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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시즌2... 연대의 햇빛 나비, 날다(퍼오기)

하늘기차 | 2014.11.02 09:03 | 조회 774



곽병찬 대기자의 현장칼럼 창(한겨레 2014.10.31)

“저희는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입니다. 저희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저, 살던 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이제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8월18일 명동성당 미사 때, 밀양의 할배 할매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전한 편지 내용의 일부이다. 한전이 짓고자 했던 100m(35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송전탑은 올해로 10년째 765㎸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맞선 어르신들의 싸움을 비웃기라도 하듯, 밀양 8개 마을에 바벨탑처럼 서 있다. 11월 말이면 ‘지글지글 기름 끓는 소리’를 내며 고압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러면 할배 할매의 꿈은 끝인가?

편지는 이렇게 이어졌다.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놓을 수 없는 저희들의 소망은 원전을 멈추는 것입니다. 맘몬 숭배자들의 탐욕과 교만이 아니라, 정의와 공평이 숨 쉬는 세상을 만나는 것입니다.” 밀양 어르신들은 달랐다.

물론 정치권력과 자본은 코웃음 친다. 이미 송전탑 건설은 끝났다. 일부 기레기 언론과 지식인들은 한술 더 떠 이렇게 조롱한다. 부질없는 희망은 고통이요 고문, 뜨내기 연대는 실은 고통의 강요일 뿐이라고. 그런 연대와 희망 속에서 촌로들은 몸이 병들고, 재산은 사라지고, 이웃도 잃었고, 송사에 얽매였다. 따라서 권력의 힘, 자본의 요구에 순응하며 살라고 속삭인다.

말마따나 고통은 컸다. 10여년 싸움 속에서, 2011년 여름 이후 두 분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70여명이 형사처벌을 받거나 받고 있다. 9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주민들에게 떨어진 벌금만 2억여원에 이르며, 재판에 회부된 사람이 20명을 넘는다. 공사가 전면화된 2013년 10월부터 행정대집행(6월11일) 직전까지 152명의 주민이 현장에서 부상을 입고 병원진료를 받았다.

부상자 4명 가운데 1명은 뇌출혈이나 골절 등 중상자였다. 경찰과 용역들이 퍼부은 가혹행위와 성폭력과 욕설, 헬기의 소음, 공동체의 분란 속에서 80명 가까이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7개 마을 260여가구 ‘할배 할매’들은 지금도 보상금을 거부하고, 국가권력의 형사 처벌과 벌금 폭탄에 맞서 버티고 있다. 어떻게 국가가 자본의 하수인이 되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강탈하도록 조장할 수 있을까? 뼈에 사무친 억울함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잡아주고 있는 것은 ‘편지’에서 언급한 대로 포기할 수 없는 그 ‘꿈’과 ‘희망’이었다. 아들딸, 손자 손녀가 더 안전하고 평화롭고 우애롭게 사는 나라에 대한 꿈!

당장 송전탑 싸움에선 졌지만, 불의한 국가권력과 무자비한 자본의 횡포,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한 국민적 각성은 더 깊어졌다. 고압 송전선 싸움은 경북 청도, 충남 서산·당진, 전남 여수 등으로 확산됐다. 전국적 차원의 피해자 연대도 이뤄지고 있다. 노후 원전 폐쇄 투쟁은 부산, 울진, 월성, 영광 등지로 번지고 있다. 삼척 시민들은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평화적 봉기에 성공했다. 그들이 지핀 불씨는 이제 더 큰 희망의 불로 타오르고 있다.

꿈이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면, 연대의 손길은 힘을 불어넣는 에너지였다. 지난 9월20일 열린 일일후원주점 ‘손잡아 酒이소’는 한국 시민운동사상 최고의 수익(8천만여원)을 올렸다. 이치우 어르신의 죽음(2012.1) 이후 계속되는 밀양 촛불문화제는 이번 주말로 169회째를 맞는다. 지난 167회 문화제에선 농활 온 간디학교 학생과 시민 등 150여명이 함께 연극 <웃어요 할매>를 관람했다. 부산의 ‘극단 일터’가 위양리 127번 철탑 농성움막을 배경으로 할매 3명의 삶과 투쟁을 그린 연극이었다.

촛불문화제는 이제 살림의 장터로 진화하고 있다. 이를 위한 ‘미니팜 협동조합’은 지난 7월 출자금 2400만원으로 출범했다. 주민 100여명이 참여하고, 시민 280여명이 연대하는 도농공동체의 기반이다. 장터에선 매번 300만~400만원의 매출이 이뤄지고 있다. 규모는 약소하지만 정성과 열정은 뜨겁다. 7개 마을마다 할배 할매가 농성도 하며 쉬고, 방문자들이 쉬어가는 사랑방 겸 농성장도 마련됐다.

지난 25일 ‘한살림 서울’은 가을걷이한마당에서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과 함께 ‘햇빛 나비’가 첫 날갯짓을 하는 행사를 열었다. 회원 모두가 햇빛 나비가 되어 “핵발전소와 초고압 송전선을 없애고, ‘밀양’을 에너지자립마을의 메카로 만들고, 2억원의 벌금 폭탄을 덜어주며, 우애와 환대의 도농연대공동체를 세워나가자”는 것이다. 쉽다. 작고 간편한 미니태양광을 가정에 설치하면 된다.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비용의 절반을 지원하고 있는 만큼, 시민들은 작은 정성(34만원)만 얹으면 된다. 단체로 신청하면 부담은 더욱 줄어든다. 밀양에서 잉태하고 부화한 햇빛 나비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날며 태풍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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