정한 감옥은 자기 자신이라고 하면서 자본의 문화, 가부장적 권위의 문화에서 벗어나야한다고 합니다. 자본의 문화가 무엇인가요? 바로 우상입니다. 이 자본을 중심으로 사법, 행정, 입법, 언론이 똘돌 뭉쳐 우리 모두를 질식시키는 것이고, 그 자본의 틀 속에서 우리를 무릎꿇게 합니다. 가장 삶의 피부로 와 닿는 아이들 교육의 무너짐,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죽음의 일들입니다. 어느 기독교신문은 교육부가는 학생들을 인적자원으로 분류시켰으며 학교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여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일을 제일로 여기게 됐고, 가정은 학교의 흐름에 발맞추는 바람에 가장 중요한 인성교육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은 “생명의 가치와 공동체 정신을 빠트린 채 시행하는 교육은 한계가 있고, 인간이 악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을 반복할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대구 사건에서 가해 학생들이 피해 학생에게 ‘게임아이템을 얻어야 하니까 쉬지 말고 게임하라’고 한 것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한 상대를 괴롭히고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이 은영 중 자리 잡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은연 중에 아이들은 자본의 생존경쟁의 틀 속에 갇혀서 살고 있습니다. 한 교사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물질이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친구를 ‘수단이나 도구’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학생들을 목격할 때마다 양육강식의 사회를 보는 것 같아 처참하다”고 합니다. 이 모든 틀이 자본이라는 거대한 물질우상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가정의 꿈이 아파트 장만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문제는 아름다운 가정, 보금자리의 개념이 아니라, 값이 올라 대박을 터트리는, 더 늦기 전에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하는 허망한 사회 구조의 틀 속에 우리 모두 노출되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청년들의 실업, 끊임없이 떠오르는 직장을 떠나야한다는 망령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사회의 가장 큰 아픔이 되고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도 결국 자본우상의 문제입니다. 건축, 개발국가라는 것도 이윤창출의 자본논리에서부터입니다.

송경동시인은 “현대 민주주의가 그나마 실험된게 몇백년인데 계속 이런 내용적 봉건영주들의 시대를 가만히 놔둘 거냐고. . .이런 세상을 놔두고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더하기 빼기의 단순 정의를 가르치고 도덕을 얘기할 수 거냐고 사람들이 마구 얘기하면 좋겠다. . . 아, 이런 좋은 꿈들을 꾸다 보니 갇혀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는다는 이 시대의 감옥에서, 모든 억압과 좌절의 감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나오는 꿈을 꿔본다.”고 합니다.

이 시인이 알려진 것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로 인해 85호 타워크레인에 오른 김진숙님을 위한 희망 버스를 기획했습니다. 결국 그의 희망버스는 벼랑 끝에 서 있던 김진숙님을 걸어 내려오게 하였고, 그는 그 대신 감옥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지난 노동자의 삶을 보면 그냥 노동자가 아니라 오늘 이 시대의 아픔, 고통, 폭력, 죽임의 힘이 드리워진 곳에서 빛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희망을 잃지않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늘 함께하며, 시를 썼습니다. 평택 대추리, 시청의 재능교육, 용산의 철거현장, 평택 쌍용자동차, 충남 서산 동희 오토. . . 송시인이 희망버스를 생각한 것은 그냥 한 순간에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이미 송시인은 그 전부터 쥐 똥이 나오는 도시락, 쥐들과 벼룩이 새카맣게 달라붙는 냄새나는 햍볕들지않는 숙소, 용접 불동이 튀어 타들어간 작업복을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 누더기가 된 작업복을 입고 다니며, 한 겨울에도 찬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는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정상적인 휴식 등 아주 순박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데 그것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묵살해 버리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에 가슴 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이미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가 목숨을 잃은 상황이었는데, 김진숙님이 다시 85호 크레인 위로 올라간 것입니다.

지금 거대한 자본의 힘과 폭력 앞에 가장 거칠게 노출된 자리는 철거민, 비정규직 노동자들, 일용직 노무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우리 아이들이 늘 지내는 교육현장인 학교, 영세 자영업자들. . .입니다. 이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정말 열악합니다. 비정규직이 지금 800만이 넘어선다고 합니다. 그 가족이 3 딸려있다고 하면 2,000여만명의 사람들이 지금 벼랑 끝에 놓여져 있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서로에 사정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서산에는 기아자동차의 하청 기업인 ‘동희 모터’라는 중소기업이 있습니다. 이 작은 회사를 지탱하는 것은 850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고 합니다. ‘굿모닝’이라는 기아차는 순전히 이 회사에서 만들어지는데, 연간 이들에 의해 15만대가 생산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작업 현황은 너무나도 열악합니다. 아무도 그들의 처우개선에 관심이 없어 늘 고통스럽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도에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규직으로 돌려달라는 요구조건을 위해 서울 페스티발 축제가 열리는 5월에 조명탑 위로 여직원 둘이 죽음을 각오하고 올라간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금 노동의 현실은 너무 열악하고, 조악합니다.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 모는 상황입니다.

송시인의 이야기로는 김주익님이 죽은 후 김진숙님은 지난 8년 동안 한 겨울 한 번도 불을 때지 않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8년 만에 방에 불을 넣고, 함께 거쳐하는 후배와 8년 만에 목욕을 하고, 함께 따뜻한 밥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35m 크레인에 오른 것입니다. 그는 오를 때 걸어서 내려오려고 올랐다고 합니다. 그 당시 한진중공업의 상황은2010년 비정규직을 포함해서3,000명이 잘렸고, 300명이 강제 휴직을 당했고, 울산 공장은 폐쇄되었는데, 경영의 위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2011년 270명을 희망 퇴직으로 정리를 하고, 나머지 170여명을 정리해고 통보한 다음에 주주들은 176억여원의 주식배당을 챙겼다는 것입니다. 김진숙님은 노동의 끝 자락을 붙잡은 것입니다. 먼저 간 사람들의 일들을 보며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노동의 바닥을 본 것이지요.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죽으러 올라 간 것이 아니라 걸어서 내려 오기로 결심하고 크레인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저는 김진숙님의 크레인에 오른 모습을 보면서, 왜 노동자들이, 그리고 철거민들이 위로만 올라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레인으로, 조명탑으로, 건축물 옥상으로 . . .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땅에서 살 수가 없으니 위로 올라가 벼랑 끝에 섭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이 분들이 왕 같 은 제사장 역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은 모든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려 죄 용서를 받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 때 양이나 염소를 잡아 대신 죽게 함으로 죄용서를 받았습니다. 한진중공업 85호 35m 타워 크레인 꼭데기에 오른 김진숙님이야말로 오늘 이 시대의 제사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 크레인 끝 자락, 조금만 기울기만 하면 한 목숨을 잃을 수 밖에 없는, 그러나 바로 그 자리가 자기 스스로를 제물로 드려질 수 밖에 없는 본인 스스로 제물이 될 수 있는(양이 대신 제물로 드려질 때 자기 뜻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듯이,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릴 때 자기 뜻이 아니었듯이)여지가 있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렇게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내어 놓고는 걸어서 내려온 것입니다.

송경동님은 오직 김진숙님을 빛으로,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희망버스를 생각한 것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이 희망버스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빛, 어두움에서 우리를 빛으로 인도한 사건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아마 역사적인 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런 희망버스에는 바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 마음이 모여진 것입니다. 김진숙님이 크레인에서 생활할 때, 얼마전 고인이 되셨지만 전태일의 어머니인 이소선님께서도 희망 버스를 타려고 했다고 합니다. 몸이 불편한데도 꼭 희망버스를 타려고 했던 것은 김진숙님에게 절대로 죽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 주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아는 어머님께서 절대로 김진숙을 크레인에서 끌어내리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송경동 시인에대해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 책 제목이 무엇인가 하면 ‘꿈꾸는 자 잡혀간다’입니다. 본인에대해 꿈꾸는 자라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꿈쟁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 때문에 이집트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꿈, 하나님이 주신 꿈은 그의 가족과 이집트, 그리고 전 중동을 살리는 꿈이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꿈쟁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문익환 목사님입니다. 남과 북이 하나되는 것 전혀 꿈도 꾸지 못할 때에 목사님은 통일의 꿈을 꾸셨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입니다. 흑백이 전혀 섞일 수 없는 때에 흑백이 하나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이 어찌되었던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또 다른 꿈쟁이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송경동 시인입니다. 아마 송시인의 꿈은 거대한 자본의 맘몬 앞에 모두 무릎을 꿇는 이 때에 희망의 버스를 꿈꾸었습니다. 이 희망버스는 앞으로 더 살벌해질, 죽음의 힘으로 넘칠 물신숭배의 이 시대에 새로움 꿈의 패러다임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40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교회가 예언자 역할은 물론이고, 제사장의 역할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세상은 더 강퍅해져 갈 것입니다. 자본의 폭력은 더 교활하게 모두를 집어 삼키려 할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도 물론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기심과 염려, 불안, 갈등, 반복되는 게으름, 열등감. .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부르셨습니다. 빛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속에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세상 속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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