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길

View Article

"가치 공유 마을에 산다고 갈등이 없을까요?"

하늘기차 | 2015.12.15 13:28 | 조회 1099



 "가치 공유 마을에 산다고 갈등이 없을까요?" 

  [마을주의자] 산청 청담한의원 '마을의사' 김명철 원장                 오마이뉴스(12.15)|정기석   

"아무래도 마을에 함께, 오래 살다보면 보기 싫거나 상대하기 불편한 사람이 생기지요. 갈등과 반목도 생길 수 있지요. 아무리 바라보는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까리 모인 생태마을, 공동체마을이라고 해도. 결국 마을도 서로 다른 사람, 타인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생활의 현장이니까요. 사람들은 다 다르게 생기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잖아요. 그게 민주적이고 자연스러운 마을의 모습, 공동체의 현실이 아닌가요."

학교로, 마을로, 또 지역사회로 이른바 공동체 생활의 보폭과 지평을 넓혀온 지 오래된 산청 청담한의원의 김명철 원장. 또는 (사)간디공동체 대표. 그 시간의 깊이와 공간의 넓이 만큼 생각과 태도가 크고 단단해진 느낌이다. 다양한 종류의 공동체 현장의 실천 또는 수행 과정에서 분명한 선험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포기와 양보를 통한 같이의 가치'.

"누구도 자기의 생각과 생활방식을 타인, 또는 공동체구성원에게 강요하지 말아야죠. 남을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른바 '같이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요. 힘들어요. 하지만 어차피 같은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마을주민이니까 서로 그 정도 노력과 도리는 하고 살아야죠. 아니면 왜 굳이 같이 모여 살죠? 그냥 도시의 골방이나 오지 산골에 철저히 격리되거나 고립돼 혼자, 제멋대로 살아가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을텐데."

한의원으로 마실을 나왔다가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성경모, 정남수 부부가 남의 말로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거린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을 보탠다. 김 원장과는 마을과 지역의 이런저런 공동체사업을 더불어 논의하고 실천하는 끈끈한 동지적 관계로 보인다.

"제가 사는 마을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생태니, 공동체니, 대안사회니 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주로 모여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런 상황을 피할 수도 없고요. 우리 마을에 들어와 살아보겠다는 사람을 마을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인격 평가나 품성 심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우리와 다르다고 쫓아낼 수도 없고요. 솔직히 보기 싫지만,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쩌면 더불어 할 일도 없지만, 마을에서 마주치면 인사는 하고 지냅니다."  성씨 부부는 안봉리 둔철산 자락에서 '얼레지꽃 피는 마을'이라는 농촌체험학습마을을 일구고 있다. 안솔기마을을 시작으로 간디학교에서 둔철산 자락에 조성한 3군데 배후마을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역시 주로 아이를 간디학교에 보내는 학부모, 교사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부부가 '먼당농촌교육농장'을 꾸리면서 성씨는 산청군 농촌관광연구회 사무장까지 맡아 하고 있다. 원지에서 열리는 지역벼룩시장 '지리산 목화장터'의 추진위원장이기도 하다. 맡아하는 일 하나하나가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산청군을 대표하는 농촌마을 일꾼 답다. 농촌지역 마을교육공동체를 꿈꾸고 그리고 있는 김 원장의 든든한 원군이자 동지 답다. 

 

안솔기생태마을에서 '같이의 가치'를 깨닫다 

김 원장은 산청 신안면 안솔기생태마을에 산다. 면소재지 원지마을에서 청담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다. 평범한 의사는 아니다. 사람을 진료하고 치료하는 의사 노릇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생업보다 지역사회 일에 더 열심인 듯하다. 그래서 '마을의사'라는 별명이 걸맞다.

'마을의사'로서 공동체 활동과 사업의 행보는 쉬지 않는다. 마을장터, 인문학교실, 음악회, 다문화 지원 사업 등으로 다양한 공동체 현장의 맨 앞줄에서 늘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의원 입구에도 병원 홍보물보다 마을벼룩시장인 목화장터 안내간판이 더 눈에 띈다. 김 원장이 마을로, 공동체 생활로 뛰어든 역사는 안솔기생태마을이 열린 날로 거슬러올라간다. 산청 간디학교의 첫 배후 마을이다. 김 원장을 비롯해 18가구의 마을 주민들은 스스로 생태마을이니, 공동체마을로 규정하거나 부른 적은 없다.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특히 언론은 안솔기마을을 '생태공동체마을'로 부르고 싶어했다. 그만큼 그 마을에 대한,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컸다. 아무쪼록 선도자들이 '보다 나은 세상'의 전망과 대안을 먼저 제시해주기를 바랬다. 김 원장은 마을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간디농장의 최세현 대표, 전업주부 마정애씨 등과 함께 3인 공동대표 체제였던 것. 각 가구들은 저마다 모양과 양식은 다르지만 생태건축을 원칙으로 삼았다. 수세식 화장실도 따로 두지 않고 자연발효되는 생태화장실을 이용했다.

그래서 당초 준공검사도 나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정화조가 없는 주택은 안 된다는 행정의 조치 때문이었다. 생활하수는 생태연못으로 흘러들러가 자연정화되도록 했다. 마을이 자리잡은 둔철산 자락의 울창한 숲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음은 물론이다.

 

겉모습만 생태적이지 않았다. 마을회의의 의사결정구조로 만장일치제를 채택했다. '포기와 양보'를 통해 감정과 갈등을 다스리고 싶었다. 여느 전통적인 농촌마을처럼 이장이나 최고령의 어르신이나, 목소리가 가장 큰 주민이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지 않았다. 주민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어떤 결정이이라도 하지 않았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이해하고 동의할 때까지 어떤 결정도 미루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서둘러서 해야만 하는 일은 아예 만들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천천히 느리게 사는 법, 서로 양보하는 법을 함께 연습했다.

 

개인적으로 생활과 생업 그리고 쉼과 놀이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을 비로소 마을이라 부른다. 그래서 부득불 생활과 생업이 격리되거나 격절될 수밖에 없는 도시는 마을이 될 수 없는 안타까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사전적으로도 '주로 시골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마을로 정의한다. 도시에서는 마을보다는 '동네'라고 부르는 게 타당하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간파한 대로 그저 '기계적 배제의 공간인 동네'가 적합한 용어다. 그러니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열심히 벌이고 있는 마을공동체사업이란 안타깝지만 결국 마을이나, 공동체가 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그곳에 생활은 있으되, 그리고 놀이는 가능하되, 생업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의 마을공동체사업이란 단지 '마을에 대한 그리움의 퍼포먼스, 또는 마을로 내려가기 위한 준비과정' 정도의 기대치와 목표로 그치는 게 옳다는 지론이다. 그래야 행정도, 주민도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디. 

 

그렇다면 안솔기마을은 과연 사람들이 기대한대로 생태공동체마을이 맞는가. 그동안 생활과 생업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는가. 모름지기 공동체마을이려면 생태적인 생활 못지 않게, 그런 생활이 가능하도록 생업도 함께 보장되는 공간으로 설계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초 마을 기획과 설계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한 김 원장을 만나자 그게 가장 궁금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안솔기마을 사람들은 둔철산 자락으로 함께 살자고 들어가면서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요?" 김 원장은 잠시 대답하기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표정에서 대답이 어느 정도 읽혔다."먹고 사는 문제를 마을에서, 공동체에서 해결해주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건 나라에서도, 가족들도 해주지 못하는 일이니까요. 각자 농사를 짓든지, 집을 짓든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든지, 아니면 가까운 도시에 나가 직장을 구해 월급을 받든 지 해결할 수 밖에요. 물론 초기에는 주민 공동사업도 진행했었어요. 경옥고를 함께 만들어 팔았지요. 참여한 마을주민들끼리 수입을 분배했고요."

 

그런데 마을의 수익원이었던 경옥고 공동사업은 지금은 하지 않는다. 그것도 사업인지라 손이 많이 가고 신경 쓸 일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을에서 누구는 참여하고 누구는 빠지고 하는 모양도 좀 그랬다. 벌어들인 수입을 누구에서 어떤 기준으로, 얼마를 배분할지도 어려운 문제였다. 결국 수익금으로 적립된 기금을 마을공동기금으로 내놓고 사업은 청산했다.

 

대안교육이 마을과 공동체를 살린다

김 원장이 부산을 떠나 산청으로 생활과 생업의 터전을 옮겨 살고 있는 것은 결국 대안교육에 대한 평소의 신념이 발단이 되었다. 큰 딸을 산청 간디학교에, 작은 딸을 제천 간디학교에 보내면서 맺은 대안교육과의 인연이 길고 질기다. 김 원장은 추진위원장을 맡아 2008년 '대안교육 학부모연대'를 출범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정부가 대안학교를 법제화, 제도화하기로 하면서 걱정이 앞섰어요. 정부의 지원을 노리고 너도나도 대안학교를 설립하면 대안학교, 대안교육의 정체성에 혼란이 생길 건 뻔하다는 우려였죠. 무엇보다 교육 당국의 통제와 간섭으로 대안학교 고유의 교육철학이 훼손될 가능성도 적지 않았고요. 교육 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는, 또는 못 하는 대안학교에 불이익이 미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는 전국의 학부모들이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고 힘을 모을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효시로 불리는 간디학교 개교의 주역으로 '대안교육주의자'였던 김 원장이 연대조직의 대표를 맡은 건 자연스러웠다.

 

"그때 남들이 가지 않는 힘든 길을 걷고 있던 대안학교 학부모들은 함께 모이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어요. 그 자체로 서로에게 큰 위안이 됐어요.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만나 외롭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정보도 공유할 수 있었던거죠. 게다가 다양한 직업과 경험을 가진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진로 등 멘토 역할을 할 수도 있었고요. 대학을 가는 것 말고 아이들의 진로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교육현실에서는 혼자 결정하거나, 남과 좀 다르게 사는 건, 남다른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그럴 때 그런 이들이 함께 모여 서로 고민과 걱정을 상의하면서 용기를 나누고 지혜를 공유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공동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본다. 공동체에 산다고, 공동체사업에 뛰어든다고 안정된 생계나 행복한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자기 희생을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이미 많이 가진 부자나 권력자들은 공동체를 하지 않는다. 할 필요가 없다. 서로 주고받을 것도, 나눌 것도 없기?문이다. 그 대신 부자 등 가진 자들은 늘 남들이, 세상이 불안하고 두렵다.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안에는 공동체만의 문제가 상시 잠복해 있고 수시로 돌출한다. 다만 그럴 때 외롭거나 고독한 개인으로 혼자가 아니라서 견딜 수 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서로 비슷한 처지의 이웃과 동료들이 곁에 있기때문에 위안과 위로가 돼줄 수 있는 것이다. 돈은 되지 않지만, 일자리나 소득은 보장해주지 않더라도, 위안과 위로만 있다면 공동체는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마을을 넘어 지역공동체로 선물을 나눠주는 사람

 


 

 

김 원장이 생업의 터전인 한의원까지 산청으로 옮긴 건 지역사회 주민들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지역사회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서다. 주민들과 연대하고 협동하면서 마을을 넘어 지역사회공동체를 더불어 꾸려보고 싶어서다. 그래서 요즘 끊임없이 마을과 지역을 넘나들며 각종 대소사를 벌이고 다닌다.  올해 3월에는 성경모씨 등과 함께 '지리산 목화장터'를 열었다. 작가, 예술가, 전문가 등이 시민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자유시장(Free Market), 지역주민들 간에 중고물품을 사고파는 벼룩시장(Flea Market)을 합쳐놓은 일종의 농촌 마을시장이다. 산청 지역의 농민과 주민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 직접 만든 수공예품, 집에서 쓰지 않은 여러가지 재활용 물품을 들고나와 판매하거나 물물교환하거나 나누는 자율 장터다. 문익점 선생의 목화시배지가 인근 마을에 있어서 '목화'로 이름을 지었다.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 오후에 지역,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다만 공장의 대량 생산품을 납품받아오거나 판매자가 이력을 설명할 수 없는 물품, 수입 농수산품 등은 안 된다. 장터의 진정성과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자는 주변의 공공시설물, 조경, 잔디 등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사용 공간을 깨끗이 정리하고 다른 참가자들과 경쟁하지 않고 협조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돈을 벌자는 게 아니고 공동체를 하자는 목적이 크기 때문이다. 참가비도 없다.

 

김 원장의 동선은 산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난해부터는 제천의 지역주민들 대상으로 하는 '마을주막학교'에도 참가하고 있다. 대표를 맡고 있는 (사)간디공동체가 벌이는 일이라 결국 김 원장의 일이기도 하다. 김 원장이 직접 맡아 진행하는 '내 몸 스스로 지키기' 강좌는 그 산골마을에서 평균 100여 명이 참석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가 많아요. 서로를 위해주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건강하게 인생을 사는 첫걸음이 되지요."

 

주로 이런 요지로 강좌를 진행한다. 김 원장 스스로 공동체 생활과 사업을 통해 체득한 값진 교훈을 교감하고 공유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원주민들과의 새로운 인간관계 맺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귀농인들에게 특히 유익하다. 지역의 원주민들을 자연스레 만나고 어울릴 수 있는 만남의 장 구실도 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의 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주도에는 청년들의 지역 정착을 돕는 '생활기술 전문 대안대학'격인 지구마을평화센터를 조성하고 있다. 또 산청에 새로 조성하고 있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공동체마을에도 관여하고 있다. 오지랖이 넓다. 공동체(Commune)의 어원 그대로 '남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63개(3/4페이지)
함께 사는 길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3 맨발의 의사들(sbs 스페샬, 2007.8.26)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84 2017.03.06 16:52
22 우리는 이제야 굴뚝에서 내려왔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25 2017.02.06 12:03
21 이것은 명령이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34 2017.02.05 16:19
20 죽음은 옮겨감에 불과, 존중받으면서 가고 싶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24 2017.02.05 14:42
19 Knockin’On Heaven’s Door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94 2017.01.26 15:00
18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16 2017.01.19 11:20
17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로 함께 가려 합니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74 2016.08.01 08:20
>> "가치 공유 마을에 산다고 갈등이 없을까요?"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100 2015.12.15 13:28
15 나는 조선 사람, 언젠가 다시 북으로 돌아갈거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60 2015.11.13 08:07
14 암 특효약의 숨은 진실(이계호교수)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56 2015.11.11 17:21
13 뛰뛰빵빵 쿱택시의 행선지는 평생직장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012 2015.11.07 16:21
12 민간인 지뢰피해자 이경옥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884 2015.10.05 09:22
11 의사 271명 중 270명은 항암제 거부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43 2015.10.03 18:48
10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사진 하늘기차 656 2015.10.03 15:44
9 회복이 시작되는 법정(천종호 집사/ 창원지방법원부장판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64 2015.08.15 13:46
8 민들레 공동체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713 2015.04.06 11:48
7 치-화-생 (치유와 화해와 생명) 생명 평화 마을 만들기” 2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90 2015.03.05 15:10
6 치-화-생 (치유와 화해와 생명) 생명 평화 마을 만들기” 첨부파일 하늘기차 1034 2015.03.05 15:03
5 '이든밥상' 하늘기차 886 2015.01.31 13:25
4 불황서 살아남는 법, 방어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29 2015.01.14 1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