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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과 깨어 기다림(2012년 7월22일, 성령강림후여덟째주)

하늘기차 | 2012.07.23 10:21 | 조회 2206


약속 과 깨어 기다림
2012년 7월22일(성령강림후여덟째주) 창15:1-6

믿음이란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약속어음 한 장 받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라는 비옥한 문명의 발생지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 곳에서 끄집어 내셨습니다. 왜 끄집어 냈다고 하는가 하면 수24:2에 보면
“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비 데라를 비롯한 너희 조상은 유프라테스
강 건너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끌어내실 때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요즈음으로 치면 부도처리되기 쉬운, 또는 소위 와리깡하는 어음 한 장이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말씀의 약속어음이었습니다. 첫째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둘째 이름을 창대케 하며, 셋째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귀농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직장, 아니면 개인 사업, 또는 공무원으로 있다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농촌으로 향합니다. 그래도 귀농하는 사람에게는 교육도 하는 귀농단체도 있고, 정부가 은행융자 등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도움을 주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눈에 보이는 아무런 지원, 혜택, 융자나, 땅 한평, 아니 자기 서 있을 자리 하나 없이 하나님의 약속 하나 만을 가지고 비옥한 땅을 중심으로 문명을 탄생시킨 갈대아 우르를 떠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약속을 기다리며 지시할 땅으로 나아가다가 의심의 벙커에 빠진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약속을 바라보는 삶은 황폐한 불모의 땅에서의 삶을 의미합니다. 물이 있고, 비옥한 땅이 있어 열매가 넘치는 곡창의 지대에서 사막, 광야로 이동한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불신과 유혹, 시험과 도전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못 믿은 것인가?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 무엇이 있나? 약속은 커녕 생활이 위축되고,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모르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오늘 본문 앞의 14장에서 보면 중동 지역에 큰 전쟁이 일어나 아브라함도 그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그 와 중에 포로로 붙잡혀 간 조카 롯과 빼앗긴 모든 재물을 다시 빼앗아 오는 전과를 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승리를 했지만 이런 살벌한 광야에서의 삶 속에서 언제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괜히 고향을 떠났구나? 나이도 이제 늙어 언제까지 하나님과의 약속 만을 바라며 상속자를 기다릴 수 많은 없었습니다. 빨리 후계자를 선정하여 모든 것들을 안전하게 넘겨주어야 할 판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15:2에 보면 자기 생명을 다 하여 자신을 따르며 복종하는 엘리에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기로, 더 이상 늙기 전에 충직한 종인 엘리에셀을 자신의 후계자로 선정하여 동요하며 흔들리는 부족들을 안위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위기요 신앙의 흔들림입니다. 골프 공이 벙커에 빠진 격입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이 약속을 바라고 잘 헤쳐 나갔지만 결국 아브라함의 아킬레스건은 자식에대한, 상속자요, 후계자에대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여전히 자식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많은 재산과 전투력, 많은 무리들이 아브라함을 따른다 하더라도, 후계자가 없다면 그 동안 아브라함이 쌓아놓은 모든 것들은 거품입니다. 미래가 불투명하며, 텅 빈 것 같고, 혼돈과 두려움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할 즈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찿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말라!”이 말에 아브라함은 당황해 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어음이 부도가 났다는 생각에 자기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을 짜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 나타 날 줄 알았던 하나님이 찿아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
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 그리고는 거듭 하나님께 말합니다. 아니 이 것은 하나님에대한 항의요, 도전입니다. 3절에서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이제, 저의 집에 있는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이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파기하려고 하며 주장하는 것은 자식을 달라는 것입니다. 자식에대한 집착 뿐입니다. 자식 안에 감추어져 있는 약속은 아브라함의 변론 속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기 욕심에 붙잡힙니다. 오직 자식, 아들, 후계자만 있습니다. 그 자식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아들을 주시지 않은 것에대해 아브라함은 분노합니다. 이 쯤 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래도 눈에 보이는 미끼 라도 하나 던질 법도 한데,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APT 청약 딱지라도 한 장 건내주어 앞 날의 불안감을 다소 나마 씻기어 줄 법도 한데, 그 화가 나서, 항의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약속을 말합니다. 4절입니다.
“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교우여러분! 하나님 백성에게 항상 있는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이 외의 것은 사이비요, 거짓이요, 거품입니다. 오직 살아있는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는 것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아무런 힘이 없는 것 같지만, 결국 때가 되면 말씀 그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약속이 지연되고, 미루어지자 스스로 그 약속을 이루려 합니다. 어렵고 위기가 닥치자 스스로의 생각을 가지고 그 위기를 돌파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낭패요, 자신의 무력함 뿐입니다. 심한 가믐이 오자 약속의 땅을 버리고 이집트로 내겨갔다가 부인 사래를 빼앗길 뻔 했던 일, 아내 사래와 합의하여 여종 하갈을 통해 후계자를 보려고 했다가 가정이 파탄 날 뻔 했던 일, 어느 것 하나 자신 스스로 하려다가 제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었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계획 속에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것이 바로 약속 백성,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람들, 택함 받은 자녀들이 알아야 할 지헤입니다.

교우여러분!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뫃여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교제하며 은혜를 나누는 것은 이제는 그동안 살아 왔던 세상의 삶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어 예정해 놓으신 계획이 있는데, 그 계획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 그대로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은 그 선물, 그 상급을 그대로 베푸십니다. 복된 백성,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믿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창대케 되는 큰 민족을 이루는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그렇게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읽은 눅12:36은
“마치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 때에, 곧 열어
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되어라”고 합니다. 바로 이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깨어 기다려야 할까요? 오늘 창세기 말씀 중 4절에 이러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아이는 누구인가요? 노예입니다. 노예는 상속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노예로 사는가, 아니면 상속자, 즉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가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한 순간에 노예로 전락해 버리는 것입니다. 주변 부족들의 침략과 도전, 부족 자체의 불안감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약속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약속을 떠나면 바로 그 불안감과 주변의 침략의 두려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그렇게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려고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찿아오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스스로 파기하고 자신의 몸에서 태어날 자식에대한 소망을 버리고, 그의 충복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참으로 의미 심장합니다. 노예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충성되고 아무리 철저하더라도 아들이어야지 종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를 통해서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 기도회 때 에서와 야곱이 만나는 창33장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에서가 야곱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에서에게도 눈에 보이는 것들에대한 축복을 주셨기 때문에 특히 야곱을 미워할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형이 넉넉한 마음으로 동생 야곱을 받아들이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창32:6을 보면, 그리고 33:1을 보면 그렇지 않더라구요, 아직도 야곱에대한 살기와 분노가 등등합니다. 그런데 왜 에서의 마음이 부드러워졌는가 하면 선물입니다. 뇌물이지요. 에서는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물질만 충족되면 상속이니, 아들이니, 자녀니, 하나님의 나라니, 이웃 사랑이니 자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는, 정의, 평화, 창조 질서 보존의 가치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그 물질의 노예로 사는가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한 번은 조카 롯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참 즐거운 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카 롯의 양 떼와 아브라함의 양떼를 축복하여 지금의 목초지에서는 더 이상 함께 양에게 풀을 넉넉히 먹일 수 없을 정도로 양들이 불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좋은 풀을 양들에게 먹이려고 목동들 간에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이 싸움이 알려진 것을 보면 그냥 말 다툼 정도가 아니라 막말로 칼부림을 할 정도가 아니었겠는가 십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유목민들에게 양과 풀은 삶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잘 아시겠지만 조카 롯은 즉물적인 관심을 가지고 소돔 쪽 땅을 선택합니다. 성경에 보면 에덴 동산 같았가도 합니다. 그 에덴 동산 같다는 것은 롯의 관점일 것입니다. 그에게 소돔은 자신의 즐거움을 체우기에 좋은 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반대 지역을 택합니다. 비록 소돔 쪽 땅 만큼 물과 풀이 풍성하지는 않을 지라도 지금의 양떼를 굶주리게 하지는 않을 목초지 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좀 더 불편할 것입니다.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것을 아브라함은 안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고기리 15년 전 겨울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우리 이태훈 집사님은 겨울이 오면 광교산 자락에 올가미를 놓아 산토끼도 잡고 그렇게 했는데, 동물들은 늘 다니던 길로 다니는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 동물의 다니는 길의 흔적을 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덫을 놓을 때에도 그 길에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락없이 토끼고, 삵이고 너구리고 걸려드는데, 이 능구렁이 같은 나이 먹은 짐승은 올가미에 걸리면 들어간 그대로 조심스럽게 빠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늘 자기가 관계하는 길로만 가려고 합니다. 다른 길로는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늘 똑 같은 문제로 힘들어 하고, 평생 똑 같은 일로 낙심하고 절망하기 십상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 사탄 마귀는 올가미를 놓습니다. 대부분 그 올가미에 걸립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그 올가미를 잘 벗어납니다. 지혜입니다. 어떤 지혜일까요?


이스라엘이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너구나서 3일 만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당장 먹을 물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불평, 불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마침 그 곳에서 물 웅덩이를 하나 발견합니다. 그런데 그 물을 마셔보니 써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무 한 그루를 보여주십니다. 모세가 그 나무 가지를 꺽어 물에 던지니 쓴 물이 단물로 변하여 이스라엘이 그 물을 마시고 갈증을 풉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바로 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적 각성은 내가 무엇을 깨닫거나, 내가 노력하여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며, 들려주실 때 보고 들어야 합니다. 볼 수 있는 눈, 들을 수 있는 귀,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 들일 만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영적 각성은 내가 무엇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보여주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나를 일으키시지 않으면 한 발 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입니다. 엘림이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거기에 샘이 12 곳이나 있고, 종려 나무가 72그루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난리 치고, 불평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것을 믿으며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아마 엘림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온 이스라엘이 풍성한 휴식을 만끽했을 것입니다.

자식이 아니라 자식 안에 감추인 하나님의 약속을 볼 줄 아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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