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길
폐지 165kg 주워, 1만원 벌었다.
폐지 165kg 주워, 1만원 벌었다.
(머니투데이,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매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영하 4.4도,찬바람이 두 뺨을 치던 아침 9시. 담벼락 앞에 섰다. 햇살이 못 닿은 그 너머를, 까치발 들고 들여다봤다. 혹시나 하는기대가 들어맞았다. 바랜갈색빛 상자들이 있었다. 아직 배고픈, 두 발 달린주황색 손수레가 바삐 움직였다. 상자엔 포장했던 흔적이 남았다.테이프가 달라붙어 있었다. 손톱으로 긁어도 잘 안 떼어졌다.주먹으로 상자 옆면을 쿵쿵, 그제야 순순히 벌어졌다. 테이프를 죽 뜯었다. 그리곤 상자 위아래, 여덟 쪽을 활짝 벌렸다. 네모났던 상자는 보기 좋게 납작해졌다. 그대로손수레행(行).그렇게 차곡차곡 쌓았다.
뒤이어 만난과일상자는 강적(強敵)이었다. 호락호락 안 뜯겼다. 네 모서리에 굳게 박힌,스테이플러(금속제 철기로 종이 등을 철하는 기구)철침때문이었다. 바닥에 내팽개친 뒤, 상자를 두 손으로 잡았다. 오른발로 한쪽 면을 밟고, 반대쪽으로 밀었다. '북' 하는 소리와 함께 상자 한쪽이 뜯겼다. 그렇게 네 번을 반복하니, 반듯이 펴졌다. 이것도 곧장 손수레로. 무게가 좀 더 나가겠단 생각에 뿌듯해졌다. 상자는 하나하나 꾹꾹 눌렀다. 많이 담길 수 있도록. 손수레는 그렇게,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폐지'를 줍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늘 빨리 버려서 없애야 할 대상이었다. 특히상자는 쌓일수록 골치였다.부피가 커, 베란다를 오가기 여간 불편한 게 아녔다. 그럴 때면 매주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재활용분리수거날 말이다. 양팔에상자를 가득 안고 내려가, 있는 힘껏 던져버렸다. 그렇게 개운할 수 없었다. 텅 빈 베란다를 보면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러다 지난여름, 동네서 한할머니를 만났다. 더워서 땀이 줄줄 나던 날이었다.키가 145cm남짓,몸무게는40kg이나 됐을까. 깡마른 할머니가, 키를 훌쩍 넘는손수레를 끌고, 낑낑대며 가고 있었다. 그 안엔폐지가 가득 담겼다.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할머니, 제가 도와 드릴게요."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손잡이를 넘겼다. 동네를 벗어나, 길을 건너고도, 오르막길 몇 번, 내리막길 몇 번을 지났다.몸무게 85kg(비만),건장한 30대 기자가 끌기도 벅찼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도착하자 할머니는 "고맙다"며 어찌할 줄 몰랐다. 그때부터였다.상자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건.
그리고 몇 달 뒤, 한 사건을 접했다. 경남 거제서20대 청년이 폐지 줍던 할머니를 때렸다고 했다. 청년은180cm, 할머니는130cm라 했다. 무려 40분간 주먹질, 발길질이 이어졌다. 이유도 없었다. 그냥 때렸고, 어쩔 수 없이 맞았다. 그날 새벽, 할머니는 숨졌다. 기사를 보고, 잔혹함에 치가 떨렸다.동네서 만난할머니와 그 사건의상(像)이 겹쳐, 며칠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잠깐이지만, 치열한 생존의 기운을 느꼈었다. 연민과 존경의 맘이 뒤섞인. 그렇게 함부로 짓밟힐 삶이 아녔다.
고물상을 찾아갔다. 지하철 9호선 삼전역에서 15분 거리였다.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라 온몸이얼얼했다. 큰길을 돌아가니, 폐지가 산처럼 쌓인 곳이 보였다. 한편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오늘 함께 할 최진철씨(55)였다. 몸이 다소 불편해 보였다. 천천히, 엉거주춤 걸었다. 취재에 응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말하기가 힘들다"며"말이 어눌해 알아듣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못 알아들은 건, 한 번 더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최씨는"형처럼 편하게 하라"고 했다. 19살 많은 형님, 그렇게 생각하니 맘이 좋았다.
그는세발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두 발 자전거는 타기 힘들다고 했다. 동네 공원 인근에 폐지 줍는'손수레'를 세웠다고 했다. 집 앞에는 못 세우게 한단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그는 "빠르지않느냐"고 계속해서 물었다. 걸어가는 기자를 배려한 말이었다. 괜찮다고 했다(사실 좀 빨랐다). 그래도 서서히 몸도 풀 겸, 경보를 걷다가 조깅을 하며 따라갔다. 추위가 조금씩 가셨다.
가는 길, 궁금했던 얘길 조심스레 물었다. 어떤사연이 있었느냐고. 그는 8년 전 얘길 꺼냈다. 솜씨 좋은'중식 주방장'이었다.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땐TV에도나왔었다"며 웃었다. 불행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일하다가 쓰러졌다.'뇌경색(뇌혈관이 막히고 그 앞 뇌 조직이 괴사하게 되는 질환)'이었다. 분초를 다퉈 병원에 가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쳤다.후유증이 남았다. 몸 오른쪽은 재활로 다소 회복됐지만, 왼쪽은 맘대로 안됐다. 그래서 장애가 생겼다.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하루아침에 삶이 달라졌다. 주방장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말하는 새, 손수레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자물쇠로 묶인 손수레 속엔, 이미상자가 좀 담겨 있었다. 벌써 일했느냐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손수레를 이곳에 놔두면, 동네 주민들이 폐지를 담아 놓는다고 했다.오전 10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유도 있었다. "너무 빨리 돌아다니면 사람들이상자를 내어놓지 않는다"고 했다. 오전 7시 이전에 일어나, 아들·딸 학교 보내고, 상자가 쌓이길 기다렸다 시작한다고 했다.
일단 묵묵히 돕기로 했다. 일하는 것도 힘들 텐데, 말을 계속 거는 게미안했다.옆에서 돕다 보면 그를 알게 되겠지 했다.
상자 해체가 관건이었다. 대부분 상자째 버리는데, 이를 쭉쭉펴는 일이었다.최대한 많이담기 위한 작업이다. 상자를 둘러싼테이프를, 상자 귀퉁이에 박힌스테이플러 철심을 뜯었다. 처음엔 잘 안 뜯겼다. 손톱으로 기를 써봐도. 오랜 시간 들러붙은 테이프가 애를 먹였다. 최씨의 능숙한 손길을 지켜봤다. 커닝했다. 요령이 있었다. 상자 한쪽을주먹으로 '탁탁'친 뒤, 테이프 틈새가 벌어지면 죽 뜯는 것. 옆에서 보고 따라 했더니 잘됐다.
두꺼운상자는 더 쉽잖았다. 단단해서 주먹으로 치는 것도 아프고 안 먹혔다. 맘이 앞서서, 바닥 근처에서 상자를 뜯다 아스팔트에 두 손이 긁혔다. 왼쪽 검지와 오른쪽 주먹 부분에상처가 났다.피가 조금 흘렀다. 찬 바람이 파고들자,통증이 느껴졌다. '장갑을 낄 걸'하는 후회가 됐다. 폐지 줍기를 만만히 본 탓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최씨가 "단단한 상자는발을 쓰라"고 했다. 그를 따라 철심이 박힌, 네 귀퉁이를 발로 밟았다. 그러니 찢어지더라도 분해가 됐다.
이따금 테이프가 다 뜯겨, 차곡차곡펴진 상자도 있었다. 그대로 담았다. 그렇게 반갑고고마웠다.아파트 분리수거날, 경비아저씨가 상자 테이프를 떼서 버리라고 한 게 생각이 났다. 그땐'귀찮은데 이걸 왜 떼라고 하지'투덜거렸었다. 그제야이해가 됐다. 상자 테이프를 떼고 분해해서 차곡차곡 넣는 것. 그건 누군가 생계를 위한작은 도움이었다.
쭉 펴고, 차곡차곡 쌓고, 또 다른 상자를 그 위에 놓았다.책은 따로 분류해야 했다. 파지보다 훨씬비싸다고했다. 운 좋게, 차곡차곡 쌓인 책이 버려진 걸 보고 뛸 듯이 기뻤다. 찢어지지 않은 좋은 상자에 고이 담았다.
손수레는 묵직해져 갔다. 기자가 끌겠다고 나섰더니, 최씨가 만류했다. 그가 하겠다고 했다. '뇌경색재활'이라고 했다. 그게 운동이라고. 알고 보니, 걷는 게 불편해, 손수레 무게에몸을 싣고있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었다. 양발 속도가 안 맞아도, 우직하게 갔다. 무게를 덜어주려 손수레에 힘을 줬더니, 그러지 말라고 했다. 무게를 더는 게 방해가 됐던 것. 그래서 오르막에서만 힘을 보탰다. 걷는 것도리듬을 맞췄다. 오른발은 시간을 길게, 왼발은 짧게. 그렇게 걸었더니호흡이 잘 맞았다.
골목길 옆으론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졌다. 큰 트럭, 승용차, 버스 등이 쌩쌩 달렸다. 좁은 골목서 차들이 연달아 지나가는 통에,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길도 울퉁불퉁해 기울어지기도 했다. 상자가 떨어지기도 했다. 위험하다고 그의 몸을 잡아끌고, 반대로 조심하라고 그가 끌기도 했다. 평소엔혼자 견뎠을 길이었다. 그래도, 차들은 전반적으론 손수레를배려해주는 모습이었다. 빵빵거리지 않고 기다렸다.
그렇게 조심해도 사고는 났다. 도로 위에서 오랜 시간 손수레를 끄니, 어쩔 수 없었다. 최씨는 "몇 년 전오토바이 사고로허리뼈 두 개가 나갔다"고 했다. 오토바이가 돌진해, 갑자기 최씨를 들이받았다고 했다. 순간 기절해서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다. 돈이 많이 들어, 치료도 제대로 못 받았다고 했다.후유증으로 아직도 허리가 매우 아프다고 했다. 오래 걷기가 힘들다고. 기침과 거친 숨을 내쉬다, 정 힘들면 잠깐씩 앉아 쉬는 일이 반복됐다.
그래도 같이 사는 일이었다. 최씨를 돕는 이들이 있었다. 한편의점에 들어갔더니,점주 부부가 그를 반갑게 맞았다. "어제는 왜 안 왔어?", "안 오긴 왜 안 와, 어제는 늦게 왔지" 등의 대화가 이어졌다. 점주 부인과는 같은 1964년생, '동갑'이라 했다."친구야, 친구"하며 서로 웃었다.
편의점 안엔 상자가 잔뜩 쌓여 있었다. 물건을 받고, 나온 것들이다. 부부는"그에게만 상자를 준다"고 했다. 그의 사정도 잘 알았다. "안타깝게 됐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도 없다"며 용기를 줬다. 횡재한 듯 상자를 열심히 뜯고 모았다. 점주는 "이렇게 깔끔하게 치워주니 우리도 좋다"고 했다. 다 정리한 뒤, 커피 한잔하고 가라고 했다. 정겨운믹스커피였다. 잠시 숨을 골랐다. 잊고 있던땀이 그제야 보였다.
또 다른 상점에 갔다. 가게 뒤편에 폐지를 모아 놓은 공간이 있었다. 상자가 잔뜩 쌓여 있었다. 주인이 모아준다고 했다. 그런데, 폐지 주위엔 어깨높이 정도 오는철망이 둘러싸여 있었다. 최씨에게 "직접 만든 것이냐"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문을 잠가두지 않으면,다른 이들이 가져간다고했다. 정리하려 하는데, 그 앞에 차량이 있었다. 사람 하나 들어갈 공간이라, 손수레 댈 곳이 없었다. 전화 걸어 차를 빼달라고 했다. 그제야 손수레를 가까이 댈 수 있었다.
최씨는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를 바닥에 놓았다. 한쪽 모퉁이가 완전히 깨져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상자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큰 상자를 들거나, 무거운 것들을 들 땐 최씨가 힘겨워했다. 그땐 재빨리 가서 눈치껏 도왔다.
정리를 다 끝내고 손수레를 다시 잡으려 하자, 최씨가 기다리라 했다. 한쪽에 놓인 긴 호스를 집더니, 물을 틀었다. 더러워진 곳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치워줘야 한다고 했다. 물을 시원하게 틀어 이곳 저곳에 샤워를 해줬다. 바닥이 금세 말끔해졌다.
이제고물상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손수레가 위태롭게 굴러갔다. 최씨는 매우 무겁다며, 손잡이 안에 들어가앞에서끌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3시간 가까이 부지런히 담은 파지들이, 수북이 쌓인 채 손수레가 뒤뚱뒤뚱 흘러갔다.
최씨는 "오늘은 많이 모았다"며 "6500원 정도 되겠다"고 했다. 귀를 의심해 다시 물었다. 많이 나온 게 6500원밖에 안되냐고. 그랬더니 "평소엔 4000원 정도밖에 안된다"고 했다.
그것도 많이 받은 거라고, 최씨는 만족해했다. 고물상 사장에게, 왜 이렇게 가격이 싸냐고 했다. 파지는 1kg에 50원, 책은 110원이란다. "폐지 가격이 점점 내려가는 추세"라 했다. 예전엔 중국서 많이 수입해 갔는데, 지금은 깨끗한 것만 가져가려 한다고. 고물상도 한 땐 잘됐다고 했다. 1998년 IMF 땐 망하는 가게들이 많아서, 혹은 아예 경기가 좋을 땐 건물을 많이 지어서 폐기물이 많이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저 그렇다고 했다.
오후 1시, 다시시작이었다. 최씨가 걸음을 재촉했다. 아직 못 돈 곳이 많다고 했다. 하루 두 번 정도 동네를 돈다고 했다. 그 이상은 체력이 안 따라줘서 못한단다. 때마침 고물상에 들어오는, 또 다른 폐지 줍는 할머니와도 인사를 했다. 기자를 보곤"아들이야?"라고 물었다. 소개했더니 "고생이 많다"며 격려해줬다.
오후에도 같은 일이었다. 텅 빈 손수레를 보고 있자니, 언제 또 채우나 싶었다. 그래도 오전보단 훨씬 업무가 수월해졌다. 최씨가 손수레를 끌고, 기자는 그보다 한발 앞서 가며 상자가 있는지 구석구석 물색했다. 최씨는 "이걸 하다 보면 정말 상자밖에 안 보인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오후 2시쯤, 편의점 앞에서 최씨가 쉬다 가자고 했다. 그제야첫 끼니를 때우자고 했다.아침도 안 먹었단다. 편의점에 함께 들어갔다.우유를 먹겠다고, 기자에게도 고르라고 했다. 최씨는 500㎖(밀리리터) 흰 우유를, 기자는 250㎖ 딸기 우유를 골랐다(초딩 입맛). 가격은2750원. 최씨가 본인이 사겠다고 하는 걸 한사코 말렸다. 차마 사라고 할 수 없었다. 파지 55kg 가격과 같았다. 최소한 2~3시간은 모아야 가능한 돈이었다.
두 번째 손수레도 가득 찼다. "여기까지만 채우자"고 해놓고, 서로 욕심을 냈다. 상자가 보일 때마다"여기까지만"을 반복했다. 그렇게 조금씩 더 얹었다. 몇 번을 반복한 뒤에야, 손수레가 쉬 굴러갔다. 햇살 가득 받으면서.만선(滿船)이었다. 앞에서 손수레를 진두지휘하며 끄는 그는선장 같았다. 우연히 삶이 무너졌지만, 풍파에도 쉬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항해를 이어가는. 그런 맘으로 보니, 뒷모습이 커 보였다. 두번째 손수레는 80kg, 최씨가 손에 쥔 건4000원이었다. 많이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몸무게도 못 넘었구나. 만감이 교차했다.
최씨가 별안간 기자오른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오늘도 몇 번이나 반복한 말을 또 건넸다. 손 시리지 않았냐고. 삶의 잔상이 고스란히 박힌,투박하고, 거칠고, 두터운 손이었다. 똑같은 대답을 했다, 괜찮다고. 그러면서 최씨 손 위에 손을 얹었다. 평소에 참 안 하는 일인데,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그의 양손이 더차가웠다.낡고 다 헤진 장갑이, 영하 추위를 얼마나 막았을까 싶었다. 왜 이렇게 차갑냐고 했더니,혈액순환이 잘 안 돼 그렇다며, 얼버무렸다. 손가락 끝을 안으로 오므린 채, 다시 따뜻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운데 온기가 느껴졌다.
그는 고마움을 표했다."덕분에 제가 오늘 편했다, 폐지도 많이 줍고, 평소보다 많이 받았다, 힘들 텐데, 고생했다, 빨리 들어가시라, 어떻게 가느냐, 역방향은 저쪽이다"라고. 짧고, 세련되지 않지만, 최대한 잘 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전한 말 몇 마디. 그 말이 참 따뜻했다.
돌아오는 길에 든생각들. 그가 폐지를 줍는 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 정말우연히그렇게 됐단 것. 인생이란 게 얄궂어서누구든그렇게 될 수있단 것. 그러니 이들을 외계에 사는, 별나라 사람쯤으로 볼 게 아니라,이웃으로 보면 좋겠다는 것.관심을 두는 것만으로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예를 들면, 상자 테이프를 뜯어납작하게 접은 뒤 내놓는,이런 소소한 것들 말이다. 느릿느릿 차도로 가는 이들을충분히 기다려주거나.무거워 휘청거릴 때 말없이 조금은밀어준다거나.돈 안 드는따뜻한 말한마디 정도 건넨다거나, 그런 것들.
그리고 또 하나. 술 취한 이가 목숨을 함부로 뺏을 만큼, 이들 삶이존중받지 못해선 안 된다는 것.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하루 지탱하며치열하게살고 있다는 것. 다른 많은 사회적 약자들도 그렇단 것. 너무 오래,홀로 버티다약해지고 결국 쓰러지지 않게,도와줘야한다는 것도.
불편한 몸으로200kg이 넘는 손수레를 끌고, 정직하게 흘린 땀으로1만5000원을 벌고, 자녀들이 놀 때 용돈을 줘야 한다며 그 돈을꼬깃꼬깃지갑에 넣고, 밥을 차려주러 간다며, 부지런히 세발자전거를 타고 홀연히 사라지는 최씨 뒷모습은빛났다.
에필로그(epilogue).집에 돌아오는 길. 그제야 허기가 느껴졌다.분식집이 눈에 밟혔다. 메뉴판을 봤다. 떡볶이 3500원, 김밥 3000원, 치즈 김밥은 4000원. 평소 같으면 한 줄 정도는 사 먹었을 텐데, 발걸음이 쉬 떨어지질 않았다. 오늘 번 돈이떡볶이 2인분에 김밥 3줄정도. 최씨 혼자 일하는 날은떡볶이 2인분에 김밥 한 줄을 먹으면 사라질 돈이었다. 평소1만원도 못 번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그냥 갔다. 그리고 이런 물음이잔상처럼 남았다. 진정 괜찮은 걸까, 이들을 이렇게 놔두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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