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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대강절 셋째주, 2022년12월11일)

김현식 | 2022.12.12 16:55 | 조회 347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


2022년 12월 11일(대강절 셋째주일)                                                                  요1:14


날씨가 춥습니다. 확실히 겨울이 된 것 같습니다. 근데 아동부 아이들은 맨발로 오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그 뜨거움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라며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신약에는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가 네 권이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권은 각각의 관점을 가지고 예수님의 행적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쓰여진 책입니다. 마가가 베드로의 구전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데 베드로의 성격답게 예수님의 행적 위주로 기록되어있고,예수님은 홀로 십자가의 길을 가셨는데 우리는 바보같이 아무도 몰랐다는 느낌으로 제자들의 약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와 누가는 마가복음을 기초로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의 사건들을 조금 다른관점에서 표현하기도 하고, 마가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들도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예수께서 우리가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메시아의 족보로 시작하고, 사도행전과 한 세트로 쓰여진 누가복음은 이방인 출신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데오빌로에게 복음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개념인 성령에 대한 언급이 많고, 추가로 약자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 세 권은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 공통의 관점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가장 나중에 쓰여진 책인 요한복음은, 다른 세 권과는 많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상징과 은유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먼저 일으키신 기적은 뭘까요? 마가와 누가에서는 귀신들린 사람, 마태에서는 모든 병을 고치셨다 뭉뚱그려 설명합니다, 요한은 가나의 혼인잔치를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가나에서 열린 혼인잔치, 지금식으로 하면 결혼 피로연에 가셨는데, 하객들이 마실 포도주가 동나자 물항아리에 물을 채운 뒤 그것을 포도주로 바꾸신 기적입니다. 장신대 신학대학원 입학시험 신약성경 과목에 이 부분이 문제로 나온적이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바꾸신 물항아리는 몇 개인가? 뭐 이런걸 물어볼까요? 사실 중요합니다


2장을 보면 이 항아리는 유대인의 정결예법에 따라 놓여있던 빈 항아리입니다. 그런데 이 여섯 개의 항아리는 지금의 상황에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숫자에 상징을 넣었는데, 예를 들면 12는 열두 지파의 숫자, 즉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12X12144에 많다는 상징을 가진 1,000을 곱한 144천은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식입니다. 유대인들의 개념에서 7은 완전한 숫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모자란 6은 불완전함, 부족함을 의미합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쓸모없는 정결 예식의 항아리였지만, 예수님께서 손을 대시자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런식의 은유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상징과 은유가 익숙치 않지만,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문학방식입니다.


4장에서는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지나시다 피곤해서 우물가에서 앉으셨다가 한 여인을 만납니다. 요한복음은 이 때를 6시로 기록한다. 부족함이 있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삶에 목마름, 부족함이 있는 여인을 만나십니다. 남편을 불러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남편이 없다 하자,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살고 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여인이 만난 남자는 6, 그리고 7번째 만난 생수이신 예수님에게서 목마름을 해결합니다. 그러자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인들 사이에서 오랜 논쟁거리였던 예배 장소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거기에 예수님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십니다.

 

7장에서는 나를 믿는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8장에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죠. 9장에서는 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을 고치시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는데, 요한복음은 이 모든 것이 초막절 마지막 날에 한 호흡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합니다. 초막절은 출애굽을 기념해서 초막에서 사는 절기입니다. 당시에 축제의 시작은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 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전 뜰에 불을 밝히고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행렬도 있었습니다. 물과 빛의 절기인 초막절에 참된 물과 빛을 주시는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이런식으로 요한복음은 상징과 은유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걸어가는것도 요한복음은 다르게 봅니다. 13장부터 묘사되는 예수님은 고난을 준비하시는 모습입니다. 홀로 외롭게 걸어가신 길이 아니라, 예비된 길을 당당하게 가십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영광된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잡히시기 전날 밤의 기도는 자신과 제자들과 더불어 모든 믿는 이들을 위한 제사장이 드릴법한 기도이고, 나사렛 예수를 잡으로 왔다는 군인들에게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하시자 군인들이 뒤로 물러나 땅에 쓰러졌다고 기록합니다.

고난의 클라이막스인 고통의 십자가의 순간마저도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입니다. 준비된 것들을, 예비된 것들을 모두 완수했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영광이 되는 역설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요한복음은 왜 이런 부분을 강조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기록 당시의 상황 때문일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된 것은 주후 90년 경입니다. 이 시기에 유대교에서는 얌니아라는 곳에서 종교회의가 열렸는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할지를 유대교 지도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열었습니다. 왜냐하면 20년 전인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정사항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을 공식적으로 이단으로 규정해서 회당에 출입금지 시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초신자거나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유대교로 돌아가야 하나? 하고 근심에 빠지게 되었지요. 그러니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는 공동체는 유대교가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유대교에서 잘 사용하는 유대문학의 방식으로 유대교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시기에 초대교회에는 골칫거리는 영지주의자라는 이단입니다. 영지주의자라는 표현은 자신들이 한 것이 아닌 후세의 연구자들에 의해 붙여진 것인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연구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들은 영지, 즉 영적인 비밀스런 지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당대의 그리스 철학에 강한 영향을 받았는데, 그리스 철학에서는 신은 천상에 있는 것입니다. 육신은 악하고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본질은 이데아에 있고 물질은 단지 현상일 뿐이다이 관점에서는 예수의 성육신은 말이 안되는 겁니다. 어떻게 신이 인간의 육신으로 온단 말인가? 이들에게 성육신은 둘중에 하나입니다. 예수가 신이 아니거나, 가현, 즉 실체가 아닌 환상으로, 가짜로 오신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생존한 사도인 요한이, 그분과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일했던 요한이 기록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그런데 그 삶은 고난과 고통만의 길이 아니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길이었다. 고독한 길이 아니라 영광의 길이었다. 그 영광의 길을 따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의 현실은 때로 우리의 희망을 덮어버립니다. 코로나가 끝나니 전쟁이 벌어지고, 세계는 다시 냉전시대로 들어가는듯합니다. 계층의 분화는 심해지고 차별과 혐오도 그치지 않습니다. 억울한 눈물도 멈추지 않습니다. 이런 시기에 나 한 사람의 몸짓이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예수의 오심이 멀게만 느껴지고 책에서 읽는 이야기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지금 모여있는 우리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 나 한사람이 의미가 있을까? 있습니다.

 

우리를 또한 힘들게 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입니다. 주님이 나같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을까, 매번 넘어지고 쓰러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내가. 주님은 나에게 질리지 않으셨을까

 

요한복음 3장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은 이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안에 있는 나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가장 낮은 모습으로. 내가 하나님의 이유입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나는 신이라 너희의 고통은 모르겠는데? .. 그랬어?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직접 살아보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길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 초대를 받아들여 그분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여러분과 제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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